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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유희록 1권(20화)
제7장 검마징벌(劍魔懲罰)(3)


발톱은 네 개였고, 가죽은 한 장이었다. 그렇지만 가죽이 워낙 컸기에 발톱 네 개로 만들 단검의 손잡이에 쓸 피혁으로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했다.
단세천이 꺼내 든 아이템들을 본 청년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이 발톱과 가죽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구령산의 아홉 우두머리 중 하나인 대흑랑의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결코 잡을 수 없다는 구령산의 아홉 우두머리 중 하나인 대흑랑의 발톱과 가죽!
감히 잡을 수 없기에 얻을 수 없다 칭해지는 재료이며, 그렇기에 그야말로 대장장이들이 꿈에서나 그리는 재료들이었다.
자신을 천생 대장장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은 곧바로 승낙하려 했다. 그러나 청년이 뭐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작 기간을 열흘, 비용은 금화 오십 개.”
“…사, 사부님?”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은 망치질을 하고 있던 노인이었다. 어느새 망치질을 멈춘 노인은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단세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작 의뢰를 하겠나?”
“좋소.”
고개를 끄덕인 단세천이 들고 있던 발톱과 가죽을 청년에게 건넸다. 노인이 망치질을 중간에 멈추고 말했다는 것에 놀라기라도 한 것인지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청년이 단세천이 내미는 발톱과 가죽을 받아 들었다.
“열흘 뒤에 다시 오겠소.”
땅! 땅! 땅! 땅!
단세천의 말에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만 망치질 소리만이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울려 퍼질 따름이었다.
가만히 가라앉은 눈으로 대장장이 노인을 바라보던 단세천은 몸을 돌려 대장간을 나섰다. 대장간을 나서는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기대감에 찬 미소였다.

그날 밤.
똑똑!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점소이에게서 받은 천으로 철혼검을 조심스럽게 닦고 있던 단세천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의 눈이 미묘하게 가늘어졌다.
‘점소이? 왜 잡화상점 주인이 오지 않은 거지?’
방문 밖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잡화상점 주인이 아닌, 위가객잔 점소이의 것이었다. 일류 고수가 되며 개방된 기감에 분명히 느껴졌기에 틀릴 염려는 없었다.
지금 단세천이 기다리던 사람은 점소이가 아니라 잡화상점 주인이다. 자신의 예상이 틀어졌다는 건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일 터. 본능적으로 뭔가를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 그는 가벼운 손길로 철혼검을 스윽 훑어 낸 뒤, 느릿한 동작으로 검집에 납검했다.
다만 검 자체를 가방 속에 넣지는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인의 감이라고나 할까?
똑똑!
덜컥.
방문을 열자 그곳에는 단세천의 예상대로 점소이가 서 있었다. 점소이는 푸른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에게 깨끗한 천을 가져다주었던 점소이기도 했다.
단세천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점소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저…… 1층에 손님을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색이 좀 추레하여…… 만나 볼 생각이 있으신지요?”
‘행색이 추레하다?’
단세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본 잡화상점 주인은 얼굴에 털이 무성할지언정 행색이 추레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를 찾아온 이는 잡화상점 주인이 아닌 것인가?
하지만 그의 직감은 자신을 찾아온 사내가 잡화상점 주인이라 말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만나 보면 알게 되겠지.’
“내려가 보겠소.”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이리로.”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간 곳에서 만난 사내는 점소이가 말한 설명처럼 ‘행색이 좀 추레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 꼴을 굳이 표현하자면, 건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노숙자 정도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듯했다.
얼굴은 얼마나 맞았는지 성한 부분을 찾기가 더 힘들었고, 옷은 그냥 걸레를 잘 기워 입은 모습처럼 보였다. 찢어진 부분에 피가 맺혀 있고 누더기 옷 여기저기에 혈흔이 번져 있는 것을 보니 얼굴이 아니라 전신을 매타작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세천을 본 거지사내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대, 대인! 죄송합니다!”
이마까지 땅에 처박은 거지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억울함과 분노가 담겨 있는 눈물이었다.
