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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무제 1권(4화)
제1장 포졸출도(捕卒出道)(4)
한참 동안 시선을 교환하던 이대룡이 마침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좋네. 육백 일치를 주지. 장군, 가져오시오.”
“음.”
묵직한 신음을 흘린 최렴이 품속에서 작은 목갑을 꺼냈다.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 한 크기의 목갑이었다.
“받게. 육백 일치의 해약일세.”
스윽.
이대룡이 내민 목갑을 받아 든 홍단야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목갑의 뚜껑을 열었다.
화악.
“음.”
뚜껑을 열자마자 올라오는 맑은 향기에 순간 어질해진 홍단야가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목갑 안을 바라봤다.
“음. 어째서 해약이 열 개뿐이냐.”
“이번에 새로 개발한 해약이네. 해약 하나가 예전에 복용하던 해약 두 개의 힘, 그러니까 육십 일 동안의 발작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네. 더불어 약간의 내공 증진과 몸을 보신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네.”
“그렇군.”
스윽.
꿀꺽.
듣는 둥 마는 둥 이대룡의 말을 흘린 홍단야가 그대로 작은 환단 형태의 해약을 삼켰다. 입속을 시작으로 몸속까지 화악 하고 시원해지는 맑은 기운에 홍단야가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하는 홍단야의 몸을 중심으로 은은한 적색 기운이 솟아났다.
얼마 지나자 않아 적색 기운을 갈무리한 홍단야가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언제 출발한 것인가.”
“지금 명으로 출발하겠다.”
“필요한 물건은?”
“명나라 돈으로 은 오백 냥의 가치를 가진 것.”
홍단야의 요구에 이대룡이 멈칫했다. 명나라 가치로 은 오백 냥이면 엄청난 액수였다. 이내 한숨을 내쉰 이대룡이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 펼친 뒤 탁자 위에 있는 붓을 들어 서찰 위에 글씨를 휙휙 휘갈기고 커다란 도장을 쾅 찍고는 홍단야를 향해 건네줬다.
“내 이름으로 명나라에서 벌이고 있는 작은 사업이 있는데 그곳의 이름으로 보증하는 은 오백 냥짜리 전표일세.”
“작은 사업?”
“거 있잖나……. 험험.”
홍단야의 질문에 이대룡이 최렴 장군을 의식하며 헛기침을 흘렸다. 그런 이대룡의 모습에 홍단야가 얼굴을 구겼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명나라로 도망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양반들이 있다고 하던데, 이대룡이 그 꼴인 모양인 듯했다. 최렴 또한 찔리는 것이 있는지 애써 못 들은 척하며 홍단야의 시선을 피했다.
‘위에 놈들이 이 모양인데 새 나라를 건국해 봤자 무엇을 하겠는가.’
쯧 하며 혀를 찬 홍단야가 목갑을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겠다.”
“자, 잘 가게.”
이대룡의 배웅을 받은 홍단야가 초소를 나가 자신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잦은 외출에 거처 또한 초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인적이 드문 산속에 있는 홍단야의 집은 초라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집에는 홍단야를 제외한 아무도 살지 않았다.
끼익.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 홍단야가 기다란 오라를 풀어 벽에 걸고는 땀, 비, 그리고 피에 절은 옷을 벗은 뒤 목갑과 책을 챙겨 방구석에 던져 놓고 다른 옷을 찾아 입었다. 보통 포졸들이 입는 옷과 별다를 바 없는 옷을 입은 홍단야가 오라를 허리춤에 빙빙 돌렸다.
이내 목갑과 책을 품속에 소중히 갈무리한 홍단야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명나라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짚신을 고쳐 신었다.
“마지막입니다, 대사님.”
휘잉.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맞춰 홍단야의 신형이 휙 사라졌다.
휘영청 밝게 떠오른 만월 아래, 흑룡강(黑龍江) 부근의 한 야산 위로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사와 거지였다.
“제길. 이런 밤에는 춘화루에서 춘앵이나 옆에 끼고 앉아 시나 읊으면서 화주나 한잔 걸치는 게 최곤데…….”
