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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중산층이라는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그 비율이 극히 낮았다.
언젠가부터 생겨난 두터운 장벽!
그것은 자본과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어 점점 두텁고 높게 쌓여져 갔다.
‘인생 역전’이라는 것은 일방통행. 그쪽에서 몰락해 이쪽으로 건너올 수는 있지만, 이쪽에서 그쪽으로 건너가는 일은 그야말로 백번을 다시 태어나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3억 인구 중 나라를 이끌고 움직이는 이들은 2천만의 상류 인구들. 중산층이라고 해 봐야 5백만 가량에 불과했고 그 역시 점차 줄어 가고 있었다.
국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2억 8천만의 노동인구를 상류층이 먹여 살리는 구조였기에 그에 속한 노동인구는 사회적 불평등이나 법조항의 차별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갖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노동계급은 열심히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애매한 나이로 직장을 잃게 되면 들어 놓은 보험이 없는 이상은 당장의 생계가 어려워진다.
가족의 해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책임질 수 없이 낳은 아이들이 버려지는 것 역시도.

“그러고 보니 벌써 5년이네.”
개조한 소파를 탁탁 두드려 보던 영진은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3살. 한영진.’
가슴에 명찰을 달고 찍은 어린아이 뒤로 이제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 고아원의 현판이 보인다. 아마 단체사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선가 잃어 버렸다.
남은 사진은 저것 하나. 딱히 아끼거나 하는 사진은 아니라서 사진첩도 없이 덩그러니 놓아 둔 것이다.
“13살 한영진. ……18살 한영진.”
문득 소리 내어 말하던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달라진 게 없네. 빈털터리에 백수라는 것도 같고. 음, 그나마 잘 곳은 있다는 게 다른 점인가?”
좋게 생각해 보려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당장 다음 주면 쌀도 떨어질 텐데.”
당장 일할 곳도 마땅치 않으니 내일은 명훈의 말대로 센터에 가 볼 생각이었다.
열셋이라는 어린 나이에 공장 일을 시작하면서 들어 놓은 실업 연금 보험은 매달 빠듯한 월급으로도 아끼고 아껴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5개월 전까지는 빼먹지 않고 꾸준히 부어 왔다.
“한 달에 50만원 정도였으니까 원금만 따져도 꽤 받겠군. 그래도 먹을 것 덜 먹고 입을 것 덜 입고 부은 게 다행이었구나.”
꼭 부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아낀 것은 아니었지만 월급의 반이 넘는 돈을 매달 가져다 바친 이유는 그저 나름의 재미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엔 사장과 공장 어른들이 중요한 거라고 해서 부었고, 자라면서는 그냥 아껴서 붓는 것이 당연한 생활이 되었다.
쉴 새 없이 일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 공장이기에 연애와 같은 딴생각을 할 여유도, 그럴 능력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에 급급했던 5년이었다.
유일한 즐거움은 가끔 공장 식구들과 함께 단골 분식집에서 해물파전을 안주 삼아 즐기던 소주 정도. 그것도 과거의 법과는 달리 고아 가장인 그가 현행법 상 성인으로 인정받기에 가능한 즐거움이었다.
“얼마나 찾을 수 있으려나.”
약관의 맹점을 지적하며 돈을 뜯기는 경우도 있다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 잠시 걱정을 하긴 했지만 설마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 그런 경우는 잘 모르는 어린 나이에 가입을 했거나 약관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반쯤 사기와 같은 계약서에 뭣도 모르고 서명한 경우겠지만 그는 사장과 명훈이 공장 일에서부터 그런 보험이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까지 많이 도와주었기에 큰 걱정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보험의 경우는 직접 그와 함께 국영 센터에 가서 가입 절차와 계약을 도와준 것이 명훈이었고, 계약서의 몇 가지 의심 드는 내용을 지적하여 삭제하기도 했기에 별다른 걱정은 없었지만 최근 5개월 동안 납입하지 못한 것에 대해 트집을 잡거나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흐음.”
영진은 다시금 방 안을 돌아보았다. 딱히 돌아보았다고 말하기도 뭐한 것이 비좁은 방은 그 반 정도는 캡슐이 들어차 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책상과 냉장고, 작은 싱크대와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들어차 있어 앉을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잠은 여기서 자야 할 것 같네. 뭐, 침대도 없었는데 다행인가.”
바닥보단 편할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 굉장히 폐인스러운 풍경이었다. 욕실이 따로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
사장이 그에게 남겨 준 마지막 선물.
아직은 길이 들지 않아 조금 뻣뻣한 느낌의 소파 위에 누워 추억에 잠겨 있던 영진은 이내 곤히 잠들어 낮은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 한번 만져 볼까.”
다음 날 오전 눈을 뜬 영진은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늦잠에 쌓여 있던 피로가 말끔히 풀려 기분 좋은 기지개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전원과 회선 연결은 명훈과 함께 해 놓았고, 인터넷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집집마다 연결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종량제 요금이 부과되고 있었지만 그렇게 비싼 요금은 아니었다.
인터넷은 수많은 기업들의 광고들과 맞물려 누리꾼들이 접할 수 있는 수많은 광고비용의 일부가 회선 비용으로 충당되기에 실제 지불해야 하는 인터넷 요금은 그만큼 적어졌다.
그는 캡슐의 덮개를 열고 안쪽에 자리 잡아 소파의 각도와 평형을 조절한 뒤 온전히 누워 옆쪽의 버튼을 눌렀다.
푸쉭, 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내려오는 덮개 이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이 몇 초 정도 진행되었지만 수많은 캡슐들을 만져 보며 익숙해졌던 상황이기에 놀라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SH―01 가동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원래대로라면 약간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소파 뒤쪽에서 들려야 하지만 개조하면서 그쪽도 손을 봤기 때문에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OS―코룩스 ver 3.

