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4)/
둘은 고만고만한 선인장을 골라 가시 창을 돌려 뽑아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음에 안심하고 나머지 가시들을 마저 뽑아냈다.
레이와 함께 바닥에 쌓아 놓은 가시들 중 대충 반을 갈라 나눠 가진 케이가 그것을 하나하나 자신의 기본 인벤토리에 던져 넣자 그곳에 있던 여러 칸 중 하나에 들어간 뒤, 이어 우상단의 작은 숫자로 표현되었다.
최초의 길이 차이는 중첩이 되면서 그대로 사라져 평균 규격의 가시들로 통일이 되는 것이다.
바닥에 있던 가시들을 다 정리한 케이는 마지막 하나만 손에 들고 선인장을 바라보았다.
“네 가시로 너를 찔러서 유감이다.”
그리고 두 손으로 쥔 가시 창을 녀석의 몸통 정중앙에 푹 찔러 넣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도 아무렇지 않던 선인장의 껍질은 결국 단단하고 뾰족한 가시 창으로 찌르자 쉽게 구멍이 났다.
깊이 박아 넣었던 가시 창을 힘주어 뽑아내자 그 구멍으로 한줄기의 물이 쫄쫄쫄 흘러내렸고, 케이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너도 마셔. 아님 뚫던가.”
“음. 나도 해 볼까?”
레이가 그를 흉내 내어 선인장을 찌르고 뽑자 흘러나오는 물이 두 줄기가 되었다.
“음.”
케이는 문득 다른 선인장들을 둘러보았다. 이 일대에 있는 선인장들의 수만 해도 백이 조금 안 될 정도로 많으며 그 크기와 모양 역시 제각각이었다.
그는 물을 적당히 마신 뒤 일대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자연히 그 뒤를 따르는 레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뭘 찾는 거야?”
“양동이.”
케이는 대답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다 한 곳에 멈추었다. 그곳엔 그럭저럭 커다란 선인장이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다른 것들과 약간 달랐다. 머리 꼭대기 부분이 동그랗지 않고 좀 판판했다.
“힘 아직 넘치지? 뽑자.”
“음?”
레이는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군말 없이 그를 따랐고, 조금 전의 선인장보단 가시가 적었던 그것은 30분 정도 걸려서 맨몸을 드러냈다.
“이쯤으로 할까.”
케이의 말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레이는 케이가 한 곳에 가시를 찔러 넣고 뽑더니,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바로 옆을 찌르고 뽑는 것을 보았다.
“이 위치대로 넌 맞은편을 찔러. 한 바퀴 돌아서 잘라 내는 거다.”
“아아, 알았어.”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게 된 레이는 케이가 구멍을 낸 자리를 유심히 살핀 뒤 맞은편으로 돌아가서 그쪽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케이는 구멍 옆에 또 다른 구멍을 내는 것을 반복하여 선인장의 뚜껑을 딸 생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으이샤!”
뿌지직,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뜯어진 선인장의 뚜껑은 그대로 뒤집어져 바닥에 놓였다.
케이는 양동이라기보단 작은 욕조에 가까운 그것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곤 그대로 들어서 아직 남아 있는 선인장의 몸통 옆에 바짝 붙였다.
“훅!”
그런 다음 선인장에 구멍을 뚫자 남아 있던 물이 구멍으로 빠져나와 그 욕조에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인벤토리에 안 들어가진 않겠지.”
구멍을 여러 곳 뚫자 물이 차오르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졌고, 결국 한 통을 다 채운 그는 욕조를 그대로 드래그해서 인벤토리로 옮겼다. 들어서 옮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인벤토리가 무게가 아닌 칸으로 적용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는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이 가득 차 있는 선인장 욕조>
선인장에겐 불쌍한 일이나, 이것으로 많은 여행자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물이 있으니 사막 한가운데에서 목욕을 해도 될 것 같다.
구차한 임기응변의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아, 그러세요?”
케이는 이런 것으로 스킬의 레벨이 올라갔다는 안내에 피식 웃어 버렸지만 그래도 해를 등지고 걸어서 이곳에 도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의외로 괜찮은 스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형?”
“어쩌긴. 배부터 채워야지.”
레이의 물음에 웃으며 답한 그는 남아 있던 선인장 몸통으로 다가가 반투명하고 말랑말랑한 속살을 손으로 푹 찔러 뜯어냈다.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사막 선인장의 속살>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무르다. 선인장이야말로 새침데기!’
