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3)/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에 기분이 상했는지 불량배는 승균의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려 거칠게 소리쳤다.
“이런 개자식이 날 무시해!”
다짜고짜 휘두른 불량배의 주먹에 맞은 승균은 잠시 비틀거렸다.
그러곤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른 불량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승균의 주먹이 불량배의 얼굴에 정통으로 작렬하였다.
사실 평소였다면 싸움을 피했을 승균이다.
하지만 수연에게서 이혼 통보를 받고, 또 그녀에게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상태라 거리낄 것이 없어진 것이다.
비록 취하지는 않았지만, 술까지 들어간 탓에 감각 또한 평소와는 달랐다.
그로 인해 후계자 수업을 받을 당시 배웠던 호신술이 지금 이 순간, 여지없이 발휘된 것이었다.
사실 재벌들은 안전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경호원들에서부터 최첨단 테크놀러지가 결합된 가드 머신까지.
하지만 그와 함께 스스로의 무력을 늘리려는 노력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특징은 동양의 재벌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이나 나라의 2/3이 바다로 가라앉은 일본, 그리고 이 두 나라와 더불어 아시아의 강국 중 한 곳인 대한민국이 바로 그러했다.
첨단 무기나 경호원들보다 개인의 무력을 키우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 대해서도 각 나라별로 차이가 있었다.
일본 같은 경우, 첨단 로봇 공학을 이용한 인체 개조를 통해 인류의 꿈인 장수(長壽)와 무력을 한데 가지는 방법을 택하였다.
혹독한 수련 없이 너무도 쉽게 강력한 무력을 가지는 것이라 미국 등 유럽의 부자들도 최근 일본의 방식을 따르려 했다.
하지만 중국이나 대한민국 같은 경우는 달랐다.
이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무술을 익힘으로써 자신들의 안전과 장수라는 꿈을 취하려 하였다.
물론 이는 그저 바람에 불과할 뿐이었다.
고대 무예의 맥이 끊긴 탓에 형(形)만이 남은 이유에서였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무력은 얻을 수 있지만, 인체 개조로 인한 무력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물론 일부 재벌들은 제대로 맥을 이은 무예를 수련해 그에 못지않은 무력을 얻은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 중 한 곳이 바로 승균의 집안이었다.
당연히 승균도 어린 시절에 스승을 들여 무술을 배웠다.
수연과 결혼을 하면서 무술 수련을 중단하긴 했지만 눈앞의 불량배들을 상대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 시비를 걸어 온 불량배는 승균의 반격에 바로 바닥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불량배들은 자신의 동료가 쓰러지자 일제히 달려들었다.
상대의 무력을 판단하지 못하고 수적 우위를 믿은 탓이었다.
체계가 잡힌 조직원이라면 승균의 무력이 상당하다는 것에 의심을 품고 망설였을 테지만 이들은 그저 양아치에 불과한 존재.
그랬기에 이들은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었다.
승균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불량배를 향해 오른발을 휘둘렀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승균은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가장 적합한 조치를 취했다.
여러 명과 싸움을 할 때는 발을 높이 들어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대로 허리 이상으로 올리지 않고 남자의 가장 약한 부위인 낭심으로 발을 뻗었다.
“헉!”
너무도 빠른 승균의 발차기에 낭심을 걷어차인 불량배는 끊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또 한 명을 쓰러뜨린 승균은 다음 상대를 찾아 신속히 공격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상대가 6명이나 되다 보니 승균은 미처 다 막아 내지 못하고 하나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무리 무술을 배운 승균이지만 상대가 워낙 많은 탓이었다.
물론 승균은 급소를 공격하여 한 방에 한 명씩 상대를 줄여 갔다.
이윽고 공원에 서 있는 것은 승균 뿐이었다.
6명의 불량배는 승균에게 당해 바닥에 쓰러졌고, 2명은 겁에 질려 도망쳐 버렸다.
하지만 승균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오랫 동안 무예를 수련하지 않은 탓에 8명과 한꺼번에 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정신없이 휘둘러지는 주먹과 발길질 속에서 술까지 마신 터라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것이다.
다만, 알콜의 작용으로 인해 감각이 무뎌져 아직까지 쓰러지지 않은 것뿐이었다.
아마도 승균은 술기운에서 깨어난다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2. 홀로서기
가정법원 앞.
