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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24화)
八章 습격(4)


쾅!
폭음이 울리고.
“큭.”
주르륵.
신음과 함께 몸이 뒤로 밀렸다. 기성량이 아니라 북리천이었다.
거기에 이상함을 느낀 기성량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 시야에 들어오는 한 노인의 등.
사도명이다.
사도명이 기성량의 위기에 나선 것이다.
기성량이 사도명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도명이 무심한 눈빛으로 기성량을 바라보았다.
“쓸모없는 놈, 뒤로 물러나라.”
슥!
사도명의 말에 기성량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더 이상 북리천을 상대할 수도 없었고, 명령에 불복할 수도 없었다.
사도명이 나선 이상 북리천은 죽은 목숨.
그것으로 위안 삼아야 했다.
사도명이 북리천을 바라보았다.
눈에 담긴 뜻은 흥미로움이다.
두 눈이 북리천의 전신을 샅샅이 훑고 지나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 과연 십 년 뒤에는 초절정에 오른다는 게 헛소문만은 아니었어. 만약 내가 오지 않았다면 흑천대가 패배할 수도 있었겠는데, 운이 없군.”
그 말에 북리천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강기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운용한 청류진기와 내상으로 인해 내부가 뒤틀리고 있었다.
오장육부가 자리를 이탈한 느낌이다. 기혈에서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북리천이 내상을 잠시라도 억누르기 위하여 청류진기를 운용하며 사도명에게 말을 걸었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에 손을 쓰다니, 탈혼검이라는 별호가 부끄럽지도 않소.”
그 행동에 사도명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사도명은 수많은 전투를 치른 백전노장이었다.
북리천의 내심을 단숨에 읽었다.
“끌끌끌. 지금 시간을 끈다고 해서 변하는 게 있을 것 같나?”
사도명의 태도에 북리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해 봐야 하지 않겠소.”
“네가 비록 생각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나는 여기서 시간을 끌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니 최후의 한 수를 펼치든가, 아니면 그냥 자결해라.”
북리천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이다.
빠드득!
사도명의 말에 북리천이 이를 악물었다.
사도명이 자신보다 강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포기하는 순간이 바로 비검문, 그리고 지금도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문도들의 끝이기 때문이다.
북리천이 비검문의 문주인 이상, 이대로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휘이이잉!
우우우우웅!
북리천이 단전에 남아 있는 모든 청류진기를 검첨으로 끌어모았다.
청류진기가 흐르는 기혈이 찢어지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기혈은 물론 세맥에 잠자는 미세한 청류진기까지도 모조리 끌어모았다.
거대한 기운이 주변을 잠식했다.
검첨에 맺히는 광구.
기성량을 상대할 때만큼 빛이 선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강기는 강기.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 유성탄이 사도명을 노리고 쏘아져 갔다.
쿠오오오오!
사도명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강기의 광구를 보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유로운 모습.
슥.
사도명의 손이 천천히 검의 손잡이를 잡아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검.
번쩍!
순간 눈부신 검광이 번쩍였다.
광혼일검(狂魂一劍).
사도명의 일 검이 유성탄과 부딪쳤다.
콰아아앙!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두 기운의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근처에서 전투를 벌이던 무인들이 충격파에 휘말려 찢겨 나가고 있었다.
“컥.”
북리천이 신음을 흘리며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튕겨져 나갔다.
입가에는 핏덩이를 연신 토해 내고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북리천의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내상은 둘째 치고,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조금만 움직이려고 하면 전신에서 끔찍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
내부의 장기가 자리를 이탈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그때였다.
텅.
사도명이 가볍게 한 걸음 내딛자, 어느새 북리천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북리천을 바라보고 있던 사도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법이었다. 몇 년 후가 기대가 될 정도로. 하지만 여기까지다.”
죽음의 선언.
쉭!
사도명이 손을 흔들자, 검날이 반짝이며 북리천의 목을 향해 베어 가고 있었다.
검이 북리천의 목을 베어 가는 찰나.
순간이었다.
“멈춰라.”
느닷없이 허공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보통의 사자후가 아니다.
만인을 짓누르는 기세가 담긴 사자후다.
그 영향에 비검문의 모든 전투가 멈출 정도였다.
공력이 약한 이는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았다.
우우웅!
콰르르릉!
그리고 뒤이어 한 줄기 뇌전이 사도명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사도명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뇌전에 얼굴을 찡그리며 북리천을 베어 가던 검을 멈췄다.
그러고는 뇌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검에서 느껴지는 뇌전의 힘이 묵직했다.
뇌전을 가른 사도명이 뇌전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휘리릭!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한 인영.
사도명의 시야에 한 인영이 북리천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이십 대의 청년.
하지만 패도적인 기세를 흘리는 청년.
진유현이었다.
북리천의 위기에 맞춰서 진유현이 나타난 것이다.

