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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움직여야 될 것 같다.
시야 정중앙에 떠오른 짧은 문구와 줄어든 5의 마나. 이것이 이 스킬의 작용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디로 가냐고!”
성질을 내며 다시금 스킬을 외치자 또다시 같은 문구가 떠올라 더욱 심기를 어지럽혔다.
“형, 참아. 흥분하면 더 더워.”
옆에 있던 레이가 말리자 케이는 물끄러미 자신의 게임 내 동생을 바라보았다.
‘동생이라.’
생각지도 않게 쌍둥이 동생이 생겨 버린 케이는 다시금 데이터로 만들어진 동생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나쁘지 않네.”
사이버 펫을 키우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까? 아니, 어쩌면 그것과는 다르겠지. 애완동물과 가족의 차이니까.
게임에서나마 가족이 생겼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너는 뭐 아는 거 없냐?”
케이의 물음에 레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정도까지는 오던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걸어오는 동안 금세 잊어 버렸어.”
“…….”
머리가 좋은 설정은 아니라는 건가. 케이는 그래도 자신을 기준으로 만든 분신일 것 같아서 불평은 자제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케이의 말에 레이가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아마 카므 사막인 것 같아. 내 생각이 맞으면.”
“그렇군. 카므 사막이라.”
들어 본 적 없는 지명이었다. 누가 사막 한가운데서 게임을 시작하리라고 예상했겠는가?
“구차한 임기응변.”
케이가 낮게 중얼거리자 더위 탓인지 저레벨인 탓인지 찔끔찔끔 느리게 차오르던 마나 게이지가 다시금 톡 내려가면서 전면에 짧은 문구가 떠올랐다.
사실 별로 기대는 안 하고 있었지만 현재로써는 그것밖에 할 것이 없었기에 행한 것이었다.
해를 등지고 걸으면 덜 덥겠지?
“……그렇겠지?”
케이는 이제 해탈이라도 한 것 같은 얼굴로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정중앙에서 약간 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
“이쪽으로 가 보자.”
“알았어, 형.”
케이는 조금이라도 태양이 기울어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한 걸음 한 걸음 걷기 시작했다.
방어력조차 없는 천 신발은 모래의 뜨거움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었지만, 게임의 감각은 현실보다는 낮춰져서 제공되기에 그럭저럭 뜨뜻한 정도였다.
“…….”
사막을 걸으며 케이는 생각했다.
‘나는 왜 지금 이 사막을 걷고 있는 걸까? 아니, 왜 즐기려고 하는 게임에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게임이라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 근데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만들고 있다. 아드레날린이 팍팍 솟아오를 만큼 말이다.
“모르겠군.”
“응? 뭐가?”
케이의 혼잣말에 옆에서 걷고 있던 레이가 갸웃하며 물었고, 케이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아니. 혼잣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형이 비겁한 사람이라고 해도, 난 형을 믿어. 형은 누구보다 앞에서 모든 것을 대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거.”
문득 말하는 레이를 본 케이는 현대 인공지능 기술이라는 것이 얼마만큼 발전한 것인가 하는 감탄보다는, 그저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알아주니 고맙다.”
태생이 비겁한 케이 한.
태생이 혼자인 한영진.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져 케이는 다시금 피식 웃었다.
‘재미있네.’
현실에서도 혼자더니, 게임에서조차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것이다.
다만 현실에서 그를 도와주던 명훈과 같은 존재가 그의 곁에 있었다. 쌍둥이 동생이라는 레이 한. 그 세상의 그와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그였다.
앞으로는 어찌 해야 하나.
하루 종일 사막만 걸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되면 기력이 바닥나고, 식량도 없으니 체력도 바닥나 결국 무한 데드의 수렁에 빠지게 될 터.
“오아시스라도 나오면 좋겠군.”
그냥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을 거란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어디에 쓰지?
센터에서 전화가 온 것은 아침나절이었다.
그럭저럭 있던 반찬을 꺼내 한 끼를 해결하고 있던 영진은 한 공장에서 문의가 왔다는 말 뒤에 이어진 센터 직원의 질문에 난감한 투로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없으시다는 거군요?
“예. 만질 줄은 알지만 자격증은 아직 취득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가지고 계신 자격증이 ‘1종 보통 운전면허’와 ‘상용 캡슐 테스트 및 관리 1종’이 전부이신 건가요?
“아, ‘C계열 중등 교육 이수증’도 있습니다만.”
