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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20화)
제6장 콜라를 생산하다(2)
“응? 뭐지.”
지환이 눈을 깜박였다. 무언가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 풍경 사이로 무슨 울긋불긋한 것들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으나 아무 일도 없자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빨판을 이용해서 착 달라붙은 것 같던 마검이 손바닥에서 떨어졌다.
휘익.
휙.
지환이 그제야 속편하다는 듯 손을 몇 번 흔든 다음 다시 검을 움켜잡았다. 다시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으니 안심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거야?”
이제 검이 말을 하는 것, 검 끝에서 불꽃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다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배도 홀쭉해지고 몸에서 체지방이 빠져나간 상태. 당장 눈으로 몸의 변화를 겪으니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러자 잠시 후 다시 머리를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넌. 참 기묘한 인간이군. 나의 정신 감응에도 끄떡없다니. 보통은 그런 혼란을 겪게 된다면 금방 미쳐 버리거나 나에게 종속될 텐데.
“뭐야?”
갑작스러운 마검의 말. 그러자 지환은 문득 조금 전에 검날을 잡고 있을 때 확확 지나간 화면을 떠올렸다.
“그…… 뭐랄까. CF 같은 화면, 네가 보여 준 거냐?”
―CF?
문득 빠르게 지나간 화면을 보며 지환이 떠오른 것이 있었다.
지환은 법학과를 다녔지만 막상 법학은 관심이 없었고 물리, 화학 또는 문학, 그리고 광고학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광고홍보학과의 수업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은 잠재의식광고(潛在意識廣告, subliminal advertising)가 떠오른 것이다.
잠재의식광고. 광고를 빠른 속도 등 인간이 인식하기 어려운 강도로 노출시키는 방법이다.
1957년 미국의 비케리(J. Vicary)가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필름에 ‘콜라를 마시자’, ‘팝콘을 먹자’ 하는 광고를 3,000분의 1초로 중복하여 영사한 결과, 영화관 내 매점에서 두 개 상품의 매출액이 급증했다고 한다. 이러한 시도를 ‘잠재의식광고’라고 부르고 있다.
“난 또 뭔가 했네. 그게 뭔데 나에게 쏘아 댄 거냐?”
지환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미 CF의 홍수 속에서 살아온 현대인 지환. 그런 것 따위는 끄떡없었다.
―클클클. 좋아, 뭐 이런 경우도 겪어 보면 재밌지.
어쨌든 소소한 일은 상관없었다. 물론 정신 감응이니 종속이니 하는 말이 아까부터 신경 쓰였지만 자신은 멀쩡했으니 상관없었다.
물론 보통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라면 기분이 나빠서라도 ‘귀신 붙은 검 물러가라!’라고 말하며 치를 떨었겠지만, 지금 지환에게는 꼭 확인해야 할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나는 콜라가 고프다.”
검을 빤히 바라보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조금 전에 마셨지만 겨우 그런 것으로는 이빨에 기별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뭐라고?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마검 카라이안에게 지환이 천천히 말했다.
“아까 천년수가 나에게 내놓은 시꺼먼 물 있잖아. 그거, 네가 만든다며?”
지환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그러자 마검 카라이안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리고 이내 지환의 머릿속에 마검의 음성이 들려왔다.
―파멸의 용액을 원하는가? 킬킬. 그것을 원하는 자가 있다니 놀랍군. 과거 겁 없던 고위 마족들 중 일부가 감히 파멸의 용액을 얻기 위해 까불었던 적이 있었지만, 인간 따위가 이런 말을 하다니.
“응?”
―나의 정신 감응을 참고 버틴 것만 하더라도 너는 인간의 범위를 벗어났다. 대단하군. 그러나 파멸의 용액은 감히 이 땅의 누군가가 보거나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환이 빤히 마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흐음…… 너 아까 내가 그것 마시던 것 못 봤냐?”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제야 지환은 이 마검이 자신이 그 파멸의 용액―콜라―을 주룩주룩 마시는 것을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어쨌든 네가 알 바 아니고, 콜라 좀 뽑아 내 봐라. 컬컬하다.”
입을 다시며 지환이 마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도도하던 마검의 목소리가 떨려 나오기 시작했다.
―말, 말도 안 되는 요구다. 마계에서도 그 강한 독성과 용해력을 이기지 못해 수많은 마족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천년수도 감히 어찌할 수 없었던 그것을 네놈이 달라고 하다니…….
