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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무제 1권(19화)
제3장 탐화견(貪花犬) 이호(4)
“나머지 죄수들의 위치는…… 염라대왕에게 물어봐라!”
파밧.
쏴아아아.
이호의 몸이 뒤로 튕김과 동시에 소매에서 무수히 많은 침이 쏟아져 내렸다. 수백, 수천 개의 침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으며 홍단야, 한 명을 향해 쏘아졌다.
“으하하하! 애송이 놈, 죽어라!”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자리를 지키는 홍단야를 향해 한바탕 앙천광소를 터트린 이호가 다시 몸을 날리려는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뻥 뚫린 이호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푸욱!
“크억?”
난데없이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이호의 몸이 곤두박질쳤다.
“으?”
“팽가를 건드린 것을 지옥에서 후회하거라!”
콰드득.
원인 모를 통증에 이호가 고개를 내려 가슴을 보는 순간, 귓가로 섬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호의 고개가 힘겹게 돌아갔다.
‘팽……목천!’
스걱.
섬뜩한 귀화(鬼火)를 내뿜는 팽목천의 안광이 번뜩인다고 느껴지는 순간,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암기에도 홍단야의 얼굴에는 무표정했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암기들을 보건대, 하나하나 극독이 발라져 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흐읍.”
주변의 공기가 홍단야를 중심으로 빨려들어 가는 순간, 홍단야의 입에서 커다란 일갈이 터져 나왔다.
“파(破)!”
퍼버버벙!
한바탕 몰아친 거친 바람에 무서운 속도로 쏘아지던 암기들이 단숨에 바람에 휘말려 허공으로 사라졌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홍단야가 고개를 돌려 이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한 손에 이호의 머리를 든 팽목천이 홍단야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똑똑…….
이호의 목과 팽목천의 도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서로 어우러져 묘한 소리를 냈다.
“이것으로 끝……인가?”
“예.”
홍단야에게서 시선을 거둔 팽목천이 분노 가득한 눈으로 이호의 머리를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푸욱 한숨을 내쉰 팽목천이 이호의 머리를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시체는 알아서 처리하겠네.”
“예.”
짧게 고개를 끄덕인 홍단야가 이호의 머리를 챙겼다.
“잠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쉬식.
이호의 머리를 든 홍단야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철마표국은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에 그 총타를 두고 전 중원에 총 아홉 개의 분타를 둔 커다란 표국이었다. 그중 가장 강한 세(勢)를 자랑하는 분타는 하북에 위치한 북경 분타로 국주인 탈혼표(奪魂飇) 임준엽을 비롯해 수많은 표사들과 쟁자수들을 중심으로 총타 다음으로 의뢰가 많은 곳이었다.
스윽.
임준엽은 오늘도 밀려드는 일로 인해 한시도 쉬지 못한 채 서류에 묻혀 살아야 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임준엽이 머리도 식힐 겸 창문을 열고 밤바람을 만끽했다.
이제 막 사십 대 중반의 임준엽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숙한 모습이었다.
“후우. 벌써 밤이구나.”
하늘에 떠오른 만월을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임준엽이 다시 서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휘이잉.
펄럭펄럭.
“어이쿠.”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에 서류들이 펄럭이자 임준엽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휴우. 이것 참…….”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워 들고 막 자리에 앉으려던 임준엽의 신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모를 한 명의 인영 때문이었다. 임준엽의 안색이 대번 창백하게 변했다. 절정까지는 아니어도 탈혼표라는 별호와 함께 일류 고수 축에 낀다고 알려진 임준엽이었다. 그런 그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음직임이라니!
임준엽이 막 비상용 종과 연결된 줄을 당기려는 순간, 어둠 속에 있던 인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멈춰라, 개천(開天) 오호.”
“……!”
임준엽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그것도 잠시, 임준엽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세간에 알려진 임준엽의 무공 수위보다 몇 배는 거대한 위압감이었다.
“정체가 뭐냐.”
나긋했던 목소리 또한 싸늘하게 바뀌었다.
스윽.
임준엽의 물음에 인영이 앞으로 움직였다. 동시에 임준엽이 움찔하며 황급히 자세를 취했다.
주륵.
임준엽의 등을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금 전 인영이 자신을 부른 호칭은 이곳, 중원에서는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개천(開天)이란 조선 권력의 정점에 선 자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육시킨 다섯 명의 무인들로, 한 명 한 명이 막강한 살인 기계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이들이다.
임준엽은 그 개천의 마지막 다섯 명째 무인으로 지금은 정도전의 명령을 받아 삼 년 전부터 명나라에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할짝.
끓어오르는 긴장감에 임준엽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임준엽이 개천으로 활동하며 사용한 무공은 천강파심각(天强破心脚)으로 다섯 치 깊이의 철판을 단숨에 우그러트릴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무공이었다.
스윽.
임준엽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슬쩍 뒤꿈치를 들어 올리자 어둠 속에 있던 인영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남자?’
이제 막 이십 대 중반의 모습으로 준수한 얼굴의 사내였는데 그 얼굴이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입고 있는 옷은 너무나 친숙한 조선 포졸들의 복장이었다. 인영의 몸을 훑어 내리던 임준엽의 시선이 인영의 허리춤에 동여매여 있는 붉은 오라에 꽂혔다.
동시에 임준엽의 머릿속으로 정도전에게 내려온 특급 기밀 사항이 떠올랐다.
“어억!”
임준엽의 눈이 더 부릅떠졌다.
“개천 삼호!”
“…….”
임준엽의 외침에 인영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나섰다.
무표정한 얼굴의 인영, 개천 삼호와는 달리 임준엽의 눈은 찢어질 듯 커져 있었다.
