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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22화)
八章 습격(2)


휘리릭!
그와 함께 비검문의 무인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형이 안정된 게 비검문의 정예가 분명했다.
정문위사의 시체를 바라보는 경비대주 곡추한의 눈빛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비검문의 정문에서 위사들이 죽은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시체가 남긴 흔적이 더 중요했다.
곡추한은 정문으로 오면서 위사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분명히 보았다.
사도명이 검결지를 일으키는 것과 검기가 위사들을 향해 쏘아지는 것까지.
그것은 분명 검이 아니라 검결지였다.
그런데 검결지라고 하기에는 절단면이 깔끔했다.
검결지로 검기를 일으키는 것도 힘들지만, 검결지의 검기로 사람을 깔끔하게 베어 내는 것은 더 힘들다.
그런데 눈앞에 존재하는 시체의 절단면은 검으로 베어졌을 때보다 더 날카롭고 깔끔했다.
곡추한은 이 한 수만으로도 눈앞의 노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탈혼검 사도명.
사혈성이 아무리 대문파라지만, 그 말고 이런 신기를 보일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정문위사의 시체를 바라보던 경비대주 곡추한이 사도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탈혼검 사도명 정도의 고수가 기습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소!”
말투에 살기가 물씬 풍겼다.
어찌 됐든 정문에서 위사들이 죽은 것이다.
그것만큼 치욕적인 것도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경비대의 대주가 아닌가.
후우웅!
곡추한의 전신에서 살기가 퍼져 나왔다.
마치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은 분위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도명이 흑천대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한 시진을 주겠다. 그 안에 모두 정리해라. 그 후에 청주로 출발한다.”
사도명에게 있어서 비검문은 관심 밖이었다. 이미 머릿속은 뇌왕 진유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충.”
우웅!
후우웅!
부복하는 흑천대에서 짙은 살기가 폭사 되었다.
사도명의 명령이 드디어 떨어졌다.
지금부터는 살육의 시간.
사도명으로 인해 참고 있던 살기가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것이다.
사도명으로부터 허락받은 한 시진.
그 안에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혈성에서 흑천대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다.
아니, 그전에 사도명에 의해서 대주 및 부대주가 먼저 죽어 나갈 수도 있었다.
사도명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자였다.
흑천대의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도명의 태도에 곡추한의 눈에서 살광이 스쳤다.
“감히, 삼패라 할지라도 본 문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곳 제성은 본 문의 영역. 오늘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곡추한의 외침.
사도명에게 허락을 받은 흑천대주 기성량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크크크. 말이 많군. 전투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나 또한 허락받은 시간이 길지 않다.”
후확!
기성량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 되고.
텅.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성량의 신형이 곡추한을 향해 짓쳐 들었다.
츠츠츠츠!
번쩍!
검이 뽑히며 검광이 곡추한을 베어 나갔다.
곡추한 또한 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큭.”
기성량의 일 검을 막은 곡추한이 뒤로 밀리며 신음을 흘렸다.
검력을 해소하지 못한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아귀는 찢어졌는지 핏줄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기성량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호오. 나의 일 검을 막았다? 제법이군. 그럼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기성량의 검이 휘둘러졌다.
우우웅!
만사혈검(萬巳血劍).
기성량을 지금의 흑천대주로 만든 성명절기 만사혈검의 검기가 쏘아져 나갔다.
빠드득.
곡추한이 이를 악물고는 단전에 자리한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단전과 기혈이 요동쳤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후우웅!
곡추한의 검에 검기가 맺히고, 자신을 노리는 만사혈검을 막아섰다.
퍽!
“컥.”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나는 곡추한이 눈을 부릅떴다.
눈앞에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어서였다.
자신은 분명히 기성량의 만사혈검을 막기 위해 검기를 일으켰다.
두 검기가 충돌해야만 하는 상황.
그런데 만사혈검이 마치 뱀이 나무를 오르듯 자신의 검기를 타고 오르더니, 심장에 박힌 것이다.
곡추한의 상식으로는 불가해한 일이다.
심장이 뚫린 곡추한의 두 눈이 빛을 잃고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서걱!
털썩!
곡추한에게 가까이 다가간 기성량이 단숨에 목을 베어 버렸다.
그 모습에 비검문 무인들의 몸에서 살기가 폭사 되었다.
챙챙챙챙챙.
“감히.”
“놈.”
“죽어라.”
분노한 비검문의 무인들이 휘두르는 검날이 사방에서 기성량을 노리고 쇄도했다.
기성량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쿠우우우우!
기성량의 전신에서 검기가 휘몰아쳤다.
펼쳐지는 만사혈검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컥.”
“큭.”
“으악.”
“크헉.”
검기의 폭풍에 비검문의 무인들이 속절없이 쓰러지며 죽어 갔다.
비검문의 정문에는 순식간에 핏물이 흩뿌려졌다.
저벅저벅.
기성량이 핏물을 밟으며 비검문의 정문 앞에 섰다.
쉬익!
기성량이 정문을 향해 일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기가 정문을 후려치고.
콰아앙!
굉음과 함께 정문이 박살 나며 비산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한 시진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라. 다음 먹이는 뇌왕이다.”
기성량이 흑천대에 명령하며 앞으로 쏘아져 갔다.
“충.”
그 뒤를 흑천대가 따랐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흑천대의 검은 물결이 비검문을 향해 밀려갔다.
비검문 혈사의 시작이었다.

