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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유희록 1권(22화)
제7장 검마징벌(劍魔懲罰)(5)
단세천의 말에 기녀들과 정씨 오형제의 안색이 동시에 창백해졌다. 기녀들은 단세천이 도망치려 하면 뒤에서 죽일 것이라 생각했고, 정씨 오형제는 ‘여인들이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자신들의 죽는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녀들은 더욱 구석으로 파고들며 오들오들 떨었고, 정씨 오형제는 단세천의 발에 매달렸다.
“아이고, 대인!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제발 목숨만!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단세천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저 간단한 훈계를 하려 했던 것뿐인데 무슨 오해를 한 것인지!
“대인, 대인! 제발 부탁드립니다! 대인!”
“아아, 알겠다. 알겠으니, 조용히 해라!”
정씨 오형제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눈만큼은 계속해서 단세천을 바라보며 사정을 하고 있었다.
단세천은 결국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죽이지는 않겠다.”
“감사합니다, 대인!”
“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린 단세천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너희는 우선 좀 맞아야겠다!”
“네?”
퍼억!
당황하며 되묻는 정부귀의 얼굴에 단세천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그가 뒤로 벌러덩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단세천의 주먹에는 자비가 없었다.
퍽! 퍽! 퍽! 퍼억!
연이어 정씨 오형제의 몸에 꽂히는 주먹들!
“꾸웩! 꿱! 꾸엑! 꾸에엑!”
“대, 대인! 제발 용서를…… 꾸엑!”
“으, 으헛! 영화 형님! 대, 대, 대인! 용서…… 꾸에엑!”
단세천은 멈추지 않았다. 망설이지도 않았다. 쉬지도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정씨 오형제를 두들길 뿐.
“꿔에엑! 사, 살려 주십시오!”
“나 죽네! 끄엑! 나 죽어!”
한동안 전군상의 접객당 안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약 10분 후.
몸이 완전히 부어올라 전체적으로 크기가 두 배가 된 정씨 오형제가 극진한 태도로 자리에 부복했다.
단세천은 그 앞에 뒷짐을 지고 선 채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신은 차렸나?”
“네! 정신 차렸습니다, 대인!”
정씨 오형제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소리쳤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주먹 앞에서는 누구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죽 대금을 가져오도록.”
“네, 대인!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정부귀가 구르듯이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금화가 잔뜩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고급스러운 주머니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재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간 정부귀는 그것을 공손한 태도로 단세천에게 바쳤다.
주머니를 받아 든 단세천은 슬쩍 안을 열어 보았다. 척 보기에도 원래 약속했던 가죽의 대금보다 많은 양의 돈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저 쓴웃음을 한 번 지었을 뿐, 딱히 돌려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 돈이 일종의 뇌물이라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상인 하나쯤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나중에 찾아와서 도움을 합당한 도움을 주면 되겠지.’
정부귀가 들으면 기겁하여 손을 내저을 소리였다. 그는 그저 정확한 가죽 대금을 기억하지 못해 적당한 액수를 넣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걸 단세천이 오해하여 다시 찾아오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로서는 경기를 일으킬 소리일 수밖에.
“이만 가보겠다.”
“살펴 가십시오, 대인!”
단세천이 그렇게 말을 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정씨 오형제가 허리를 직각으로 꺾으며 인사했다.
고개를 끄덕거린 단세천이 접객당을 나섰다.
발소리가 멀어지다 아예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던 정씨 오형제는 단세천이 갔다는 확신이 들 때가 되어서야 허리를 세웠다.
그들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혹시나 단세천이 마음이 변해 돌아와 그들을 죽이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거운 침묵을 흘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오형제 중 막내인 정만석이었다.
“부귀 형님.”
“왜 그러냐, 막내야.”
“애들 시켜서 소금이라도 뿌릴까요?”
“…시킬 애들도 없잖냐.”
“…그렇네요.”
잠시 서로를 마주 보던 정씨 오형제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
전군상을 빠져나온 단세천을 맞이한 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전군상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던 잡화상점 주인이었다.
잡화상점 주인은 전군상을 빠져나오는 그를 보자, 마치 죽었다 살아 나온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환해진 얼굴로 그에게 달려왔다.
“무사하셨군요, 대인!”
“뭐, 그렇게 됐소.”
쓴웃음을 짓던 단세천이 품속을 뒤적였다. 다시 꺼내진 그의 손에는 정부귀에게서 받은 고급스런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주머니 안에서 금화 한 움큼을 집어 든 그가 그것을 잡화상점 주인에게 내밀었다.
“이것, 가죽 판매 대금이오.”