처음 거지사내를 봤을 때부터 그가 잡화상점 주인이라 짐작했던 단세천은 그의 갑작스런 부복에도 놀라지 않았다. 거지사내의 행색에서 일이 꼬였음을 충분히 짐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주위의 시선이 거슬렸던 단세천은 거지사내를 이끌고 탁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크흐흑……!”
거지사내, 아니, 잡화상점 주인이 울음을 터뜨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래 저는 전쟁상인들에게 대인께서 맡긴 가죽들을 적당히 분배해서 판매할 생각이었습니다…….”
전쟁상인들은 대개 병사들에게 싼값에 전리품을 구입하고 비싼 값에 생필품을 판매한다.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다.
보통 군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보급품이 지급되기는 하나, 그 양은 턱없이 부족한 편이기에 병사들은 바가지를 쓴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상인들에게서 물건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전쟁상인들은 병사들의 윗사람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 따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게 병사들의 상황이다.
그렇다고 바가지만을 씌우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병사들 중 누군가 값비싼 전리품을 챙겼다는 소문이라도 돌기라도 하는 날에는 전쟁상인들은 무력까지 사용해 가며 그 전리품을 강탈하기도 한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일이라지만, 알 만한 병사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전쟁상인들이기에 잡화상점 주인은 가죽들을 따로 나눠서 판매하려고 했다. 한꺼번에 팔려고 했다가는 눈이 뒤집힌 전쟁상인이 가죽을 빼앗으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전쟁상인들이 담합하여 가격을 후려쳤다. 당연히 자신의 물품이 아닌 잡화상점 주인은 판매를 거절했다. 그러자 전쟁상인들이 무력을 동원했고, 잡화상점 주인을 이렇게 두들긴 뒤 가죽들을 빼앗아 가 버렸던 것이다.
잡화상점 주인의 이야기를 들은 단세천은 철혼검을 어루만지며 피식 웃었다.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 이번 일은 철혼검을 쓰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퉁퉁 부운 눈에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잡화상점 주인에게 물었다.
“전쟁상인들이 지내는 곳이 어디오?”
“네? 그걸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당연한 것을 묻는구려. 빼앗긴 나의 물건을 되찾아 와야지.”
단세천의 말에 잡화상점 주인이 기겁했다.
“아, 안 됩니다! 대인! 전쟁상인들의 호위가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데요! 아무리 대인이라 할지라도……!”
잡화상점 주인은 말을 하다 말고 멍하니 단세천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단세천의 오른손을.
단세천의 오른손은 새카맣게 타오르는 흑염에 휩싸여 있었다.
일류 고수의 상징이며, 철조차 간단히 베어 버린다는 검기, 그 중에서도 마(魔)와 염(炎)의 속성을 띤 업화검기였다.
“그, 그건 설마…… 검기입니까?”
잡화상점을 운영하며 풍문으로나마 들은 적 있던 검기를 직접 눈앞에서 본 잡화상점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그가 알기로 검기는 엄청나게 강한 무림인들이 쓰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런 검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의 앞에 있는 이 청년이 무림인,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무림인이라는 것!
“전쟁상인들의 본거지는 어디요?”
“대로로 나가 우측으로 쭉 가시면 전군상(戰軍商)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전쟁상인들의 본거지입니다.”
단세천의 물음에 잡화상점 주인은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의 걱정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만큼 눈앞에 있는 이가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쟁상인들의 본거지를 말하던 그는 고개를 한차례 휘젓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그래 주면 고맙겠소.”
객잔을 나와 대로를 성큼성큼 걷는 잡화상점 주인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그였다.
단세천은 말없이 잡화상점 주인의 뒤를 따라갔다. 그의 표정은 무표정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저 멀리 전군상이라 쓰여진 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곳입니다, 대인!”
잡화상점 주인이 전군상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그의 얼굴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전군상은 매우 커다란 장원이었다(여기서 단세천은 전쟁상인들이 쌓은 부(富)가 보통 수준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다).
