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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무제 1권(16화)
제3장 탐화견(貪花犬) 이호(1)
“청연 소저……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십팔추혼도객의 수좌인 추혼대력도(追魂大力刀) 팽무보가 그 커다란 덩치답게 큰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어서 팽 공자의 치료를!”
“의원! 의원을 어서 데려와라!”
팽무보가 커다란 목소리로 의원을 부르자 저 멀리서 중년의 의원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덥석.
“우리 보강이를 살리지 못하면 네놈이 죽을 줄 알거라!”
“히익. 아, 알겠습니다.”
의원의 멱살을 잡아챈 팽무보가 으르렁거리며 협박하자 가뜩이나 굳어 있던 의원이 숨을 집어삼키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팽 대협, 진정하세요!”
보다 못한 청연이 팽무보를 말렸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소이까!”
노호성을 터트린 팽무보가 의원을 피투성이가 된 팽보강의 옆에 집어던졌다. 팽무보의 손에서 빠져나온 의원이 황급히 팽보강의 몸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구차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하북에서는 ‘명의수(命醫手) 매종도’ 하면 의수 바로 아래로 쳐 주는 의원이었다.
으드득.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요!”
매종도에게서 시선을 돌린 팽무보가 이를 갈며 청연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의 뒤에서 나열하고 있는 수십의 무인들 또한 팽무보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조를 나눠 망아산을 수색하던 도중, 갑작스레 하늘을 수놓은 붉은 폭죽에 황급히 달려온 것이 방금 전이었다.
붉은 폭죽은 팽가의 중요 인물들만이 가지고 있는, 목숨이 위급할 때만 사용하는 위급 신호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폭죽이 터진 지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자신을 비롯한 나머지 팽가의 무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어깨 위가 허전하게 비어 있는 시신이 무인들을 반길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동굴 속으로 몸을 날리는 풍객을 쫓아 동굴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짙은 안개가 동굴 입구를 가득 메웠다. 경험 많은 무인인 팽무보는 단숨에 짙은 안개가 풍객이 시전한 진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팽가의 무인들 중에서 진법에 대해 박식한 이가 나서서 진법을 파괴하고자 했지만 무리였다.
그렇게 팽풍걸의 시신으로 보이는 시신을 수습하고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기를 한참이 지난 후에야 청연과 팽보강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팽보강은 피투성이가 되어 청연의 등에 업힌 채로!
가뜩이나 폭급한 성격으로 유명한 팽무보가 흥분하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후욱, 후욱.”
산불 맞은 멧돼지처럼 숨을 몰아쉰 팽무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서 설명해 보시오. 만약 설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청연 소저라고 해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요!”
팽무보의 눈 위로 살기가 번뜩였다. 나머지 무인들 또한 살기를 일으키며 청연을 주시했다. 무기를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십의 살기를 정면으로 받는 청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진심이야!’
아무리 세가의 소공자가 다쳤다고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심한 처사였다.
더군다나 자신은 오봉의 일인이자 화산파의 일대 제자였다.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청연의 눈초리가 절로 매서워졌다.
“팽가에서는 은인을 이렇게 대접하나요?”
“뭐, 뭐요?”
“팽 공자를 업고 나온 것은 바로 저예요.”
도도한 자태로 말하는 청연의 모습에 팽무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년이 겁대가리 없이!’
상대가 아무리 화봉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은 무림의 대선배였다. 그전에 하북팽가의 장로 중 한 명이었다.
“감히……!”
파밧.
팽무보가 막 분노를 토하려는 순간, 안개 너머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남궁진! 북궁 소저까지!”
바로 남궁진과 북궁청이었다.
순식간에 무리로 다가온 남궁진이 북궁청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의원! 의원을 데리고 와! 어서 의원을 데리고 오란 말이다!”
서릿발 같은 남궁진의 기세에 팽무보가 놀람을 접어 두고 재빨리 무인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어서 남은 의원을 데려와라! 그리고 너는 당장 본가로 달려가 의수 어르신께 이 사실을 알려라!”
팽무보의 명령을 받은 무인들이 재빨리 발을 놀려 망아곡 밖으로 사라졌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남궁진에게 좋은 감정은 없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후욱, 후욱. 그것이…….”
숨을 고르던 남궁진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죽은 듯이 누워 매종도의 치료에 몸을 맡기고 있던 팽보강이 입을 열었다.
“혀, 형님은 저 안에 계십니다!”
“뭣?!”
팽무보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형님은 저 안에서 풍객과 힘을 합쳐 이호라는 색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팽보강의 말에 팽무보는 물론 나머지 사람들 또한 눈을 부릅떴다. 그중 가장 놀란 것은 남궁진과 청연이었다.
“그것이…….”
“제발 가만히 있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으음.’
막 입을 열려던 남궁진이 팽보강의 전음에 신음을 삼키며 말을 멈췄다. 청연 또한 팽보강의 전음을 들었는지 미간을 구기며 막 열려던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자 팽무보의 눈이 저절로 팽보강에게 향했다.
