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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무제 1권(5화)
제1장 포졸출도(捕卒出道)(5)
킥 하고 웃음을 흘린 청운이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매만졌다. 그런 청운의 모습에 삼득이 미미한 미소를 흘렸다. 청운의 저 모습이 좋다. 입이 가볍고 행동이 천하지만 청운은 무인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피가 끓는. 그리고 자신 또한 무인이다.
척!
“비혈 칠대. 모두 모였습니다.”
“……이번 임무와 단서의 행방은?”
한참을 침묵하던 삼득의 물음에 가장 선두의 비혈대원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조선에서 탐화견 이호라 불렸던 자로 얼마 전, 조선에서 건너온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이호는 하북에 잠적 중입니다. 그리고 두 분, 대주님과 부대주님께 내려진 이번 임무는 조선에 잠입하여 이호와 그 밖의 마인들에 대한 정보를 빼 오는 것입니다.”
“좋아. 가자.”
“예.”
나직이 답한 비혈대원이 재빨리 물러나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청운, 임무다.”
혼자 키득거리는 청운의 어깨를 툭 친 삼득이 인영이 앉아 있던 자리를 힐끔 보고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이어 청운 또한 걸음을 옮겼다.
광치검(狂痴劍) 청운.
냉혈철개(冷血鐵짵) 삼득.
한 명은 검에 미친 도인으로 다음 화산파의 문주로 주목을 받는 상태, 다른 한 명은 현 개방의 후개임과 동시에 수호신개로서 다음 방주로 주목을 받는 상태.
그들의 공통점은 진정한 무인이라는 것이었다.
‘재미있군.’
저 멀리 사라지는 청운과 삼득, 그리고 비혈대를 주시하던 인영이 무심한 시선을 거둬 하늘을 바라봤다. 거의 조준에 버금가는 강자였다. 한때 자신이 명나라에서 자객으로 활동했던 때, 그러니까 저들이 말한 역천마수라는 별호로 잠시 중원을 질타하던 때보다 한층 더 발전한 형태의 무(武)를 저들은 가지고 있었다.
저 정도 수준의 무인 다섯만 있어도 삼백 일 안에 지하 뇌옥의 죄수들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영, 아니 홍단야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씨익.
“하북팽가……. 의수라…….”
싸늘한 미소를 흘린 홍단야가 하북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허. 그놈의 달 한번 밝기도 하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뒤덮은 얼굴을 가진 노인이 구부정한 허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창밖의 달을 바라봤다. 얼굴과 허리와는 전혀 다른, 매끄러운 윤기를 흘리는 노인의 검은 머리칼이 노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오랜만에 청(靑)이에게 가 볼까.”
펄럭.
궁의 학사들이나 입을 법한 새하얀 장포를 펄럭인 노인이 그대로 창가에서 뛰어내렸다. 높이만 해도 삼 층이나 되었지만 노인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제약도 되지 못했다.
타닥.
스윽.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노인의 뒤로 세 개의 검은 인영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검은 인영의 정체는 하북팽가의 비밀 무력 단체인 혈호단(血虎團)이었다. 하북팽가의 존망 자체를 위협하지 않는 한 대외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그들이 겨우 늙은 노인 한 명을 호위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세 명이나.
“청아는 어디에 있는고?”
스윽.
“약왕전(藥王殿)에서 약재를 관리하고 계십니다.”
세 명의 인영 중 키가 가장 작은 인영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여 답했다. 그는 과거 육혈마도(六血魔刀)라 불리던 자로 그의 도가 한 번 허공을 가르면 여섯 개의 머리가 떨어져 피를 뿌린다는 쾌도의 달인이었다.
만약 혈호단의 정체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지금의 그를 봤다면 까무러칠 만한 광경이었다. 혈호단은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심지어 가주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가주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혈호단의 단주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고개를 숙이는 사람 또한 단 한 명, 혈호단의 단주뿐이었다.
그렇다고 이 노인이 혈호단의 단주는 더더욱 아니었다.
현재 혈호단의 단주는 현 하북팽가의 가주인 붕산패도(崩山敗刀) 팽목천의 무공 스승인 혈살도(血殺刀) 팽노악이 맡고 있다. 전대 가주의 배 다른 동생인 팽노악은 태어남과 동시에 혈호단의 단주직을 부여 받은 무인으로 범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수련을 거치며 마침내 혈호단의 단주가 된 자였다.