―음, 그것도 있으시군요. 또 다른 자격증은 없으시고요?
“네. 없는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일단 해당 사항으로 세부 적용하도록 하고, 휴식기를 더 가지셔야 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또 연락 주세요.”
―예.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상담원은 남자였지만 무척 친절한 목소리였다.
“따둘 걸 그랬나.”
처음 연락이 온 곳은 캡슐 제조업체는 아니고 중장비를 만드는 업체라는 것 같았는데, 용접 관련 자격증이 필수로 있어야 하기에 그것이 없던 영진은 자격 미달이었다.
용접은 어깨너머로 열심히 배우는 그를 기특하게 생각한 용접기술자 최씨가 일대일로 가르쳐 주어서 그럭저럭 일손이 모자랄 때 도와줄 정도의 실력까지 쌓은 상태였지만, 공장이 바쁘고 따로 공부하는 것들이 많다는 핑계로 자격증을 준비하지는 못했던 터였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남는 것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영진은 새 직장을 구하면 시간을 내어 용접 관련 자격증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삼화실업에서 일하면서 준비해 딴 자격증으로는 ‘상용 캡슐 테스트 및 관리 1종’이 첫 번째, 만 16세가 넘으면서 자격이 충족되어 명훈의 도움을 받아 몇 번 실패 후 합격한 ‘1종 보통 운전면허’가 그 두 번째였다.
자동차라는 것은 과거의 기름으로 가는 바퀴 달린 것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현재 길 위에 돌아다니는 것은 지상에서 몇 미터가량 떠올라 움직이는 반중력 차량들이었다. 아마도 2070년대를 전후로 등장했다고 알고 있는데, 관련 기술에 있어서도 수십 가지의 특허들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기본적으로 전기 충전을 통해 움직이게 되며, 한번 충전하면 최고 시속 80km로 최대 200km 정도 갈 수 있는 것이 기본 옵션이고 차량의 크기나 종류, 적재 화물에 따라 다른 부품들이 들어가 그 사양과 가격이 달랐다.
‘C계열 중등 교육 이수증’은 그가 공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다녔던 국영 야간학교의 수료증이었다.
중등교육에 관련한 자격증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보통의 중학교 과정을 이수하게 되면 ‘B계열’의 이수증을 받을 수 있고,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되면 그것과 합산하여 ‘A계열’의 교육 이수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규 학교가 아닌 무료 야간 학교였기에 그곳의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C계열’ 이수증밖에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받았을 때 무척 만족스러웠다.
피곤할 텐데 어차피 공장 인생이니 그 시간 푹 쉬는 게 낫지 않겠냐던 공장 직원들의 말에도 꿋꿋이 시간을 쪼개어 야간학교에 다녀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었으니 소화를 시켜야지.”
영진은 탁자 위를 치운 뒤 옆에 있는 캡슐을 툭툭 치며 말했다.
밥을 먹고 바로 캡슐에 들어가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하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특히 소화기관에 장애가 생길 수 있었다.
고가의 캡슐에는 특수한 영양약물을 투여하게 해 주는 생명유지 장치가 있어 사용자가 며칠 정도는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게끔 해 주는 기능이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사용하는 구형 캡슐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밥 잘 먹고 소화 잘 시키는 게 최고일 뿐.
영진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원룸을 나섰다.
거리는 여느 때처럼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하는 해맑은 연인들.
“그러고 보니 일요일이었구나.”
센터의 전화를 받은 일 때문에 평일이라고 착각을 했던 영진은 뒤늦게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엉망인 요일 인식에 쓴웃음을 지었다.
영진의 경우 공장에서 일한 5년 동안 주말이라고 쉬어 본 적이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빠듯한 생활이었기에 주말은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조용하네.”
그가 찾은 곳은 집 근처의 시립 공원이었다. 그가 살고 있는 다세대 원룸에서 나와 대로를 따라 걸으면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식사 뒤에 공원을 산책하고 돌아가면 얼추 두 시간. 소화를 시키기에 딱이었고, 딱히 캡슐을 갖기 전에도 종종 퇴근 후 들러 산책을 하던 곳이다.
영진은 연못을 지나쳐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배를 어루만졌다.
“조금 과식한 것 같은데.”
약간 더부룩한 감이 있는 배는 가스가 찬 것 같기도 했다. 게임을 한 뒤로는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만 먹고 있기 때문에 식사량이 들쭉날쭉한 탓에 그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