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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14화)
제4장 생리 욕구를 해결하라(4)


푸지직!
참고 참았던 괄약근이 풀어지며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소리가 지환의 귓가에 들려왔다.
파직.
파지직.
“허…… 휴우.”
인간의 쾌락 중 가장 극한에 달하는 배설의 쾌락. 그것을 느끼며 지환은 흡사 지금까지 쌓아 둔 것을 모두 비워 버리겠다는 듯 한껏 힘을 줬다.
쑤욱.
쑥.
지환은 속이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거의 5분여간 쉬지 않고 일을 보았다.
“허어. 살 것 같다.”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니 지환은 그제야 몸 안에 피가 도는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지환의 습관 중 하나. 일을 보고 나서 결과물(?)을 한 번 보는 것인데.
‘와. 진짜 대단하다. 색깔이 다르네.’
이번의 결과물들은 색깔 자체가 달랐다.
빨주노초파남보, 이런 무지개 색깔까지는 아니더라도 차곡차곡 층으로 쌓인 그것들은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색깔이 달랐다.
“장난 아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많이 싸 보긴 처음이네.”
이제야 조금 배의 기운이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한 지환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5층탑을 만들고 있는 그것들을 보았다.
제일 아래에 있는 것들은 황색,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붉은색이 보이더니 그 위로 청색, 그 위로 거무튀튀한 것들이 보이고, 마지막으로는 회색빛이 감도는 물건이 쌓여 있었다.
‘내 뱃속에 이렇게 많이 쌓여 있었나?’
원래 인간의 뱃속에는 일정 분량의 대변이 대장 벽을 따라 쌓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환은 괄약근이 욱신거릴 정도로 있는 힘껏 싸 버린 이후,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상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몇 년간 묵어 있던 것이 쑥 내려간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지환은 감탄사를 내질렀다. 이미 퀴퀴한 냄새는 코가 무디어져서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싸기 위해 힘겹게 고생했지만 지난 며칠간 쌓였던 변비가 한 번에 해결되고, 흡사 대장 벽에 달라붙어 있던 찌꺼기들까지 처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화아. 아랫배가 서늘할 정도네. 그럼…….’
우득.
그런데 드디어 일을 다 봤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환의 몸이 굳어 버렸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주춤주춤 반쯤 일어나 어기적어기적 몸을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휴, 휴지가 없다.’
지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다. 이곳은 대용품을 찾을 수 있는 풀숲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5장 그라나다, 무너지다!(1)


한편 밖에서는.
“흑흑.”
리샤이엘은 안타까운 듯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던 그렐돈이 리샤이엘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비록 만난 지는 며칠 안 되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정이 들었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렐돈이 말했다.
“아까의 이야기를 마저 하세.”
아까 그렐돈은 엘프족 장로를 따라가 장로가 묻는 말에 이것저것 대답했던 것이었다. 주로 그 내용은 지환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장로의 말에 그렐돈은 리샤이엘은 잠시 내버려 두고 몇 걸음 더 걸어가 장로 라디오프와 마주 섰다.
그렐돈은 우선 감사의 인사를 먼저 하였다.
“인간의 마지막 때를 위하여 엘프족의 자리 한쪽을 내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의 인사에 라디오프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닐세. 사실 인간이 이곳에 온 적이 거의 없고 또 이곳에서 마지막 때를 맞이하는 경우가 없었기에 처음엔 미처 생각 못했으나…… 생각해 보니 죽음의 결계에서 생기를 빼앗기고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면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지.”
죽음의 결계란 말이 나오자 그렐돈의 몸이 굳어졌다. 아직도 오싹한 죽음의 결계.
이곳 인간들에게 있어서 블랙 드래곤 라자아후가 만들었다는 죽음의 결계는 무서운 존재였다.
멋모르고 지나가는 인간의 생기를 빨아먹는 살아 있는 풀숲. 넓은 지역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렐돈의 생각에, 남쪽에서 온 지환이 멋모르고 그곳에 발을 들여놨다가 생기를 어느 정도 빼앗긴 상태라면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급사(急死)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제야 좀 이해가 간다는 태도로 그렐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오면서 지환이 보인 이상한 행동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오면서부터 무언가 심상치는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 원인이 그것에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다고 하지 않았나, 그 지환이란 남자의 행동이?”
