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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22화)
제6장 콜라를 생산하다(4)
잠시 고민하던 라우돈이 푸셀코를 향해 말했다.
“흐음, 네 말이 맞나?”
“뭐?”
푸셀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녹아 버린 엘프족에게서 정보를 빼내어 분석하던 라우돈이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한 것이었다.
“마족……이 나타났다는군. 그것도 엄청난 놈 같은데.”
“진짜…… 벨파스크의 잔당인가? 어째서? 놈들은 이미 세이크론 각하에게 각개격파 당한 상태. 이제는 척살 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기 바쁠 텐데?”
푸셀코의 말에 라우돈이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마도 한 방 역전을 노리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놈들에게 그러한 저력이 아직 남았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무너진 천년수 그라나다를 바라보며 마족 라우돈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원래 우리의 목적은 지상계로 도망친 벨파스크 가(家)의 소공자를 찾아 죽이는 것과 마검에 대한 정보 획득.”
그렇게 중얼거리던 라우돈이 고개를 들어 푸셀코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벨파스크의 잔당이 천년수 그라나다를 무너뜨리고 마검을 획득할 수 있을 정도의 저력을 아직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 말을 듣자 아래를 내려다보며 푸셀코가 말했다. 다른 요소가 개입된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설마 중립을 지키고 있던 다른 마계 공작 두 명 중 한 명이 장난을?”
마계의 네 개의 파벌. 북의 공작 코슈아린, 남의 공작 엘리네크, 서의 공작 세이크론, 그리고 동의 공작 벨파스크였다.
사실 가장 강력한 세력은 북과 남의 코슈아린과 엘리네크.
그리고 이번에 겉으로 드러난 서열상으로는 3위라 보이는 마계공작 세이크론이 벨파스크와 전쟁을 벌인 것이다.
결과는 서의 공작 세이크론의 압도적인 승리.
전투형 마족으로 이루어진 특수부대를 몰래 준비하여 단숨에 밀어붙인 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
가장 약한 세력이기는 하나 마계 공작 중 하나인 동의 공작 벨파스크가 너무나 어이없게 무너진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중립을 지키던 다른 두 마계 공작들이 가만히 있을 리는 만무했다.
마계는 오로지 힘으로만 서열이 나뉘는 곳.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강대한 세력이 나오는 것을 그냥 보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놈들은 세이크론 각하의 세력이 이번 전쟁을 통해 좀 줄어들든가 또는 어느 정도 되는지 보려 했겠지.”
“하지만 의외로 전투형 마족의 숫자가 상당하고…… 그 위력을 알게 되니 바싹 긴장한 상태.”
두 마족이 대략적인 정세를 추리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네 명…… 아니, 이제 세 명인 마계 공작 중 과연 공석(空席)인 마왕 좌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갈릴 테니.”
“피의 항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비워진 마왕 좌는 세이크론 각하의 것이다.”
“흐음. 대충 감이 오는군. 이런 일을 벌이려면 벨파스크의 잔당으로서는 어림없지. 그럼 과연 누가 장난을 친 것일까?”
“두 명 다일 수도 있지. 생각지도 못하게 세이크론 각하가 너무 쉽게 이겼으니, 남북의 두 앙숙이 손을 잡았을지도…….”
고개를 숙이며 라우돈이 말했다. 그리고 푸셀코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다시 마계로 돌아간다. 어차피 지상계로 도망친 벨파스크의 소공자는 이곳에서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아직 ‘각성’도 못한 어린 상태. 이 지상에도 그 정도의 마족쯤은 처리할 존재가 많다.”
“끄음, 확실히 우리가 명을 끊어 버리는 것이 좋지만…… 어쩔 수 없지. 우선 지금의 상황 보고가 우선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두 마족은 다시 몸을 돌려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프족들은 정신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상태.
더구나 가호를 내려 주던 신성수 그라나다의 힘이 거의 끊긴 상태였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현상 유지를 위한 관리가 필요한 때였다.
그러했기에 은밀하게 사라지는 두 마족의 움직임을, 그들이 숲 밖을 나갈 때까지 미처 파악하지 못하였다.
제7장 마계에서 올라온 녀석(1)
“하아……!”
지환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맑은 공기가 폐 안 깊숙이 들어왔다.
도심의 오염된 공기만 마시다가 이곳에 와서 맑은 공기를 원 없이 마시는 것이었다.
“후우. 화아.”
