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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술사 1권(20화)
09. 전직, 복원술사!(2)
계단은 정확히 123개째에서 끝나 버렸다.
분명히 절벽으로 향하는 것 같았는데 그게 끝이었다.
중간에 파손된 것이 아니라 아예 애초부터 절벽에 닿지 않게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계단의 끝은 깎아지는 절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램프를 들어 눈앞의 절벽을 비춰 보니 계단과 절벽과의 거리가 10미터가량 되어 보였다.
그리고…….
“저기구나!”
그리고 계단이 끝나는 지점보다 5미터 정도 윗부분의 절벽에는 직경 3미터 정도의 굴이 뚫려 있었는데 동굴 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점프해서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야.”
레온은 램프로 아래를 비춰 보았다.
램프의 불빛이 바닥까지 닿지가 않았다.
“계단의 높이가 한 칸에 40센티가량이니 높이가 50미터 정도이겠지. 떨어지면 한 방에 즉사할거야.”
혹시나 해서 램프로 주변을 비춰 보았다.
50미터나 되는 나무가 계단 근처에 있으면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식물 군락을 가득 채운 거대한 나무는 이상하게도 계단 근처에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동굴에 밧줄을 던져 타고 올라갈까? 아니야, 밧줄은 뭘로 고정한단 말이야? 그리고 잘못해서 떨어진다면 즉사! 사망과 동시에 전직 퀘스트는 끝나게 되는 거지.”
히든클래스인 복원술사는 전직 전에 한 번이라도 사망한 기록이 있으면 전직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생명이 위험한 짓은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을에 가서 이 상황을 타게 할 도구를 구해 오는 것도 조금 망설여졌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 해도 걸어서는 3일이 걸리는 거리였다.
마을에 갔다 오면 왕복으로 6일이라는 시간이 소모된다.
유적을 찾아 헤매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하여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게임 시간으로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동굴 안에 어떤 시간을 잡아먹는 요소가 있을지 모르는데 6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레온은 주변에서 10미터의 거리를 줄여줄 도구가 될 만한 게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등을 돌려 혹시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
“흠…….”
레온은 램프를 나무 밑에 내려놓고 나무에 감긴 덩굴을 유심히 살폈다.
이 덩굴이라면 자신의 몸보다 굵고 길이도 족히 수백 미터는 되어 보여 계단과 동굴을 연결하는 다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덩굴을 옮길 수만 있다면 말이다.
레온은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창으로 땅에 직각삼각형을 그렸다.
“계단 끝과 동굴까지의 거리가 10여 미터, 높이가 5미터가량. 보자,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따라 길이의 제곱 더하기 높이의 제곱을 하면 빗변의 제곱이 나오니 계단과 동굴까지는 11미터가 조금 넘는다. 그러면 넉넉잡아 12미터의 직선 길이를 가진 덩굴로 다리를 만들어야 해.”
저렇게 두꺼운 덩굴이 12미터의 길이라면 무게는 최하 수백 킬로는 나갈 것이었다.
“일단 생각보다 무게가 가벼울 수도 있으니 창으로 덩굴을 베어 보자.”
핏!
덩굴에 약간의 흠집이 생겼다.
―가람덩굴나무에 9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가람덩굴나무의 생명력:29,902/30,000]
“…….”
직경이 2미터가 넘는 삼나무가 생명력이 50,000이었다.
가람덩굴나무는 직경이 50센티가 안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력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밀도가 높다는 뜻, 밀도가 높다는 말은 그만큼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뜻이었다.
레온은 잠시 말을 잃었다.
공략 팁에는 전투 직업의 경우에 레벨 10∼20 정도에서 전직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혹시 몰라서 레벨을 60까지 올렸는데, 이런 상황에서 레벨은 무의미했다.
등에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인가?
아무리 히든클래스라도 너무 큰 시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원래 이 게임은 전직이 이렇게 어렵냐?! 제기랄, 쉽게 좀 가자!!”
레온은 창을 하늘로 치켜든 채 안토시안 게임의 개발부, 운영자를 욕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레온의 원망은 한참이나 식물 군락을 소란스럽게 했다.
“엿이나 먹어라, 운영자야! Go to the hell ! 지옥에나 가 버려!!”
홀로 식물 군락 속에서 운영자를 욕하며 레온이 치켜드는 가운데 손가락은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레온은 커다란 덩굴 위에 올라타 창으로 덩굴을 찍고, 찍고 또 찍었다.
―가람덩굴나무에 10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가람덩굴나무에 9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가람덩굴나무에 15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가람덩굴나무에 150의…….
힘 스탯이 꽤나 높아져서 그런지 도끼가 아닌 창으로 나무를 베는데도 데미지가 제법 나왔다.
