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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19화)
제5장 그라나다, 무너지다!(6)
잠시 후 장로 라디오프가 손짓을 했고 이윽고 한 남자가 잘 포장된 상자를 황급히 가져왔다.
“이건?”
그렐돈과 리샤이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장로 라디오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장로는 손을 들어 그것을 열어 보란 제스처를 취했다.
“제가 열겠습니다.”
리샤이엘이 머뭇거리고 있자 그렐돈이 다가가 앞에 놓인 상자의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그것은 철저히 밀봉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 뚜껑을 열자 리샤이엘과 그렐돈은 경악을 감추지 않을 수 없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확 풍기는 독한 냄새. 절로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냄새였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반쯤 썩은 물고기, 강 하류에 주로 서식하는 녀석들이었다.
“으윽.”
리샤이엘은 더 바라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왜 저렇게 철저하게 밀봉했는지 그 이유를 안 것이다.
탁.
그렐돈도 재빠르게 그 뚜껑을 닫았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그렐돈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매우 선한 종족이다. 자연을 사랑하며 육식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루에 한 번 엘푸카 열매와 물만을 섭취하는 존재들.
그리고 각 계급별로 직분이 주어져 있었고 유일하게 타인을 공격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자들, 그들이 그렐돈이 속해 있는 전사계급 워르크나이였다.
하지만 워르크나이 계급도 오로지 인간족을 침범한 마족과 이계의 생명체와 싸울 때만 그들의 힘을 사용했다.
“누가…… 누가 이런 잔인한 짓을……. 이 지역에 언제 마족이 등장…….”
마족의 등장과 더불어 근처 생명체가 죽어 나갔다. 이 땅에 그러한 일을 일으키는 유일한 존재가 지상계로 건너온 마족이었기 때문이다.
마족을 언급하는 순간 그렐돈과 리샤이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 인물이 떠오른 것이다.
“설, 설마? 하면 지환이 왔을 때부터 경계하셨던 것이?”
지환을 떠올린 그렐돈이 장로 라디오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들이 도착하기 전 강 하류에서 이변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엄청난 수의 물고기들이 목숨을 잃은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금 전의 광경을 떠올린 그렐돈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가 떠올리는 지환과 조금 전 상자 안의 광경은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다.
“모든 일의 원흉은 그 지환이란 자가 틀림없다. 그가 바로 전설에 나온 암흑의 대마왕이야.”
장로 라디오프가 확신한 듯 말했다.
그러자 그 순간 리샤이엘이 말했다.
“하지만…… 옛 문헌에는 그 뜻을 고려해 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렐돈과 라디오프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다급하게 덧붙였다.
“옛 고귀한 종족 엘프의 언어, 그 언어에서 ‘우칸비아’란 뜻은 ‘세상의 파멸’이란 뜻도 되지만 ‘세상을 구하는’이란 뜻도 됩니다.”
그러자 그렐돈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지금 어떻게 해석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그에 반박하는 장로 라디오프의 말이 이어졌다.
“말도 안 되는 해석이다. 단어만 본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으나 문맥상 어찌 ‘세상을 구할 암흑의 대마왕’이란 뜻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겠느냐.”
장로 라디오프가 타이르듯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듯 소리쳤다.
“너는 지금 이 참혹한 광경이 보이지 않느냐!”
라디오프가 상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 안의 흉측한 모습이 다시 떠오른 리샤이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딱히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천년수 그라나다가 무너질 때, 세상을 파멸시킬 암흑의 대마왕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옛 예언의 해석.”
꿀꺽.
그렐돈이 침을 삼켰다. 단어 하나의 해석에 따라 세상을 파멸시킬 암흑의 대마왕이냐, 아니면 세상을 구할 암흑의 대마왕이냐가 갈린 것이다.
그렐돈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장로 라디오프가 단호하게 말했다.
“최강의 전사와 정령술사로 구성된 추격대를 구성한다.”
그렇게 말하며 장로는 리샤이엘과 그렐돈을 바라보았다.
“엘프족에 전해 내려오는 고대 병기를 주겠다. 그리고…….”
장로 라디오프가 말을 흐리자 리샤이엘은 눈을 흠칫 크게 떴다. 그리고 다급하게 말했다.
“설마…… 그들을 깨우시려고?”
지금 리샤이엘이 말한 ‘그들’이 누구인지에 생각이 미친 그렐돈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제6장 콜라를 생산하다(1)
휘익.
“아악!”
갑자기 땅속에서 튕겨 나온 지환은 잠시 허공에 떠 있다가 이내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데구르르.
“에쿠쿠. 엉덩이야.”
온몸을 바르르 떨며 지환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콜록콜록.”
갑자기 기침이 나오자 인상을 찡그렸다. 갑갑했던 것이 이제야 좀 가신 것이다.
“휴. 죽는 줄 알았네.”
처음에 발이 푹 꺼지며 쉽게 쑥 빠지기에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에스컬레이터를 연상했다. 하지만 이내 사방이 어두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살짝 놀랐던 것이다.
그나마 순식간에 밖으로 튕겨 나왔기에 좀 마음이 진정된 것이었다.
“켁. 내가 미쳤었나. 왜 갑자기 그때 에스컬레이터가 떠올랐지?”
지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도 문명의 이기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는?’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이내 커다란 숲이 보였다.
“엇?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지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이 들어간 엘프들의 숲이 분명했다.
대략 지금의 위치는 그렐돈과 리샤이엘과 함께 숲을 발견하고 좋아했을 때 그 정도 위치.
긁적긁적.