“형님이 저 안에서 북궁 소저의 흔적을 발견하셨지만 무공을 잃은 몸으로 색마를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청연 소저, 그리고 진 형님과 풍객이 합공을 해야 간신히 동수를 이룰 정도로 색마는 강했습니다. 저는 전투 도중 부상을 입어 청연 소저와 함께 대피했고, 진 형님은 남아 있다 북궁 소저를 데리고 탈출한 것입니다.”
“푸, 풍걸이는?”
“형님은 끝까지 남아 저희를 지키겠다고…….”
“허어.”
팽보강이 눈물을 흘리며 말끝을 흐리자 팽무보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무공도 잃은 놈이 무슨 재주로 색마를 막겠다고……. 이놈 풍걸아, 이놈 풍걸아! 이 멍청한 놈아!”
팽무보의 목소리가 물기로 젖어들었다.
“그럼 대체 이 시체는 누구지?”
십팔추혼도객 중 한 명이 비단과 함께 곱게 포개어 있는 시체를 보며 의문을 흘렸다.
저 동굴 속에서 색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이 팽풍걸이라면 이 시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주춤거리며 눈치를 보던 팽보강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놈은 색마와 한패였던 놈으로 형님의 행세를 했던 놈입니다.”
“뭐라?!”
“이런 육시할 놈을 보았나!”
팽보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팽가 무인들이 흥분을 하며 저마다 욕을 내뱉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은 팽무보가 허리춤에서 커다란 대도를 꺼내 들었다. 추혼대력도라는 그의 명호를 만들어 준 커다란 대도였다.
“감히 팽가를 욕보이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더냐!”
콰우우.
팽무보의 도를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 빌어먹을 놈!”
콰드득.
아무런 초식도 없는, 그저 단순한 내려치기에 시체의 가슴이 움푹 함몰되었다.
퍼억. 퍽. 퍼억.
들썩들썩.
아예 시체를 으깨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도의 날이 아닌 도면으로 시체를 마구 내려치는 팽무보의 눈빛에는 광기마저 서려 있었다.
콰드득.
시체의 오른쪽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이는 것을 끝으로 팽무보의 움직임이 멈췄다.
“허억, 허억.”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한참 동안 시체를 노려보던 팽무보가 시체에 퉤 하고 침을 뱉고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무인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진을 뚫고 들어가 풍걸이를 돕는다!”
“우와아아!”
팽가의 무인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고 전의를 불태웠다.
“패, 팽 어르신.”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남궁진이 그들을 만류하기 위해 팽무보를 향해 입을 열었다.
홍단야가 동굴의 입구에 펼쳐 놓은 진법은 척 봐도 방금 전까지 망아곡을 메우고 있던 사무칠절진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 진법으로 보였다. 팽가의 무인들과 청연, 그리고 자신이 뚫기에는 무리가 있는 진법이었다.
“모두 전열을 정비해라!”
“우와아아!”
남궁진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듣고도 무시하는 것인지 팽무보가 다시 한 번 무인들을 다독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어르신, 지금 들어가시는 것은 무리입니다.”
“무리는 무슨! 지금 저 안에서 풍걸이가 죽어 가고 있다! 비켜라!”
“어르신!”
계속되는 남궁진의 만류에 팽무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에잇. 저리 비키…….”
콰―아아아앙!
콰르르릉!
팽무보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동굴 속에서 번뜩이는 혈광과 함께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거대한지 망아산에 숨어 있던 동물들이 일제히 날뛸 정도였다.
후오오오.
동굴 속에서 터진 폭음에 동굴 입구 부근의 공기가 일제히 동굴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순간, 예리하게 벼려진 청연의 감각에 무언가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피, 피해욧!”
콰우우우우우.
화르르륵.
청연의 말과 동시에 화룡(火龍)의 숨결과도 같은 화염이 동굴 깊숙한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치이익.
화르륵.
동굴 입구 부근의 바위가 흐물거리며 녹았고 나무들은 새까맣게 재가 되었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저, 저게!”
“저럴 수가!”
청연의 경고와 동시에 몸을 날려 피한 팽가의 무인들이 녹아내리는 바위를 보며 경악했다. 남궁진과 청연 또한 눈앞에 펼쳐진 화염지옥에 할 말을 잃었다.
‘어서 나오게!’
바위마저 녹아내리는 폭염 속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남궁진의 마음에 걱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화염지옥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누군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우우웅.
동굴 속에서 한차례 더운 공기가 터질 듯 밀려 나왔다.
이글거리는 불꽃이 밝히는 동굴 속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하게 치장된 도를 늘어트린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인영은 바로 홍단야였다.
치익.
홍단야의 발이 채 꺼지지 않은 불꽃을 밟을 때마다 불꽃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꺼졌다.
저벅저벅.
우르릉.
홍단야의 걸음에 맞춰 동굴이 불길한 울림을 터트렸다.
척.
쩌적.
홍단야가 동굴을 벗어나 몇 걸음 나서자 동굴의 윗부분에 검은 금이 파도처럼 번졌다.
콰르르릉.
콰가강!
동굴의 입구가 무너지며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피, 피해라!”
동굴이 무너지며 튕기는 돌덩이에 팽가의 무인들이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쿠구궁.
투둑.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