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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한의 탄생>
진정한 최고가 될 수 있었던 한 존재는 부정한 형제의 시도로 소멸할 위기를 겪었지만, 끝끝내 자신을 놓지 않고 결국 레니아의 아들로서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한이라는 집안의 레이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그는 세상의 빛마저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5분 먼저 태어난 케이 한의 쌍둥이 동생으로서, 여유롭고 침착한 성격, 곧은 심지로 형이 어지럽힌 인생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무너져 버린 집안과 도망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끝까지 형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착한 심성은 만물의 어머니 레니아의 가슴을 울릴 만큼 가상한 것이리라.
레니아의 아들이여!
부정한 태생이지만 항상 앞을 꾀하는 형을 보필하여 지켜 내도록 하라.
그리하여 대륙에 둘도 없는 형제로서의 이름을 깊이 새겨 넣어 레니아의 아들로서의 의지를 전 우주에 보이도록 하라.
호칭을 획득하였습니다.
<구사일생의>
―호칭 적용에 따른 부가 기능―
해당 호칭 부여 시 최대 체력 50증가.
건강 5, 운 10 능력치 상승.
―호칭 미 적용시―
최대 체력 20 증가. 건강 5 능력치 상승.
호칭 획득에 따라 스킬을 배우셨습니다.
<패시브스킬 ‘여유로움’>
“쌍둥이라고?”
그다음 페이지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적혀 있었다.
<태생 변수 적용>
캐릭터 생성 퀘스트 <위대한 탄생>에서의 결과 변수로 인하여 귀하의 캐릭터는 일란성 쌍둥이로 적용되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 캐릭터의 경우 본래 자신의 캐릭터 외에 하프 엔피씨 형식의 캐릭터 하나를 더 소유하게 됩니다.
하프 엔피씨 캐릭터는 기본적으로는 유저의 성향을 띠지만 게임 내의 인공지능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며, 소유 유저는 모니터링 할 수는 있지만 직접 컨트롤은 할 수 없습니다.
상태창이나 스킬의 경우 역시 유저가 모니터링 할 수 있지만 직접 컨트롤은 불가합니다.
쌍둥이인 하프 엔피씨 캐릭터는 거리에 관계없이 유저가 강하게 생각하는 형상이나 단어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태생 변수!
그가 알고 있는 것들 중 하나였지만 자신에게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기본적으로 에니티가 갖고 있는 불평등성 중 하나가 무작위 시작점이라면, 태생 변수는 그것 못지않게 불평등한 설정 중 하나로, 현실로 따져 보자면 기형이나 쌍둥이 같은 특수한 상황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애써서 정플을 통과하고 캐릭터 설정을 정상적으로 마쳤는데 간혹 캐릭터가 기형으로 적용될 수가 있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버그가 아닌 에니티의 고유 설정인 것이다.
물론 기형이라는 것은 불이익이라는 성격이 강했고, 기형 캐릭터로 시작한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캐릭터를 삭제 후 다시 정플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게임사에 항의하는 경우가 드문 것은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것과 별개로 다른 이유도 많았다.
팔이 네 개로 태어나는 경우나 눈이 세 개인 경우 같은, 조금 더 취향이나 게임 여건상 유리한 기형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어서 오히려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원하는 태생 변수를 터뜨리기 위해 정플과 캐릭터 삭제를 무한반복 중인 경우도 있을 정도.
어쩌면 정플 순위 1위라는 그 5번 만에 성공한 유저 역시 그런 식으로 정플에 뼈가 굵은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연은 아닌 것 같군.”
다른 기형들의 경우 순전히 무작위였지만, 케이의 경우 반 정도는 그가 얻어 낸 태생 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1등에 목매던 중 일란성 쌍둥이를 시도해 봤을 것인가?
물론 실제로 난자 하나에 정자가 둘 이상 들어가게 되면 수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지만 통과한 정플을 무효로 칠 수는 없어서 그랬는지 시스템이 개입하여 그렇게 처리한 모양이었다.
쌍둥이 플레이어.
이것은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시도였고 상상한다고 해서 얻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우연찮게도 성공했다. 물론 태생이 비겁하다는 호칭을 얻어 버렸지만 말이다.
“호칭 적용. 케이에 ‘태생이 비겁한’, 레이에 ‘구사일생의’.”
호칭 적용 완료되었습니다.
호칭을 적용하고 ‘동생’을 보니 낡아빠진 면 티셔츠 한 장과 반바지를 걸친 사내의 머리 위로 보이는 호칭과 이름이 제법 웃겼다.
[구사일생의]레이 한.
물론 자신의 이름은 ‘[태생이 비겁한]케이 한’이었다.
그는 조금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호칭이라는 것은 수많은 직업들과 더불어 에니티를 더욱 다채롭게 하는 것들 중 하나였고, 머더러가 되어 머리 위에 이름이 공개되거나, 유저 스스로 원해서 공개하지 않는 이상 유저들끼리는 볼 수 없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어떻게 키워 나가야 하나.”
