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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술사 1권(6화)
03. 지프 대장간(2)
“손을 다칠 수 있으니 두꺼운 장갑을 끼고 금속을 제외한 부분을 이렇게 제거한다.”
지프는 깨진 해머로 시범을 보이며 스킬을 전수해 주었다.
―스킬 도구재료감별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해체를 습득하셨습니다.
[도구재료감별(액티브)] LEV1
숙련도:0%
소모:MP50
기본적인 도구의 재료를 감별할 수 있다.
[해체(패시브)] LEV1
숙련도:0%
농기구나 망치 등의 간단한 금속 도구의 해체가 가능해진다.
‘앗싸!’
안토시안은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에 만족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거나 아니면 일정한 행동을 몇 주일 동안 반복해야 스킬이 생성된다.
그런데 이렇게 퀘스트를 하는 조건으로 2개의 스킬을 얻게 되자 레온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당장은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여도 스킬레벨이 올라가면 그 활용도가 많아지리라.
“자, 시간이 없으니 어서 일을 시작해라. 도구를 해체해서 금속 재료 별로 저기 보이는 장소에 놓아두면 된다.”
지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음…….”
홀로 남은 레온은 쌓여 있는 고철들을 가늠해 보았다.
눈으로 봐도 혼자서 4일 만에 이 많은 양을 해체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게임에 접속한 지 현실 시간으로 12시간이 지나 새벽이 되었을 것이다.
“어차피 하던 일도 관두고 여기서 돈을 벌려고 마음먹었는데 잠은 나중에 자고 한번 해 보자.”
레온은 장갑을 단단히 끼며 앞에 있는 해머를 집어 들었다.
“도구재료감별.”
[공업용 해머 재료:철, 나무]
“…이 정도는 스킬을 쓰지 않아도 당연히 아는 거 아닌가? 그럼 해머를 돌로 만들었겠어?”
아직 스킬레벨이 낮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밖에 감별이 되지 않았다.
스킬창을 열어 보니 숙련도가 1% 올라가 있었다.
“내 MP양이 1,550이니까 연속해서 31번 쓸 수 있다는 얘긴데… 어서 스킬레벨을 올려야겠어.”
레온은 공업용 해머를 시작으로 고철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징 박힌 가죽갑옷은 못 쓰게 된 가죽 부분을 찢어 버리고 철만 빼내어 한곳에 쌓았다.
판금갑옷은 내부에 천으로 덧 된 부분만 찢어 내고 쌓았다.
도구 해체를 하다 보니 기본적인 농기구나 망치 등의 도구는 어느 부위를 쳐서 빼내면 되는지 녹색으로 표시가 되어 쉽게 해체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이거 신기한데 여기를 치니까 한 번에 해체가 되잖아. 스킬레벨이 올라가면 이런 복잡한 조각상도 한 번에 해체를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레온은 녹이 심하게 쓴 철제 조각상에서 석재 부분을 부서 내었다.
대략 3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나니 스킬레벨이 하나 올랐다.
―스킬 해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체(패시브)] LEV2
숙련도:0.2%
무기류의 해체가 쉬워지고 해체 시에 발생하는 재료의 손상이 적어진다.
스킬레벨이 하나 오르고 나니 해체가 조금 쉬워졌다.
그리고 매번 해체할 때마다 도구재료감별 스킬을 사용하니 2시간 후에는 그마저도 스킬레벨이 올랐다.
[도구재료감별(액티브)] LEV2
숙련도:0.8%
소모:MP50
기본적인 병장기의 재료를 감별할 수 있다.
레온은 스킬레벨이 오른 것에 기뻐하며 5시간 만에 허리를 폈다.
“아∼ 허리야, 얼마만큼 했나…….”
5시간 동안 자신이 작업한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고철 더미를 살폈다.
“이게 뭐야? 그대로잖아? 설마 내가 작업을 하는 사이에 지프가 고철을 더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니겠지?”
깡. 깡. 깡.
5시간 동안 망치질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것을 봐서는 지프도 계속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퀘스트를 실패하겠어. 어서 서둘러야 해.”
레온은 퀘스트를 실패해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하게 될까 봐 작업의 속도를 높였다.
“윽∼ 졸려서 죽을 것 같아. 잠이 필요해.”
퍽!
“크아악!”
반쯤 눈을 감고 비몽사몽으로 작업을 했더니 망치로 손가락을 찍어 버렸다.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 HP가 100 감소합니다.
