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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9화)
七章 비검문으로(3)


빙그르르.
진유현이 찻잔을 어루만지며 생각이 잠기더니,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검문의 행보야 어떻든 일단 사혈성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혈성의 전력을 각개격파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비검문을 도와주자는 뜻.
진유현의 말에 북리성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말이 각개격파지, 장로원과 흑천대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강하다.”
진성원의 말에 진유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흑천대는 모르겠지만, 장로원이 전부 비검문으로 향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아마 사혈성에 남아 있고, 소수만이 비검문으로 향했을 겁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사혈성의 전력을 깎아 놓는 게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혈전에 좋을 듯합니다.”
진유현의 말.
그 말에 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원은 사혈성 최고의 전력이기도 하지만, 최후의 전력이기도 했다.
그런 소중한 전력을 전부 외부로 돌리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진성원이 두 눈을 빛냈다.
진유현의 말에 비검문으로 지원군을 보내기로 마음을 다진 것이다.
“그럼 본 장에서 어느 정도가 가야 하겠느냐?”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네가 강한 건 알지만 너무 위험하다.”
진유현이 진성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가는 게 오히려 안전합니다. 장로원과 흑천대라면 소수로 움직일 텐데, 많은 숫자는 오히려 불편합니다. 어차피 비검문에서 필요한 것도 흑천대보다는 장로원을 상대할 수 있는 고수일 겁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북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유현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사실 흑천대만이라면 비검문에서도 충분히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비검문이 대문파는 아니라지만 흑천대 하나라면 어떻게든 막아 낼 수 있다.
문제는 고수로 이루어진 장로원.
더구나 비검문으로 향하는 장로원 중에 탈혼검이 속해 있다면 비검문은 속절없이 무너질 게 뻔하다.
그만큼 초절정 고수의 무력은 대단하다.
진가장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왔던 것도 장로원의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초절정 고수로 알려진 진유현의 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성원은 그 사실을 알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진유현이 강한 건 잘 알고 있다.
아니, 누구보다 확실히 안다.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직접 들었으니.
그러니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의 몸 하나 정도는 충분히 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기 때문에 불안한 건 사실이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혼자 보내려니 입이 안 열리는 것이다.
그때였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조일영이 입을 열었다.
“저희 정검대도 같이 가도록 하지요.”
그 말에 적소화가 깜짝 놀랐다.
“숙부, 괜찮겠어요.”
“백검문이 너무 조용한 게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사혈성도 이쯤에서 멈출 것 같지는 않고 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기회에 사혈성의 전력을 줄여 놓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구나. 본 문에는 따로 소식을 전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게 좋겠다.”
적소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일영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만큼 사혈성의 행보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거기에 백검문까지 더해서.
북리성의 기쁜 얼굴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 인사는 사혈성을 막고 나서 해도 늦지 않네.”
조일영의 결단에 진성원도 마음을 다졌다.
“좋다. 가서 비검문을 돕고 오너라.”
진성원의 말에 진유현이 미소 지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아버지, 걱정 마십시오. 혈존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특별히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대단한 자신감.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오만한 말이다.
하지만 진유현의 경지를 알고 있는 진성원은 결코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유현의 말에 안심했다.
다시 한 번 진유현의 경지를 상기한 것이다.
진성원이 북리성을 바라봤다.
“그래, 언제쯤 출발하기를 바라나?”
진성원의 물음에 북리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실례지만, 지금 출발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말인가? 하지만 자네도 지금 도착하지 않았나. 그러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북리성의 몸에 걸쳐진 먼지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북리성은 피곤해 보였다.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진가장에서 쉬었다가 빨리 가는 것보다는, 지금 출발해서 천천히 쉬며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북리성이 진가장에서 쉬는 만큼, 비검문으로 출발하는 일행이 속도를 올려야 한다.
어떻게든 빨리 가다 보면 불편한 일이 생기고 먼지를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비검문에 도움을 주러 가는 일행을 불편하게 하기 싫어서 자신이 쉬지 않고 천천히 가려는 것이다.
물론 그사이에 사혈성이 갑자기 비검문에 들이닥칠까 봐 불안해서 얌전히 쉬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다.
진성원은 북리성에게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초조함을 느꼈다.
이럴 때는 억지로 휴식을 취하게 한다고 피곤이 풀리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정신적으로 더 지치고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몸을 움직이는 게 오히려 나았다.
그런 생각을 읽은 진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조 대협은 어떻습니까?”
진성원이 조일영의 의사를 물었다.
“저희도 괜찮습니다.”
적혈대와의 전투에서 진유현이 혼자 싸웠기에 정검대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조일영과 적소화는 물론, 정검대원 대부분이 진가장에서 그동안 푹 쉬었다.
몸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 바로 출발한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북리성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비검문 지원군.
이렇게 비검문에 갈 지원군이 정해졌다.
산동 무림에서 부는 혈풍이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다.