라디오프의 말에 그렐돈이 아직도 건너편에서 울먹이고 있는 리샤이엘을 한 번 본 후 장로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장로님. 처음에 불의 정령이 갑자기 악한 기운을 감지한 듯 요동쳤기에 저는 놀라서 그 상대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불의 정령이 그렇게 요동친 적은 처음이었거든요. 물론 그 이후로는 잠잠해졌지만.”
그렐돈이 지환을 발견하게 된 것은 지환의 눈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 불의 정령 덕분이었던 것이다.
“흐음. 당시 자네가 말한 정령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그렐돈은 정령의 말을 알아들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아까 전에 이야기할 때 장로에게 정령들이 보이던 반응을 설명한 것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장로 라디오프가 말했다.
“만약 정령들의 움직임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당시 정령들의 모습은 거의 마왕 급의 존재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모습.”
마왕이란 말이 나오자 그렐돈의 눈이 커졌다.
“마……왕이요?”
말도 안 된다는 표정. 이 현세에 마족이 강림하는 경우가 역사상 몇 번 있었다. 그럴 경우에는 잠들어 있던 드래곤 일족도 홀연히 이 땅에 등장하였다.
지상계 최강의 힘을 가진 그들이었다.
숨겨진 레어에 잠들어 있던 그들은 만약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위 마족의 강림을 느끼게 되면, 그 순간 감춰 놓았던 힘을 개방하며 깨어났던 것이다.
물론 인간들도 자신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미약한 힘이나마 합쳐서 하급 마족이나 마족들이 만들어 낸 몬스터와 싸우곤 했다.
물론 개중에는 블랙 일족의 드래곤 라자아후처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의 결계와 같은 것을 땅에 만들어 인간들에게 악명을 얻는 존재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땅의 인간들에게 있어서 드래곤이란 신성한 존재였다.
인간에게 많은 지식을 선사해 주기도 한 존재였던 것이다.
정령술이야 엘프족에게 특화된 능력이라 할 수 있으나, 마법 부분에 있어서는 드래곤의 마법이 인간에게 하나 둘 전수되면서 발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간혹 이 땅에 넘어오는 하급 마족에 대한 대응책도 알려 주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족에게 영향을 주는 퇴치목에 대한 것이었다.
숨겨져 있는 마족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사용되는 나무였다.
간혹 하급 마족이 이 땅에 넘어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마족의 특징은 낮에 드러나는 붉은 눈동자.
어쨌든 마족임을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악령을 퇴치하는 퇴치목 퓨레시안 나무에 의한 일격. 이것은 이 땅에 넘어온 하급 마족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하며 일시에 행동 불능으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대지의 신성력을 갖춘 자여야 가능했다. 그렐돈이 바로 그 신성력을 갖춘 자였다.
“하지만 막상 상대는 퓨레시안 나무로 만든 퇴치목에 맞아도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장로가 그렐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전에 그렐돈이 지환을 처음 만났을 때 후려친 일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태양이 뜨기를 기다려 그자의 반응을 지켜봤습니다.”
마족을 확인하는 두 번째 방법.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해가 뜨게 되면 마족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붉은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선명히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마계의 하늘에는 지상계와 같은 강렬한 태양이 없었다. 그 환경과 다른 이곳에서 마족의 눈동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때도 별 이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라디오프가 말했다. 이미 그렐돈은 퇴치목에도 별 반응은 없었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리샤이엘 모르게 몇 가지 마법진을 지환이 누워 있는 곳 아래에 설치해 둔 상태였다.
만약 마족이었다면 태양이 떴을 때 모습을 일부 드러낼 것이고, 그랬다면 항마력이 담긴 마법진은 그 마족을 강제 소환시켰을 터였다.
“예. 마족이라면 태양이 떴을 때 그 본체를 드러내게 되었을 것이고, 그 즉시 마력을 느낀 마법진이 작동하여 그 마족을 마계로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지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사람 좋은 미소만 짓던 그렐돈이지만 처음에는 지환을 경계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자는 별다른 반응이 역시 없었고.”
