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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가족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눈을 감은 채로 차디찬 바닥에 누워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도 그의 아내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바닥을 뒹굴며 쓸쓸함을 더하는 빈 약병을 보는 순간 비로소 참고 있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들어갈래요! 놔 줘요!”
“…….”
한편 명훈과 영진은 닫힌 공장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장의 자녀들 앞을 막으며 그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장례는 소박하게 치러졌다.
애초 3일장을 제대로 치를 돈조차 남아 있지 않던 형편이었지만 그동안 사장이 맺어 둔 많은 인연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빛을 밝혀 주었다.
적이 많은 세계에서 살던 사장이었지만 그가 살아온 시간을 대변해 주듯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죽기 전에 도와줄 것이지, 얼어 죽을 놈들.”
구석에서 소주병을 기울이던 최씨의 중얼거림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들로선 사장이 가는 길이나마 이 정도로 꾸며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화장한 사장의 유골을 시립 납골당에 안치한 뒤, 영진은 명훈과 함께 돌아온 텅 빈 공장을 다시금 돌아보며 부어 있던 눈을 손등으로 슥슥 문질러 남아 있던 눈물을 닦아 냈다.
수많은 추억이 어린 곳이다. 철이 들기 전부터 자신이 속해 있던 곳.
영진은 이내 두 눈을 감으며 턱을 치켜 올렸다.
“……복수해 드릴게요. 기필코, 꼭 성공해서 복수해 드릴게요.”
곁에 서 있던 명훈이 그의 어깨를 두드린 뒤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자.”
사장이 명훈에게 준 차는 공장에서 쓰던 연식이 좀 된 1톤 트럭. 여전히 그 짐칸엔 구형 캡슐 상자가 실려 있었다.
“고맙습니다.”
“울지 마. 지금은 많이 힘들 테니까 푹 쉬고, 내일 센터 가 봐. 너 실업 연보 제대로 부었지?”
명훈이 말하는 센터란 실업자 구제 센터. 영진은 실업 연금 보험을 들어 그동안 꾸준히 부어 왔기에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라 했다.
“월급이 밀리면서부터는 못 부었어요.”
“그래도 가 봐. 정 안 되면 원금이라도 찾을 수 있겠지.”
다시금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명훈이었다. 가족이 없는 영진은 비록 피가 섞인 혈육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명훈을 친형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공장 식구들 전부 가족 같은 사람들이지만 특히 명훈을 믿고 따랐던 영진이었다.
명훈은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영진을 향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너 이거 쓸 거지? 안 팔고.”
“예. 제가 써 볼까 하고요.”
‘팔 수도 없을 것 같지만.’이라는 말은 속으로만 중얼거린 영진이었고 명훈은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구형 캡슐용 개조 부품 몇 개 있는데 필요하면 줄까?”
명훈이 말하는 개조 부품이라는 것은 예전 한창 소파 내장형 캡슐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 불법적으로 개조하던 몇몇 이들이 만든 것들로, 약간의 손재주만 있다면 최대 110도 정도밖에 눕힐 수 없는 등받이를 150도 가까이까지 펼 수 있었다.
완전히 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통의 좌식보다는 많이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이었고, 다만 그런 식으로 인위적인 분해나 변형을 가하게 되면 정식 A/S가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영진은 몇몇 요청한 고객들의 캡슐을 직접 개조해 준 적도 있었기에 그것들을 받기로 했다. 새삼 A/S를 맡길 만한 기종도 아니었고, 어지간하면 개조를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설치하면 뭘 할 건데? 그냥 인터넷용?”
“글쎄요. 없을 땐 그렇게 갖고 싶더니 막상 생기고 나니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네요. 게임이라도 해야 하나.”
“배부른 소리.”
명훈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영진 역시 퉁퉁 부은 눈으로 같은 웃음을 지었다. 게임이라는 건 부모 밑에서 먹고 자는 여유로운 학생들이나 벌어 놓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
간혹 게임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재미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직업이 되면 그 재미가 덜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영진의 생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군.”
문득 생각났다는 듯 왼손만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을 품으로 넣어 속주머니를 뒤적이던 명훈이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내 영진에게 건넸다.
“사장님 안주머니에 있던 건데 아무도 갖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갖고 있던 거야. 관심 있으면 봐라.”
“뭔데요?”
갸웃하며 봉투를 받아 든 영진은 조심스레 안에 든 것을 꺼냈다.
N.E.T 게임 일주일 무료 쿠폰.
아마도 판매하는 캡슐에 서비스 형태로 한 장씩 끼워 주는 그런 쿠폰인 것 같았다.
“들어 본 적 있어?”
“글쎄요.”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름만 보고선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영진은 종종 심심할 적에만 캡슐 테스트용 1인 게임이나 교육 소프트웨어 위주로 해 보았을 뿐 다중 접속 게임 쪽은 해 본 일이 없었기에 그에 관해서는 잘 몰랐다.
“많기도 하네. 이건 못 파나요?”