***

달그닥. 달그닥.
좁은 관도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오십여 필의 말들이 있었다.
진가장을 나선 비검문 지원군으로, 진유현과 정천문의 일행들이었다.
이들의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혈성에서 출발한 흑천대보다 약간 앞서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는 도중에도 북리성의 얼굴은 약간 조급해 보였지만, 충분한 여유가 있는데 굳이 서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비검문에 가는 이유는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였다.
그런 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일행의 선두에는 길을 안내하는 북리성을 비롯해 진유현과 조일영, 그리고 적소화가 있었고, 정검대원들은 조금 뒤처진 상태로 가는 중이었다.
북리성은 진유현의 옆에 나란히 가며 끊임없이 말을 붙이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얼굴은 이미 진유현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뇌왕 진유현.
현재 정도 무림의 젊은 무인들이 꿈꾸는 우상이 바로 진유현이기 때문이다.
뇌신의 제자.
사혈성의 행보에 제동을 건 자.
무림에서 이미 절대 강자의 반열에 오른 무력.
진유현이 행한 일은 이미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전설이 되고 있었다.
진유현이 적혈대를 전멸시킨 후, 그의 추종자들은 천하 무림에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종교가 퍼지는 속도와 맞먹을 정도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대문파의 제자들도 티를 내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진유현을 동경하고 있을 정도였다.
북리성도 그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같이 길을 가면서 가만히 있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북리성은 진유현에게 궁금한 점을 쉬지 않고 물어보고 있었다.
진유현의 사부인 뇌신에서부터 무공의 경지까지 계속 물어왔다.
또한 적혈대를 전멸시킨 부분에서는 흥분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쩌면 그것은 사혈성 때문에 드는 불안한 생각을 감추기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진유현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혈대로 인해 진가장에 도착할 때까지 북리성처럼 불안해했다.
그렇기에 북리성의 행동이 충분히 공감되는 것이다.
북리성의 그런 마음을 짐작했기에 진유현도 무리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적소화도 중간 중간에 둘 사이에 끼어들었고, 조일영은 묵묵히 갈 길만 가고 있었다.

***

안구(安丘).
산동성의 안구는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다.
다른 도시처럼 강의 지류를 끼지도 않고, 대표할 만한 특산물도 없었기에 상인들이 모이지 않아 그리 발전되지 않은 평범한 마을에 속했다.
진유현의 일행이 안구에 들어선 것은 신시(오후 3시―5시) 때쯤이었다.
비검문으로 가는 도중에 이곳에서 식사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들른 것이다.
일행은 객잔을 찾아 주위를 돌아다녔지만,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객잔이 하나밖에 없었다.
청평객잔.
오래됐는지 상당히 낡아 보이는 건물이었다.
객잔의 구석 부분은 지금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객잔의 크기도 작아 오십 명 정도가 식사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드르륵.
일행이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객잔 주인이 느릿하게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오시지요.”
객잔 안에는 다른 손님이라고는 없었다.
객잔 주인이 일행을 자리로 안내했다.
일행은 자리에 앉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탁자나 의자의 먼지가 닦여 있지 않아서였다. 뿌연 먼지가 그대로 있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객잔을 나가고 싶었지만, 마을에 객잔이 하나다 보니 그러지도 못했다.
그런 일행을 향해 객잔 주인이 물었다.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숙부, 이곳에서는 간단하게 소면이랑 만두가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적소화가 조일영에게 물었다.
일단 이 자리에서 가장 큰 어른이니 묻는 것이다.
“나도 그게 좋겠구나.”
조일영이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객잔의 청결 상태가 엉망이라 음식도 별로 내키지 않아서였다.
다른 일행들도 같은 생각인지 조일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대표로 적소화가 객잔 주인에게 주문했다.
“인원수만큼 소면이랑 만두를 주세요.”
“알겠습니다.”
객잔 주인이 주문을 받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나름 비싼 걸로 주문할 줄 알았는데, 고작 소면과 만두니 실망한 것이다.
“여기는 정말 지저분하네요.”
“죄송합니다.”
적소화의 말에 북리성이 사과했다.
비검문을 도와주기 위해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그나저나 백검문의 의도가 뭘까요?”
적소화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을 돌렸다.
“글쎄요. 하지만 본 문의 정보로는 백검문이 강소성을 은밀하게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그 움직임이 본 문에 포착된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