“그렇습니다. 비록 입고 있는 옷이 기괴하고 생긴 것도 독특했으나, 그제야 저는 그 남자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가 떴지만 여전히 인간이었습니다. 마법진도 작동하지 않았고요.”
“흐음…….”
장로가 중얼거렸다. 무언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태도.
“무슨 일이라도?”
그렐돈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렐돈으로서는 처음부터 장로 라디오프의 태도가 워낙 이상했던 것이었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처음 홀연히 만나게 된 지환의 태도보다도 이상했다.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기운을 뿜어내어 자신을 놀라게 한 것이었다.
흡사 무리를 이끌고 있는 숫사자가 무리에 다른 숫사자가 접근해 왔을 때 경고를 보내는 것 같은 기운.
무리의 수장으로서 보이는 본능적인 경계심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장로 라디오프는 복잡한 일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해결되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어쨌든 저 남자는 적어도 훈카족은 아니야.”
“예?”
남방 훈카족이 아니란 말에 그렐돈이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에는 마족인가 의심했지만 그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그때부터는 지환을 남방에서 올라온 어리버리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장로 라디오프는 지환을 남방 훈카족이 아니라고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 지환이란 자에게 건넸던 인사. 그것이 바로 훈카족의 언어. 만약 그 남자가 훈카족이었다면 그 말을 모를 리가 없지.”
장로 라디오프가 지환에게 처음 다가가 건넨 말이 훈카족의 인사말이었던 것이다.
먼저 장로 라디오프와 이야기를 나누던 리샤이엘이 지환을 가리켜 훈카족에서 온 사람이라 말했던 것이었다.
라디오프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지환에게 훈카족의 언어로 인사를 하였으나 물론 지환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 이후로 지환에 대한 의심은 점차 커져 간 상태였다.
“그, 그런……! 그럼 도대체?”
지환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그렐돈의 궁금증이 흘러나왔다.
그렐돈으로서도 그렇게 되어 버리니 도대체 지환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아해진 것이었다.
그러자 장로는 이미 다 끝났다는 투로 말했다.
“그자가 무엇인지는 이제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죽음의 결계에서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아니면 인간의 몸으로 신성수를 마신 부작용 탓인지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지금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으니까.”
그렐돈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지환이 신성수에 빠진 것을 다시 기억해 낸 것이다.
“신성수에 인간이 빠지게 되어 죄송합니다. 천년수 그라나다의 수액, 그 귀한 신성수의 공간을 오늘 개방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괜찮네. 어차피 신성수의 역할은 모든 것의 정화. 나로서는 그 지환이란 인간이 혹시 신성수에 영향을 받아 생의 마지막 시간이 조금 더 일찍 당겨진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쉽네. 조금 더 관찰해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예?”
그렐돈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장로는 손을 저었다.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처음 봤을 때 무언가 느껴지는 기운이 이질적이어서…….”
그렇게 말하며 장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렐돈을 내버려 둔 채 몸을 돌렸다.
장로 라디오프가 아직도 울고 있는 리샤이엘을 향해 다가가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흐윽. 제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죽음의 결계에서 살아 나온 사람이라면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는데…….”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어차피 누구나 마지막 때는 다 있는 법.”
그러자 그렐돈이 다가가 말했다.
“언제나 주변의 사람이 죽는 것은 슬픈 일이죠. 그래서 인간들도 보통 생의 마지막 때, 배설의 시간이 다가오면 가족과 함께 보내며 자신에게 할당된 안식의 공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가족이란 말이 나오자 리샤이엘은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 이런 먼 곳에 와서 누구 하나 위로해 주는 사람 없이 홀로 배설의 고통을 겪으며 떠나야 하다니요.”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생의 마지막 때 배설, 그것은 그리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그렐돈이 다시 리샤이엘을 다독거렸다. 어쨌든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은 간 것이고, 남은 것은 리샤이엘의 준장로 취임식이었다. 빠르게 분위기를 정리하고 무사히 마쳐야 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3년간의 역할은 모두 끝나게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