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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9화)
제2장 마귀의 정체(3)
파아앗.
‘인체 발화?’
예전에 스스로 몸에서 불이 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몸에 불이 붙어 타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것과는 사뭇 달랐다.
불길이 살아 있는 듯 나타나 연소 물질도 없는데 타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지환은 놀라 입을 딱 벌렸으나 이내 호기심이 생겨 그것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언가 불티 닮은 것이 불꽃 주변을 감도는 것이 보였다.
‘저건?’
팔랑팔랑.
조금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무언가 날름거리는 이상한 것들이 불꽃을 따라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도시 구경 처음 온 촌사람이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것 같은 지환의 모습에 리샤이엘과 그렐돈이 미소 지었으나,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지환은 바싹 달라붙어 그것을 관찰했다.
흡사 불똥이 튀기듯 튀어 오르곤 했으나 분명 그것과는 달랐다. 살아 있는 존재였다.
‘도마뱀? 소설에서만 보던 정령!’
지환은 드디어 무언가 이상한 곳에 자신이 왔다는 것을 완벽히 인정하게 되었다.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다.
타탁.
“와앗!”
벌러덩.
날름거리는 불꽃 중 하나가 갑자기 얼굴로 튀어 오르는 것 같자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벌렁 넘어갔다.
“호호.”
그러자 리샤이엘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재빨리 말했다.
“그럼 모두 잘 주무세요. 사라만다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악한 기운을 감지해 줄 것입니다.”
“사라만다? 저것의 이름?”
지환이 불꽃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일어나게. 여긴 잘 곳이 아니야. 자네의 자리는 저길세.”
그렐돈이 아직도 멍하게 있는 지환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모두들 좋은 밤 되시길.”
리샤이엘은 그렇게 말하고 간단히 펼쳐진 이부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렐돈도 갑옷을 살짝 벗어둔 채 바로 잠에 들었으나 지환만이 눈을 뎅글뎅글 뜬 채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긴 밤잠을 못 이루는 것은 며칠 내내 동일했다. 간신히 몇 시간이 지나야 잠이 들었던 것이다.
‘사라만다…… 불의 정령?’
지환이 그 이름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흘깃 고개를 돌려 다시 불꽃을 바라보았다. 살아 있는 것과 같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근데 여긴 불침번 같은 것도 안 세우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리샤이엘이 말한 것이 떠올랐다. 자신이 생각한 존재가 정령 같은 것이라면 충분히 불침번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터였다.
‘사라만다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악한 기운을 감지해 줄 것입니다.’
그녀가 말한 대로 저것이 악한 기운을 감지해 준다면 안심하고 잘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여긴 다른 사람은 없나?’
걸어오면서 혹시라도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지 않나 싶어 눈을 돌려 봤지만 드넓은 대지를 걸어 다니는 것은 그들 세 명, 인간 둘에 엘프 하나밖에 없었다.
이들을 따라다니며 낮에 움직이고 밤에 자는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해야 했기에 괴로웠으나, 지환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스케줄에 자신을 맞춰 나가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밤에 움직이고 낮에 자던 지환에게 있어서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지환이 두 번째로 깨달은 놀라운 사실.
그것은 식사로 먹는 엘푸카 열매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영양분으로만 똘똘 뭉쳐진 열매 같았다.
‘식사…… 안 하나?’
첫 아침 식사 이후 지환은 달랑 두 알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의아한 생각을 했다.
그 열매 한 번 먹은 이후로 저녁때가 되도록 일행은 식사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환으로서도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기에 뭐라 더 말을 못했다.
‘신기하네. 지금쯤이면 배에서 기별이 와야 하는데…….’
지환이 신기한 듯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걸어오는 도중 간간히 그렐돈이 물을 권했으나 지환은 쓴 물은 절대 사절이었기에 정 갈증이 심하게 나면 조금 받아 마시는 식이었다.
물론 조금이긴 하지만 그것을 참고 마시면 갈증 해소 음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갈증이 해소되었기에 지환으로서는 다행이었다.
물은 정말 최소한도, 갈증 해소를 위한 최소한도로 섭취하고 있었다.
그렐돈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물을 조금만 마신 채 걸어 다닐 수 있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지환은 어찌 되었든 간에 정 갈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물은 최대한 적게 마시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저녁이 되고 다음날이 되자 일행의 식사 주기를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 열매 두 알로 하루를 버틴단 말이야?’
자신과 그렐돈은 두 알, 리샤이엘은 한 알. 그렇게 아침에 해 뜬 후, 대지의 신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것을 조금씩 오물오물 먹는 것. 그것이 하루 식사의 끝이었다.
물론 그 먹는 모습이 여전히 좀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지환이었다.
탁.
으적으적.
꿀꺽.
한 입에 털어 넣고 한두 번 씹고 바로 넘기기. 이제 그들도 지환의 식습관에 익숙해졌는지 놀라지도 않고 있었다.
“신께 감사를. 일용한 양식 잘 먹었습니다.”
그렐돈이 손바닥을 모으며 말하자 리샤이엘이 따라 했고, 지환도 마지못해 두 손바닥을 모았다.
평생 감사기도 같은 것은 해 본 적 없던 지환이었다.
감사기도가 끝나자 지환은 자신이 좋아하던 식품들이 떠올랐다.
‘아아! 피자…… 초콜릿…… 포카칩…… 아니, 하다못해 좀 오래 씹을 수 있는 고기라도 먹고 싶다.’
지환으로서는 일단 배는 불렀지만 이렇게 씹는 맛도 없고 넘기는 맛도 없는 밋밋한 열매를 먹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주식(?)들을 속으로 되새겼지만 결국 침만 꼴깍 삼킬 뿐 그걸로 끝이었다.