“청운, 도사는 금녀(禁女), 금욕(禁慾), 금주(禁酒)해야 한다.”
도사의 투정에 거지가 차갑게 답했다.
도사 주제에 술을 찾는 인영은 이제 막 이십 대 중반이었는데 이름이 청운인 듯했다. 낡게 헤어진 도복과 허리춤에 달린 낡은 검, 그리고 불쑥 튀어나온 태양혈은 그가 무림인, 그것도 꽤나 높은 경지의 무림인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거지라는 자식이 저렇게 생도(生道)를 몰라서야. 쯔즛.”
작게 혀를 찬 청운이 거칠게 몸을 돌리자 청운의 몸을 따라 낡은 도복이 펄럭이며 소매에 하나의 무늬가 보였다.
매화!
분명 매화였다.
현 무림에서 도복에 당당히 매화 무늬를 새길 수 있는 문파는 단 한 곳뿐이었다.
화산파!
검에 관해서는 무당파와 쌍벽을 이룬다는 전설적인 무문(武門)이자 도문(道門)인 화산파의 제자만이 도복에 매화 무늬를 새길 수 있다. 만약 화산파의 제자가 아닌 다른 자가 함부로 매화 무늬를 새겨 화산파를 사칭한다면 사지의 근맥이 잘려 평생을 화산파의 감옥에서 참회하며 살아야 했다.
매화 무늬는 화산의 전통이요, 신념이자 곧 정의였다.
그런 매화 무늬를 새기고도 저렇게 당당히 다닌다는 것은 저 불량한 도사가 정말 화산파의 제자라는 말이었다. 아니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미친놈이거나.
“무(武)를 탐하는 자에게 있어 욕(慾)은 독(毒)이다.”
“네가 소림의 중이냐, 그런 고리타분한 소리나 하게.”
정말 자신이 소림사의 중이라도 되는 양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 있던 거지가 청운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자신의 직업이 거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청운의 앞에 있는 이 거지의 옷은 청운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옷 여기저기로 맨살이 보이고 있었다. 거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매끄럽고 흰 맨살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허리춤으로 하나의 허리띠가 매어져 있는데 허리띠에 묶인 매듭의 수가 무려 여섯 개였다.
여섯 개!
자그마치 개방의 육결(六結) 제자라는 소리였다. 아니, 제자라고 부를 수도 없는 신분인 것이다.
개방에는 아무런 매듭이 없는, 가장 처음 개방에 입방한 거지들을 칭하는 백의개(白衣짵)부터 매듭이 여덟 개인 팔결의 방주까지 있는데, 개방의 장로가 매듭이 일곱 개였고 개방의 다음 방주로 책정되어 있는 후개와 수호신개의 매듭만이 여섯 개였다. 그 말은 곧 이 젊은 거지가 개방의 후개이거나 수호신개라는 뜻이었다.
“삼득, 저 앞에 누가 있는데?”
한바탕 불만을 토하던 청운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저 앞에 숲 너머의 공터에서 분명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일단 가자.”
탁.
말을 마친 삼득이 가볍게 땅을 박차자 신형이 쭈욱 하고 늘어나 순식간에 저 멀리서 나타났다. 청운 또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땅을 박차 삼득의 뒤를 따랐다.
“한 명이다.”
“일단 접근한다.”
뒤늦게 도착한 청운이 공터에 앉아 모닥불을 쬐고 있는 한 인영을 보고 삼득을 향해 전음을 보내자 삼득 또한 전음으로 답했다.
공터에 앉아 있는 인물은 서른이 채 넘어 보이지 않는, 삼득이나 청운과 비슷한 연배인 듯했다. 처음 보는 복장에 허리춤에는 붉은 줄을 칭칭 휘감고 있었는데, 무심한 눈으로 불을 바라보는 것이 여간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본래 성격이 서글서글한 청운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 인영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소형제, 저는 화산파의 제자인 청운이라 합니다. 제 동료와 제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만 합석해도 괜찮겠습니까?”