양옆으로는 담이 쭉 늘어서 있고, 멀리서 눈에 띌 만큼 커다란 현판만큼이나 큰 대문이 담 중앙에 위치해 있었으며, 내부에는 멀찍이서 봐도 사치스러운 꾸밈이 되어 있는 건물들로 가득 했다.
사치스러운 겉모습에 걸맞게 전군상의 대문에는 문지기로 보이는 험악한 얼굴의 사내 두 명이 창을 들고 서 있었는데, 문지기들은 단세천을, 정확하게는 잡화상점 주인을 보자마자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창두를 그에게 겨눴다.
단세천이 잠시 멈춰 선 사이, 오른쪽에 있던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 사내가 호통을 쳤다.
“놈!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냐!”
“정신을 못 차린 게 아니오! 그저 가죽 값에 걸맞은 돈을 받고 싶을 뿐이외다!”
잡화상점 주인이 성큼 걸어 나와 마주 고함쳤다.
그런 그의 태도에 험악한 중년 사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데다가, 벌겋게 달아오르기까지 한 중년 사내의 얼굴은 마치 야차와도 같아 보였다.
“아무리 돈이 귀하다 해도 목숨보다는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녀석이로구나! 좋다, 어디 한 번 죽어봐라!”
그렇게 소리친 중년 사내가 대뜸 창을 찔렀다. 워낙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잡화상점 주인은 비명조차 지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창은 정확하게 잡화상점 주인의 가슴팍을 노리며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번쩍!
한 줄기 섬광이 번쩍였다. 무언가 섬뜩함이 느껴지는 빛이었다. 보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예리함이 담긴 섬광!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 섬광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당황할 때, 잡화상점 주인을 향해 창을 찌르던 중년 사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아아악! 내 팔! 내 파알!”
놀랍게도 중년 사내의 팔은 바닥에 떨어져 퍼뜩거리고 있었다. 한순간 나타났던 섬광과 함께 잘려 나갔던 것이다!
잘려 나간 어깨로부터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바닥이 피 웅덩이로 변해 버렸고, 중년 사내의 몸 또한 피투성이가 되었다.
어느새 철혼검을 뽑아 든 단세천은 팔이 잘려 나간 어깨를 부여잡은 채 눈물콧물을 쏟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년 사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남을 죽이려 한다는 것은 자신이 죽을 각오 또한 되어 있다는 뜻!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거둬도 할 말이 없을 터지만, 나는 다만 너의 한 팔만을 가져가겠다.”
“으아아악! 내 팔, 내 팔이……!”
단세천의 냉혹한 이야기도 듣지 못하겠는 듯, 중년 사내는 계속해서 나뒹굴 뿐이었다.
그제야 단세천이 자신을 구했다는 것을 깨달은 잡화상점 주인이 헉!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인!”
“조금 위험할 테니, 물러나 있으시오.”
“네, 네!”
단세천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자임을 알게 된 잡화상점 주인에게 두말은 없었다. 그는 물러나 있으라는 단세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멀찍이 떨어졌다.
거치적거리던 잡화상점 주인마저 치워 버린 단세천이 한쪽에 서서 멍하니 서 있던 청년에게 말했다.
“안에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있나?”
“아? 네, 네! 있습니다!”
“그럼 뭐 하고 있나? 빨리 알려야지!”
“네?”
청년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단세천은 철혼검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삐이이이익!
어두운 밤하늘에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전군상 안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경계 신호다!’ 하는 외침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고했다. 너는 물러나 있거라.”
“네, 네! 감사합니다!”
청년이 허리를 몇 번이나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비로소 전군상의 대문 앞에 홀로 남게 된─팔이 잘린 중년 사내가 아직 바닥을 뒹굴고 있었지만, 단세천은 그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단세천은 철혼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의 몸에서 수라기가 넘실대며 피어오르고, 업화검기가 철혼검을 빈틈없이 감쌌다.
그는 계속해서 수라기를 업화검기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업화검기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늘어나서 끝내는 무려 일 장(303cm)이나 되는 거대한 크기가 되었다.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