콰직. 쿵!
레온은 덩굴에서 내려와 잘라 낸 덩굴나무의 길이를 가늠해 보았다.
“내 장창의 길이가 2미터가량이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13미터 정도 잘랐네. 좋아 한번 들어 볼까?”
레온은 창을 내려놓고 자신의 몸통보다 조금 더 두꺼운 덩굴나무를 들어 올려 보았다.
“하압!!”
하지만 들어 올린다는 생각뿐, 나무는 1센티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123개의 계단 끝에 들어 올린다는 말이야? 다른 도구를 이용해야겠어.”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도구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램프를 들고 절벽에 다가가 절벽을 덮어 버린 얇은 덩굴을 만져 보았다.
“그래! 이 덩굴을 밧줄처럼 잡고 올라가면 되겠구나. 내가 왜 그 생각…….”
툭.
“응? 뭐야?”
굵기가 자신의 팔목만큼 굵어서 제법 튼튼할 줄 알았던 덩굴이 손으로 잡아당기자 쉽게 끊어졌다.
“뭐가 이래?”
텁. 툭. 툭. 툭!!
양손으로 덩굴을 잡고 힘을 주자 주변의 반경 5미터에 다다르는 덩굴들이 다 끊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레온은 자신의 몸 위로 떨어지는 덩굴을 쳐내면서 뒤로 물러났다.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에잇!”
퍼석, 탱그랑.
레온이 화가 나서 땅바닥에 떨어진 허약한 덩굴을 발로 차는데 무언가 묵직하게 발에 걸리더니 덩굴이 끊어지는 소리와는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응?”
레온이 램프를 들고 덩굴들 사이를 뒤져 보니 길이가 2미터가 조금 안 되는 지름 5센티 정도의 갈색 쇠막대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녹이 슬었나 싶어 램프를 바짝 대어 보니 금속은 원래부터 갈색 빛을 띠고 있었다.
“도구재료감별.”
[쇠막대:선철 합금강(황철석, 갈철석 혼합, 탄소비율 2.5%)
알 수 없는 합금 방법으로 금속의 경도가 강해지고 잘 깨어지지 않는다.]
혹시나 더 있나 싶어서 주변을 샅샅이 뒤져 보니 하나의 쇠막대기가 더 나왔다.
“아까 전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 어디서…혹시?”
레온은 깨달은 바가 있어 절벽에 다가가 덩굴나무를 붙잡고 힘을 주어 당겼다.
툭. 툭. 툭.
양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덩굴을 뜯어냈다.
어느새 집체만큼 쌓인 덩굴을 창으로 걷어 내며 그 속에서 쇠막대기를 찾아보았다.
탱, 탱그랑.
찾아낸 쇠막대기는 총 31개.
아마 덩굴에 쇠막대가 걸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사용할 만한 도구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한 것.
한쪽 끝이 뾰족한 2미터 길이의 쇠막대기를 모아 놓고 고민하던 레온은 불현듯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방법을 찾았어.”
레온은 3개를 제외한 쇠막대기를 모두 들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계단 위에 쇠막대기를 모두 가져다 놓은 레온은 다시 13미터 길이로 잘라 놓은 가람덩굴나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거의 돌처럼 단단한 가람덩굴나무를 이리저리 만져 보던 레온은 창을 들어 다시 덩굴을 자르기 시작했다.
“내가 받은 퀘스트는 어째서 다 노가다인거야? 좀 편한 퀘스트를 주면 어디가 덧나나?”
직경 50센티 정도의 덩굴을 30센티의 폭으로 10개를 잘라 내니 어느새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더니 새벽이 되었지만 애초부터 햇빛이 들지 않는 식물 군락 속에 있던 레온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좋아, 들고 가자. 끄응.”
한 번에 들 수 있는 무게의 한계는 나무토막 4개.
레온은 총 3번을 왕복해서 계단 위에 나무를 다 옮겼다.
“윽, 팔이야. 복원술사라는 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직업인지 내가 기필코 확인해 주겠어!”
텅.
10개의 나무토막을 계단 꼭대기에 다 옮긴 레온은 자리에 앉아 121번째 계단에 쇠막대기를 놓고 수리용으로 들고 다니는 망치를 꺼내 계단에 박아 넣었다.
탕. 탕. 탕. 탕.
2미터가량의 쇠막대기를 절반가량 계단에 박아 넣은 뒤에 밧줄을 꺼내서 쇠막대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나머지 끝은 자신의 허리에 메었다.
혹시라도 높은 계단에서 떨어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전선을 계단에 연결한 것이다.