“뭐? 네놈?”
그래도 콜라 자판기였기에 참고 쭉 기다려 줬는데 듣자 듣자 하니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싫으면 관둬.”
갑자기 지환이 자신의 목적을 부정하는 말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크크크. 역시 한번 해 본 소리였군. 그 파멸의 용액은 워낙 독하여 그 용액에서 풍겨 나오는 가스만 맡아도 인간 따위는 녹아 버리…… 응? 뭐하는 짓이냐?
지환이 갑자기 칼날을 들어 삽처럼 땅을 파기 시작하자 마검 카라이안이 놀라 외쳤다. 하지만 지환은 아무 말도 없이 간만에 땅파기 운동을 열심히 했다.
팍팍.
팍팍.
“예∼ 땅 잘 파지네. 아직 삽질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군.”
마검의 칼날은 꽤 날카로워서 삽으로도 어느 정도 사용 가능했다. 그리고 땅 자체가 물렁물렁했기에 금방 움푹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고장 난 자판기는 가지고 갈 필요가 없지. 그래도 마검이라는데 혹 엉뚱한 놈의 손에 들어가면 곤란하니 파묻어 버리고 갈란다.”
지환이 왼손으로 마검을 잡은 채 파묻기 시작했다.
“이거 놔. 안 놔? 떨어지라니까. 아까 보니까 너 이렇게 오래 붙어 있지 못하는 것 같던데……. 이래 봤자야.”
지환이 중얼거렸다. 마검을 땅에 파묻으려 하자 마검이 지환의 손바닥에 산 낙지처럼 달라붙어 안 떨어지는 것이었다.
쓰윽.
쓱.
―뭐하는 짓이냐. 나를 땅에 파묻다니……. 네, 네놈은 나와 함께 동쪽의 천년수로 가기로 했지 않느냐.
마검의 말에 지환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거야 내 맘이지. 그리고 너도 어차피 동쪽으로 가면 다시 봉인되는 것 아니야? 근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가려고 해?”
쓰윽.
지환은 말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흙을 다시 덮었다. 어느새 마검을 쥐고 있는 왼손도 바닥에 파묻혔다. 물론 마검이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손을 밖으로 뺄 수 있었다.
이래도 마검이 묻혔다는 흔적은 잘 안 남을 터였다. 어떠한 표식도 없었기에 지환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환은 자신의 손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마검의 접착력이 조금 느슨해진 것을 느꼈다. 힘이 빠진 것이다.
그때 카라이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 잠깐! 정 원한다면 파멸의 용액을 얻을 방법을 알려 주겠다.
“뭐? 얻을 방법? 그것도 무슨 방법이 필요해?”
지환의 물음에 다시 마검 카라이안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왜 동쪽으로 가려 하냐고? 동쪽의 천년수는 이쪽의 천년수 그라나다와는 조금 다르다. 조금 융통성이 있는 녀석이기에 나도 그 녀석과 협상해 볼 여지가 있다.
“협상? 무슨? 어쨌든 너도 그럼 동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 아니야. 그럼 네놈을 ‘무겁게’ 들고 가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말해라.”
지환이 나직하게 말했다. 무거운 짐은 딱 질색이었다.
사실 날카로운 검 하나 있으면 그래도 조금 안심하고 갈 수 있겠지만 짐짓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마검이라지만 의외로 그리 사악해 보이지 않았기에 지환은 자신의 말발로 승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빨리 말해라. 안 그럼 바로 여기에 파묻어 버리고 흙을 단단히 밟아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날 거야.”
그 말이 흘러나오자 지환은 마검 카라이안이 순간적으로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네놈은 정녕…… 인간이 아니구나. 인간은 결코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혹시 옛 신화 전설에 나오는…….
“잔말 말고 빨리 말해. 나 그냥 간다.”
지환이 진짜로 화난 목소리로 말하자 마검 카라이안의 다급한 음성이 다시 들렸다.
―파멸의 용액은 내가 힘을 발휘한 만큼 생성된다. 너의 마음에 담긴 암흑 기운의 힘이 촉매가 되어 반응하지.
“응? 뭐? 그러니까…… 어쨌든 널 써야 한다고?”
지환의 물음에 카라이안이 다시 응답했다. 그리고 파멸의 용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했다.
