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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술사 1권(2화)
01. 접속 안토시안(2)
이름:없음 성향:중립 직업:없음
직위:없음 작위:없음 평판:0 명성:0
레벨:1 HP:1,550 MP:1,450
힘:14 민첩:17 체력:15 지력:13 지혜:14 매력:18
6개의 스탯의 합계는 91.
최소치인 60과 최대치인 120의 중간 정도의 수준이었다.
평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한 것에 비하면 몸 상태가 괜찮은 편이라 속으로 위로하며 상태창을 닫았다.
―캐릭터의 이름을 정해 주세요. 캐릭터 이름은 추후에 변경이 어려우니 신중하게 정해 주세요.
나는 미리 생각해 둔 이름이 있어서 바로 대답했다.
“레온.”
미카엘이 친절하게 미소 지었다.
―레온이라는 이름은 현재 19,352명의 유저가 사용 중입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캐릭터의 성을 정해 주세요.
“카드리안.”
미카엘이 다시 친절하게 웃었다.
―레온 카드리안이라는 이름은 현재 121명의 유저가 사용 중입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미들네임을 정해 주세요.
나와 같은 작명 센스를 가진 사람이 121명이나 된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미들네임은 팔랑크스(Phalanx)로 하겠습니다.
미카엘이 오른손을 들어 내밀자 은회색 빛무리가 나에게 날아왔다.
―이정민 님의 캐릭터 이름은 레온 팔랑크스 카드리안입니다. 편의에 따라 레온 P.카드리안으로 표기됩니다. 결정하시겠습니까?
“네.”
내가 대답을 하자 은회색 빛무리가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아마 상태창을 열어 보면 이름란에 레온 P.카드리안이라고 적혀 있겠지.
―카드리안 님의 종족을 결정해 주세요.
캐릭터 이름을 정하자마자 미카엘이 캐릭터명으로 바꾸어 불렀다.
우주에 떠 있는 발아래의 녹색 행성에서 5개의 빛무리가 날아오더니 미카엘의 앞에 나란히 정렬했다.
빛무리는 사람의 형태로 변하더니 각각 인간, 엘프, 수인족, 드워프, 오크로 변했다.
나는 먼저 엘프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근처로 다가가자 엘프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엘프, 그레이 엘프, 다크 엘프, 우드 엘프 등으로 나눠졌다.
“우리 엘프의 특성은…….”
각각의 엘프가 자신들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본 후에 수인족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엘프 때와 마찬가지로 빛이 나면서 묘인족, 호인족, 견인족 등 몇 가지로 나누어져 각자의 특성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묘인족의 특성은…….”
‘역시 인간으로 하자.’
애초에 정해 놓았던 인간에게로 향했다.
내가 여러 종족들 중에서 인간을 정한 이유는 인간이 가장 상업적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는 목적이 돈벌이인 만큼 가장 보편적이고 개체수가 많은 인간으로 하는 것이 유리할 듯싶었다.
인간 쪽으로 다가가자 빛을 내며 황인, 흑인, 백인으로 나눠졌다.
‘헐, 인터넷으로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인간을 피부색으로 분류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센스는 대체 뭐야?’
황인족을 선택해서 피부색과 머리색을 조금 백인처럼 변형시켜 판타지 세계관에 어긋나지 않게 만들었다.
―종족은 인간(황인족)으로 결정하시겠습니까?
“네.”
대답을 하자마자 몸이 빛 덩어리에서 나와 비슷하게 생긴 인간으로 변해 갔다.
―외모의 변형은 키 5센티미터 내외, 몸무게 5킬로그램 내외로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체형이나 인체 비율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다른 가상현실 게임들은 외모를 원하는 대로 변형시킬 수 있었지만 안토시안은 인체 비율 조정은 저 정도가 한계였다.
개발자가 무엇 때문에 이런 제약을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키가 작거나 뚱뚱하거나 너무 마른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불만이었다.
물론 게임을 진행하면서 특성에 맞게 키가 자란다거나 오히려 작아진다거나 살이 찌거나 빠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처음에 변형시킬 수 없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에 키를 188센티까지 키우고 몸무게를 84킬로까지 늘리는 정도로 끝을 냈다.