고대 식물학자 옐슨은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다.
사막 선인장은 단순히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화상에 좋은 약이기도 하며, 피를 맑게 해 주는 효과도 갖고 있는 좋은 식물이다.
게다가 별미이기까지 하니 사막을 찾은 자들은 필히 먹어 보아야 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섭취시 소량의 체력 회복, 기력 회복, 해독효과.
문지르는 것으로 화상 및 상처 치료 효과.
“제법 먹을 만하네.”
물을 머금고 있는 점액질의 느낌일까. 끝 맛은 쌉쌀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것이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먹을 수 있어?”
“벌써 먹고 있는 사람한테 그렇게 물어보는 건 뭐야.”
또 한 조각 푹 뜯어내어 우물거리는 것을 보자 레이 역시 옆으로 다가와 한 움큼 뜯어먹기 시작했다. 속살은 말랑말랑하면서도 나름 질긴 부분이 있어서 뜯어내는 것도 요령이 있어야 했다.
“일단 이놈으로 배를 채워야겠다.”
둘은 선인장으로 적당히 배를 채운 뒤, 남은 몸통을 또 구멍 내기 시작하여 십여 조각으로 쪼개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를테면 도시락이었지만 그것만 먹고 얼마나 버틸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곳을 떠난 것은 게임상으로 하루가 지난 뒤였다.
떠나기 반나절 전에는 문득 퀘스트를 해결했다는 안내가 들려와 문제의 개미지옥으로 가 보았지만 처참한 선인장 가디언의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몇 개의 부러진 가시 정도만 보일 뿐 몸통이나 다리는 다 먹어치운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새삼 아이템이 있을까 찾아보기엔 개미귀신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돌아선 그는 애초 퀘스트에 보상 이야기도 없었기에 그저 목숨을 건진 것이 보상이겠거니 생각했다.
선인장 군락을 떠나기 전 그들은 꽤 작은 녀석들을 발견하여 그 뚜껑을 따 머리에 쓰기도 했는데, 기본 방어력 5에 더위에 대한 내성이 10% 붙어 있는 ‘사막 선인장 투구’라는 아이템이었다.
보기엔 무척 구차해 보였지만 당장 쓰고 나면 느껴지는 더위가 달라지니 케이로선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아이템이었다.
새끼 선인장으로는 팔뚝만 한 물통 두 개를 만들어 케이의 인벤토리에 있던 선인장 욕조에서 필요할 때마다 물을 담아 마셨다.
일단 어느 정도까지는 버텨 줄 식량과 물을 확보한 것이었지만, 대체 사막이 언제 끝날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시련을 준다더니 진짜 일부러 이러는 건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케이는 내리쬐는 햇빛에 다시금 고개를 수그리고 묵묵히 걸었다.
뭐라도 나오겠지. 그 생각 외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게임은 게임일 뿐. 일단 주어진 과정을 즐기면 되지 않을까?’
말캉한 선인장을 우물거리던 그는 문득 지평선 가까이 보이는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
잘못 본 건가?
그는 들고 있던 선인장 속살로 양쪽 눈을 비벼 먼지를 닦아내고 다시 앞을 보았지만 분명히 있었다.
“레이.”
“나도 보고 있어.”
지평선 가까이 보이는 낮은 모래언덕 위에서 뭔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단순히 모래에 반사되는 햇빛이 아니었다.
‘분명 뭔가가 있다.’
“조금 서두르자.”
“알았어, 형.”
케이는 눈을 닦은 선인장을 그대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발을 재촉했다.
“흠.”
“…….”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도착한 그곳엔 모래에 반쯤 파묻힌 시체가 한 구 있었다.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바싹 말라 미라처럼 변해 버린 시체는 사내였다.
“빛나던 건 뭐였지?”
케이는 시체 주변의 모래를 걷어내다 문득 느껴지는 통증에 움찔하며 그것을 집어 뽑아냈다. 피가 흐르는 손에 쥐어져 나온 것은 낡은 검 한 자루였다.
<무척 낡은 여행자의 검>
종류 : 검 공격력 : 3~5 내구력 : 12/30
무게 : 20 사용제한 : 없음 인벤토리 중첩 : 불가
한때는 모든 여행자들이 손에 쥐고 다녔을 법한 검은 세월의 손때와 녹으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손을 보면 그럭저럭 쓸 만하게 될 것 같지만, 아무래도 수리비가 더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