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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사는 꽤 많은 게임에 골수유저들을 갖고 있어 쉽게 망하거나 하지 않을 회사였기에 의외였다.
“소문으로는 어딘가로 흡수되고 있다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게 그 에니티 만든 대기업이라는 것 같아. 각 회사들이 좀 특이한 특허들을 갖고 있잖아. 그것들을 로열티 안 주고 회사 통째로 먹어 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뭐, 사실이 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래서요?”
“각 회사마다 빠져나간 유저들이 많으니까. 일단 없어진 게임은 더 이상 할 수 없으니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는 인구가 있는데, 그게 대부분 그 에니티로 간다고 하더라고. 재미는 둘째 치고 일단 대기업이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게임이니까 망하진 않지 않겠냐는 거지.”
“으음.”
“인구가 급격하게 유입되면 아이템이나 게임머니가 비싸지는 게 수순이잖아. 너도 할 거면 제대로 한번 해 보던가. 기왕 하는 거 돈 좀 만지고 나오는 게 좋잖아. 그냥 취미로 하는 것보단.”
“글쎄요. 돈 신경 쓰다 보면 게임이 더 빡빡해지지 않으려나.”
“그거야 너 하기 나름이지.”
명훈의 말에 영진은 가만히 끄덕였다.
“그래도 당장 게임 내 인구가 확 늘어나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안정적으로 늘겠지.”
“어째서?”
“말했잖아요. 진리의 정플.”
영진이 진리라는 말을 강조하자 큭큭 웃은 명훈은 대체 그 진리가 뭐냐며 꼭 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그사이 나왔던 음료수도 다 마셨고 대화거리도 그럭저럭 바닥날 즈음 먼저 일어나는 명훈을 따라 영진도 일어났다.
“그럼 난 가게로 돌아가 봐야겠다. 넌 더 있다가 오던지.”
“뭐 볼 게 있다고 더 있다 가요.”
“볼 거야 꽤 있잖아?”
“됐어요. 나도 나름 바쁜 사람인데.”
둘이 카운터로 향하자 계산대에 있던 모델 같은 여성에게 뭐라 귓속말을 하더니 자리를 바꿔 계산대를 맡는 아영이 보였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밌게 하셨어요?”
아영의 물음에 영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짧게 답했다.
“사업 이야기랑 이런저런 게임 이야기 같은 거요.”
“게임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명훈이 끼어들었다.
“요새 유행이라던데? 젊은 애들은 다 안다며. 에니티인가 하는 게임.”
“아. 에니티요? 그거 하세요?”
“나 말고 이 녀석.”
명훈이 영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아영이 웃으며 끄덕였다.
“저도 계정은 만들어 봤는데, 퀘스트가 어려워서 캐릭터는 못 만들고 있어요.”
“진리의 정플?”
명훈의 물음에 얼굴이 빨개진 아영은 영진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은 벌써 통과했다던데? 비법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해 봐.”
카드로 계산을 마친 명훈이 웃으며 말한 뒤 먼저 카페를 나서자 놀란 아영이 그 뒤를 따르려던 영진을 향했다.
“정말요? 비법이 뭐예요?”
“아. 그건, 음…….”
영진은 난감하게 웃으며 생각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시간이 되시면 ‘헤드스핀’이라는 춤이 어떤 건지 알아보면 도움 될 거예요. 그럼.”
자신의 설명이 잘 전해졌을까 갸웃거리던 영진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명훈의 뒤를 쫓아 카페를 나갔다.
“그럼 넌 집으로 갈 거냐?”
“예. 오늘 산책도 못했으니까 뛰어가려고요.”
“그래. 다음엔 해물파전에 소주 사 줄 테니까 전화하면 나와.”
“하하. 알았어요. 전화 주세요. 그럼.”
영진은 웃으며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고, 명훈은 영진이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을 즈음 후다닥 카페에서 나오는 아영과 그 손에 들린 작고 예쁘게 포장된 케이크 상자를 보며 풉, 웃었다.
“웃지 마시죠?”
가볍게 눈을 흘기던 아영은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영진을 찾았지만 명훈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에 달려가고 있는 영진이 보여 아아, 하며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그래. 데리고 왔으니까 나는 네 부탁 들어준 거다?”
“네에.”
명훈이 피식 웃으며 전화번호는 땄냐고 묻자 깜짝 놀라는 아영이었다.
“영진 오빠 핸드폰 있어요?”
“……너도 저놈만큼이나 바보구나.”
“영진 오빠 바보 아니거든요?”
“아, 네. 그러시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명훈은 당장이라도 영진의 뒤를 쫓아갈 기세인 아영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 쫓아가기엔 좀 무리인 것 같다.”
영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문득 아영의 부담스런 시선에 기겁한 명훈은 반 발짝 물러나며 두 손으로 가드를 올렸다.
“어이, 이봐. 네 부탁은 데려오는 게 다였잖아? 그걸로 난 친한 오빠로서의 도리를 다 한 거라고. 뭘 더 바라는 거야?”
“히잉…….”
“앙탈은 먹힐 만한 사람한테나 가서 부려. 난 바쁜 사람이라고. 이제 어서 물려받을 거 물려받고 사업도 해서 돈도 벌고 결혼도 해야 하고, 응?”
“알려 줘요…….”