다시 크게 호흡을 하였다. 신선한 풀 향기가 코를 감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졸졸 흐르는 강물은 언제나 마음을 편하게 하였다. 물론 물은 정말 맛없었지만.
뿌드득.
뿌득.
온몸의 뼈가 욱신거렸다. 동쪽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온 지 하루가 흘렀다. 걸어가다 보니 저번에 봤던 것 같은 강을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저번에 본 것같이 아주 넓은 강은 아니고 작은 시내 정도였다.
마침 해도 지고 해서 시냇가 앞에서 가던 길을 멈춘 것이었다.
어느덧 태양빛이 식은 대지에서 차가운 공기가 살짝 올라오자 밤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지환이 살짝 몸을 풀었다.
“하나, 둘, 셋, 넷.”
달밤의 체조. 평생 안 해 보던 것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야외에 있게 되니 한 번 해 보는 것이었다.
“으랏차.”
전혀 체조와 어울리지 않는 기합을 내뱉고 손발을 뻗으며 체조를 한 후 지환은 자신이 메고 온 가방을 열었다.
“얇은 침낭 하나…….”
센스 있게도 가방 안에는 엘푸카 열매 외에도 얇은 침낭이 있었던 것이었다. 가방의 무게를 거의 못 느꼈기에 미처 몰랐던 것이다.
힐긋.
그리고 지환은 이번에는 잠자리로 찜해 놓은 커다란 나무 근처를 살짝 바라보았다. 위험이 될 만한 동물을 여전히 보지 못했기에 안심은 되었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
“아, 버튼만 누르면 불이 나왔는데!”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가스렌지’라는 문명의 이기가 매우 그리워진 것이었다.
침낭은 어찌어찌 준비되었는데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 불을 피울 수 없었던 것.
이전에 그렐돈과 함께 여행할 때에는 리샤이엘이 정령의 힘을 빌려 불을 피워 줬지만 지금은 지환 혼자 해결해야 했다.
물론 원시인처럼 나무를 박박 마찰시켜 불을 낼 자신은 없었다.
“라이터라도 있었다면…….”
아쉬운 소리를 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맥가이버 칼 하나뿐. 그 순간 지환이 나무 곁에 잘 놔둔 마검 카라이안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옳거니. 자동 불 생성기.”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지환이 시시덕거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대충 부러뜨려 가져와서 차곡차곡 쌓았다. 어느새 캠프파이어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그리고 마검 카라이안을 힘껏 잡아 뽑아 올렸다.
스르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마검의 검날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무슨 일이지? 또다시 힘을 사용할 셈인가?
손으로 힘껏 쥐자 숲을 출발한 이후 침묵을 지키던 마검 카라이안이 다시 반응하였다.
“그게 아니라, 불을 원한다.”
―불?
“그래, 불. 활활 타는 불. 그냥 확 밀어 버리는 게 아니라. 이제 화염 좀 만들어 봐.”
자동 화염방사기로 너를 임명한다는 투로 지환이 마검 카라이안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잠시 머뭇거리던 마감이 천천히 지환에게 대답했다.
―불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마계의 힘이야말로 불의 힘. 더구나 나의 힘의 근원은 바로 이글거리는 불꽃. 크하하하.
“오호. 좋았어, 좋아. 마검 카레! 너를 고급 라이터로 명한다.”
―나의 이름은 카라이안이다. 카레라는 이상한 이름을 쓰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라이터? 그게 무언가?
지환의 머리에 웅웅거리는 마검 카라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자 지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좋은 뜻이야, 마검 카레.”
―나의 이름은…….
다시 무어라 말하려는 카라이안을 휘두르며 지환이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다고. 어쨌든 나는 불을 원한다.”
이렇게 무엇을 원한다라고 외칠 때에는 지환에게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마검 카라이안은 이내 지환이 원하는 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힘을 발산하라.
“오케이. 좋아.”
지환이 흥겨운 듯 외치며 쌓여 있는 장작을 향해 소리쳤다.
“불이여 나와라. 호이짜!”
그렇게 외치는 순간 마검 카라이안의 끝에서 붉은 섬광이 휘몰아 쳤다.
콰아앙.
“으아악.”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화염과 함께 지환의 나지막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토옹.
데구르르.
콩.
하늘로 튕겨 올랐던 나무토막 하나가 빙그르 돌며 지환의 머리 위에 뚝 떨어졌다.
그러나 지환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화염에 녹아 시꺼멓게 된 구덩이가 있었다. 열기가 너무 강해 모두 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새까맣게 그을음이 낀 지환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마검 카레……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얼굴에 숯검정 칠이 된 지환이 마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잠시 후 마검 카라이안의 음성이 들려왔다.
