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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술사 1권(11화)
05. 대현자 한스킨스와의 대면(2)


“하기야 이렇게 거대한 탑이 들어서 있는 구름인데 한 명 정도 더 올라갔다고 꺼지기야 하겠어?”
저벅저벅.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계단 밑의 구름에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보통 성벽을 방어하기 위해 파 놓는 해자처럼 폭이 4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개울이었다.
“이거 얼마나 깊은 거야?”
신기하게도 높이 5미터의 구름에 파져 있는 해자였는데 그 깊이가 20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 해자 안에는 4미터 길이의 악어들이 헤엄을 치며 레온에게 윙크를 날리고 있었다.
“… 어서 들어가자.”
레온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섰다.
“누구인가?”
레온이 문 앞에 서자 문에서 약간은 날카로우면서 쉬어 있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레온 카드리안입니다. 한스킨스 님에게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왔습니다.”
“한스킨스?”
3미터 높이의 문짝에 갑자기 커다란 눈과 입이 생겨났다.
눈과 입 사이에 있는 문고리가 코처럼 보여 마치 늙은 노인의 얼굴 같아 보였다.
“… 네, 한스킨스 님입니다.”
레온은 자신의 몸을 삼킬 듯 커다란 입을 움직이며 물어 오는 문짝을 향해 대답했다.
‘문짝에 마법을 걸어 놓았군.’
“한스킨스라는 애송이가 수십 년 전에 들어왔었지. 기다려라, 남자여.”
그 말을 남기고 문짝에 생긴 눈과 입이 사라졌다.
레온이 황당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다시 문에 눈과 입이 생겨나며 레온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끼기긱.
“들어가라, 남자여.”
문을 열어 주고서도 자신을 계속 보고 있는 눈 때문에 레온은 찝찝한 기분으로 문 안으로 들어섰다.
끼기긱… 쿵.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문이 닫히며 시야가 어두워져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밖에서 볼 때는 창문이 수없이 나 있었는데 실내가 이렇게 어둡다니…….”
“물어보는 말 이외에는 말을 하지 마라. 삐약.”
그때 노란색 빛무리에 휩싸인 자그마한 병아리가 날아오며 레온에게 주의를 주었다.
‘병아리가 난다?’
“다리를 꼭 붙잡아라. 한스킨스 님에게 갈 테니까. 삐약삐약.”
레온은 자신의 눈앞에서 날갯짓을 하며 그 작은 부리를 움직이며 말하는 귀여운 병아리의 말에 병아리의 발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손가락보다도 작고 가느다란 다리는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져 버릴 듯이 연약해 보였다.
“어서 다리를 붙잡아라. 삐약삐약.”
“… 나중에 부러졌다고 진단서 끊어서 오지는…….”
“물어보는 말 이외에는 말을 하지 마라. 삐약.”
빛나는 병아리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이런 통닭으로 튀겨 버릴 병아리 자식이? 다리를 부러뜨려 주마.’
레온은 양손에 온몸의 힘을 모아 병아리의 가냘픈 양다리를 강하게 부여잡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병아리의 다리는 부러지지 않았다.
“삐약삐약삐약.”
병아리가 울음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하자 레온의 몸이 덩달아 떠올랐다.
자그마한 병아리가 레온처럼 큰 덩치를 메달고도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1분여를 날아갔다.
‘마법사의 펫(애완동물)들은 다 이런 식인 건가?’
레온은 게임이니 그러려니 하고 병아리를 놓치지 않게 다리를 꽉 붙잡았다.
잠시 후 아무것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제법 커다란 방의 모습이 점점 다가오더니 어느새 병아리와 자신이 방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 병아리의 다리가 참기름을 묻힌 것처럼 미끄럽게 변해 레온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쓰러진 레온에게 썩은 미소를 보이던 병아리는 벽 속을 통과하여 사라져 버렸다.
“크학, 이런 튀겨 버릴…….”
그 모습을 보게 된 레온은 병아리를 향해 욕설을 하려고 일어서다 자신의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꼬장꼬장하게 생긴 노마법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네가 물건을 전달하러 온 아이더냐?”
푸른색 로브를 입고 있는 신선처럼 긴 수염을 기른 노마법사, 한스킨스는 레온보다 키가 한 뼘이나 더 컸다.
그렇게 커다란 덩치와 극저음의 목소리가 레온을 위축시켰다.