“…….”
인영이 자신의 말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목청을 가다듬은 청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형제,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잠시…….”
“앉게.”
“아, 감사합니다.”
뒤늦은 인영의 대답에 청운이 반색하며 모닥불 근처에 앉자 삼득 또한 인영을 향해 포권을 한 뒤 청운의 옆에 주저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삼득은 삼득대로 혼자만의 명상에 빠졌고, 본래 자리의 주인인 인영 또한 삼득과 마찬가지로 두 눈을 감고 가끔 손에 들린 술병을 입에 대고 홀짝일 뿐이었다. 자리가 이러니 청운에게는 가시 방석만 못한 자리가 되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청운이 인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소형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술 한 모금만 나눠 줄 수 없겠소? 내 보답은 나중에…….”
“청운!”
삼득이 인상을 찌푸리며 청운을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인영이 청운에게 술병을 건넨 후였다. 삼득이 청운을 쏘아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끄응.’
도사가 술이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비록 저 인영이 오늘 만나고 헤어질 인연이기는 하지만 청운의 저런 가벼운 행동은 충분히 문젯거리였다. 나중에 맹(盟)에 가면 반드시 따지겠다고 다짐한 삼득이 다시 명상에 잠기려는 순간, 조용히 있던 인영이 입을 열었다.
“혹시 명에서 가장 유명한 의원을 알고 있소?”
“가장 유명한 의원 말이오?”
삼득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술을 홀짝이며 웃음을 흘리던 청운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유명한 의원이라면……. 당연히 현 무림의 사수(四手)를 꼽을 수 있소이다.”
“사수?”
인영의 물음에 청운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이었다.
“그렇소. 신수(神手), 독수(毒手), 의수(醫手), 마수(魔手) 말이오. 뭐, 각자 별호는 따로 있지만 무림에서는 이들을 모두 합쳐 사수라 부르오.”
“그들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시오.”
“내 은인에게 기꺼이 알려 주리다.”
손에 들린 술병을 흔든 청운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신수는 호남성(湖南省)에 살고 있소이다. 별호가 별호이니만큼 신의 손이라 불리며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환자들이 몰리니 가 봤자 얼굴도 보기 힘들 거요. 그 다음으로는 독수가 있는데 이 영감탱이는 나도 잘 알고 있는 영감탱이로 사천(四川)의 당가(唐家)에서 가주(家主) 노릇 해먹는 고약한 영감탱이라오. 독이면 독, 의술이면 의술. 뭐 하나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성격이 발정난 암고양이 같으니 원……. 쯔즛.”
“청운!”
청운의 말이 지나침을 느꼈는지 삼득이 낮은 일갈을 터트렸다.
“제길, 알았다고. 하지만 그 영감이 나한테 한 걸 생각하면…….”
무엇을 생각하는지 뿌드득 이를 간 청운이 술을 한 모금 들이켠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지금 이곳, 흑룡강에서 제법 가까운 하북성(河北省)에 살고 있는 의수요. 의수는 하북팽가에 살고 있는 의원으로 의술로만 따지자면 신수에 비해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알고 있소. 다만 곰 같은 하북팽가의 식구들이 의수를 밖으로 보이는 걸 끔찍이도 싫어해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거요. 마지막으로는 마수가 있는데, 그는 거론하지 맙시다. 거론할 가치도 없는, 또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인물이니까.”
방금 전까지 실실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형형한 안광을 내뿜는 청운의 모습에 무심한 인영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떠올랐다. 물론 떠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청운은 물론 삼득 또한 눈치 채지 못했다.
“마수라는 자가 어떤 자요.”
인영의 말에 청운의 볼이 씰룩였다.
“본래 별호는 역천마수(逆天魔手)로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는 마인(魔人)으로 지독하게 변덕스러운 인물이라고 전해지오. 죽기 직전의 환자를 살려 주고 다시 죽여 버리는 미친 짓으로 단숨에 유명해진 미친놈이오.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양식의 옷과…….”