―파멸의 용액은 나의 암흑 투기에서 발생하는 것. 나의 암흑 투기에 대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했기에 나는 막상 파멸의 용액이 나의 세계, 마계를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항상 자제해야 했던 것이다.
“뭐? 나? 도대체 ‘나’가 누군데?”
지환이 흡사 마검 카라이안이 자신을 살아서 활동했던 누군가로 표현하자 고갤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이후 마검 카라이안은 침묵을 지켰다.
팍팍.
팍.
지환은 원하는 것을 얻을 방법을 알았으니 다시 마검 카라이안을 땅에서 파내기 시작했다.
“어쨌든 알았다. 아까 같은 야마토 포…… 이름이 좀 그러니 더 활기찬 걸로…….”
마검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에 붙일 좋은 이름을 생각하던 지환이 좋은 것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다크니스 라이트닝.”
대충 판타지 소설, 애니에서 보던 단어를 조합하여 지환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잘 만든 이름이란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마검 카라이안을 향해 말했다. 자신이 생각한 결론이 맞느냐는 확인.
“결론은 그 다크니스 라이트닝 같은 것을 많이 써야 그 암흑 투기인가 뭔가가 생성되어서 그 결과로 콜라가 나온단 말이냐? 아까 한 번 쓴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고?”
지환이 땅에 파묻혔던 마검 카라이안을 꺼내 들었다. 땅속에 푹 파묻혀 있었지만 다시 꺼내니 겉에 흙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다시 씻을 필요 없네를 중얼거리며 지환은 마검 카라이안을 힘껏 움켜잡았다.
―그렇다. 어느 정도 힘을 분출한 후 내가 그 결과물인 파멸의 용액을 암흑 투기에서 뽑아내겠다. 물론…… 만약 네가 그 기운을 처리 못한다면 이 주위는 죽음의 불모지로 변할 것이다.
단단히 확인하는 마검의 말. 그러자 지환은 재빨리 말했다.
“오케바리. 콜라 한 잔 마시기 정말 힘드네. 처음이라 이해해 준다.”
지환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검을 사용하면 할수록 파멸의 용액이 나온다는 말이었다.
그거야 지환에게 있어서 전혀 곤란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틈나는 대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다크니스 라이트닝을 날리면 그만인 것이었다. 물론 사방이 움푹움푹 파여 버리는 것은 지환이 알 바 아니었다.
“흐흡…….”
잠시 숨을 들이쉬던 지환이 무협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리고 아까의 울분이 담아 소리쳤다.
“토끼 귀 놈들 다 죽어라!”
엘프족들에게 무시당하던 기억이 떠오른 지환이 심통을 부린 것이다.
파아아앗.
그리고 그러한 마이너스 감정이 담기니 아까 전에 아무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를 때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검 끝에 먹구름 같은 검은 기운이 서서히 뭉치더니 섬광처럼 힘차게 뻗어나간 것이다.
퍼엉.
콰아앙.
“와앗!”
쿠당.
아까의 반탄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과 달리 조금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서너 걸음 더 뒤로 튕겨나간 것이었다.
“에구구, 엉덩이야…….”
그러나 잠시 투덜거리던 지환은 이내 앞의 광경을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와아…… 짱인데.”
눈앞에 움푹 파인 균열이 보였다. 흡사 고속도로가 뚫린 것처럼 땅을 파고 쭉 길이 난 것이다.
녹색의 잔디들은 시커멓게 불타 있었다. 흡사 산불이 나서 타 버린 것처럼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거 재밌는데.”
각종 전투 게임에서 상상도 못할 캐릭터들의 파워, 그리고 드XX 볼 같은 애니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주인공들을 봐 왔던지라, 지환은 오히려 이런 결과가 나타나니 더 흥겨워하기 시작했다.
―허헛! 넌 역시 인간이 아니구나. 클클, 겉은 인간이고 속은 마족이구나.
마검 카라이안은 지환이 이런 결과물을 보고 오히려 흥겨워하자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이런 파괴를 보고 흥겨워하는 것은 마족들의 성품. 인간은 절대 이럴 수 없다.
하지만 지환은 그러한 마검 카라이안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이내 재미 들렸다는 듯 가방을 어깨에 멘 다음 반대편 평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흐음. 이번에는…….”
허공에서 검을 몇 번 회전시킨 후 지환이 다시 소리쳤다.
“통신 기본료 인하하라!”
파아앗.
평소 기본 전화 요금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던 지환. 그 감정을 담아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