하지만 레온은 기죽지 않고 일어서 몸을 털어 내며 한스킨스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법사의 탑에서는 손님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모양입니다.”
콰르릉!
레온이 따지듯이 말을 내뱉자 갑자기 노마법사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천장에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 번개가 생겨났다.
우르르르르. 콰르릉. 번쩍!
“네놈이 8일이나 늦게 도착해 놓고 대접 받기를 원하느냐? 다시는 그 잘난 혀를 놀리지 못하게 네놈 혓바닥으로 옷을 해 입혀 주마!”
노마법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방 안을 가득 울려 퍼졌다.
레온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바로 태도를 바꾸었다.
“제가 위대하신 한스킨스 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하나 한스킨스 님이 잘못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애송아, 그것이 무엇이냐?”
우르르, 쾅!
레온의 발 옆으로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이런 미친 영감탱이가.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퀘스트가 어디가 E급 퀘스트인 거야? 이건 저명한 대학자가 아니라 끝판 대장이잖아!’
“저는 본래 이 물건을 전달하기로 한 사람이 아닙니다. 원래의 배달자에게 이 물건을 받아서 급하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 8일이나 늦은 것은 제 잘못이 아닙니다.”
언변 스킬이 발휘되어 침착하게 설명을 하자 한스킨스가 레온의 말에 반응하며 천둥 번개를 거두었다.
“그러면 원래 그 물건을 배달하기로 한 자는 누구인가? 당장 데려오너라.”
꿀꺽.
“그자는 오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무슨 말이더냐? 네놈이 나에게 장난을 하는 것이냐?”
다시 한스킨스가 분노하자 레온은 즉시 답했다.
“한스킨스 님에게 물건을 가지고 오던 사람은 5년 전까지 한스킨스 님의 제자였다고 하였습니다.”
레온의 말에 곰곰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던 한스킨스가 불현듯 스미스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불같이 분노했다.
“무어라? 그렇다면 그 작자가 얼빠진 스미스란 말이더냐?”
이번에는 한스킨스의 기다란 수염이 펄럭이며 심한 광풍이 불어왔다.
주변의 모든 물건들이 돌풍에 휩싸여 허공으로 떠올랐고 레온은 날아가지 않기 위해 바닥을 붙잡고 버텼다.
후오오오옹.
―지속적인 공격을 받아 초당 50의 HP가 감소합니다.
레온은 다급해졌다.
“저에게 이러시면 스미스의 행방도, 물건도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닥쳐라, 물건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너 같은 애송이가 전해 주러 온 것을 보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네놈이 아니더라도 스미스는 내 손으로 찾을 수가 있느니!!”
레온은 사방으로 메아리치는 한스킨스의 목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양손으로 바닥을 부여잡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노친네가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나? 고막이 터져 버리겠네.’
레온은 스미스에게서 받은 아이템을 꺼내었다.
유물을 꺼내느라 한 손을 바닥에서 떼자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레온은 상관하지 않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어지러운 와중에 푸른색 천에 쌓인 아이템을 한스킨스 쪽으로 내밀었다.
‘에라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설마 필요도 없는 아이템을 전해 주라고 했겠어?’
“정녕 이 유물이 필요 없으시다는 겁니까?!”
레온이 광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쳤다.
그는 스미스가 전해 준 물건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응?”
처음에는 애송이가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하던 한스킨스는 천에 쌓여 있는 물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아니 그 물건은? 네놈이 어떻게 그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한스킨스가 놀라 돌풍을 거두었다.
쿠웅.
거세게 휘몰아치던 돌풍이 사라지자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레온은 절반 이하로 깎여 버린 생명력을 확인하고는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물건이 온다는 것은 아는데 어떤 물건인지는 몰랐던 모양이군. 다행이다.’
한스킨스가 물건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에 레온의 배짱이 통했던 것이다.
“애초에 스미스가 전달하려던 물건이 이 유물입니다. 스미스는 물건의 수신자가 한스킨스 님인지 모르고 마법사의 탑에 왔다가 수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달아나 오늘에서야 저에게 물건을 맡겼습니다.”
레온은 애초에 스미스가 3일을 늦었다는 사실은 빼 버렸다.
“잔말 말고 이리 가져오거라, 어서.”
―알 수 없는 유물을 대현자 한스킨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
‘대현자라니? 현자는 인성검사 안하는 건가? 게다가 물건을 전해 주었는데 왜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는 것이지? 스미스에게 돌아가서 퀘스트 완료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인가?’