“좋아, 밧줄의 길이가 20미터라 떨어지면 올라오는데 힘들긴 하겠지만 떨어져도 바로 죽지는 않는다. 작업을 시작하자.”
레온은 잘라온 나무토막의 끝부분에 2개의 쇠막대를 박아 넣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그가 하려는 작업은 바로 계단을 연장시키는 것이었다.
잘 쪼개지지 않는 가람덩굴나무토막에 쇠막대기를 박아 넣은 뒤 나머지 쇠막대의 끝부분을 계단에 박았다.
한 개를 완성하자 쇠막대로 연결된, 폭이 50센티의 나무 계단이 생겨났다.
처음에 지지대의 역할을 할 계단이기 때문에 거리는 1미터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123번째 계단으로부터 높이도 30센티 정도만 올라갔다.
높이를 더 높게 하면 좋겠지만 자신의 몸무게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을 우선시하여 만들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동굴까지 닿을 수 있겠어.”
자신의 실력에 만족한 레온은 다음 계단을 만들기 위해 망치를 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 5개의 계단을 연결하고 6개째 계단을 연결하는 시점이었다.
트드득.
계단에 박혀 있는 쇠막대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더는 안 되겠어. 이제 거리는 4미터!”
나무토막이 너무 무거운 데다가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기에는 이런 허술한 계단으로는 더 이상 무리일 것 같았다.
이제 동굴과의 거리는 4미터, 높이는 2미터 정도 부족했다.
“내 운을 믿는 수밖에.”
레온은 남아 있는 17개의 쇠막대 중에 5개를 아이템 창에 챙겨 넣은 뒤 양손에 쇠막대기를 한 개씩 들고 나무 계단의 끝에 섰다.
자신의 몸에 묶어 놓은 밧줄이 혹시 점프를 할 때 장애물에 걸려 자신의 몸을 붙잡지 않도록 미리 조정을 한 후 다시 동굴을 노려보았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일뿐…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마지막으로 계단 위에 놓여 있던 램프를 입에 물었다.
‘간다!’
“으으윽!”
그러고는 돌계단에서부터 도약을 한 뒤 그대로 몸을 날려 절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계단과 절벽 사이를 날아오른 레온은 조금이라도 높이, 더 멀리 가기 위해 공중에서 발을 구르며 안간힘을 썼지만 몸은 중력에 의해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지금이다!’
몸이 절벽에 다다르자 양손에 들고 있던 쇠막대를 절벽에 박았다.
콰득. 퍽.
“으윽…….”
―강한 충격을 받아 HP가 300 감소합니다.
―10초간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다행히 쇠막대를 절벽에 깊이 박아 떨어지지 않았다.
램프도 여전히 입에 물고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가 진정이 되자 동굴을 올려다보았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대략 4미터 정도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성공이다!’
레온은 아이템 창에서 쇠막대를 꺼내, 나란히 박아 넣은 쇠막대의 50센티 아래 막대 하나를 더 단단히 박아 넣고 한쪽 발을 디뎠다.
그러고는 가지고 있던 쇠막대를 지그재그로 박아 넣으며 절벽을 기어올랐다.
막대가 부족하면 제일 아래의 막대를 뽑아 다시 박아 넣으며 레온은 동굴 속으로 손을 뻗을 수가 있었다.
“휴∼”
동굴 안으로 들어온 레온은 허리에 묶어 놓았던 밧줄을 풀어 던져 버리고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물고 있던 램프를 동굴 쪽으로 비추었다.
“이건 또 뭐야?!”
레온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경악했다.
폭 3미터, 높이 3미터의 동굴에는 갈색 빛깔을 띠는 쇠막대가 땅, 옆벽, 천장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박혀 있어 동굴 속으로 향하는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놀라움도 잠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쇠막대의 장벽을 살펴보았다.
돌이라는 돌에는 조금의 틈도 없이 박혀 있는 쇠막대는 전부 다 중간 지점인 1.5미터 부근을 향하여 박혀 있었는데 그곳에는 주먹 하나가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도저히 사람은 통과할 수 없었다.
레온은 쇠막대 하나를 붙잡고 뽑아 보려 했지만 꽤나 깊숙이 박혀 있는데다가 쇠막대와 벽이 만나는 접점에 시멘트처럼 보이는 물질이 발라져 있어 더욱 뽑히지가 않았다.
“산 넘어 산이구나. 왜 아까 그 녀석들이 포기를 했는지 알 만해.”
그들 중 하나가 어떻게 계단을 건너 동굴로 들어왔다고 해도 이 광경을 보고 포기를 했을 것이다.
램프를 작은 틈에 비춰 보니 동굴의 깊이도 꽤나 깊어 보였다.
이 단단한 합금강 막대기를 다 부수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