캡슐 컴퓨터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초기에는 기존의 컴퓨터들과 동일한 OS를 사용했었지만 점차 그것들로는 캡슐 컴퓨터 본연의 기능들을 온전히 뽑아낼 수 없음을 알고 수많은 회사들이 앞다퉈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역시 수많은 것들이 도태되거나 개발 중지되었고, 현재에 이르러 가장 많이 사용되는 OS로는 미국에서 만든 MSC와 독일의 DCS. 그리고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만든 코룩스(KORUX)라는 제품이 제일 많이 쓰이고 유명했다.
점유율로 따지자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평가되는 미국의 MSC였고, 50퍼센트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MSC에 이어 한국의 코룩스가 30여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유료 소프트웨어인 MSC나 DCS와는 달리 코룩스는 무료 OS였기 때문이다.
공짜에다가 쓸 만하기까지 하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는 코룩스의 개발사인 한국 소프트스타는 중소기업으로 출발했지만 장대한 행보를 보이며, OS 안에 들어가는 여타 프로그램들 역시 다른 중소기업들과 연계하여 힘을 합쳐 개발과 배포를 하고 있었다.
비록 처음에는 막대한 수익은 벌어들이지 못했지만 한국 아이티(IT)의 심장이라 평가받으며 정부의 보조금을 지급받기 시작했고, 수많은 개인과 기업들의 후원을 등에 업고 개발을 이어 가 결국 코룩스를 성공시킨 후에는 코룩스 내에 들어가는 광고 수익을 통해 점점 튼튼한 회사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이 컴퓨터에 설치한 것은 가장 최근 버전인 3이었고, 다행히도 이 기종으로도 별다른 충돌 없이 설치와 구동이 가능했다. OS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같은 캡슐에서도 약간의 성능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같은 회사의 OS를 쓴다고 하더라도 가능하다면 가장 최근의 것을 쓰는 게 좋은 것이다.
부팅하는 데 걸리는 약간의 시간 동안 몇몇 한국 기업들의 광고가 전면에 흘러나왔다.
인터넷 회선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연결을 끊고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필연적으로 접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똑같은 광고를 봐야 하는 지루함이 없도록 매번 부팅시마다 다른 회사의 광고들이 나오게끔 되어 있었다.
솨아아아…….
광고들이 다 지나가고, 찬란한 보석 같은 빛 무리에 휩싸인 코룩스의 로고 이후 영진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숲 속에 놓인 작은 바위였다.
보통은 기본적으로 참나무 숲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대나무 숲이나 다른 숲으로 변경할 수도 있고, 숲이 아닌 해변이나 도시로 바꿀 수도 있었다.
이것이 기본적인 메인 화면이었고 여기서 다른 프로그램들을 열거나 실행할 수 있었다.
극 초기의 캡슐 컴퓨터의 경우엔 액정화면이 내장된 헤드기어와 동작 인식용 장갑 따위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젠 장갑 없이 공간을 클릭하고 만지는 것으로 기본적인 것을 행할 수 있게 되었고, 눈이 피로하고 목이 불편한 액정 내장형 헤드기어가 아닌, 가볍고 착용감이 좋은 고글 형태로 진화되어 더욱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SH―01 역시 그런 방식이었고, 영진은 잠시 고글을 벗고 캡슐 덮개 안쪽, 그의 전면에 있는 대형 모니터로 화면을 전환한 뒤 캡슐 내부 조명을 켜고 갖고 들어갔던 무료 쿠폰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인터넷 연결.”

인터넷 연결을 실행합니다.
현재 기본 페이지는 ‘에브리서치’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다시금 고글을 착용한 그는 허공에 떠오른 키보드를 두드려 검색창에 N.E.T를 입력하고 엔터를 쳤다.

‘N.E.T’와 관련된 검색 목록 총 5,304,092건 확인.
좀 더 세분화 하시려면 검색어를 추가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웹페이지에 떠오른 수많은 게시물들이 보였고, 영진은 그 숫자에 기겁하며 조금 더 자세한 검색어를 적어 네버 엔딩 테일즈라거나 게임과 관련한 게시물들을 찾아냈다.
어렵지 않게 게임 회사의 공식 사이트를 찾아낼 수 있었던 그는 그곳에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보다 문득 얼핏 들어 보았다고 기억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곳 상단에 떠올라 있는 게임의 이름은 N.E.T이었지만 한글로 적혀 있는 이름은 ‘엔이티’가 아닌 ‘에니티’였기 때문이다.
“아아. 발음 갖고 장난친 거였나.”
에니티라면 그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한국 게임 업계의 과거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