도대체 자신이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환은 이내 다른 것에 시선이 돌아갔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으니, 일단은…….”
지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옛날 봤던 재난 만화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어랏? 이건…….”
지환이 자신도 모르게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놀라 외쳤다.
쓰윽.
맥가이버 칼이 바지 주머니 안에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 정신을 차려 보니 완전 나체 상태였기에 어디선가 흘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라나다가 준 바지 주머니 속에 있었던 것이다.
“짜식. 그래도 센스는 좀 있네. 물건도 잘 챙기고.”
지환이 흥얼거리며 맥가이버 칼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이런 제조국 불명의 싸구려 맥가이버 칼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지환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매개 고리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왔다는 증거. 이 땅에서는 볼 수 없는 일종의 신분증과도 같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산 물건이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옛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이 된 것이다.
맥가이버 칼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지환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자신의 배를 만졌다.
그리고 갑자기 양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벨리댄스를 추듯 몸을 흔들었다.
“날씬한 몸을 원하십니까?”
지환이 일전에 보았던 운동기구 CF의 문구를 따라 말했다.
휘익, 휙.
엄청나게 느껴지던 배둘래햄(?)이 만져지지 않자, 괜히 기분이 좋아진 지환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들러붙은 뱃살과 옆구리 살, 그리고 목살은 전혀 빠질 생각을 안 했던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하루하루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지환도 한번 지방 흡입 수술을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온몸의 군살이 싹 씻겨 나가고 없었다. 흡사 몸에 붙어 있는 불필요한 체지방을 샤워로 다 빼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거 좋은데.”
공짜로 다이어트했다는 생각에 지환은 처음으로 흥얼거렸다.
“양말만 있으면 더 좋을걸…….”
지금 지환의 발은 양말을 안 신은 채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신발은 무슨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았다.
“고무신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래도 발톱이 딱히 거치적거리지는 않았다. 부드러운 것이 그래도 무난히 신고 갈 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는 화려한 검 하나, 그리고 갈색 빛이 감도는 가방 하나였다.
“흐음.”
가방은 어깨에 멜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지겹도록 가방을 들고 다녀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은 치가 떨리던 지환이었다.
스륵.
하지만 진짜 신기하게도 가방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에 지환은 속편하게 가방을 멜 수 있었다.
툭툭.
지환이 콜라 자판기(?)를 살짝 건드려 보았다. 이곳의 물을 마시기 어려운 지환으로서는 유일한 식수 공급처였다.
마검 카라이안. 그렇게 불린 물건이 지환의 눈앞에 있었다.
톡톡.
툭툭.
“어랏?”
건드려 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아까 전에는 흡사 살아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 말을 걸었건만 지금은 조용한 것이다.
“흐음.”
일단 검의 손잡이를 잡고 서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스릉.
그러자 시원한 소리가 나며 천천히 검날이 밖으로 드러났다.
“와아. 멋진걸.”
역시 뽀대(?)가 난다고 생각하며 지환이 검을 몇 번 휙휙 휘두른 다음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얍!”
소설에서 보던 검기니 검강 같은 것을 쓰는 무림 고수를 한번 흉내 내 본 것이다.
주로 여유 시간에는 방바닥을 구르며 무협 소설을 보거나 인터넷 소설 사이트 달세계나 새아라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웠던 것이다.
그런데 지환이 아무 생각 없이 소리치며 검을 내지르는 순간 갑자기 검 끝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치며 뿜어져 나갔다.
화아악.
콰앙.
“왁!”
쿵.
“으윽.”
손목이 얼얼했다.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올 때의 반탄력이 상당했던 것이다. 결국 그 힘에 못 이겨 지환이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아이고. 뭐, 뭐야 이거. 설마 야마토 포(스타크래프트의 배틀크루져에 장착된 무기)를 쏘는 기능도 첨가되어 있는 거야?”
중얼거리는 지환의 눈앞에 시커멓게 타 버린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거의 버스 한 대만 한 크기로 땅이 파여 있었다.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와. 도대체 뭐가…….”
지환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시커멓게 타 버린 구덩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흡사 포탄이 떨어진 자국 같았다.
―클클클. 겨우 이런 것 가지고 놀라다니.
“허엇.”
갑자기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예전에 썼던 골전도 헤드셋으로 듣는 음성 같았다.
머리에서 바로 울려서 들리는 소리. 지환은 이내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이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너는…… 카, 카레라고 했던가?”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자 지환이 중얼거렸다. 갑자기 카레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였다.
톡 쏘는 그 맛이 그리워진 것이다. 데우기만 하면 되는 3분 카레가 이렇게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마검 카라이안이다. 풀네임은 따로 있지만…… 카라이안이라고 불러라. 그런데 기묘한 인간이군.
“응? 근데 이거 왜 안 떨어져. 흡사 낙지 같네. 아, 그러고 보니 산 낙지도 먹고 싶다.”
흡사 껌이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는 것처럼 칼이 손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자 지환이 다시 중얼거리며 소리쳤다.
“캬! 소주에 산 낙지. 좋은데…….”
이것저것 먹을거리가 떠올랐다. 모두 이곳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들. 참으로 서글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환이 손에서 칼을 잡아떼려 했다.
일단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좋았지만, 손바닥에서 칼이 안 떨어지자 조금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이렇게 칼을 붙인 채 계속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마검 카라이안이 다시 말을 걸었다.
―이렇게 공명을 해야 나와 대화가 가능하다. 잠시 기다려 주도록.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에 지환은 아무 생각 없이 잠시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