이미 나이가 이 갑자를 넘긴 그는 가내에서조차 괴물 취급을 받는 무인이었다.
그런 팽노악을 제외하고 현 하북팽가에서 혈호단의 존경을 받을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의수(醫手).
본래 별호는 선도의수(仙道醫手)로 평소 넓은 아량으로 가난한 사람들까지 아낌없이 치료를 하는 선도의수 북궁낙이 바로 이 노인의 정체였다.
과거, 하북팽가와 독왕보(毒王堡)와의 혈투 도중 팽목천이 독왕보의 보주(堡主)인 독혈마조(毒血魔爪) 마강보가 죽기 전에 펼친 암습에 당해 천하칠절극독(天下七絶極毒) 중의 하나인 칠보사(七步死)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비록 가장 밑바닥이기는 하지만 천하칠절극독은 천하칠절극독.
중후한 내공으로 간신히 독기를 억누르는 팽목천의 앞에 나타난 것은 우연찮게 근처를 지나가던 의수와 그의 손녀인 북궁청이었다.
평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답게 무려 일주일의 치료 끝에 칠보사를 완전히 해독시킨 의수를 하북팽가에서는 귀인 대접했고, 설상가상으로 과거 혈살도 팽노악이 임무 도중 북궁낙에게 목숨을 구원 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의수는 하북팽가에 둘도 없는 귀인이 되었다.
그것을 인연으로 하북팽가에서는 북궁낙에게 하북팽가에서 묵을 것을 권했고 마침 다 커 가는 손녀의 미래가 걱정이 있던 북궁낙 또한 흔쾌히 그 부탁을 받아들여 하북팽가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스물셋이 된 북궁낙의 손녀 북궁청은 의수의 의술과 더불어 의수의 비전절기라 할 수 있는 설풍잔영장법(雪豊殘影掌法)을 전수 받아 무공 또한 상당한 경지여서 오봉(五鳳) 중 의봉(醫鳳)으로 날로 그 위상을 떨치고 있었다.
사박사박.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풀의 감촉이 정겹다. 모처럼 북궁낙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손녀 때문인지도 몰랐다.
“흘흘.”
낮은 웃음을 흘린 북궁낙이 품속에서 화려하게 치장된 침통(針桶)을 꺼냈다. 화려한 황금색의 침통 표면에는 붉은색의 수실로 북궁청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얼마 전부터 침술을 배우기 시작해 자신의 침통이 갖고 싶다고 때를 쓰던 북궁청을 위해 북궁낙이 특별히 주문한, 북궁청을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흘흘.”
기뻐할 손녀의 생각에 다시 한 번 웃음을 흘린 북궁낙이 기척을 죽이고 짙은 약 냄새가 풍기는 약왕전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청아?”
툭.
촤르륵.
북궁낙의 손에 들려 있던 황금색 침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뚜껑이 열려 화려한 침들이 바닥을 흐트러뜨렸다.
“청아?”
데구루루 바닥을 구른 한 개의 침이 주인 없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푸른색 비단 옷에 막혀 움직임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북궁낙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청아!”
의봉(醫鳳)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북궁청.
그녀가 입고 있던 옷 한 벌만을 남겨 둔 채 사라졌다. 아주 감쪽같이.
의수의 손녀가 사라졌다! 그것도 하북팽가 안에서!
의수의 손녀를 납치한 범인은 이호라는 자인데 그놈이 지독한 색마더라!
의수의 손녀가 색마와 눈이 맞아 도망쳤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고작 이틀 만에 하북에서 의수의 손녀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이에 하북팽가의 가주인 팽목천은 분노했다.
자신의 집 안에서 귀인이 감쪽같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그 첫 번째였고, 그 사실을 안 다른 가문이나 문파 사람들이 하북팽가를 얕잡아 보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젊었을 때는 성난 호랑이, 노호도(怒虎刀)라는 별호로 용맹을 떨치던 그였다.
그런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에 하북팽가의 모든 무력 단체를 소집한 팽목천은 북궁청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오죽하면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하북의 또 다른 패자라 불리는 개방에게까지 손을 요청할 정도였다. 이에 개방의 방주인 만리신개(萬里神짵) 목철인은 취옥장(翠玉杖)의 권위를 빌어 전 무림의 거지들에게 북궁청의 행방을 찾도록 명했다.