개천 오호인 임준엽 또한 개천 사호만 몇 번 봤을 뿐, 그 이상의 개천 무인들은 보지 못했다. 번호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강함이 높아지는데 개천 사호만 하더라도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강했다. 그런데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개천 삼호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인영이 정말 개천 삼호인지는 모르지만, 현재 개천 삼호는 지하 뇌옥에서 탈출한 죄수들을 잡기 위해 명나라에 있으니 자신을 개천 삼호라 밝힌 이가 나타난다면 전폭적인 지원을 하라는 정도전의 명령이 있었다. 그때에 맞춰 자신을 개천 삼호라 밝힌 이가 나타났으니 분명 인영이 개천 삼호일 것이다.
“개천 오호, 맞나.”
“마, 맞소이다.”
임준엽이 고개를 끄덕이자 개천 삼호가 말을 이었다.
“암호를 대라.”
잠시 멈칫한 임준엽이 입을 열었다.
“하, 하늘이 열리고 해가 뜨는 동쪽 하늘에서 다섯 마리 푸른 매가 내려오면…….”
“……거대한 황룡 비명을 토하고 피를 뿜을 것이니.”
“푸른 매가 황룡의 목줄기에 발톱을 박아 넣고.”
“날카로운 부리로 황룡의 눈을 파먹을지니…….”
잠시간의 침묵.
임준엽과 개천 삼호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마침내 푸른 매가 대륙을 질타하리라.”
“마침내 푸른 매가 대륙을 질타하리라.”
두 명이 동시에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끝으로 방 안이 기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해가 뜨는 동쪽 하늘이란 조국을 뜻하는 것이고, 다섯 마리 푸른 매란 다섯 명의 개천을 말하는 것이다. 거대한 황룡은 명나라를 말하는 것이니, 결론적으로는 조선이 명나라를 집어삼킨다는 뜻의 암호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임준엽을 바라보던 개천 삼호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임준엽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탐화견 이호의 머리다.”
“허억!”
임준엽이 놀라 숨을 삼켰다.
탐화견 이호라면 지하 뇌옥에서 탈옥한 아홉 명의 죄수들 중 한 명이 아닌가.
“정도전에게 전해라.”
“아, 알겠습니다.”
비릿한 혈향이 풍기는 머리를 받아 든 임준엽이 이호의 머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고개를 돌려 개천 삼호를 바라봤다.
“저기…….”
“뭐냐.”
“색접(色蝶) 양소희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이어지는 임준엽의 말에 막 창문을 열던 개천 삼호의 몸이 멈췄다.
“말해라.”
“현재 양소희는 섬서성(陝西省) 성도인 서안(西安)에 있다고 합니다.”
“소재는 파악했나.”
“죄송합니다만 그것까지는…….”
“음.”
개천 삼호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의 머리를 건네주러 왔을 뿐인데 뜻밖의 수확을 건진 것이다. 자세한 소재는 모르지만 서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성과였다. 다행히 섬서는 이곳 하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알겠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지.”
쉬식.
가벼운 인사와 함께 개천 삼호의 신형이 철마표국을 누볐다.
타닷.
철마표국을 빠져나온 개천 삼호가 하북팽가가 있는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음 날 아침, 홍단야는 자신을 깨우러 온 남궁진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서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전날 무리한 주술 사용으로 상당히 많은 심력을 소진했기 때문이었다. 팽가에서 마련한 검은 무복 속에 오라를 빙빙 두른 홍단야가 남궁진을 따라 북궁낙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어제 일은 미안했네.”
앞서 걷던 남궁진이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에 이끌려서 실수를 했네.”
“…….”
홍단야가 침묵하자 남궁진이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화가 많이 났다는 것쯤은 알고 있네. 하지만 너무 보강이를 몰아붙이지 말아 주게. 그 누구보다 힘든 사람이 보강이일 테니까.”
“알고 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어투에 남궁진이 다시 한 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제 의수 어르신께 해독을 받고 어디로 갈 셈인가.”
남궁진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인 홍단야가 답했다.
“섬서로 간다.”
“섬서? 그곳은 왜?”
남궁진이 걸음을 멈춘 채 물었다.
개방의 정보에 의하면 지금 섬서의 사정은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현재 섬서는 화산파(華山派)와 흑룡회(黑龍會)의 싸움으로 지옥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곳으로 변했네. 더군다나 무림맹의 맹주(盟主)를 맡고 계시는, 삼존(三尊)의 일인이신 매화검존(梅花劍尊) 어른신께서 무림맹의 일로 직접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어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네.”
“무림맹주는 싸움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건가?”
홍단야의 물음에 남궁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런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흑룡회는 현 군림성(君臨城)의 주축을 이루는 마도팔세(魔道八勢) 중의 한 곳일세. 만약 검존 어르신께서 직접적으로 싸움에 참여하시면 더 이상 화산파와 흑룡회의 싸움이 아니라 정파와 사파의 싸움이 되는 것이란 말일세. 더군다나 현 흑룡회주(黑龍會主) 또한 군림성에 소속된 몸으로 싸움에 참여하길 거부하고 있기에 서로 간의 골은 더 깊어만 가는 것이지.”
“웃기는군.”
가벼운 조소를 흘린 홍단야가 막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남궁진을 향해 물었다.
“삼존이 뭐냐.”
홍단야의 말에 남궁진의 얼굴이 멍하게 풀렸다.
“자네, 지난 오 년 동안 어디 세외에라도 나가 있었나?”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삼존이 뭔지나 말해라.”
미간을 찌푸리는 홍단야의 모습에 남궁진이 이크 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늦었으니 걸으면서 이야기함세.”
남궁진이 다급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자 홍단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남궁진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