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검마유희록 1권(23화)
제8장 검마입대(劍魔入隊)(2)
‘으히히히, 이걸로 마지막 한 녀석까지 채우는구나!’
그는 속으로 기이한 웃음을 터뜨리며 환호했지만, 겉으로는 무척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혹여나 해서 묻는 건데, 무림인이오?”
“무림인이면 군병이 될 수 없는 거요?”
“아니, 무림인이라면 십인장부터 군직을 받을 수 있기에 물어보는 거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무림인이면 무림인이다 말하는 게 좋을 거요. 그냥 군병과 십인장은 봉급이 열 배나 차이나니까 말이오.”
권철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무림인은 이내 ‘나는 무림인이 맞소’ 하고 순순히 사실을 말했다.
그에 권철의 속에서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무림인을 군병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음 달 최소 모집 제한을 안 지켜도 될뿐더러, 거기다 봉급에 추가 수당까지 나온다. 그것은 쓸 만한 군병을 모집한 모집소장에 대한 제국의 배려였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저지한 권철이 말을 이었다.
“전장은 매우 위험하오. 특히나 수원관은 야만족들과의 전투가 수시로 벌어지는 최전방. 그 위험성은 이루 말할 수 없소. 그런데도 군병이 되겠소?”
사실 말을 하면서도 권철은 그의 눈앞에 있던 무림인이 고개를 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겪어 본 무림인들은 자존심 빼면 시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무척 자존심이 센 족속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약간씩 자존심을 건드려 주는 발언을 한다면, 발끈하여 군병이 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는 했다.
과연 권철의 예상대로 그의 앞에 서 있던 무림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이니 기본 훈련은 필요없을 테니 바로 넘기겠소. 어차피 기본 훈련에서 알려 주는 건 간단하게 창을 휘두르는 방법이니까.”
“알겠소.”
“아, 군갑(軍甲)을 지급받겠소?”
“군갑?”
“군갑이라 해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오. 대나무를 이어 만든 죽갑(竹甲)이니까, 무림인에게는 그다지 소용이 없을 것이외다.”
그러면서 권철은 자신이 입고 있는 죽갑을 보여 주었다. 대나무를 여러 겹으로 이어 만든 두툼한 갑옷이었다.
무림인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없다는 뜻이다.
“아, 만약 승급하여 백인장이 된다면 백인장용 군갑은 받는 게 좋을 거요. 죽갑에 불과한 십인장의 군갑을 생각하고 받지 않는다면 필히 후회하게 될 테니 말이오.”
기본적인 설명을 마친 권철이 품 안에서 패 하나를 꺼냈다. 철로 만들어진 패에는 ‘제이십육대(第二十六隊) 십인장령(十人將令)’이라는 나름대로 거창한 직책이 쓰여 있었다.
‘이십육대라…….’
잠시 생각하던 권철은 그 십인대에 이렇다 할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패를 무림인에게 내밀었다. 그가 이십육 십인대에 대해 고민해 본 것은, 후에 이상한 곳에 배치해 줬다고 무림인이 보복하러 찾아오지는 않을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한 무림인이 그런 이유로 전전대 모병소장을 두들겨 패는 것을 봤었다.
여담이지만, 전전대 모병소장은 그 무림인에게 두들겨 맞은 영향으로 골병이 들어 모병소를 떠났고, 그 뒤를 이어 전대 모병소장이 모병소의 소장으로 취임했었다.
“제이십육대는 삼군영에 있소. 막사마다 표시가 되어 있으니 찾기 어렵지는 않을 거요.”
무림인은 별말없이 패를 받아 들었다.
권철은 몰랐지만, 그에게서 패를 받아 든 무림인의 눈앞으로는 반투명한 푸른색 메시지 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직업이 ‘무인(武人)’에서 ‘군인(軍人)’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신분이 ‘평민’에서 ‘군관(軍官)―십인장(十人將)’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소속이 ‘제국(帝國)―관부(官府)’로 변경되었습니다.