조금만 더 놀리면 울어 버릴 것 같은 얼굴에 명훈은 전화를 꺼내 저장목록을 열었다.
“딱 한 번만 불러 줄 거야. 그 뒤론 얄짤 없어.”
“네!”
아영은 재빨리 주문 확인용 메모지와 펜을 꺼내 명훈이 불러 주는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받아 적은 뒤 몇 번이나 재확인을 했다.
“근데 넌 저놈의 어디가 그렇게 좋냐?”
명훈의 물음에 영진의 전화번호를 품에 꼭 안으며 좋아하던 아영이 잠시 생각하다 뺨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요.”
“그럼 개그맨을 사귀던가.”
“그런 거 말고!”
꾸욱.
구두 뒷굽으로 발등을 밟힌 명훈은 펄쩍펄쩍 뛰며 절규했다.
“아악!”



“헉, 헉…… 아앗!”
한편 영진은 한참을 달려가다 문득 무언가에 걸려 사납게 뒹굴었다.
마침 간밤의 빗물이 고여 있던 진창에 뒹굴어 먼지와 오물이 뒤범벅되어 아픔보다 창피함이 더했던 그는 재빨리 몸을 추스르고 어디에 걸린 것인지 돌아보았다.
“아, 나 이런.”
눈에 보이는 것은 갓 착륙한 하얀색의 길쭉한 차.
상당히 비싸 보이는 차의 열려 있는 뒷문으로 나와 있는 하얀 양복바지의 긴 다리였다. 왠지 취향을 탈 것 같은 하얀색 가죽 구두엔 영진의 운동화가 걸리면서 묻은 약간의 흙먼지가 보였고, 뒤이어 천천히 차에서 내린 사람은 스물을 갓 넘은 듯한 사내였다.
머리는 물론 눈썹까지 하얗게 물들인 그는 하얀색에 집착하는 병이라도 있는 것인지 온몸을 하얀색으로 두르고 있었다. 하얀 양복과 하얀 양말에 하얀 구두까지.
딱 봐도 돈이 줄줄 흐를 것 같은 분위기의 청년은 진창 위에 서 있는 엉망인 꼴의 영진을 보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때만 해도 영진은 ‘그래도 다친 데는 없으니까 사과해 오면 대충 받아 주고 돌아가자.’라는 생각이었다.
“뭐야, 이 더러운 종자는.”
하지만 상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과에서 거리가 먼, 오히려 노골적인 조소와 비웃음. 게다가 상대는 아주 짜증난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부랑자 같은 놈이 내 비싼 구두에 먼지를 묻혀?”
“뭐?”
황당해하며 그쪽으로 다가가려던 영진은 문득 앞을 막는 검은 양복의 덩치들에게 떠밀려 또다시 진창을 굴렀다.
“…….”
성질이 뻗치려 하는데 상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하여간 가난한 동네는 오면 안 된다니까. 더러워서.”
길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기분 나쁜 얼굴로 한 번씩 그쪽을 보았지만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 자식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쪽을 향하려던 영진은 문득 하얀 머리 사내의 팔짱을 끼며 말하는 여성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바쁜데 그냥 가자.”
청년의 양복만큼이나 비싸 보이는 붉은 색깔의 차이나드레스. 청년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또래의 여성은 무척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었는데 왠지 장미를 닮아 보였다. 그것도 백금으로 만든 장미.
돈으로 만들어진 듯한 느낌의 그녀는 청년의 팔을 끌며 재촉했다.
영진은 그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우리 아빠가 가난한 사람들은 애초부터 언어가 달라서 말이 안 통한다고 했어. 시간 낭비 말고 그냥 가자.”
“내 구두를 더럽혔다고.”
“구두야 새로 사면 되지. 얼마나 한다고.”
“흠. 그건 그래.”
이해할 수 없는 대화들이 이어진 뒤, 청년은 어깨들에 가로막혀 가만히 그를 노려보고 있는 영진을 보며 피식 비웃었다.
“재수가 없으려니……. 퉤!”
땅에 침을 뱉은 뒤 돌아서서 한 건물로 들어가는 청년과 그 일행들.
“…….”
오랜만에 명훈과 아영을 만나 조금은 들떠 있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영진은 문득 엉망인 꼴로 서서 혼자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음을 알고 말없이 뒤로 돌아 발을 내딛다 움찔했다.
“쳇.”
아무래도 삐끗한 모양이었다.
“하하.”
문득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더럽다.
‘돈을 벌고 싶다.’
문득 든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단순히 먹고 사는 수준을 넘어 더 많이, 정말 많이 벌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왜 내가 무시를 당해야 하는 거지?”
이미 알고 있다. 어째서 무시를 당한 것인지.
……그 때문에 돈이 벌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가 부자였다면 그 녀석은…….”
코웃음을 치며 땅에 침을 뱉는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치 얼굴에 침을 맞은 기분이다.
더럽다.
진창을 뒹군 것보다 더 더럽다.
“내가 부자였다면.”
영진이 부자였다면, 녀석보다 더 부자였다면 아마 녀석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빌었겠지. 굽실거리며 사과를 했겠지.
“아니, 애초에 차를 타고 갔을 테니 넘어질 일도 없었겠지.”
수천,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 갔다.
“빌어먹을.”
영진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발목의 통증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그보다 훨씬 더 커다란 악감정이 그의 통증마저 불태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