―불 달라며.
마검 카라이안은 작은 불을 만들 수가 없었다. 대포로 장작불을 붙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국 지환은 시내에 들어가 검은 그을음을 씻어 낼 수밖에 없었다.
철퍼덕철퍼덕.
“후우. 살 것 같네.”
그래도 용케 화상 같은 것은 입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지환이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열기가 한 번 후끈했는데 검은 그을음이 달라붙은 것밖에 없었다.
다행히 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니 그을음은 빠르게 씻겨 나간 터였다.
물기를 말리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바람은 시원했다. 그리고 물기가 흡사 피부에 스며들 듯 빠르게 말라 갔다.
“흐음.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피곤이 많이 풀린다니까.”
지환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수건이 없어서 대충 바람에 말렸지만 금방금방 물기가 말라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목이 또 컬컬했다.
불은 포기하고 대신 콜라라도 마시기로 작정했다. 그러고 보니 250㎖ 하나 마신 이후로 지금까지 한 잔도 안 마신 터였다.
“역시 잠자기 전엔 하루 한 잔의 콜라.”
나름대로의 철학을 설파하며 지환이 마검 카라이안을 다시 들어 올렸다.
“마검 카레, 네놈은 역시 콜라 자판기 역할이 딱이다.”
중얼거리며 지환이 말했다. 그러자 다시 카라이안의 음성이 들려왔다.
―파멸의 용액을 다시 원하는가? 몇 번 더 휘둘러 봐라.
지환이 원하는 것을 알았다는 듯 마검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지환이 대충 주위를 바라보다가 시냇가 반대편 야트막한 수풀 언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하아압!”
다시 괴성을 지르며 지환이 마검을 쭉 뻗자 검날 끝에서 흰 섬광과 함께 푸른색의 빛이 뿜어져 나갔다.
쿠아앙.
쿠앙.
혹시라도 수풀에 힘을 쏘아 내면 불씨라도 하나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몇 번 더 쏘아 댔지만, 이것은 흡사 불도저로 밀어 버린 것같이 싸악 밀려 있었다.
“내 참, 콜라 만드는 것 외에는 도움이 안 되는 놈이구먼.”
마검을 검집에 넣은 채 지환이 자신이 만든 결과물 위를 걸어 다니며 중얼거렸다.
야트막한 수풀 언덕 사이로 쭉 뻗은 길이 뚫린 것이다.
그래도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기에 여기서 자도 좋겠다라는 생각도 문득 가졌지만, 시꺼먼 그을음이 바닥에 퍼져 있었기에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콜라 한 잔.”
지환이 검을 들어 올려 말했다. 그러자 이내 다시 카라이안을 휘감는 회오리와 함께 허공에 시꺼먼 액체가 담긴 구체가 등장했다.
쭈욱.
벌컥.
“허어, 시원타. 역시 자기 전 하루 한 잔의 콜라.”
지환이 단숨에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은은한 감동이 온몸을 적시며 울려 퍼졌다.
“캬아, 죽인다.”
입맛을 다시며 쩝쩝거렸지만 어느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신 터였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결국 다시 돌아와 지환은 짐을 챙겨 좀 더 걸어갔다. 검게 푹 파인 바닥을 보니 아까 전의 울분이 다시 치솟아 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시원하게 한 잔 마신 터였고 조금 더 걸어가서 잠자리를 잡으려 마음먹은 것이다.
“여기쯤…… 응?”
시냇가를 따라 쭉 걸어가다가 다시 쉴 만한 큰 나무를 발견했다. 그 아래에 짐을 풀고 얇은 침낭을 꺼내려는데 문득 무언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다.
“뭐, 뭐야.”
자신도 모르게 지환은 오른손을 뻗어 그것을 붙잡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토, 토끼?”
사진으로 보던 토끼였다. 도시에서 살아온 지환으로서는 토끼를 직접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흔들흔들.
눈앞에서 토끼의 기다란 귀를 잡아 흔들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이게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지금까지는 강가의 물고기 말고는 그야말로 쥐새끼 한 마리 못 보았던 것이다.
“요놈을 어떻게 한다…….”
지환이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고기’인 것이다. 하지만 딱히 어떻게 요리할지, 무엇보다도 불이 없으니 참 난감했다.
“그, 그것! 내가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웬 소년의 목소리에 지환이 살짝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