* * *
수원관의 군영은 총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군영에는 일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 머물고 있다. 총합 오만에 달하는 대군이 한 요새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수원관이 야만족과의 전장 중에서도 최전방에 위치한 탓이다. 야만족과의 전투가 일어나는 관문 요새들은 십여 개가 조금 넘는데, 그중에서도 수원관은 독보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야만족의 영토에 치우쳐져 있는 상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야만족에게 둘러싸여 전멸할 수도 있다는 지리적인 요소로 인하여 오만이나 되는 대군이 한 요새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각 군영에 위치한 만 명의 대군은 열 명으로 나눈 십인대, 십인대 열 개를 뭉쳐서 만든 백인대, 다시 백인대 열 개를 뭉쳐서 만든 천인대로 이루어지며, 천인대장 열 명과 그들을 통솔하는 한 명의 장군이 군을 지휘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렇게 하면 각 군영마다 장군 한 명씩, 총 다섯 명의 장군이 존재하게 되는데, 다섯 명의 장군은 수원관에 머무는 총사령관, ‘대장군’의 명령을 받는다. 다른 요새들이 장군 두세 명만 머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수원관에 얼마나 많은 전력이 집중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세천이 배정받은 삼군영은 여러 군단들 중에서도 가장 수원관에 근접해 있는 군단으로, 주로 맡은 역할은 보급이다. 각 군영에 보급 부대를 보내 식량 및 기타 생활품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참으로 쉬워 보이는 역할이다. 그러나 이게 또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군단들은 주로 요새에서 멀리 떨어진 야만족들과의 전투가 한창인 곳에 위치해 있다. 거기까지 시간에 맞춰 가려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중에 야만족의 습격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빠른 기동력은 물론이고, 야만족들의 습격에서 살아남아 보급품을 전해 주려면 어느 정도 전투력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굳세고 강인한 군병이 아니라면 보급 부대도 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야만족과의 전장 중에서도 최전방인 수원관에서 약병은 살아남을 수 없다. 오로지 강병만이 생존할 수 있다.
…라는 것이 그를 안내하러 온 백인대장의 설명이었다.
‘재미있군. 수라마공을 익히는 데 이보다 좋은 곳은 없겠어.’
단세천은 사뭇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군영 내에서 군병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움직임이 빠릿빠릿하고 절도있는 것이, 군기가 팍 들어가 있는 모양새였다.
그들을 일변한 그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막사마다 어느 십인대가 머물고 있는지 특유의 번호가 새겨져 있었기에 그가 속하게 된 십인대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막사를 찾은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하들의 충성은 필수. 그러기 위해서는 십인대를 확실하게 제압해 놔야 해.’
부하들에게 충성을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인덕을 통한 포섭, 무력을 통한 강압, 금전을 통한 회유 등.
그중 단세천이 하려고 하는 것은 무력을 통한 강압이었다.
인덕을 통한 포섭과 금전을 통한 회유는 그의 성격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무력을 통한 강압으로 부하들에게 충성을 받으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기선 제압이다.’
기선 제압의 방법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시비를 걸어오는 놈 하나를 족치는 것으로 자신의 무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한두 명 정도는 그의 방법을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지만, 단세천은 느긋한 얼굴로 웃었다.
‘따라오지 못한다면 끌어안을 생각 따위는 없다.’
펄럭.
단세천이 막사의 입구를 가리고 있는 천을 치우고 안으로 들어서자 열 개의 시선이 그를 향해 꽂혀 들었다.
아직 스물 전후로 보이는 청년이 다섯 명, 어느 정도 나이 들어 보이는 사내가 네 명, 노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늙은 사람이 한 명이었다.
단세천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 막사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막사의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자리에 가서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앉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아예 눈까지 감아 버렸다.
그런 그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그에게 모였던 열 개의 시선이 흔들렸다.
“뭐야, 저놈은?”
걸걸한 목소리가 막사 내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턱수염이 무성하고, 눈매가 부리부리한 삼십 대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자신의 패거리로 보이는 이 두 명과 함께 단세천을 아니꼽다는 듯 노려보며 나불거렸다.
“지가 뭐 잘났다고 저 지랄이야?”
“형님을 보면 당연히 신입 인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십인대장 자리를 땄다고 아주 신이 나셨구만요. 위아래도 못 알아보다니 말입죠.”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어차피 십인대장이나 십인대 병사나 거기서 거기, 한 끗발 차이일 텐데 저런 태도라니.”
턱수염사내가 막사 안에 다 들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자, 그의 주변에 있던 염소수염을 기른 간사한 외모의 사내와 전신에 근육이 울룩불룩하게 자리 잡은 사내가 맞장구쳤다.
그들의 맞장구에 힘이라도 얻은 듯, 턱수염사내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두 사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저런 건방진 녀석보다는 내가 십인대장에 어울리지 않을까?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 하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형님.”
“저런 놈보다는 형님이 십인대장으로 제격이지요.”
죽이 척척 맞는 세 명의 대화.
턱수염사내가 십인대장이 된다고 결론을 내린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들의 행태를 보던 노인이 혀를 쯧쯧 찼다.
‘멍청한 것들 같으니라고.’
노인이 보기에 단세천에게 고작 한량으로 떠돌다 병사가 된 그들이 이길 가능성 따위는 조금도 없어 보였다. 척 보기에도 막 노동으로 쓸데없이 부풀어 오른 그들의 근육과는 다르게 체계가 잡힌 근육이 무술 같은 것을 어느 정도 배웠음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게다가 막사 안에 들어오자마자 가부좌를 튼 것을 보면 십인대장은 어쩌면 그 유명한 무림인일지도 몰랐다.
자고로 무림인이라 함은 보통 사람 따위는 열 명, 스무 명이 덤벼도 이길 수 있는 존재다. 하여 고작 세 명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우습기만 한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