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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20화)
七章 비검문으로(4)


“…….”
북리성의 말에 적소화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백검문과 강소성이 연관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조용히 있던 진유현이 적소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정말로 사혈성과 밀약을 맺은 것일 수도 있소. 그게 아니라면…….”
진유현이 말끝을 흐리자, 모두의 시선이 진유현에게 향하고 있었다.
“백검문의 입장에서는 사혈성의 움직임보다 더 중요한 게 강소성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더 중요한 거라니요?”
적소화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사혈성의 행보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백검문의 영역이 강소성이 아닌 산동성이기 때문이었다.
적소화의 물음에 진유현이 천천히 말했다.
“예를 들어, 강소이패가 연합해서 산동으로 북상한다면 어떨 것 같소? 강소성을 가까이 둔 백검문의 입장에서는 사혈성을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 같소만.”
“네?”
“…….”
“…….”
그 말에 좌중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만큼 진유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각 성의 세력이 연합해서 다른 성을 공격한 사례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자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도림과 패왕문은 사파다.
어떤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만약 정말로 도림과 패왕문이 연합해서 산동성으로 진출하려고 하면, 백검문 입장에서는 사혈성의 행보가 문제가 아니었다.
백검문의 모든 전력을 강소성 방향으로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유현은 자신의 발언으로 좌중의 분위기가 가라앉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가정일 뿐이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얘기예요.”
적소화가 조일영을 바라보았다.
“숙부.”
“그래, 아무래도 본 문에 연락해서 자세히 알아봐야 하겠구나.”
조일영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조일영이 생각해도 진유현의 가정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충분히 가능한 가정이라면, 정천문에서도 따로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스윽.
조일영이 정검대를 향해 눈짓하자, 정검대원 한 명이 일어나 다가왔다.
“지금 들은 이야기를 최대한 빠르게 본 문에 전해라.”
“알겠습니다.”
타타타탁.
조일영의 명령에 정검대원이 객잔을 빠져나갔다.
정검대원은 중간에 쉬지도 않고 정천문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리라.
그사이 객잔 주인이 음식을 가지고 다가왔다.
“주문하신 음식이 나왔습니다.”
객잔 주인이 내온 음식은 의외로 객잔에 어울리지 않게 청결했다.
맛도 괜찮은 편에 속했다.
객잔의 청결 상태를 생각하면 의외였다.
탁자에 놓인 소면과 만두를 일행이 조용히 먹고 있을 때쯤이었다.
쾅!
객잔의 문이 부서질 듯이 열렸다.
그러고는 흑의를 걸친 무인들이 거칠게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흠칫.
그들은 객잔을 가득 채운 정검대원들을 보고 잠시 얼굴을 굳혔다.
정검대원들의 기세가 만만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몸이 저절로 긴장했다.
저벅저벅.
하지만 이내 얼굴을 풀고는 천천히 객잔 주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정검대원들을 향해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흑의인들의 중심에 선 사내가 주인을 향해 외쳤다.
“주인장, 돈은 준비됐겠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일행의 우두머리인 허구의 말에 객잔 주인이 허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품에서 전낭 주머니를 꺼내 허구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헤헤헤. 대협, 여기 있습니다.”
객잔 주인이 건넨 전낭 주머니를 살피던 허구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전낭 주머니에 있는 돈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지금 장난하나.”
허구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보기만 해도 겁이 나는 범죄형 얼굴이었다.
허구의 태도에 잔뜩 겁먹은 객잔 주인이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 장사가 안 됩니다. 이번만 좀 봐주시면…….”
객잔 주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휘익!
퍽!
허구의 주먹이 말을 하는 중간에 날아와 객잔 주인의 안면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으악.”
쿠당탕!
객잔 주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뒹굴었다.
맞은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유현 일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물론 어느 마을이나 저런 자들이 있지만, 지금 행동은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뭐, 장사가 안 돼. 그럼 이자들은 손님이 아니고 거지새끼들이냐.”
허구가 고함을 지르고는 객잔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에 객잔 주인이 벌벌 떨며 말했다.
“저들은 정말 간만에 온 손님입니다. 제발 한 번만 봐 주십시오.”
객잔 주인의 말에 허구의 발이 허공을 갈랐다.
퍼퍼퍽!
“아악.”
가까이 다가간 허구가 순식간에 객잔 주인을 걷어차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봐, 주인장. 감히 사혈성의 비호를 받으면서 보호비를 안 내려고 하다니, 사혈성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차라리 죽여 줄까?”
허구의 협박에 객잔 주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갈 때쯤이었다.
피식.