―플레이할 세상을 지정해 주세요.
미카엘의 말이 끝나자 눈앞에 직경 3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행성이 생겨나더니 각 대륙과 지역의 이름과 특성을 표시해 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미리 생각해 둔 스타팅 포인트를 말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국가 파르칸으로 하겠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파르칸으로 하시겠습니까?
“네.”
―현재 파르칸 왕국의 캐릭터 생성지는 24곳 입니다. 어디를 선택…….
나는 미카엘을 말을 끊고 생성지를 선택했다.
캐릭터가 생성되자 게임을 빨리 시작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뉴 필모어 영지로 하겠습니다.”
―뉴 필모어 영지로 하시겠습니까?
“네.”
시작할 장소를 정하자 미카엘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뜰 때에는 그의 눈에서 엄청난 밝기의 은회색 빛이 발생하며 나의 눈을 시리게 했다.
―레온 팔랑크스 카드리안, 당신은 이제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
미카엘은 눈부신 빛에 휩싸여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웃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미카엘의 미소를 뒤로하며 정신을 잃었다.
“이봐, 일어나라고. 멀쩡해 보이는데 이런 곳에서 자는 이유가 뭔가? 이봐!”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정민의 탈출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으으응…….”
“정신이 든 모양이군. 내 소개를 하지, 나는 여행자 스미스라네. 내 애기를 들어 볼 텐가?”
정민이 누워 있던 곳은 광장 안의 분수대였다.
게임에 대해 파악하기도 전에 스미스라는 NPC가 정민을 깨우며 말을 걸어 온 것이다.
‘게임을 시작할 때 따로 안내 NPC가 없다고 알고 있는데 이게 그 특이한 상황인가?’
안토시안은 게임에 접속한 후 7일간 초보자 보호 기간이 있어 스스로 게임에 대해 적응과 파악을 하게 되어 있다.
따로 안내 NPC가 없기는 하지만 특수한 상황일 때 안내 NPC가 초보자 보호 기간 동안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 특수한 상황인가 본데? 근데 초보자 안내 NPC가 왜 이런 아저씨인거야?’
스미스는 지저분한 갈색 로브를 머리까지 덮어쓰고 있었고 온통 갈색 수염을 기른 얼굴이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네, 들어 보겠습니다.”
정민은 분수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스미스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자네 키가 매우 큰 편이구만. 기골이 장대해서 검을 다루면 이름을 떨칠 수가 있겠어. 아니,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라 여기는 치안이 잘되어 있기로 소문난 뉴 필모어 성이라지만 대낮에 그렇게 분수대에서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햇빛이 좋아서 앉아 있다 보니까 잠이 든 모양입니다.”
정민은 대충 둘러대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유럽풍의 깔끔한 건축물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채로 쭉 들어서 있고 반듯하게 잘린 돌을 사용해서 만든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그 도로를 따라 많은 인파들이 장사를 하거나 구경을 하거나 하면서 오가고 있었다.
제법 화려해 보이는 마차들도 교차로라 할 수 있는 분수대 주변을 오고갔다.
‘정말 진짜 같잖아!’
사람들의 비현실적인 머리색이나 눈동자 색깔만 빼고는 정말 중세 시대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상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정민은 손을 들어 자신의 팔을 만져 보았다.
‘진짜 피부 감촉이다!’
스미스는 자신의 팔을 만져 보다가 옆의 분수대를 만지며 그 안의 물을 휘저어 보는 정민을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어저께 술을 마신 모양이군 그래. 덩치가 크고 멀쩡하게 생겨서 경비대에 붙잡혀 경을 치르기 전에 깨워 주었던 것인데 주정뱅이였다니.”
정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초보자 보호 기간 동안에 유저가 겪는 사건이나, 취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1차 전직을 하게 될 때 직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초보자 안내 NPC인 스미스가 자신을 주정뱅이로 여기게 된다면 큰일이었다.
자신의 평판이 좋지 않게 작용하여 등급이 낮은 직업들만 적용될지도 몰랐다.
