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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유희록 1권(15화)
제5장 검마수련(劍魔修鍊)(4)
잠시 정시아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단세아는 흥,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캡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이게 그 유명한 환상 연대기의 접속 캡슐이라 이거죠?”
“그이를 무려 2주일이 넘게 붙잡고 있는 게임의 접속 캡슐이지.”
정시아와 단세아가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너무나도 닮은 그녀들의 얼굴에 한 가지 표정이 생겼다.
단세천의 그것과 같은 미소!
“재밌겠네요.”
“재밌겠구나.”
합창하듯 말한 그녀들이 천천히 캡슐로 다가갔다.
그리고 철컥, 소리와 함께 열린 캡슐이 그녀들을 환영해 주었다…….
제6장 검마사투(劍魔死鬪)(1)
동대륙에서 검기를 쓰는 조건은 단 한 가지뿐이다.
바로 경지가 일류 이상일 것!
하지만 일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익힌 무공 중 하나가 4성 이상이 되어야 하고, 내공 역시 7,000 이상의 수치에 도달해야 하니, 사실상 조건은 두 가지라 할 수 있었다.
일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조건을 만족시켰다는 메시지와 함께 검기의 사용이 가능해진다. 일찍이 단세천이 보았던 메시지 창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각성한 검기는 익힌 무공에 따라 달라지는데, 단세천의 경우에는 다행히 열양지공 계열의 일류 무공을 익히고 있어 염(炎) 속성이 가미된 업화검기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이류 무공을 익혔다면 얻을 수 있는 건 업화검기가 아니라 그냥 검기였을 터다.
그렇다면 각성한 검기는 마구잡이로 쓸 수 있느냐?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제일 처음 검기를 각성했을 때에는 거의 2,000가량의 내공이 소비된다. 물론 이후에는 내공 소모가 20분의 1로 줄어든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최초 시전 시 100, 유지 시 초당 10의 내공을 소모하게 된다.
일류가 되는 조건 중 하나는 내공이 7,000 이상일 것.
다시 말해 검기를 각성한 지─일류의 경지에 오른 지─얼마 안 된 무인의 검기 최대 사용 시간은 11분 정도라는 것이다.
이상이 단세천이 위저드 사에게서 들은 검기에 대한 정보였다.
‘절정의 경지를 가로막는 벽은 내공이 10,000이 되었을 때 찾아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벽을 넘기 전까지 업화검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은 16분 정도…….’
어째서 동대륙에서 일류 무사 수십 명이 달려들어야 절정 고수 한 명을 이길 수 있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보통 절정 고수의 최대 내공 수치는 20,000 정도.
게다가 경지가 절정이 되면 검기를 사용할 때 소모되는 내력이 5분의 1로 줄어든다. 최초 시전에 20, 유지 시 초당 2의 내공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 정도라면 절정 고수의 경우 무기에 기를 두른 상태로 무려 두 시간 이상을 싸울 수 있다. 단순히 지구전으로 가도 일류 무사 수십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거기다가 절정 경지의 상징인 ‘강기’를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강기는 내공 소모가 크기에 사용 시간이 짧아지겠지만, 보통 무기를 기를 두른 무기가 썰어 버리듯이 베어 버릴 수 있으니 일류 무사가 정정당당한 비무로는 절정 고수를 이길 가능성이 ‘절대로’ 없는 것이다.
“절대로 없다라……!”
단세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절대’를 곱씹었다.
일류 무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정당당한 비무로는 절정 고수를 이길 수 없다!
동대륙을 지탱하는 절대 무협 법칙 중 하나인 그것.
누구도 깰 수 없기에 ‘절대’ 무협 법칙이라 부르는 그 법칙이 검에 미친 마귀라 불리는 그의 심기를 자극해 온 거다.
‘재미있겠군!’
빙긋 웃은 단세천은 속으로 결심했다. 언제고 가능하다면 일류의 실력으로 절정고수와 싸워 보겠노라고. 그리고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겠노라고.
물론 싸우지 못할 수도 있다. 싸운다고 해도 패배할 가능성도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무인.
싸움에서 물러나는 법을 모르는 철혈의 무인이다.
“상태창.”
기본 정보
이름 : 단세천 소속 : 없음
직업 : 무인 별호 : 없음
신분 : 평민
체력 : 4,300 / 4,300 기력 : 4,000 / 4,000
내공 : 8,140 / 8,140 [일류]
근력 : 42 체력 : 43 민첩성 : 33
순발력 : 35 지구력 : 40 유연성 : 30
무공 정보
일급 기공 [수라마공] : 숙련도 4/12
일급 경공 [수라행] : 숙련도 3/12
단세천의 상태창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10에 맞춰져 있던 모든 수치들이 최소 30 이상일 뿐만 아니라, 내공도 갓 일류 고수에 들어선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8,000대였다.
그가 산에 오른 지 오늘로 94일째.
이 정도면 산에 오르기 전에 정했던 목표를 완전히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달성하지 못한 건…… 산에 오른 후에 생긴 목표지.’
단세천이 흑철검의 칼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익숙해진 칼자루의 감촉이 손 안 가득 느껴졌다.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눈동자에 짙은 투쟁심이 깃들었다.
산에 오른 후에 생긴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대흑랑!
낭아봉의 주인이자 현재 그가 알고 있는 최강의 적수 중 하나인 대흑랑을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산에 오른 후에 생긴 목표를 완전히 달성했다고 볼 수 없다.
단세천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침 대흑랑의 도발이 너무나 심해져 미호 선인이 협력을 요청해 온 상태였다. 대흑랑과 싸울 명분도 충분하다는 소리다.
