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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했다.
행동 스킬은 따로 스킬명을 말하지 않아도 행동 그 자체로 활성화되는 스킬로, 마나가 소모되지도 않는 유용한 스킬들이었다.
보통은 잡다한 기술 스킬에서 요리 스킬이나 치료 스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수많은 행동 스킬이 있는데 그 일부는 일정 장소에서 돈을 주고 배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 둘은 또 다른 행동 스킬이 하나 더 있었는데, 레벨 10을 갓 넘겼을 적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 얻은 스킬로 ‘주제 파악’이라는 이름의 스킬이었다.
행동 스킬<주제 파악>
눈에 보이는 상대의 레벨과 체력 수준을 알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더 높은 레벨의 상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주제 파악을 얻은 뒤로는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 요령이 생겨 조금 더 수월하게 사냥에 임할 수 있었다.
케이는 기회가 날 때마다 조합술을 써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다 레이가 건네는 재킷을 보았다.
“방금 나온 거야?”
“응. 이건 형 입으면 되겠네.”
레이가 건네준 것은 ‘사막 늑대의 가죽재킷’으로, 지금 그가 입고 있는 구멍 난 가죽조끼 위에 덧입을 수 있었다. 추가 옵션은 없지만 기본 방어력이 15짜리인 튼튼한 옷이었다.
어제도 하나 나왔었는데 그건 레이에게 주었고, 이번 것은 자신이 입었다.
이것으로 케이와 레이 모두 ‘사막 늑대 세트’를 모두 모을 수 있었다.
사막 늑대 세트는 사막 늑대의 가죽재킷과 사막 늑대의 가죽 팬츠, 가죽 허리띠와 부츠, 각반까지 하여 다섯 가지 방어구였고, 사막 늑대 세트를 모두 착용하면 피통 300과 마나 100, 각 능력치 5씩의 향상과 더불어 사막 몬스터에 대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20%씩 늘어나는 옵션이 생기는 유용한 세트아이템이었다.
물론 개과 몬스터에 대한 공격력 50% 추가의 옵션도 붙어 있었다. 먼저 사막 늑대 세트를 완성한 레이의 전투력 차이를 보아 왔던 그였기에 가죽재킷이 나온 것이 무척 반가웠다.
“상태창 오픈.”
<캐릭터>
이름 : 케이 한 레벨 : 32 성향 : 없음
호칭 : 태생이 비겁한 확보 호칭 : 1 [상세보기]
체력 : 1,524/1,790 정신력 : 178/235 기력 : 258/350
<능력치>
힘 : 87 + 5 민첩성 : 58 + 5 건강 : 30 + 5
지혜 : 8 + 5 적응력 : 18 + 5 운 : 3 + 5
공격력 : 97 + 5~10 [상세보기] 방어력 : 35 + 47 [상세보기]
성향 : 무 명성 : 아무도 모른다.
소지금 : 8골드 7실버 17쿠퍼
<스킬>
{액티브}구차한 임기응변 Lv7
{액티브}뒤도 안 보고 도망가기 Lv4
{패시브}조잡한 창술 Lv2
{패시브}마구잡이식 투창술 Lv8
그동안 꽤 많은 레벨이 올라 있었다.
능력치는 최대한 실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찍었고, 간혹 게임 성향에 따라서 보너스로 올라가는 능력치도 있어서 현재엔 일대일로 붙어도 치명타만 피한다면 사막 늑대 정도는 별 위험 없이 골로 보내 줄 수 있는 레벨이었다.
세레크와 싸울 때도 한두 번 치명타를 맞을 뻔했지만 힘겹게 피한 그는 피했는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데미지를 입었었다.
치명타는 피통이 아무리 커도 전체 체력에 비례하여 감소하는 것이기에 레벨만 믿고 넋 놓고 있다간 우스운 결과만 초래하는 것이다.
치명타를 피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유저의 컨트롤에 의지하는 방법이 있고, 인위적인 옵션 변경이 있는데 옵션 변경을 하면 유저의 공격 자체가 ‘어디를 어떻게 공격한다.’와 같은 직접 컨트롤이 아닌 ‘공격’과 ‘방어’라는 간접 컨트롤이 되어 명중 부위나 명중률이 캐릭터의 능력치에 맞춰져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설정하게 되면 해당 유저에 해당하는 모든 공격과 방어가 각 캐릭터의 능력치에 맞게 처리되는 것. 직접 컨트롤이었다면 사망에 이를 공격을 받아도 운이 좋다면 미스가 뜰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설정하면 해당 유저가 공격할 경우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냥 자체가 더 불편하게 되었다.
그 옵션은 13살 이하의 유저들에겐 강제적으로 적용되어 있어 잔인성의 체감을 낮추는 용도로 이용되고 있지만 그 위의 연령대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치명타의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가상에서의 행동 컨트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직접 컨트롤이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슬슬 대머리 녀석이 리젠될 타이밍이지?”
“지금 출발하면 될 것 같아.”
케이의 말에 끄덕인 레이가 품에서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확인하고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음.”
케이가 손에 들고 보고 있는 것은 사막 늑대의 가죽 한 장. 정확히는 그 겉에 바싹 말린 늑대 뼈를 분필 삼아 그린 슘가르 사막의 대략적인 지도였다.
물론 그들이 직접 보고 겪은 대로 그리고 있기에 아직 나와 있지 않은 곳도 많고 거리나 위치가 불분명하기도 했지만 일단 만들어 두니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특히 어떤 지역에 어떤 몬스터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대략적인 리젠 타이밍까지 알아두고 있어서 최대한 시간 낭비 없이 이동과 사냥을 행할 수 있었다.
“끼이이익―!”