“스미스 씨, 저는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아름다운 이곳 뉴 필모어 성에 감탄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낭만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소한 아름다움에도 감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정민은 스미스가 생긴 것은 용병 같지만 직업이 여행자이기에 낭만을 아는 자일 것이라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하하하, 그렇지. 이거 내가 젊은이의 낭만을 오해한 셈이 되었군. 오해해서 미안하네. 그런데 자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직업은 구했는가?”
여행자의 특성상 쉽게 다른 곳에 어울리는 성향인 스미스는 특유의 고집이 있는 사람이라 정민의 딱 부러지는 대답에 만족했다.
하지만 크게 너털웃음을 지은 뒤에는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정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직은 직업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직업을 구해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겁니다.”
정민은 호탕하게 웃으며 스미스의 질문에 답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여행자는 어떤가? 여행자는 세상을 떠돌며 소식을 전하고 다양한 문화를 겪으며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고뇌하는, 세상을 떠도는 철학자라고 할 수 있지.”
―여행자로 전직하시겠습니까?
정민은 스미스의 질문에 여행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행자는 약간의 검술, 약간의 마법, 약간의 음악, 그리고 대화에 관련된 스킬이 주를 이룬다고 들었다. 약초를 다루는 기술이나 치료술, 야생의 재료를 음식으로 만들 수 있는 조리 스킬 등 다양한 스킬들을 가질 수는 있지만 돈을 벌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안토시안을 관광 삼아 하는 것이라면 여행자라는 직업도 나쁘지는 않겠지.’
정민은 여행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마구 떠올랐지만 스미스에게는 진중한 미소를 지으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저는 여행자의 낭만을 사랑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아의 성찰을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낯선 곳으로 떠나보내는 여행자의 이상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의 나이가 어려 사람들과 부대끼며 인생을 더 경험한 후에 여행자의 길을 걸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행자로의 전직을 거절합니다.
스미스는 정민의 대답에 아쉬워하는 한편 기쁨을 느꼈다.
사실 여행자라는 직업은 하릴없이 떠도는, 떠돌이라는 평가가 많았었기 때문에 비록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은 정민에 대한 평가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그래그래. 자네, 젊은 나이에 여행자의 낭만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구만. 자네가 아직 세상을 더 알아 가고 싶다면 여행자의 길을 강요할 수는 없지. 자네는 여기 출신인가?”
스미스가 웃으며 말하자 정민은 내심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여행자라는 직업을 거부하면 스미스와의 친밀도가 하락해서 악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초보자 기간에는 최대한 조심조심하면서 대박 직업으로 전직해야만 해.’
정민이 원하는 직업은 화려한 직업도 최고로 강한 직업도, 세상의 낭만을 아는 예술가도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직업은 오로지 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돈과 관련이 멀어 보이는 직업들은 다 내치기로 마음먹었다.
‘대장장이나 뛰어난 검사, 마법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지.’
“저는 사실 뉴 필모어 영지 근처에서 자랐지만 성에 들어온 것은 처음입니다.”
정민은 자신도 처음해 보는 게임인데 여행자인 스미스가 뉴 필모어 성을 안내해 달라고 말하면 안 되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대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아직 하인델의 펍에 가 보지 않았겠군. 식전이라면 나와 함께 식사라도 하지 않겠는가? 세상을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이지만 뉴 필모어 같은 대도시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지. 내가 대접하겠네.”
정민은 흔쾌히 승낙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식전이라 배가 고프던 참이었는데 감사합니다. 가시죠.”
“그래, 어서 가지.”
정민은 스미스를 따라가며 주변을 끊임없이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나라의 기술이 이렇게 발달했단 말이야? 이게 어떻게 게임이야, 완전 진짜 같잖아.’
정민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불현듯 스미스가 정민을 돌아보았다.
“이런 내 정신하고는 내가 중요한 것을 물어보지 않았군.”
“그게 무엇입니까?”
정민은 괜히 긴장하며 스미스의 질문을 기다렸다.
“자네의 이름을 아직 물어보지 않았군.”
긴장하던 정민은 이름을 물어 오는 스미스에게 작게 웃음 지으며 사과했다.
“하하하, 아직 제 소개도 하지 않았군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한 후에 자세를 고친 정민은 스미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정확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레온, 레온 P.카드리안. 이것이 제 이름입니다.”
정민은 안토시안에서 철저하게 레온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