같은 종류의 쿠폰 수십 장을 넘겨보던 영진의 물음에 운전하던 명훈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알아봤는데, 판매용 쿠폰이랑 홍보용 무료쿠폰이 인증 코드가 다르대나 어쨌대나 해서 추적이 된다는 것 같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걸리면 쇠고랑이라는 것 같더라. 얼마 하지도 않을 것 같고.”
“음…….”
사장은 왜 이걸 안주머니에 지니고 있었을까. 되팔지도 못하는 물건을.
‘혹시 이 쿠폰으로 재기를 노렸던 걸까.’
고작 일주일 게임 쿠폰을 끼워 주는 정도로 대기업의 물량공세와 할인공세를 이겨 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필요하면 너 가져. 내가 쓸 것도 아니니까.”
명훈의 말에 봉투를 돌려주려던 영진은 다시 한 번 쿠폰 겉면의 이름을 확인했다.
N.E.T…….
‘어디서 들어 봤더라. 엔이티……. 들어 보긴 한 것 같은데.’
“휴우. 개조는 오랜만이라 꽤 애먹었네. 수고했다, 영진아.”
“뭘요. 제가 쓸 건데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죠.”
혼자서 했다면 굉장히 오래 걸릴 일을 명훈의 도움으로 몇 시간 만에 캡슐의 설치와 개조를 끝낼 수 있었다.
명훈은 웃으며 답하는 영진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내일 꼭 센터에 가 보라고 다시금 강조하고 돌아갔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비좁은 방이 더 좁아져 버렸네.”
잠만 자던 방이라 변변한 가구 하나 없었다. 있는 거라곤 공장 사무실에서 쓰다 낡아 버리려던 것을 들고 온 방구석의 꼬마 냉장고와 그 옆의 작은 책상 겸 탁자 정도였다.
탁자 아래엔 이불과 베개가 있었고, 그 위엔 영진이 하도 부지런한 탓에 한 번도 그를 깨워 보지 못한 알람시계와 낡은 연습장, 몇 개의 필기도구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무료하거나 혹은 외로울 때면 연습장을 펼쳐 끼적이거나 가끔은 기억나지 않는 부모의 얼굴을 그려 보곤 했다.
그의 기억 속 가장 어렸을 적이라 생각되는 장면은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배식을 받던 모습이었다.
그날 메뉴로는 나름 귀한 반찬으로 기억되는 동그랑땡이 나왔다. 줄을 서서 차례로 배식을 받던 중 한 아이가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뒤에 있던 아이 바로 앞에서 반찬이 끊기고 말았다.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아이는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나.”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우는 아이를 달래 주며 자신의 몫을 덜어 주었다는 것뿐. 그 아이의 이름도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중한 추억이었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미 이 나라엔 고아들이 넘쳐나는 중이니까.
2070년대에 찾아온 석유자원의 고갈은 전 세계에 있어 많은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 왔던 나라들이 있던 반면, 과거에 얽매여 도태의 길로 들어선 국가들 또한 존재했다.
차량이나 비행기 같은 탈 것들에서부터 탱크와 같은 무력 장비들 역시 기름으로 움직이는 것들이 대다수였고, 한창 붐이 일어났던 전기 에너지 역시 대부분 화력발전소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화력발전소는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것이었기에 대체가 불가피했다. 한때나마 바다의 보석이라던 메탄 하이드레이트와 같은 자원들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완벽한 해결책은 되어 주지 못했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거나 사라져 갔다. 한때 오일머니로 세계를 휘어잡던 아랍의 몇몇 국가들 역시 일부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일부는 미리 벌어 둔 자금으로 더 큰 돈을 벌어 가며 국력을 유지했다.
인적자원, 지식경제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게 대두되기 시작하고, 이공계를 천시하는 나라는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일찍 정신을 차려 다행인 케이스였다.
오랜 시간 공들여 얻은 통일이라는 성과는 북쪽 땅의 엄청난 지하자원과 더불어 남북의 지식 인프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세계 최초로 성공한 상용 핵융합 발전 기술 역시 대한민국이 얻어 낸 쾌거 중 하나.
2천 년대 초기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늦게 뛰어들었던 기술이지만 한국 기술자들과 연구진의 뛰어난 능력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한 노력이 전 세계가 우러를 만한 결과를 만든 것이었다.
관련 산업의 호황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세계적으로 거둬들이는 기술 도입과 전수에 대한 로열티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이공계를 천시하던 사회 풍토가 바뀌었다는 것 역시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호령하게 해 준 큰 이유였다.
더 이상 기술직이 천시 받지 않는 나라. 연구직이 무시 받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선 수많은 신기술과 시대를 앞지르는 인물들이 나타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한때 인재와 기술의 유출을 걱정하던 나라는 이제 각국의 인재들이 꿈을 품고 찾아오는 국가로 도약했다.
나라의 위상이 높아 가고, 나라의 자본이 커져 가는 와중 수많은 재벌들 역시 생겨나고 사라지며 그들의 세계를 구축해 갔다.
새로운 귀족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