승균과 수연은 모든 이혼 수속을 마치고 6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을 맺었다.
한때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뜨겁게 사랑을 나누던 사이지만 이제는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사실 두 사람 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고단한 삶이 이들의 행복을 갈라놓은 것뿐이다.
상대의 행복을 위해 붙잡는 것을 포기한 사람.
그리고 상대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채 사랑의 결실까지 버리고 떠나는 사람.
입구까지 나오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그렇게 법원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두 사람이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당신부터 말하세요.”
“아니, 당신이 먼저 말해.”
“그럼 저부터 이야기할게요. 당신에게는 정말로 미안해요. 다른 말은 하지 않을게요. 승연이를 잘 부탁드려요.”
“그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날 만나 지금껏 고생시킨 것, 정말 미안해. 그리고 잘살아…….”
두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동안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와 멈춰 섰다.
스르르 내려가는 운전석 창.
그리고 언젠가 수연이 애인이라 말하던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김영민.
수연의 소속사 사장이었다.
승균은 그를 수연의 재혼 상대로 알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을 보게 되자 바로 얼굴빛이 굳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수연 씨. 수속은 이제 모두 끝을 냈나요?”
“예. 그만 가요.”
수연은 이 자리에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바로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그러자 영민은 인도에 서 있는 승균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바로 차를 몰았다.
이미 모든 것을 내던진 상태이기는 하지만, 수연이 자신의 애인(?)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자 승균은 다시금 아픔이 밀려왔다.
수연이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는 것이 정말로 야속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흔히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말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승균은 수연에 대한 모든 것을 떨쳐 내야만 한다는, 이 믿지 못할 현실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한편, 승균을 뒤로한 채 차에 탄 수연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잠시 곁눈질로 그런 수연을 훔쳐보던 영민은 차가운 얼굴로 말없이 운전만 하였다.
이제는 수연이 혼자가 되었으니 계약자을 맺은 사람으로만 대우할 뿐이었다.
처음 캐스팅할 당시, 이혼을 종용한 것이나 수연의 애인 역할을 했던 것은 이 시간부로 끝이었다.
이제 그녀는 YM엔터테인먼트의 한 연기자일 뿐이었다.
수연은 모르겠지만, 사실 우연히 그녀를 발견한 영민은 이미 MS 그룹의 회장과 이야기가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MS 그룹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국내 연예 기획 사업은 물론이고, 국외까지 이름을 떨치는 MS 그룹.
물론 그들도 초기 설립될 때는 작고 보잘것없었다.
이만수 사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립할 당시만 하여도 여느 연예 기획사와 다를 것이 별반 없던 것이다.
하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설립 초반부터 스타를 길러 내며 순식간에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며 대한민국 연예계에 자리를 매겼다.
물론 MS 그룹에게 위기도 있었다.
이만수 사장을 대신하여 회사를 운영하던 전문 경영인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소속 연예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계약을 강요한 탓에 한때 돈만 아는 경영인, 소속 연예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고용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이다.
또 내부 인사들의 담합으로 인해 경영권을 내놓고 유명무실한 위치에 처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만수 사장은 그런 위기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한순간도 놓지 않고 신인을 발굴하여 대스타를 만들어 냈다.
시대의 트랜드인 소년시대, 슈퍼돌스, 동방신인 등 많은 스타들을 길러 내며 연예계에 우뚝 선 것이다.
그렇게 입지를 굳힌 이만수 사장은 그에 멈추지 않고 전문 연기자를 육성하는 분야에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갔다.
하지만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MS 그룹도 대변혁의 시기와 함께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위기에 MS 그룹도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이때 혜성과도 같이 등장해 그룹의 위기를 벗어나게 만든 이가 바로 2세 경영인인 이제황 회장이었다.
이만수의 아들인 이제황 회장은 스타 육성을 전문 트레이너에게 맡기고 사업의 영역을 넓혀 갔다.
이전 연예 기획사에 머물던 것에서 탈피하여 사업 영역을 넓혔는데, 그중에는 기존의 사업과 연관이 있는 미디어, 그리고 전혀 생소한 분야인 주류업, 유통업 등도 있었다.
하지만 신의 장난인지,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이루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제황이라는 이름에 빗대어 그를 미다스라 부르기 시작했다.
고대 크레타의 왕이었던 미다스는 손으로 만진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한다는 전설을 가진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