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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12화)
제4장 생리 욕구를 해결하라(2)


빠르게 엘프들이 움직였고 상아색의 제단 같은 것이 설치되었다. 신기하게도 못과 연장을 사용하지 않은 채 조립식 제품을 만들 듯 그저 끼워 맞추고 있었다.
드르륵.
드륵.
아귀가 맞는 소리가 나며 점차로 모양이 갖춰져 나갔다. 매우 빠른 움직임이었다.
누구 하나 소리치거나 지령하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허엄.”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여전히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를 못 벗어난 지환은 그저 주변을 서성댈 뿐이었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누구 하나 지환에게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있었다.
물론 보통의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아무것도 할일이 없다면 뻘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환에겐 절대 그런 것은 없었다.
“짱박혀서 좀 쉬지 뭐.”
어차피 도와달라고 해도 귀찮을 터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게 된다면 뭐라도 하고 싶다고 할지 몰랐으나 지환은 절대 아니었다.
어차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존재가 되었으니. 다만 식사만 제때 주고 잠잘 곳만 마련해 준다면야 만사 오케이라는 낙천적인 생각으로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에 조립식 건물용 목재처럼 생긴 것들을 들고 부산히 돌아다니는 몇몇 엘프들이 있었으나 자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다.
이미 한 번 헛기침을 해서 시선을 끌어 보려 했으나 철저히 무시당한 터였다.
자신 같으면 생김새가 다른 자가 있으면 신기해서 쳐다볼 법도 했을 터인데, 이들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듯 움직였다.
어기적어기적.
그래서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뒷짐 지고 순시(?)하는 것은 식사 후 지환의 유일한 운동 거리이기도 했다.
“어디 잘 만들고 있나?”
흡사 공사 감독관이라도 된 양 지환은 눈요깃거리를 찾아 엘프들이 만들고 있는 제단 같은 구조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눈으로 봐서는 그냥 목책으로 보이는 커다란 천년수 그라나다란 나무의 뿌리와 연결된 것 같았다.
“무슨 나무뿌리가 내 키만 하네.”
가까이 다가가니 대지 위로 조금 드러난 부분, 그곳 위에 단을 설치 중이었다.
“저건 뭐야?”
어느 정도 단이 모습을 갖춰져 나가자 지환은 그 모습이 역 V자 형태로 세워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갖가지 꽃이 장식되고 있었다.
“무슨 개선문도 아니고…… 나무뿌리 위에 저런 걸 만들어?”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는 단의 모양에 지환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쨌든 좀 더 걸어가기 시작했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그런데 조금 더 걸어가자 갑자기 물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강물과는 또 다른 냄새.
“여기에 물이?”
사실 아까부터 목이 마른 터였다.
이곳의 물, 지환의 생각으로는 카카오99를 녹여서 물에 탄 것 같은 맛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입을 적시면 갈증이 해소되었기에 리샤이엘이나 그렐돈에게 물 한 모금만 달라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자마자 무슨 보고를 해야 한다니, 증인을 서라느니 하면서 리샤이엘과 그렐돈을 데려가 버려서 말을 할 곳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지환의 고집상 왠지 엘프족들에게 부탁하긴 싫었다.
“도대체 물 냄새가 어디서?”
지환이 물 냄새를 찾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바퀴 돌자 단 바로 건너편에 작은 옹달샘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지환의 눈동자가 커졌다.
졸졸졸.
나무뿌리와 흙의 경계선. 그곳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와 작고 동그란 샘을 이루고 있었다.
시야가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우회해서 삥 둘러보니 이제야 보인 것이다.
“와! 드디어 지하수가……. 옹달샘인가?”
어떻게 저런 곳에 옹달샘 같은 것이 있는지는 생각 안 한 채, 지환은 일단 물이 보인다는 점에 감사하며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심 기분이 좋아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강물보다는 맛이 조금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흐읏, 지하수 개발업자가 먹지롱.”
말도 안 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환이 옹달샘을 향해 다가갔다.
‘저건 좀 마실 만하겠지.’
일단 멀리서 보기에는 깨끗해 보였다. 산 뒤편에 있던 약수터를 생각해 낸 지환이 그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런데 문득 커다란 갈색의 판때기를 들고 오는 네 명의 엘프들이 보였다.
그중 우측 앞부분을 붙잡고 오는 엘프는 지환도 익히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다른 자들은 까먹어도 저자는 잊을 수 없었다.
‘맞다. 호찌케스인가 호우킨인가 하는 놈.’
지환은 자신과 그렐돈에게 쌀쌀 맞게 굴었던 엘프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 순간 호우킨과 지환의 눈이 마주쳤다.
찌릿.