레온은 자신의 앞에서 손을 떨며 푸른 천을 풀어 보는 한스킨스가 자신을 곱게 보내 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왠지 한스킨스가 나와 같이 스미스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할 것 같은데… 그러면 퀘스트가 곱게 끝날 리 없어. 어쩌면 실패 처리 될지도 몰라.’
레온은 한스킨스가 무슨 말을 해도 퀘스트 성공을 위해서 스미스의 위치를 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오∼ 드디어 내 손안에 들어왔는가? 고대의 전설이 나에게 왔는가?”
레온이 무슨 생각을 하든 한스킨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천에 쌓여 있던 상자를 열었다.
끼익.
오래된 상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유물의 정체가 드러났다.
궁금증이 생겨 한스킨스의 근처로 은근슬쩍 다가가 상자를 살피던 레온은 상자 안에 담겨 있는 내용물을 보고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 유적이란 게 쓰레기인가요?”
상자 안에 든 것은 갓난아기 주먹만 한 동그란 돌멩이 하나와 썩어 버린 가죽과 천, 그리고 약간의 금속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이 다였다.
“쓰레기라니? 이것은 고대 문명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아∼ 귀청이야.’
한스킨스가 고함을 치자 레온은 깜짝 놀라 물러서다 한스킨스의 오른팔을 쳐 버렸다.
그 바람에 한스킨스가 들고 있던 상자에서 동그란 돌멩이가 레온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안 돼!!”
한스킨스가 깜짝 놀라 무거운 눈꺼풀로 덮여 있던 눈이 3배로 커졌다.
“응?”
레온은 한스킨스의 외침에 놀라 얼떨결에 돌멩이를 받아 들었다.
텁.
레온이 돌멩이를 잡아내자 한스킨스가 크게 안도하며 레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그 천공의 돌을 이리… 아니?!”
레온도 쓸모없는 돌은 가지고 싶은 마음은 없어 한스킨스에게 건네주려는데 회색의 돌멩이에 갑자기 은은한 빛이 생겨나며 주변을 밝혔다.
돌멩이에서 발생한 하늘빛 빛무리가 사방을 밝히자 마치 한스킨스의 방 안이 하늘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뭐야?”
그에 놀란 레온이 빛나는 돌을 놓치자 한스킨스가 놀라서 얼른 두 손으로 돌멩이를 붙잡았다.
“빛이… 없어졌다.”
한스킨스는 당황스런 눈초리로 레온과 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럴 수가 있나? 아닐 거야. 이제야 내 손안에 들어온 유물인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한스킨스는 돌멩이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조금 전처럼 빛나기를 바랐지만 돌멩이는 그의 마나를 튕겨내 버렸다.
‘허! 이럴 수가 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레온 쪽으로 돌멩이를 가져다 대니 돌이 은은한 하늘빛을 토해 냈다.
“이게 무슨 운영자의 지랄… 아니,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
‘방금 운영자에게 욕을 한 것 같은데? 이름난 대현자라 자신이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레온은 한스킨스의 방금 말은 무시하고 그에게 물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저는 분명히 스미스가 준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연신 돌멩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한스킨스가 레온의 물음에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쳤다.
“닥쳐라! 못 준다, 이놈. 안 줘. 내 것이야!”
‘아니 이 무슨 호랑말코 같은 경우가 다 있나? 게임 개발할 때 이런 지랄 맞은 성격을 대현자씩이나 되는 NPC에게 집어넣은 게 누구야?’
속으로 한스킨스와 게임 개발자를 동시에 욕하는 그였지만 한스킨스의 분노가 무서웠기 때문에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한스킨스 님의 물건을 탐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단지 스미스 씨의 부탁으로 물건을 전하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한스킨스는 그런 레온의 말에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고는 돌을 상자 안에 넣어 뒤로 감추었다.
‘더러워서 줘도 안 한다. 그깟 돌멩이.’
“그… 험, 그래 스미스는 어디 있다고? 그는 나의 제자이니 그의 얼굴을 보아야겠다.”
한스킨스가 짐짓 화가 난 척, 연기를 하자 레온은 그에게 있어 돌멩이가 스미스보다 더 중요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수십 년 된 제자보다 그깟 쓰레기가 더 중요하다니, 정말 대현자가 확실한 건가? 이런 사람이 대현자라면 나도…….’
레온은 잡생각을 접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