공중을 선회하던 독수리는 갑자기 날아오는 두 개의 창에 놀라 방향을 틀었지만 사자만 한 몸뚱이 때문인지 동작이 느려 그대로 하나는 날개뼈가 붙은 어깻죽지에, 다른 하나는 복부에 박힌 채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좋아. 제대로 들어갔다.”
주먹을 불끈 쥐며 검과 방패를 고쳐 드는 레이의 힘찬 음성. 반면 그 옆에서 새 창 하나를 더 꺼내들고 그쪽으로 향하는 케이의 표정은 그처럼 밝지 못했다.
“목을 노렸는데…….”
아직 스킬의 등급이 낮아서일까. 아니면 그의 실력이 부족한 탓일까.
어쨌든 빗나가긴 했어도 맞추긴 했으니 다행이었다. 동생이 맞추는데 형이 못 맞추면 얼마나 무안한 일인지 그동안 충분히 겪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레이가 처음부터 받았던 스킬인 ‘여유로움’이라는 것이 행동이나 전투 전반에 걸쳐 좋은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았다.
‘여유로움이 생겨 좀 더 상황에 집중할 수 있다.’라는 짧은 설명뿐인 패시브 스킬이지만 그동안 보아 온 것으로는 무척 괜찮은 스킬 같았다.
레이는 현재 전형적인 전투 계열의 능력치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케이에게는 레이의 능력치 분배에 대한 권한이 없이 그저 구경할 수 있는 자격만 주어져 있기에 그것을 참으며 케이의 능력치를 좀 더 공격 쪽에 알맞도록 분배하는 중이었다.
모래 언덕 중반쯤에 처박혀 온몸을 퍼덕이던 사막 대머리 독수리는 부러진 한쪽 날개와 몸에 박힌 창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비명만 내지르고 있었다.
녀석을 처음 사냥에 성공한 것은 둘의 레벨이 10대 중반 무렵에 이르렀을 때였다.
당시엔 50퍼센트도 되지 않은 투창의 명중률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이젠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척척 떨어뜨리고 있었다.
“훅!”
푸직!
뒤늦게 몸을 일으켜 보려 애를 쓰던 녀석은 한쪽 다리마저 부러진 상태라 그저 버둥거리기만 할 뿐, 레이가 주저 없이 검으로 목을 내리치자 검붉은 피가 울컥 솟구쳤다.
“흠.”
뒤에서 혹시나 발악할까 창을 겨누고 있던 케이는 쉽게 사냥에 성공한 것에 흡족한 얼굴로 끄덕였다.
피투성이였던 둘은 어느새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15레벨의 사막 대머리 독수리 정도는 휴식 대신으로 삼을 만큼 만만해져 버렸다.
“다음은 어디로 가지?”
“새끼 전갈들 밟으러 가야 하나.”
레이의 물음에 다시금 지도를 본 케이는 근처에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가자고 말하려다 문득 동작을 멈추고 입 앞에 검지를 세워 들었다.
“……?”
고개를 갸웃하던 레이 역시 검으로 독수리의 뼈와 살을 발라내던 것을 멈추고 케이가 향하는 곳을 보았다.
“소리가 들렸다.”
낮게 말한 케이는 가죽 지도를 품에 넣은 뒤 옆에 놓아두었던 창을 주워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가벼운 모래 바람이 콧등을 간질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긴 곳은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모래 언덕. 그곳의 정상에 오르기 직전 몸을 엎드린 케이가 낮은 포복을 시작하자 레이 역시 똑같은 자세로 그를 따라했다.
“뭐가…….”
“쉿.”
물어보려는 레이를 제지한 케이의 손가락이 그 너머 한 곳을 향하고 있었고, 그곳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엄마 했는데. 우윅, 구윅. ……얼른 돌아……가야지……. 우윅, 구윅.”
이상한 소리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분명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말하는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새끼 오크라는 것이었다.
“어쩔 거야?”
레이의 물음은 사냥의 여부였다.
눈에 보이는 새끼 오크의 레벨은 고작 10. 보통의 인간보다는 몸집이 조금 크긴 하나 게임 사이트에서 보았던 보통의 오크에 비하면 역시 새끼 수준이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사냥하고도 남을 정도의 몹이지만 케이는 엎드린 채로 무언가를 궁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표정은 전략을 구상할 때 보여 왔던 것이기에 레이는 새끼 오크 하나를 두고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느냐는 얼굴이었다.
“길을 잃은 건가.”
새끼 오크는 앞으로 몇 걸음 가나 싶더니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몇 걸음, 또 방향을 틀고 또 틀고……. 결국 제자리를 빙빙 돌며 어서 가야 한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케이는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이 근처에서 우리가 가 보지 못한 곳이 북동쪽. 그치?”
“응.”
케이는 가죽 지도에 표시된 근처 몬스터들의 분포와 레벨 수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오크는 그냥 생성되는 몬스터가 아니다. 집단생활을 하는 놈들이니 분명히 어딘가에 부락이 있을 것이었다.
그의 판단대로라면 그들이 가 보지 못한 북동쪽 어딘가에 오크들의 아지트가 있을 터.
“저 녀석은 그대로 두고 멀리 돌아서 가 보자.”
“오크면 집단 몹일 텐데 우리 둘로 될까?”
약간은 저어하는 레이에게 씨익 웃어 보인 케이는 먼저 언덕을 내려갔다.
“강하면 강할수록, 또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둘은 레벨이 올라 동작 속도도 꽤 빨라져 있었다. 적응력도 높아져서 그렇게 애먹었던 모래사막도 이젠 두어 시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30분이면 될 정도로 적응된 상태였다.
케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막에 정이 들면 안 된다.’를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