“안 되겠어. 이대로는 졸려서 죽을지도 몰라.”
해체 작업을 한 지 20시간이 넘었으니 꼬박 하루 동안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양의 고철들을 해체를 했지만 아직 너무 많은 양의 고철들이 남아 있었다.
“아직 1/3도 못했는데… 이대로 자면 안 돼.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레온은 손가락을 찍은 후로도 2시간을 더 해체 작업을 했다.
툭.
“후럴!!”
그러다 커다란 철골을 옮기던 중, 손에 힘이 빠져서 발등을 찍고 말았다.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 HP가 150 감소합니다.
레온은 해체가 끝난 철재들을 분류해 놓은 곳에 철골을 던져 버리고 발등을 부여잡으며 제자리에서 나뒹굴었다.
텅, 와르르.
“이제 못 버텨.”
―접속을 종료하시겠습니까?
“네! 당장, 어서!”
레온은 수면을 취하기 위해서 게임 접속을 해제하고 접속기에서 나왔다.
“아∼ 딱 3시간만 자고 다시 작업하자.”
레온은 휴대폰 알람을 맞춰 놓고 바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 시각 안토시안 게임 속.
“이봐, 잘되 가는 거냐?”
대장장이 지프는 자신이 자기 전까지 고철을 해체하던 레온의 모습이 떠올라 늦은 아침이 되어 일어나자마자 레온이 작업을 하는 창고에 들어왔다.
“어디 간 거지? 이자식이 그놈들처럼 도망친 것은 아니겠지?”
으드득.
지프는 도망가 버린 자신의 직원들, 즉 도제들을 떠올리며 레온이 도망을 갔다고 판단했다.
“이런 빌어먹을……!”
지프는 한편에 분류되어 있는 고철들을 걷어차려다가 그 앞에 널브러져 있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이 녀석…….”
분류된 고철들 앞에는 온몸에 쇳가루와 먼지가 묻어 고철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레온이 잠들어 있었다.
안토시안은 NPC의 보호가 있거나 퀘스트 중이거나, 완전 안전장소(여관, 집, 막사 안 등)가 아니면 접속 해제 시에 캐릭터가 사라졌다가 재접속 시에 나타나게 되는데, 지금 접속을 끊고 잠들어 있는 정민과 같이 게임 속에서 레온도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을 지프가 발견한 것이다.
레온의 흰색 티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는 원래의 색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이것 참.”
지프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작업장 뒤편 공터에 만들어 놓은 해먹(기둥에 그물을 메어 만든 침대)에 레온을 눕힌 후에 모포를 덮어 주었다.
“애송이가 제법 근성이 있는 편이군.”
레온이 분류해 놓은 양을 보니 밤을 꼬박 새워 작업을 한 뒤 쓰러져 잠든 것이 분명했다.
지프는 피식 웃음 지으며 주문 받은 작업을 하기 위해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안 돼!”
정민은 비명을 지르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헉, 헉, 헉.”
악몽을 꾸었다.
3개월 후,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나서 살고 있는 원룸에서 쫓겨나는 끔찍한 악몽을.
“제기랄!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게임을 해서 돈을 벌어야 돼. 얼마나 지난거야?”
시계를 보니 잠이든 지 2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잤어.”
정민은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고 접속기 안에 들어가서 접속 유닛들을 착용하고 게임에 접속했다.
“응? 안전지대에서 게임 접속을 해제하면 모포가 생긴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레온은 자신의 몸에 덮여 있던 모포를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악.”
콰당.
레온은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해먹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고, 허리야. 이 게임에 분명히 싱크로율을 줄이는 기능이 있을 텐데. 나중에 꼭 찾아봐야겠어.”
레온은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서며 아무 데나 누워서 게임을 종료시킨 자신을 지프가 옮겨 놓았다고 추측했다.
‘성질이 더럽긴 해도 정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레온은 지프에 대한 감동도 잠시, 얼른 달려가 작업 장갑을 꼈다.
“잠도 자고 밥도 먹었으니 다시 노가다를 시작해 보자!”
레온은 피곤에 절어 사라져 버린 의욕을 되살리며 제일 가까이 있던 부러진 대형 도끼를 들어 해체를 시작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체력이 1 증가합니다.
―현명한 업무 처리로 인해 지력이 1 증가합니다.