무림 역사상 다시없을 이 초유의 수색 작전에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범인의 정체에서 범인이 며칠 만에 잡힐 것인가로 변했다.
그리고 하북 무림은 들끓게 하는 이 이야깃거리는 하북의 성도인 북경(北京)의 객잔에서도 당연 제일의 안줏거리였다.
“어떤 미친놈인지는 모르지만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았구먼. 쯧쯧.”
“그러게 말이야. 하북팽가를 어떻게 보고…….”
가벼운 차람의 두 무사가 짧게 혀를 차며 술잔을 비웠다.
“크으. 그런데 자네, 그거 알고 있나……?”
독한 화주(火酒)에 인상을 찌푸린 검은 무복의 검사가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 황색 무복의 동료에게 말했다. 갑자기 조심스러워진 동료의 모습에 황색 무복의 검사가 덩달아 고개를 숙여 동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뭘 말인가?”
“의봉을 납치한 그 범인 말이야, 그놈이 글쎄 망아산(忘兒山)에 있다더군.”
“그, 그게 사실인가?”
“쉿! 나도 하북팽가에서 일하는 친구를 통해서 간신히 얻은 정보라고. 내일 모레 팽가에서 망아산으로 무인들을 보낸다고 하더군.”
“그럼 우리도 가서 한몫 쥐어 보자고!”
술을 들이켜는 황색 무복 무인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건 검은 무복의 무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운 좋게 북궁청을 구출하는 일에 도움을 준다면 분명 하북팽가에서 보답이 있을 터였다. 하북팽가의 입장에서는 약간의 보답일 테지만 삼류 무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그 어떤 기연보다 값진 것일 게 분명했다.
이내 탐욕으로 물들었던 검은 무복 무인의 눈이 허무하게 바스러졌다. 그 대신 그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포기와 무기력이었다.
“멍청한 짓 하지 말게. 그 무인들 중에 누가 포함되어 있는지 알고 있나? 그 유명한 패룡(覇龍)은 물론이고 평소 의봉과 친분이 깊던 화봉(華鳳)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하네. 그뿐인가? 철혈천호단(鐵血天虎團)과 가주의 직속 호위인 십팔추혼도객(十八追魂刀客)까지 간다고 하네. 거기다 망아산을 중심으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개방에서 진을 치고 있다네.”
“허어. 염병. 이거 우리 같은 놈들은 근처만 가도 목이 날아가겠군.”
“제기랄, 술이나 마시자고.”
두 무인이 원망 어린 푸념을 내뱉으며 화주를 들이켰다.
그런 그들의 옆 탁자에는 기묘한 옷을 입고 허리춤에 붉은 줄을 칭칭 동여맨 사내가 음식을 먹고 있었다.
‘망아산이라…….’
탁.
두 무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내, 홍단야가 손에 들린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었던 음식의 값을 치른 홍단야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모습을 감췄다.
스팟!
골목으로 들어선 홍단야가 돌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검은 하늘을 나는 홍단야는 한 마리 야조(夜鳥)였다.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내는 특이한 신법의 홍단야가 어느 커다란 집의 담 위에 멈춰 서더니 안력을 돋워 주변을 스윽 훑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이 근처가 분명한데…….”
찾는 곳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미간을 찌푸린 홍단야가 다시 안력을 돋웠다.
홍단야가 찾는 곳은 바로 북경에 있는 개방 지부였다.
‘저기 있군.’
원하는 곳을 찾은 것인지 홍단야의 몸이 다시 사라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망아산으로 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일단 첫 번째는 탐화견 이호의 정체가 너무 많이 알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조선에서는 유명한 마인이라고는 하지만 이곳 명나라에서는 생소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것은 누군가 고의적으로 이호의 이름을 팔아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홍단야는 이호를 의심하지 않았다.
조선에도 명나라 못지않게 무수히 많은 색마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호가 색마로 유명해진 것은 그가 바로 남색(男色)을 즐기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호가 북궁청을 납치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기에는 그것 또한 석연치 않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고, 뭔가 이호가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아니, 만약 이호가 개입되어 있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현재 자신은 의수에게 도움을 요청할 입장이었다. 만약 의수의 손녀인 북궁청을 찾아 의수에게 데려다 준다면 백이면 백, 자신을 해독해 줄 것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