잠시 말을 멈춘 청운이 인영의 옷을 바라봤다. 이제 보니 인영의 옷 또한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양식의 옷이 아닌가.
‘에이, 설마.’
피식.
실없는 웃음을 흘린 청운이 다시 말을 이었다.
“허리춤에 붉은 줄을 칭칭 감고 다니고…….”
때마침 인영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붉은 줄이 청운의 눈에 확 하고 들어왔다.
“또 무면마수(無面魔手)라 불릴 정도로 무심한 표정에…….”
보통 사람이라면 분기탱천할 마수의 말에도 인영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모닥불을 바라볼 뿐이었다.
‘설마…….’
꿀꺽.
청운이 침을 삼키며 긴장된 눈빛으로 인영과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검을 바라봤다.
펄럭.
애꿎은 바람이 청운의 낡은 도복을 할퀴고 사라졌다.
“저…….”
“청운, 쓸데없는 짓 마라.”
인영을 향해 막 입을 열려던 청운이 삼득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움찔하며 삼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사라지기 오 년 전에 이십 대 후반의 모습이었다. 그가 나이를 먹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귓가로 윙윙 울리는 삼득의 전음에 청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아!”
확실히 나이를 먹지 않거나 반로환동의 기인이 아닌 이상에야 이 앞의 인영이 역천마수일 리는 없었다.
“흠흠. 아, 목마르다.”
어색한 청운의 말을 끝으로 공터가 다시 한 번 침묵에 휩싸였다.
삼득은 삼득대로 다시 명상에 빠지고, 인영 또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그시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운만이 비어 버린 술병을 보며 아쉽게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혹시.”
“응?”
“의수는 해독(解毒)에 능통하오?”
인영의 말에 청운이 답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과거 하북팽가의 가주가 그 무섭다는 칠보사(七步死)에 중독되었을 때 그 독을 해독시킨 사람이 바로 의수요. 뭐, 그 일을 계기로 하북팽가에 발을 묶인 거지만.”
“좋군.”
뭐가 좋은 것인지 멀뚱히 청운의 말을 경청하던 인영이 대뜸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정리했다.
“벌써 가시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말끝을 흐리는 청운을 힐끔 쳐다본 인영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기다리는 일행이 오는 것 같으니 난 이만 자리를 피해야지.”
갑작스레 바뀐 인영의 말투에 청운의 얼굴이 멍하게 풀렸다.
“그, 그게 무슨……?”
청운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영의 신형이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곧 쉬익 하고 사라졌다 저 멀리서 나타났다. 그것도 잠시, 곧 다시 사라졌다 다시 저 멀리서 나타나기를 반복하다 마침내는 청운과 삼득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 하하. 내가 귀신에 홀린 거냐? 거지야, 네가 한번 말해 봐라.”
“…….”
얼빠진 청운의 물음에 삼득이 침묵으로 답했다.
저 정도 경공이라니!
사실 삼득은 인영이 무공을 배웠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먼저 다가가지 않고 잠시 주저한 것이었다.
무공을 익힌 자가 아무런 기세가 없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였다.
기세를 갈무리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거나 기세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자.
경공으로 보건대 인영은 후자가 분명했다.
청운이 의심한 역천마수는 아니겠지만 그에 상회하는 실력을 가진 무인이 분명했다.
잠시 후, 숲 속에서 몇십 명의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검은 야행복으로 몸을 감춘 자들이었다. 하다못해 복면까지 써 철저히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검은 복면과 어깨에 수놓아진 새하얀 색의 ‘무(武)’라는 무늬였다.
비혈대(飛血隊)!
바로 무림맹(武林盟)의 첩보 조직이라 불리는 비혈대였다.
청운과 삼득마저도 비혈대의 출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르르.
삼득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비혈대 개개인 모두는 일류 자객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자들이다. 자신 또한 몇 장 안으로 들어와야 간신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비혈대는 기척을 숨기는 것에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인영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비혈대가 오기 전에 출현을 예고하고 먼저 떠나기까지 했다.
“킥. 재미있군, 재미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