***

콰아앙!
흑천대주 기성량이 경비대장 곡추한과 경비대 무사들을 죽이고, 정문을 부수어 안으로 들어간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반각조차 되지 않는 시간.
그럼에도 비검문 안에는 이미 많은 수의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무인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검문의 정예였다.
이렇게까지 빨리 모일 수 있었던 것은 흑천대가 사혈성을 출발한 시점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꾸준히 방어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상종 소리에 빠르게 모일 수가 있었다.
그들은 이미 발검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흑천대가 들어서자, 어떤 말도 없이 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그것은 정파라면, 평상시의 비검문이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사혈성이기에 비검문은 기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습은 효과적이었다.
휘리릭!
휙!
쉬익!
가장 먼저 들어선 기성량과 흑천대를 향해 수십 개의 검들이 날아들었다.
그 공격에 기성량의 얼굴이 굳어지고, 몸이 급속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후웅!
챙챙챙챙챙!
그에 따라 검도 같이 회전하며 날아드는 검들을 모두 쳐 냈다.
기성량의 눈이 번뜩이고, 검이 변화를 일으키며 주변을 휩쓸었다.
“악.”
“컥.”
“헉.”
“크악.”
“아악.”
살이 갈라지고, 피가 솟구쳤다.
그 공격에 다섯의 무인들이 죽었다. 하지만 비검문만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첫 기습에서 기성량을 제외한 다른 흑천대원들은 검을 피하지 못하고 몇몇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천대 전원이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기선을 제압당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검문은 흑천대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비검문에 비해 흑천대의 전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더 힘들게 전투를 치러야 하는 만큼 거세게 흑천대를 몰아붙였다.
거의 동귀어진에 가까운 공격.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공격한다.
당연히 흑천대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정문의 크기는 한정돼 있었다.
그런 만큼 흑천대 전원이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대부분이 밖에 있기 때문이다.
성질 급한 흑천대원들이 담을 넘기 시작했지만, 이미 그 부근에도 비검문이 장악해 떨어져 내리는 순간 공격하며 전체적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기본적인 무력이 앞서는 흑천대가 정문을 장악하고 안으로 들어서겠지만, 그전까지 상당한 희생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스윽.
기성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야에 죽어 가는 흑천대원들이 보였다.
비검문도들의 협공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기성량에게 있어서 흑천대는 이번 전투에서 어떤 희생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기성량은 가슴에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흑천대의 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죽은 자는 충원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흑천대의 신입이 기성량의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진정한 흑천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검문의 공격에 흑천대원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전투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흑천대의 붕괴도 각오해야 할 정도였다.
기성량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강제로 길을 뚫는 것.
다른 하나는 이대로 정문 밖으로 후퇴해서 넓은 곳에서 전투를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흑천대가 후퇴한다고 비검문이 뒤를 따라올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퇴는 기성량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특히 흑천대의 뒤에는 사도명이 있지 않은가.
사도명이 지켜보는 와중에 후퇴를 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결정은 하나.
기성량은 강제로 길을 뚫기로 결정했다. 그와 함께 기성량의 눈에 살광이 번쩍였다.
자신이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우우웅!
후우우웅!
기성량의 검에 검기가 휘몰아치며 몰려들었다.
만사혈검.
다시 한 번 만사혈검이 펼쳐지며 검기가 주변 일대를 휩쓸어 버렸다.
“헉.”
“컥.”
“악.”
“으악.”
비검문도가 만사혈검에 휘말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그만큼의 공간이 열렸다.
스슥.
그 공간 사이로 기성량이 전진하며 검기 다발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기성량의 만사혈검은 강력하고, 사이했다.
충돌은 없다.
만사혈검은 비검문도들의 검을 타고 오르며 목숨을 앗아 갔다.
한 번 펼치면 반드시 비검문도들이 죽어 나갔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비검문의 정예였고, 중추인 수뇌부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기성량의 검을 막아 내지 못했다.
기성량의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그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비검문도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열린 공간으로 흑천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