‘저 시키도 갈구네.’
엘프족 장로에 이어 호우킨 녀석도 지환을 째려본 것이다.
지환은 가볍게 그것을 무시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덜컹.
“응?”
지금의 상황은 지환이 쭉 걸어가고 있는데 그 앞을 네 명의 엘프들이 기다란 판때기를 들고 오는 상황.
‘가벼운 합판 같은 건가? 술술 잘 들고 가는군.’
판때기는 거의 30m나 되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판때기의 진로가 바뀌었다.
‘뭐야?’
서로 비스듬히 지나칠 수 있는 방향. 그런데 긴 판때기가 점차 교묘하게 지환의 진로를 막아 온 것이다.
지환으로서는 그 판때기를 멀찍이 돌아가든지 해야 하는 상황.
‘저게 장난을?’
일행을 이끄는 것은 호우킨. 그가 살짝 방향을 틀어 지환의 진로를 방해한 것이다.
조금 멀찍이 돌아가도 되긴 했으나, 결코 그런 호의를 베풀 지환이 아니었다.
“읏차!”
쿠웅.
저벅저벅.
“앗. 이건 단의 상층부…….”
한 엘프가 소리쳤지만 지환은 상큼하게 무시하고 자신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는 갈색의 판때기를 힘껏 밟고 갔다.
물론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마침 그 판때기를 들고 가는 것이 바로 숲 입구에서 만난 재수 없는 호우킨이었던 것이다.
휘익.
가볍게 착지하며 지환은 여유롭게 다시 이동했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으리라 생각한 지환은 뒤편에서 난리를 피우며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고 있을 엘프들을 생각하며 내심 미소를 지었다.
“이봐, 인간!”
처음으로 자신을 부르는 엘프의 목소리가 있었다. 지환은 그것이 호우킨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렸다.
“왜 그러시오?”
지환은 살며시 몸을 돌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주머니에 손을 넣은 매우 불량한 자세로.
그러자 지환의 눈에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는 호우킨의 모습이 보였다.
파르르.
‘저놈, 귀가 떨리네.’
호우킨의 귀가 떨리고 있었다. 사람의 귀와 달리 엘프족의 귀는 매우 길기에 그 움직임이 참 리얼했다.
‘토끼 같군.’
그런 생각을 하며 지환은 다시 퉁명스럽게 말을 하였다.
“왜요?”
천연덕스러운 지환의 태도에 호우킨이 다시 한 번 귀를 부르르 떨며 지환에게 말했다.
“조금 전 당신이 무엇을 밟고 갔는지 아시오?”
그 말에 지환은 자신이 밟고 지나 온 판때기를 흘깃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신이 밟은 부위는 이미 깨끗이 닦여 있었다.
‘좀 더 세게 밟을걸’이라 생각하며 지환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안.”
짧게 말하고 지환이 돌아서려 했다. 그러자 호우킨이 다시 외쳤다.
“이건 미안하다고 할 문제가 아니오! 저 부분은 성스러운 제단의 지붕부를 이룰 것으로서…….”
호우킨이 더 말하자 지환은 손을 한 번 흔들며 더 짧게 말했다.
“즐!”
그냥 무시하며 지환이 움직였다.
그리고 호우킨의 귀에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누가 길을 막으래.”
설마 행사 앞두고 주먹질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지환은 다시 이동했다. 물론 뒤에서 호우킨의 이빨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상큼하게 무시.
혹시나 뒤에서 짱돌이라도 하나 던지는 것 아닌가 싶어 몇 걸음 걸어간 후에 살짝 뒤를 돌아보자 호우킨과 다른 엘프들은 지환이 밟아 버린 판때기를 들고 단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손님으로 온 사람이라면 주인들이 저리 바삐 움직이는데 한 번 쯤이라도 생각해 보고 행동을 했겠지만, 지환은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면 나도 상대를 무시한다는 것이 지환의 신조.
나름대로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하며 지환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엇. 리샤이엘과 그렐돈?”
걸어가던 와중에 문득 한 무리의 엘프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선두에 장로 라디오프와 그렐돈, 그리고 리샤이엘이 보였다.
“오우, 멋진데?”
지환이 특히 리샤이엘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전의 간편한 여행복 차림이 아니라 흡사 웨딩드레스처럼 하늘거리는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설마 결혼식 하는 건 아니겠지? 무슨 여행 보고 한다더니 요란스럽기도 하네.”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지환의 시선은 리샤이엘을 떠나지 못했다.
“의외로 괜찮네.”
역시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 저 마귀같이 생긴 모습도 계속 보니 어느새 익숙해진 터였다. 그러고 보면 귀를 제외한 전체적인 윤곽선은 영화에 나오는 미녀 배우 정도의 레벨이었다.
