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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21화)
제6장 콜라를 생산하다(3)
파지지직.
콰아앙.
다시 마검 카라이안의 끝에서 검붉은 광선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반대편 평야를 폐허로 만들었다.
아까의 폐허보다 훨씬 더 잔혹하게 땅이 파헤쳐져 있었다. 예전부터 쌓였던 분노가 한 번에 표출된 것 같았다.
사실 지환의 입장에서도 이곳이 자신과 관계없는, 멀리 떨어진 이계라 생각하니 오히려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었다.
“하하하. 좀 스트레스가 풀리네.”
칼질 두 번만에 좌우로 고속도로를 만들어 버리니 이상하게 지금까지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지환이 다시 마검 카라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콜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음성. 그러자 떨리던 마검의 움직임이 멈추고 이내 조심스럽게 말했다.
―으음, 이제 어느 정도 암흑 투기가 생성되었다. 하지만 과연 네가 감당을 할 수 있을지…….
“빨리 내놓기나 해라. 자판기 반응 속도가 왜 이리 늦어?”
지환의 투덜거리는 말이 끝나자 잠시 후 마검 카라이안을 휘감는 붉은색의 회오리가 있었다.
“어엇.”
붉은 회오리바람에 지환이 잠시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휘이잉.
파앗.
“으음?”
마검에 변화가 생기자 지환이 잠시 결과물을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침이 고였다.
꼴깍.
침을 삼키는 지환.
그리고 이내 지환의 눈앞에 이전에 천년수 그라나다가 보여 줬던 것 같은 투명한 구체가 생겼다.
“오오…….”
지환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검은 액체, 콜라였다.
하지만.
“애걔……, 겨우 이것?”
지환이 눈앞에 나타난 용량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타난 것은 겨우 250㎖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 한 번에 1.5ℓ 꿀꺽했던 지환에게 있어서 지금의 분량은 겨우 입가심할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더 없냐?”
지환이 중얼거렸으나 마검 카라이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검을 쥐고 흔들어 보았으나 무언가 아까와는 느낌이 달랐다.
“벌써 뻗은 거야? 겨우 그 정도 힘쓰고…… 벌써 자판기 매진된 거야? 그런 거야?”
투덜거렸지만 진짜로 마검 카라이안의 반응이 없었다.
지상계에 처음 나와서 간만에 힘을 써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지환은 검은 구체를 바라보았다.
잠시 어떻게 마실까 고민하던 지환은 천년수 안에서 콜라를 먹은 방법을 사용했다. 그대로 쭉 잡아 빨아들인 것.
열대의 원주민들이 코코아 열매를 먹을 때 사용하는 모습과도 비슷했지만 지금 지환이 그런 것을 따질 형편은 아니었다.
벌컥.
그리고 정말 한입에 다 마셔 버렸다.
“캬아∼! 역시 이 맛이야. 피자 한 조각만 있으면 더 좋겠다.”
지환이 입안 가득 느껴지는 프리미엄 급 콜라의 맛을 느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몸 안 가득 콜라의 진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몸을 자극했다.
“이제 가야지.”
더 이상 할 일도 없었다. 조금 더 가다가 자판기가 다시 작동되면 그때 또 뽑아 먹기로 마음먹고, 지환이 방향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쪽이 동쪽이겠네.’
대략 태양의 방향을 보고 일단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정표 하나 없는 곳. 그저 자연 환경을 보고 갈 수밖에 없었다.
콜라를 먹으니 간만에 포만감도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주변을 흘깃 돌아보니 양옆으로 고속도로처럼 뻗은 파인 자국이 보였다. 조금 전 자신이 밀어 버린 것이다.
“동쪽으로 가다 보면…… 사람들을 볼 수 있으려나?”
분명 그렐돈 같은 사람이 있을 터였다. 대충 눈칫밥으로 이 세계의 사람들이 매우매우 순진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환이었다.
어찌 보면 지한은 이 순진한 세계에 뚝 떨어진 초 극악 현대인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동쪽으로 한참 가야 할 터인데……. 사람들을 만나면 마차라도 좀 얻어 탈 수 있으려나? 아니, 마차란 게 있긴 있을까?’
이 세계에 대해 더 궁금해진 지환이었다.