스탯이 올라 좋아할 새도 없이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고철에 긁혀 상처가 나도, 멈추지 않았다.
텅.
또 하나의 고철을 분류하고 나서 다른 고철을 집어 들었다.
‘고철에 긁혀서 파상풍 같은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현실성을 중시해도 그 정도로는…….’
“이봐, 식사는 하고 일을 해야지.”
지프는 멀리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레온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네?”
“집사람이 보낸 식사가 도착했네, 같이 들지.”
“알겠습니다.”
그제야 지프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된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에서 부르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수돗가에서 씻고 오게, 쇳가루를 조미료 삼아 먹을 수는 없으니.”
“그러죠.”
온몸이 쇳가루 투성인 지금 이대로 식사를 한다면 음식보다 쇳가루를 더 많이 먹을 것 같아 지프의 의견에 동의하며 수돗가에 가서 몸을 씻었다.
마음 같아서는 홀딱 벗고 물 안에 들어가 온몸에 묻어 있는 이물질들을 씻어 내고 싶었지만 얼굴과 손만 깨끗이 씻고 물을 털어 냈다.
“뭐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텐데.”
레온은 지프와 장인들, 도제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곳으로 갔다.
마침 식사를 시작하려던 지프가 레온에게 손짓을 했다.
“이리로 와서 먹게.”
거대한 덩치의 지프가 자신을 보며 손짓하자 왠지 모를 위압감이 들었다.
‘나도 근육을 좀 만들어야겠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움츠러들 정도라니.’
“네.”
레온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자 지프가 직접 음식을 퍼 담아 레온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도장인님.”
도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지프에게 도장인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얼핏 들어 지프의 존칭을 그렇게 불렀다.
“일은 할 만하던가? 생각 같아서는 도제들을 붙여 주고 싶지만 이쪽도 기한 맞추기가 빠듯하단 말이야. 마구 찍어내서 품질을 떨어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해하게.”
‘여기에 도제가 6명이나 있는데 그중에 한두 명도 못 보내는 거냐?’
“아닙니다. 점점 작업 속도가 붙고 있으니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레온은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했지만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하하하, 자네는 엄살을 부리지 않아서 좋아.”
퍽. 퍽. 퍽.
지프가 호탕하게 웃으며 그 커다란 손으로 레온의 어깨를 쳤다.
‘윽!’
HP가 깎일 정도로 격렬한 친근감 표시에 통증을 느꼈지만 레온은 내색하지 않았다.
“여기 오기 전에 지프 님이 뉴 필모어에서 최고의 장인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와 보니 주문이 산더미같이 밀려 있는 것이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온은 대장장이로 전직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기회에 지프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해서 호감도를 올려놓기로 했다.
이런 말로 친해질 수 있는 인물은 아닌 것 같지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호감도를 올려야 했다.
“하하하, 그렇지. 자네가 사람 볼 줄 아는데? 라돈 영감이 뉴 필모어에서 최고라고 떠드는 경솔한 자식들이 있는 모양인데 내가 라돈 영감보다 못한 게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이런 게 먹히는 인물인 건가?’
레온은 의외로 단순한 아부가 먹히자 기회다 싶어 식사를 하면서 지프의 실력에 대한 찬사를 아낌없이 이것저것 뱉어 냈다.
“제가 아직 보는 눈이 없긴 하지만 도장인님의 작품을 보니 정말 명장은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돈 영감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도장인님 보다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레온의 말에 지프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래, 내가 분명히 뛰어난데 라돈 영감처럼 상술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야. 실력과 상술은 별개인데, 어떻게 상술로 장인을 평가한다는 말인지 모르겠어. 쳇, 빌어먹을 놈들.”
지프가 기분이 나빠진 듯하자 레온이 얼른 말을 보탰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진정한 명장은 도장인님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 밀려드는 주문량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지프가 기분이 좋아진 듯하자 레온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연합니다. 어차피 역사는 최고의 능력을 지닌 자를 인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지프 님이 최고로 기록될 것입니다.”
레온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지프를 치켜세웠다.
―화려한 말솜씨로 인해 대장장이 도장인 지프가 당신을 신뢰합니다.
‘잉?’
“레온, 자네는 내가 볼 때 말이야, 정말 열정이 대단한 친구야. 마음에 들어.”
지프가 레온의 어깨를 신뢰의 표시로 두어 번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