“가, 감사합니다!”
잡화상점 주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그러나 그 손의 떨림은 결코 기쁨의 떨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슬픔이 복받친 것에 가까웠다.
금화를 한 움큼으로 쥐어 봤자 얼마나 쥐어질까? 기껏해야 열 개, 스무 개가 한계다. 다행히 단세천의 손이 커 스무 개가량 되어 보이지만, 그가 본래 가지려던 돈은 무려 금화 오십 개! 서른 개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가죽을 팔려다가 봉변까지 당했는데, 판매 대금까지 줄어들었다. 잡화상점 주인이 슬플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건…… 치료비로 쓰시오.”
또다시 한 움큼의 금화를 건네는 단세천.
이번엔 잡화상점 주인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금화를 받았다. 역시 오십 개보다는 열 개가 모자라지만 이게 어딘가.
그는 봉변을 당한 이후로 만족을 알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살펴 가십시오!”
“당신도 살펴 가시오.”
단세천은 위가객잔을 향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만족스럽게─라고 단세천 홀로 생각하는─일이 끝난 밤이었다.
제8장 검마입대(劍魔入隊)(1)
권철은 수원관 모병소의 모병소장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서른다섯. 보통 모병소장이 쉰 전후의 나이 정도가 되어야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그것도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 해당한다─그의 승진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무척 능력이 있다거나 뒤를 봐주는 높은 분이 있어서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굳이 좌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병소에 올 리가 없었다.
그가 젊은 나이에 모병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전대 모병소장이 뇌물수수 문제로 해임된 덕이었다.
수원관 모병소는 권력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먼 장소.
승진은 물 건너갔으니 차라리 돈이나 벌어먹자는 전대 모병소장의 생각에는 권철도 이해하고, 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실제로 실천한 전대 모병소장은 안타깝게도 감찰사에게 걸려 투옥당해 버렸지만.
아무튼, 그런 까닭에 권철이 비교적 젊은 나이로 모병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으음, 아직 부족한데…….”
젊은 모병소장 권철은 침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현재 그의 앞에는 서류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모병 병사 목록’이라는 제목의 서류였다. 서류에는 열네 개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서류의 내용이었다.
서류에 쓰여 있는 열네 개의 이름은 제국의 군병으로 뽑힌 이들의 이름이었다. 열네 개의 이름이 쓰여 있다는 것은 지난 한 달간 총 열네 명의 사람이 이 모병소로 와서 군병으로 뽑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는 최저 제한의 모집 군병의 숫자가 열다섯 명이라는 것이라는 점과 내일이 되면 이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내일이 되어 이 서류를 제출한다면 그는 필요 최저한의 모집 군병도 채우지 못한 것이 될 테고, 그렇게 된다면 모병소장으로서의 능력을 의심받게 되어 감봉, 혹은 심하면 해직까지 당할지도 몰랐다.
권철로서는 결단코 피하고 싶은 상황인 셈이다.
‘한 놈만 더 와라, 한 놈만 더……!’
권철은 번뜩이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 명만, 딱 한 명만 더 채우면 이번 달 모집 제한은 끝이다. 딱 한 명만 더!
그런 권철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멀리서 흑의 무복을 입은 사내 한 명이 그를 향해, 정확히는 모병소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권철은 분명히 그가 모병소로 오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병소는 수원관의 성벽 끝, 무척 외진 곳에 있는데다가 군막이 있기 때문에 길을 잘못 찾거나 해서 찾아올 만한 곳이 아니었다.
따라서 저 흑의무복사내는 모병소를 찾아온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권철의 생각이었다.
권철의 예리한 눈이 흑의무복사내를 샅샅이 살폈다.
손에 배겨 있는 굳은살, 옷 아래로 드러난 탄탄하게 다져진 근육, 볼록 솟아나 있는 태양혈,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는 기도, 허리춤에 걸려 있는 한 자루의 철검!
이야기는 끝났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권철은 확신했다!
‘무림인이로군!’
때때로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이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거나, 아니면 원한을 맺은 적들의 추적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병사가 되기 위해 모병소를 찾을 때가 있다.
그런 때마다 자주 무림인들을 관찰하고, 때로는 그들과 몇 번 대화를 나눴던 권철은 흑의무복사내가 무림인이라고 확신했다.
권철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 뒤, 다가오던 무림인에게 물었다.
“제국의 군병이 되고 싶어서 오셨소?”
“그렇소.”
무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권철은 속으로 환호했지만 그것을 티내지는 않았다. 군병을 모집할 때에는 군기가 팍! 들어가 있는 모습이 상대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