객잔에 한 줄기 조소가 들렸다.
허구의 얼굴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 시선의 끝에 바로 진유현이 있었다.
허구가 잠시 정검대원들을 훑어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만만찮은 모습.
허구의 눈에 진유현의 모습은 잘난 가문의 도련님이 호위를 줄줄이 달고 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그 모습에 잠시 고민하던 허구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껄렁껄렁하게 진유현을 향해 다가갔다.
겁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쾅!
허구의 주먹이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이봐, 설마 지금 나를 비웃은 것은 아니겠지.”
진유현의 시선이 허구를 향했다.
여전히 입가에는 조소를 머금은 상태였다. 그에 허구의 입가가 비틀렸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까부는 거냐.”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나 보군.”
진유현의 말.
비꼬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허구가 발끈하며 크게 말했다.
“사혈성의 영역에서 사혈성의 무인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냐?”
허구가 크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사혈성이라는 말에 눈앞의 건방진 녀석이 고개를 숙이고 사과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혈성이라고?”
“그래. 내가 바로 사혈성의 무인이다.”
허구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진유현의 조소는 멈추지 않았다.
“웃기는군.”
“뭐라고?”
허구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귀를 후볐다.
“사혈성의 주 영역은 평도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 여기까지 진출했다는 거지?”
실제로 평도와 안구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진유현의 말에 허구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이 있군. 이곳 안구는 바로 사혈성 지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사혈성 지부?”
진유현이 허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혈성 지부라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유현의 의문에 북리성이 끼어들었다.
“과거 산동에 있던 사파가 전부 사혈성의 지부가 됐다고 생각하면 되실 겁니다.”
“……?”
북리성의 말에도 진유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은 규모라 할지라도 문파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무림에서 문파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개파한 지 십 년도 되지 않은 수많은 문파들이 사라져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정파만이 아니라 사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만큼 자신이 속한 문파에 깊은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문파의 제자들은 실제로 문파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문파명은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 그 문파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어딘가의 지부가 된다는 것은 기존의 문파명을 버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무력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지부가 될 수도 있지만, 한 문파에 귀속된 무인에게는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진유현은 거기서 의문을 느꼈다.
지부로 격하된 것치고는 허구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진유현이 느끼는 의문을 북리성이 풀어 줬다.
“사파는 정파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사파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모인 집단입니다. 그런 만큼 어중간한 문파보다는, 차라리 사혈성의 지부가 되어 사혈성의 이름을 빌리고 싶은 겁니다. 실제로 지부라 할지라도 사혈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정파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북리성의 말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는 진유현이었다.
반면 허구의 몸은 잔뜩 굳어졌다.
진유현과 북리성의 태도에서 사혈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라 주변에 자리한 정검대원들의 몸에서 차가운 살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허구가 크게 소리쳤다.
“얼마 전에는 바로 그 유명한 흑천대 대협들을 모신 바 있는 우리들이다. 그런데도 감히 우리에게 시비를 걸다니, 네 녀석이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허구가 진유현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실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현재 사혈성은 산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문파다.
특히 흑천대는 사혈성을 대표하는 무력 집단이니, 진유현이 이만 사과하리라 생각했다.
허구는 진유현이 사과만 하면 곧바로 물러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진유현의 얼굴을 박살 내 버리고 싶었지만, 주변에 자리한 정검대원들의 기세가 그만큼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유현의 눈치를 살피던 허구의 몸이 순간 굳어져 갔다.
진유현과 눈이 마주친 순간.
화악!
자신은 상상도 못할 살기가 진유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살기는 이내 객잔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허구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농도가 짙은 살기였다.
얼마 전 가까운 자리에서 모셨던 흑천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부르르.
허구의 몸이 진유현의 살기에 거세게 떨렸다.
몸이 자연스레 반응하는 것이다.
“흑천대?”
“그렇습…… 니다.”
대답하는 허구의 목소리가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말투도 어느새 존대로 바뀌었다.
진유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를 바라보는 허구는 저절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지독한 살기를 담은 미소였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것 같은 그런 미소.
허구의 생존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흑천대가 이곳을 지나갔었나?”
“…….”
두려움에 바로 대답을 못하는 행동에 진유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허구가 다급히 말했다.
“어제 이곳에 머무르셨습니다.”
“어제?”
“네. 어제 도착하셔서 이곳에 머무르시고, 오늘 아침에 출발하셨습니다.”
그 말에 북리성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그들이 갈 곳이야 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향한 곳.
비검문이 분명했다.
진유현이 적소화를 보며 말했다.
“우리보다 이틀 정도 늦는다고 하지 않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