그사이에 어떻게 얼굴을 씻고 다듬었는지 한층 더 밝은 미태가 그녀의 얼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뷰 탄트! 크라티엔!!”
“응?”
그렇게 걸어가던 지환은 문득 갑자기 사방에서 외치는 음성에 놀랐다. 엘프족의 장로를 비롯해서 리샤이엘과 그렐돈도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으악!”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든 지환이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순간 찰랑거리는 물이 보였다.
풍덩!
걸어갈 때 시선은 항상 정면을 향해. 여자에게 눈 돌리다가는 곤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지환은 옹달샘에 빠진 개구리가 되어 버렸다.
“어푸…… 어푸.”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발이 닿지 않는 것 같자 지환은 놀라 꼬르륵거렸다. 수영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지환이었지만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 살려!”
지환이 크게 외치는 순간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고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몸이 허공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휘이익.
쿠웅.
지환의 몸이 옹달샘 밖으로 나와 바닥에 착지했다.
“하아…… 하아…….”
어찌 되었든지 간에 옹달샘 밖으로 나오게 되자 지환이 숨을 헐떡였다.
두근두근.
놀란 가슴이 계속 뛰고 있었고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보니 장로 라디오프가 두 손을 벌려 푸른 기운을 쏘아 내고 있었다.
“정령…… 같은 건가? 저것도?”
신기한 경험을 한 번 더했다. 물리적인 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체가 들어 올려진 것이다.
“웩.”
갑자기 구토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지환은 뱃속에서 불이 난다는 것이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을 겪었다.
“아이구, 배야.”
데굴데굴.
데굴데굴
일전에 한 번 겪었던 장염의 고통은 저리 가라였다. 갑자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장과 위장을 타고 배를 헤집는 것 같았다.
“으윽. 뭐 잘못 먹었나? 쿨럭.”
“저…… 저기 괜찮나요?”
“자네 괜찮나?”
어느새 다가온 리샤이엘과 그렐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다른 엘프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헉. 헉.”
다행히 조금 시간이 흐르자 지환은 그제야 속이 좀 괜찮아짐을 느꼈다.
‘쓰다, 써.’
아직도 입가가 씁쓸했다. 저 옹달샘에 빠졌을 때 자신도 모르게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는데 그 물맛이 강물 맛하고 비슷했던 것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한 서너 배는 더 썼던 것 같았다.
‘카카오99를 능가하는 맛이네. 퉤.’
일전에 친구가 권유해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가 사망 직전까지 갔던 카카오99. 그런데 지금 옹달샘 물맛은 카카오 99를 능가했다. 딱 그 맛이었다.
“아하하…….”
잠시 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지환이 웃음을 터트렸다. 철면피 지환이라도 조금 쪽팔리긴 했던 것이다.
여자에게 눈이 팔려 옹달샘에 그냥 빠지다니.
그런데 왠지 엘프들의 시선이 매우 사나웠다.
‘저 새끼들, 왜 저렇게 눈을 부라리는 거야? 혹시 엘프족이 걱정을 표시하는 모습이 저건가?’
지환은 건너편에 쭉 늘어서 있는 엘프들의 시선이 곱지 못하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문화적 관습이 다른가 싶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 했으나 지금 느껴지는 감각은 그것이 아니었다.
흡사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외국인이 자국의 문화 유물에 손을 댄 것에 분노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냈으니 보따리 내놓으란 것도 아니고……. 응? 이 말이 왜 나와?’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해 지환이 속으로 횡설수설하는 사이 글렐돈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아니 어쩌다가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개방한 신성수(神聖水)에 빠지게 되었나?”
“신성……수?”
신성수란 이름을 붙인 것을 보니 꽤 특별한 물 같았다.
쓰윽.
하지만 다시 둘러봐도 지환의 눈에는 그저 작은 옹달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장로님.”
그렐돈이 고개를 숙이며 엘프족의 장로에게 사과했다.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있는 지환의 얼굴을 가리며 그렐돈이 대신 사과한 것이다.
“괜찮네. 실수로 빠진 것 가지고 누구를 탓할 수야 있겠나.”
장로의 말에 그렐돈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저 신성수의 의미를 알고 있는 그렐돈으로서는 혹시라도 큰 문제가 될까 싶어 걱정했는데, 지금 장로 라디오프의 말 덕분에 일단 그 문제는 해결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그렐돈이 다행이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환을 향해 말했다.
“다음부터는 항상 조심…… 응?”
갑자기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렐돈이 지환을 바라보았다.
“자네…… 왜 그러는가?”
그렐돈이 천천히 질문했으나 지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