에니티의 직업은 다른 게임들만큼이나 다양하고, 얻을 수 있는 방법 역시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전직을 통해 메인 직업을 하나 가질 수 있고, 그 외에 특정 분야의 행동을 많이 하거나 특정 퀘스트를 수행하여 얻을 수 있는 서브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누군가의 메인 직업이 누군가의 서브 직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숙련도는 기본적으로 메인 직업이 더 쌓기 쉽지만 오히려 서브 직업에 몰두할 경우 그쪽 직업에 더 익숙해져 메인 직업의 숙련도가 더 쌓기 힘들어지도록 체질이 바뀔 수도 있었다.
직업은 메인 직업 1개에 서브 직업은 최대 2개까지 허용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1~3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 호칭의 경우는 어떤 특정 행동 혹은 특정한 이슈가 되거나, 특정 퀘스트를 수행하거나, 어떨 땐 호칭을 파는 상점에서 사는 등 획득 방법과 호칭의 종류가 무궁무진하고 그 기능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호칭이 호칭으로 끝나지 않고 그 호칭들마다 어울리는 부가적인 기능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호칭에는 능력치 상승이라는 옵션이 붙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호칭에는 오히려 페널티가 붙을 수도 있다.
물론 부가기능이 없는 호칭 역시 존재하며, 그런 것은 특정 퀘스트를 수행할 때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스킬을 얹어 주는 호칭도 있다.
케이는 ‘태생이 비겁한’이라는 호칭을 게임 시작과 동시에 얻어 ‘구차한 임기응변’이라는 스킬을 덤으로 배우게 된 것이었다.
호칭은 획득에 있어서 제약이 없다. 조건만 맞으면 무한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호칭인 반면, 버릴 수는 없다.
획득했지만 적용하지 않아도 부가적인 능력이 생기는 호칭이 있고, 그와 반대로 획득하고 나서 적용하지 않아도 일정 페널티가 생기는 호칭 역시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런 경우를 ‘저주 호칭’이라 칭했다.
현재 쌍둥이 동생 캐릭터인 레이의 호칭으로 달고 있는 ‘구사일생의’ 역시 호칭을 적용하지 않아도 일정 부분까지는 능력이 상승되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피통 50, 능력치로는 건강 5, 운 10이 늘어나며 마법 방어력과 일반 방어력이 20%씩 늘어나는 것이 적용했을 경우의 옵션인 반면, 적용하지 않아도 피통 20과 건강 5의 상승은 얻을 수가 있었다.
“상태창 확인.”
케이는 가만히 서 있을 수는 없어 일단 현재 상황을 알아보기로 하고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반투명한 상태창이 좌상단에 떠올랐고, 그 안에는 그의 현재 장비와 능력치 따위가 적혀 있었다.
<캐릭터>
이름 : 케이 한 레벨 : 1 성향 : 없음
호칭 : 태생이 비겁한 확보 호칭 : 1 [상세보기]
체력 : 100/100 정신력 : 30/30 기력 : 197/200
<능력치>
힘 : 5 민첩성 : 5 건강 : 5
지혜 : 5 적응력 : 5 운 : 0
공격력 : 10 + 0 [상세보기] 방어력 : 5 + 5 [상세보기]
성향 : 무 명성 : 아무도 모른다.
소지금 : 0
<스킬>
{액티브} 구차한 임기응변 Lv1
“…….”
말이 안 나오는 장비와 능력치였다. 착용한 장비는 ‘그냥 티셔츠’와 ‘얻어 입은 반바지’로, 나름 세트 아이템이었지만 둘 다 입지 않으면 방어력이 0, 둘 다 입어 봐야 그나마 5였다.
공격력 10은 주먹이었고, 변변한 검 한 자루 없었다.
“운이 0? 뭐, 운이 0인 건 맞는 것 같네.”
1레벨의 초기 능력치는 일괄적으로 5. 다만 운의 경우는 랜덤하게 시작하면서 좋은 아이템을 얻거나 위기를 탈출하거나 했을 경우 조금씩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잘 오르는 능력치는 아니었으며 오르게 되면 그만큼 득템이나 기연을 얻을 확률이 ‘눈곱만큼’ 정도 오른다고 커뮤니티에 적혀 있었는데 그는 0이었다. 0일 수밖에.
<스킬>
구차한 임기응변 Lv1 : 액티브 스킬
사용자가 처한 상황에서의 적당한 해법을 제공한다. 자주 시전하거나 머리를 많이 쓸수록 숙련도가 올라가며, 좋은 해법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소모 마나 : 5
“흐음.”
이름만큼 구린 스킬은 아닌 것 같아 케이는 일단 해 보기로 하고 낮게 외쳤다.
“구차한 임기응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