문득 이곳이 매우 재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양옆으로 모락모락 김이 나는 폐허를 뒤로 한 채 지환이 마검 카라이안을 옆에 차고 힘차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앞으로도 콜라를 계속 마시기 위해서라면 상당한 폐허를 만들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지환은 그런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 * *
지환이 천천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무렵, 엘 샤우도니아로 진입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라락.
사락.
결계로 감싸여 있는 엘프의 숲 엘 샤우도니아였다.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겹의 넝쿨이 감싸고 있었다.
그 넝쿨들은 흡사 파도가 물결치듯 엘 샤우도니아의 외각을 맴돌고 있었다.
“여기가 엘 샤우도니아?”
“그래, 맞는 것 같네.”
한 명은 장신의 남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흡사 바닥에 딱 달라붙은 것같이 땅딸막한 남자였다.
그들은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인 듯 온몸을 검은색 옷으로 감싸고 있었다. 유일하게 드러난 곳은 얼굴에 뚫어 놓은 두 개의 구멍.
그사이로 붉은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계에서 올라온 마족이었다.
“겨우 이 따위였나, 엘 샤우도니아의 결계가? 그렇게 생각 안 해, 라우돈? 아예 지금 한판 뜰까?”
비웃음이 담긴 음성이 키 큰 남자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왼편에 서 있던 라우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푸셀코, 우리의 목적은 정찰과 천년수 그라나다의 상태를 알아보는 것. 전투는 명령 받은 바 없다.”
딱딱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마족 푸셀코가 비릿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상계의 약해 빠진 놈들을 좀 손봐 주고 싶었다고. 그런 놈들이 마계 위 지상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
손바닥을 뒤집으며 푸셀코가 말했으나 먼저 마족 라우돈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세이크론 공작님이 내리신 명령만을 생각하라, 지금은.”
세이크론이란 말이 나오자 마족 푸셀코가 멈칫했다. 그리고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이곳 지상계에 조금 더 익숙해질 때까지는 참지.”
“그럼 들어간다.”
화아앗.
마족 라우돈이 뒤뚱거리며 결계의 앞으로 다가갔다. 땅바닥에 착 달라붙은 것 같은 그가 움직이자 동그란 공이 앞으로 튕겨 가는 것 같았다.
“Lan ump ukatan pale sta(생명의 기운아, 사라져라)!”
라우돈의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오자 그의 손바닥에서 검은색의 구체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무 넝쿨 가운데에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지직.
지직.
순간 결계의 일부분이 황색으로 변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마족 라우돈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mapu kun kario kuwatiea(나에게 종속이 되거라. 너의 감각은 나의 감각. 너의 움직임은 나의 움직임. 너의 주인은 바로 나이니라).”
그러자 이번에는 마족 라우돈의 손에서 녹색의 빛이 흘러나와 그 변색된 부분을 감쌌다.
휘리릭.
그러자 말라비틀어져 황색으로 변질되었던 부분이 생생한 녹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그저 색깔만 살짝 덮어씌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업이 끝나자 마족 라우돈이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다. 이 부위의 결계는 이제 나를 주인으로 인식한다. 그럼 들어가자.”
마족 라우돈이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그러자 아까 전에 손 봤던 결계 부분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가자고. 다만 혹시라도 건들지는 마. 이미 생기를 다 잃고 바스라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귀 큰 자들이 눈치 채면 귀찮아진다.”
그 말에 마족 푸셀코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으나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은 네 말에 따르지. 가자.”
휘익.
쉽게 뚫린 결계를 지나 두 마족이 재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이내 엘프족의 마을, 그리고 천년수 그라나다를 향해 다가가자 어째서 이렇게 쉽게 결계를 뚫고 들어올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천년수 그라나다. 그 거대한 수목(樹木)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와 더불어 봉인의 역할도 끝난 것이다. 물론 마검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
“흐음, 다른 놈이 끼어들었나?”
“그런 것 같군. 도대체 누굴까?”
“혹시…… 동부 공작 벨파스크의 잔당?”
“그놈들은 지금 세이크론 각하의 감시망을 피해 죽을 둥 살 둥 도망치기에도 바쁠 텐데…….”