***

두두두두두두!
일단의 무리들이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관도는 빠르게 움직이는 말발굽으로 인해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 먼지구름을 뚫고 무리들이 급하게 달려 나갔다.
그들은 진가장에서 출발한 지원군이었다.
진유현 일행은 안구에서 비검문이 있는 제성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계속된 강행군에 일행은 몸과 마음이 지쳐 갔지만,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흑천대를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거리만 조금 좁혀질 뿐 흑천대를 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진유현 일행들만큼이나 흑천대도 서두르고 있다는 증거.
그렇기에 비검문에 가까워질수록 일행의 얼굴이 잔뜩 굳어지고 있었다.
지원군의 목적은 사혈성의 각개격파도 있지만, 주목적은 비검문을 도우러 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흑천대를 전멸시키고, 비검문의 전력을 보존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사혈성과의 전투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검문에 도착해서 폐허를 본다면, 그것만큼 허탈한 것도 없을 것이다.
또한 산동 무림에서 정도 문파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쉬지 않고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비검문 근처에 다다를 때까지도 흑천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때였다.
진유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 비검문이 또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이들과 느껴지는 기감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기감에 비검문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 잡혔다.
진유현이 조일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조일영이 진유현의 시선을 느끼고는 마주 보았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진유현이 조일영에게 말하고는 말 등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텅.
진유현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더니, 한순간 번쩍하며 비검문으로 쏘아져 나갔다.
말이 따라붙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줄기 뇌전.
“아.”
일행은 서둘러 가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일영이 일행에게 소리쳤다.
“비검문에 무슨 일이 있어난 것 같다. 지금부터 속도를 더 올린다.”
조일영의 말에 일행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

콰콰콰콰쾅!
“컥.”
“악.”
“큭.”
“으악.”
진유현이 비검문의 정문에 들어섰을 때, 주위는 온통 폭음과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땅에는 수백의 시신들이 널려 있었고, 핏물들이 작은 내를 만들었다.
그 모습은 한 편의 지옥도.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서로를 향해 계속 검을 휘두르며 죽이고 죽어 나가고 있었다.
비검문은 이미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장은 흑천대가 유리했다.
아무래도 고수가 많고 실전에 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흑천대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비검문도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 가며 동귀어진을 노리기 때문이었다.
그 악착같은 공격에 흑천대원들도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휘릭!
진유현의 신형이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에 들어섰다.
그리고.
파지지지직!
양손에 뇌신기가 맺혔다.
우우우웅!
진유현이 양손을 휘저음에 따라 뇌신기가 요동치며 주변을 향해 뻗어 나갔다.
퍼퍼퍼퍼퍼퍽!
뇌신기는 정확하게 흑천대원만을 노리고 타격했다.
“큭.”
“악.”
“컥.”
“크헉.”
흑천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빠른 속도로 흑천대원이 줄어들었다.
질풍 같은 속도.
진유현의 움직임이 질풍같이 전장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진유현이 전투에 뛰어든 시간은 반각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전장의 흐름이 변했다.
흑천대원 중에서도 유독 강한 자들을 진유현이 골라 가며 습격했기 때문이다.
전장이 비검문의 흐름으로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후웅!
우우웅!
전장의 중심에서 대기가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두 개의 기운.
진유현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기운이 서로 충돌했다.
콰아아앙!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오고,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진유현의 시야로 들어오는 모습.
한 노인과 쓰러져 있는 중년인이다.
진유현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비록 처음 보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노인이 탈혼검 사도명이라는 것을.
그만큼 노인의 기세는 전장에서 독보적이었다.
그렇다면 사도명의 앞을 막고 있는 중년인은 뻔했다.
유성검 북리천.
북리성의 아버지가 분명했다.
그때였다.
사도명의 검날이 북리천의 목을 베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