물론 명분이 없다고 대흑랑과 싸우지 않을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결행일은 내일!’
그가 산에 오른 지 95일이 되는 날.
그날이야말로 대흑랑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단세천은 흑철검의 자루를 매만지며 새하얗게 웃었다. 그것은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포식자와 같은 미소였다.
그러나 세상일은 결코 예상했던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에 인생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라 불리는 것이다.
“……!”
‘음? 이 소리는?’
마음을 가다듬던 단세천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사이로 미약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탓이다.
현재 그가 있는 곳은 폭포 뒤에 위치한 동굴.
이곳에까지 들리게 하려면 폭포 너머에서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 없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야 겨우 들릴까 말까 하니 웬만큼 커다래서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문제는 폭포 뒤까지 들리려면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러야 하느냐가 아니라, 이곳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단 두 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두 명이란 건 당연히 시호와 미호 선인.
당연한 이치로 지금 폭포 밖에서 소리치는 이는 그 둘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시호는 돌을 던지고 미호 선인은 도술로 부르니, 결국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는 건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
순식간에 상황 판단을 마친 단세천이 흑철검을 뽑아 들고 폭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곳에는 그가 예상했던 상황 중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수십 마리의 흑랑, 그리고 그 흑랑들에게 둘러싸인 시호!
“으아앙! 세천! 세천!”
폭포에서 뛰쳐나온 단세천을 본 시호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이곳까지 오며 흑랑들에게 제법 공격을 당했는지 시호는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새하얀 소복에 붉게 번진 자국을 본 단세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내심 시호를 무척이나 아끼고 있었다, 가상 현실에서 생긴 또 한 명의 딸이라고까지 생각할 만큼.
그만큼 아끼지 않았다면 산 아래에서 요리 도구들을 사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수련까지 잠시 멈추고 산을 내려갔다 왔다는 건 그만큼 시호를 아낀다는 반증이었다.
그렇게 아끼는 시호가 지금 상처를 입은 채 엉엉 울고 있었다. 그것도 그의 부주의로 인해!
물론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은 하나밖에 없다. 그저 수련을 하러 폭포 뒤의 동굴에 들어갔던 것 말이다. 잘못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일이다.
하지만 단세천의 생각은 달랐다.
지켜 주기로 약속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줬어야 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변명 따위는 하찮은 것!
그만큼의 각오도 없었다면 아예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으득!
‘이렇게 화가 나는 것도 오랜만이로군!’
이를 간 단세천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사 성에 이른 수라마공의 수라기였다.
동시에 흑철검을 검은 불꽃이 휘감았다.
튀어 오르는 폭포의 물방울들을 닿는 순간 증발시켜 버리는 초고온의 흑염!
일류의 경지에 오른 고수의 상징이자 수라마공을 익힌 그만이 발현할 수 있는 업화검기였다.
“살아 돌아가기를 바라지 마라!”
사자처럼 포효한 그가 흑랑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흑철검이 흉포하게 움직이고, 그 궤도를 따라 흑색의 불꽃이 휘날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살과 뼈가 통째로 뭉개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연달아 다섯 번이나 울려 퍼졌다. 동시에 흑랑 다섯 마리가 산산이 터져 나가며 육편과 피를 흩날렸다.
‘아직이다!’
그는 검을 회수한 뒤 다시금 휘둘렀다.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는 흑철검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검이 닿는 범위에 있던 흑랑들이 ‘터져 나간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산산이 부서진 채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의 검은 극도의 무거움을 담고 있었으나, 이전처럼 느리지 않았다. 그저 보통으로 휘두르는 속도와 같았다. 그건 그의 검술이 경지에 올랐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단 세 번의 칼질로 흑랑 열 마리를 베어 버린 단세천은 재빨리 시호에게 다가갔다. 중간에 그를 가로막았던 흑랑 몇 마리가 있었지만, 그 흑랑들은 스스로가 부린 만용의 대가를 치를 뿐, 그를 제지하지는 못하였다.
오들오들 떨던 시호를 품에 안은 단세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냐?”
“아앙, 세천! 세천! 으아앙!”
단세천의 옷을 부여잡은 시호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가슴팍의 옷이 이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상냥한 손길로 시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단세천이 고개를 돌려 흑랑들을 노려보았다. 으르렁대고 있는 흑랑들을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에 진한 살기가 어렸다.
“안심하거라. 내가 있는 이상, 누구도 너를 해할 수 없으니.”
“히끅, 히잉, 히끅! 세천!”
그의 품 안에 안겨 있었기 때문인지, 거의 울음을 그친 시호가 훌쩍였다. 그런 시호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 준 단세천이 한 손으로 시호를 안았다. 그리고 다른 손에 들려 있던 흑철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잠시 흑랑들과 그 사이에 미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그러나 대치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며 그의 주변을 돌던 흑랑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크와앙!
크왕! 크왕!
십여 마리의 흑랑들은 사뭇 기세등등하게 포효하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샛노란 눈동자에는 단세천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진한 살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들의 상대는 단세천이었다. 일류의 경지에 이른 강력한 무인인 단세천 말이다.
타악!
단세천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흑랑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교묘히 흑랑들의 진로를 방해하며 뛰어들었기에 흑랑들은 그를 공격하지 못한 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간단하게 흑랑들 사이로 파고든 그의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그의 몸이 끊임없이 돌고, 돌고, 돌았다.
흑색의 검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차륜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철검십이식의 사식, 철검천파(鐵劍穿派)였다.
콰가가가각!
안 그래도 강력한 철검십이식에 어마어마한 내공이 사용되는 업화검기의 위력까지 더해진 상태! 일개 흑랑들로는 감히 막을 수 없는 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