나무 사이에 완벽히 자신들의 모습을 감춘 채 두 마족이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마계에서 올라온 그들은 지상계에서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마검 카라이안을 봉인하고 있는 천년수 그라나다를 정탐하고 오라는 것이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
매우 중대한 임무였기에 마계 공작 세이크론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고 가장 막강한 전투력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그 두 명이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게 된 것은 무너져 버린 천년수 그라나다였다. 황폐한 모습.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렇게 변할 수 있는지 파악이 불가능했다.
“너라면 저렇게 할 수 있겠나?”
문득 마족 라우돈이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던 마족 푸셀코를 향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푸셀코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조금 힘들겠군. 아무래도 지상계에서는 힘이 약화되니.”
평소 자부심이 강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던 푸셀코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라우돈은 이내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힘들겠다는 말은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저렇게 만들 수 없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니 정말 저런 일을 벌인 상대, 그리고 먼저 마검 카라이안을 가져간 자가 궁금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안위와도 관련이 있었다.
“도대체 우리…… 아니, 세이크론 공작님의 옆구리를 친 게 누군지는 알아보고 가야겠군.”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나 알아보고 돌아가야 할 터였다.
휘익.
“커헉!”
마침 불운하게도 그 옆을 지나는 엘프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시 접근했다가 갑자기 허공에 몸이 둥실 뜨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흐읍. 컥.”
눈만 껌벅껌벅 움직일 수 있었다. 온몸이 굳어 버린 상태.
뭐라 소리를 치려 했으나 허리 아래에서 느껴지는 따끔거리는 감각 이후 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간신히 혀만 조금 움직이는 듯했다.
“물어볼 것이 있다.”
몸을 드러내며 라우돈이 말했다. 그는 허공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마…….”
그들의 눈에서 붉은빛이 넘실거리자 마족임을 깨달은 그 엘프가 뭐라 하려 했으나, 더 소리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천년수 그라나다가 왜 무너진 것인가? 말하라.”
“끄윽.”
라우돈이 흡사 피아노를 치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자세히 본다면 지금 그의 손에서 투명한 실 같은 것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보일 터였다.
흡사 거미줄처럼 그것은 엘프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으워어…….”
엘프의 눈이 풀리며 그의 온 모공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족 라우돈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투명한 실들 위로 점차 은색의 농도가 진해지기 시작했다. 피를 머금으면서 투명함이 사라지고 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우돈의 뒤에 푸셀코가 서서 물어보았다.
“어차피 놈의 입으로 정보를 얻을 것도 아닌데 왜 물어본 거야?”
치이익.
치익.
흡사 산성 용액이 물질을 녹이는 것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치에 둘러싸인 엘프가 녹아들어 가는 것이었다.
어느새 누에고치처럼 변해 버린 상대를 바라보며, 라우돈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흡수당하는 놈이 최후에 떠올리는 기억이 가장 선명하거든. 그래서 이렇게 한마디 해 주면 정보를 얻기 빠르지.”
라우돈의 손바닥이 은색의 고치에 닿았다.
꿈틀꿈틀.
쏴아아.
잠시 후 무언가 흡입되는 소리와 함께 점차로 고치가 쭈글쭈글해져 갔다. 마족 라우돈이 그것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주르륵.
새하얀 고치는 물처럼 변해 바닥에 흘렀다. 라우돈이 흘깃 그 부분을 보더니 다시 손을 뻗었다.
“Um tra valcan shum bra(돌아오라, 나의 아이들아).”
파아앗.
그러자 바닥에 흥건히 쏟아진 액체들이 흡사 하나하나의 알갱이처럼 뭉치더니 마족 라우돈에게 흘러들어 갔다.
“흔적을 남기면 곤란하지.”
중얼거리는 라우돈의 손바닥 사이에 결정으로 이루어진 은색의 구슬이 놓여 있었다. 그 은색의 구슬이 조금 전의 액체였다.
꽈악.
휘익.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펴니 어느새 그 구슬은 사라지고 없었다.
“정보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푸셀코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조금 기묘한데.”
라우돈이 턱을 괴었다.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
그들은 지금 적진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결코 조급해 하지 않고 있었다. 절대적 강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로움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마족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전투형 마족이기 때문이었다.
약해 빠진 지상계에서는 자신들을 대적할 자가 없다고 자부하는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