‘음식이라 하면 아무래도 씹어 먹으며 그 맛을 느껴야지.’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허기를 면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처지였지만, 지환은 이미 단조로운 식생활에 질려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순식간에 끝나는 식사를 참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지환이 깨달은 세 번째 사실.
“자네 뭐 하나?”
그렐돈이 아침마다 근처 나무숲 사이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헐레벌떡 나오는 지환을 기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환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말하며 서둘러 물통에서 물을 흘려 손을 씻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이상하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쫙쫙.
물을 털어 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지환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그렐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환에게 말했다.
“그럼 출발일세. 이제 곧 도착이야. 오늘 오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네.”
어느새 그 일행과 같이 움직인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환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말에 호기심 반 두근거림 반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흘깃.
지환이 고개를 돌려 주변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풍경은 어느새 조금 달라져 있었다.
구릉지대 같은 것도 좌우로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하늘 위에 떠 있는 새를 보기도 했다. 작은 들짐승들, 흡사 다람쥐 또는 들쥐처럼 보이는 동물도 간간이 주변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것이 보이자 어째 내심 반갑기도 했다.
꾸륵.
그러나 배에서 조그맣게 소리가 나자 지환은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거참 이상하네. 왜 아침의 거사가 한 번도 없었지?”
아침의 거사. 화장실에 가서 힘차게 똥을 누는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도 거의 안 마셔서 그런지 작은 것(?)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침의 거사를 위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큰 것 작은 것 둘 다 처리하려 했지만, 결국 있는 힘을 줘서 작은 것만 몇 방울 비우고 오는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슨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몸에 별 이상은 없었다.
지환의 생각에 아침마다 먹는 엘푸카 열매로 인해 느끼는 포만감 정도라면 하루에 두 번은 화장실에 갔어야 했다.
그런데 자그마치 5일이나 기별(?)이 없으니 지환으로서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묵직.
그렇다고 해서 아주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랫배가 약간 묵직한 것이 분명 무언가 쌓인 게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나오니 슬슬 짜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응? 근데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지환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리샤이엘과 그렐돈도 분명 언젠가 거사를 치를 텐데 자신이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아침에 자리 비울 때 처리하나?’
어쨌든 지환으로서는 자신의 악성 변비 문제로 고민에 빠진 상황이었기에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아우! 변비는 난생처음이네. 왜 이래?’
지환은 그들과 같이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아주 심한 변비에 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세 번째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제3장 엘 샤우도니아에 도착하다(1)
“드디어 도착했군요.”
리샤이엘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들리자 지환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이전에 이들이 말한 위대한 숲의 마을, 엘 샤우도니아에 드디어 오게 된 것이었다.
지환이 살짝 몸을 비틀어 그렐돈의 옆으로 고개를 쏙 빼내었다. 지금은 그의 덩치에 가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와. 엄청나다.”
그리고 그것을 보게 된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게…… 엘 샤우도니아? 저 전체가?”
지환의 눈에 흡사 아파트 단지처럼 늘어서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보였다. 늘어선 길이가 거의 10km는 될 것 같았다.
숫자는 개략적으로 지환이 느낀 것이었고 쉽게 말해 끝이 가물가물하게 보일 정도였다. 좌우 폭이 그 정도이니 지금 입구에서 맞은편까지의 거리는 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빼곡히 솟아오른 나무들을 바라보니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가시죠.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리샤이엘이 발걸음을 옮겼다. 지환도 다시 그렐돈의 등을 바라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조금 전 본 바로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기다린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숲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어쨌든 계속해서 걸어갔다.
얼핏 보기에는 엘 샤우도니아가 별로 안 멀어 보였는데 실제 걸어 보니 꽤 가야 했다.
지환은 누가 기다린다는 것인지 숲의 입구에 도착 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탄성을 내질렀다.
“와! 크다.”
숲의 나무들이 아파트 단지처럼 보인 것은 결코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실제 지금 눈앞에 보이는 나무들은 하나하나가 20층 높이의 아파트와 맞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사이로 나무 넝쿨이 그물처럼 촘촘히 에워싸고 있었다. 입구를 에워싼 나무 넝쿨을 바라보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영화의 특수 효과 저리 가라였다. 그건 영화였지만 지금 이것들은 눈앞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숲 안으로 통하는 어떤 길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들어가죠?”
지환이 조심스럽게 그렐돈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가 싱긋 웃으며 리샤이엘을 가리켰다.
“조금만 기다리게. 곧 안에 기별을 넣으면 다른 숲의 인도자들이 맞이하기 위해 나올 걸세.”
지환은 지금 그렐돈이 말하는 숲의 인도자란 명칭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엘프족을 지칭하는 것임을 이전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아하. 뭔가 안에 기별을 넣으면 다른 엘프들이 나오는 건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환의 시야에 리샤이엘이 양손을 벌려 뭐라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정령을 부릴 때 취하는 자세와 비슷했다.
“라 푼디움 엔테 카 샤마르.”
나직한 리샤이엘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 불꽃의 정령을 부를 때와는 억양이 조금 달랐다.
지환은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 것인지 빤히 바라보았다.
파아앗.
이내 리샤이엘의 손에 푸른빛의 구체가 생성되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둥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는 나무들 사이로 그 구체는 스며들어 사라졌다. 흡사 젤로 만들어진 영양제가 흡수되는 모습 같았다.
이곳에서 보게 되는 모든 것이 신기했기에 지환은 눈을 크게 뜬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