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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별명 때문이었을까?
미다스가 사랑하는 딸을 손으로 만져 황금상으로 만든 것처럼 MS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이제황도 장남을 잃어야만 하였다.
자신이 거느린 기획사의 신인 연기자였던 수연과 사장으로 있던 승균이 눈이 맞은 것이었다.
이제황 회장은 헤어지라 종용하였지만, 승균은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그녀와 결혼을 했던 것이었다.
이후 수연은 연예계에서 모습을 감추었는데, 우연히 영민의 눈에 띈 것이었다.
영세 기획사 수준을 겨우 넘긴 YM엔터테인먼트로서는 그런 관계를 잘만 이용하면 연예계에 제대로 안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아 수연을 유혹하여 승균과 이혼을 시킨 것이었다.
이미 영민은 승균에 대하여 모든 조사를 마친 상태에서 철저하게 계획을 꾸민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민은 이제황 회장에게 연락을 하여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영민의 생각대로 MS엔터테인먼트의 이제황 회장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영민의 계획에 동의하며 묵인하며, 한편으로는 만약 계획이 성공하면 YM엔터테인먼트의 소속 연예인들을 MS미디어가 제작하는 프로에 고정으로 출연을 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던 것이다.
영민은 계획대로 수연이 승균과 이혼을 하게 되자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기에 수연 자체의 가치보다는 이제황 회장과의 거래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수연이 스타가 될지는 이제 모두 그녀가 하기 나름이었다.
“이젠 수연 씨도 남들처럼 폼 나게 살아 봐야죠. 예전의 연기자였을 때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영민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수연을 위로하였다.
참으로 악어의 눈물과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수연의 귀에는 지금 영민의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승균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모질게 마음먹고 이혼과 자식까지 버렸다.
그런데 법원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나오자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절실히 느껴졌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행복을 느꼈던 집.
이제 그곳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자 모든 것이 막막하였다.
멍해 있는 수연의 모습에 영민은 조금 양심의 가책을 받기는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살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떠올리고는 미안한 감정을 바로 털어냈다.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시작하자고. 그동안 연기에 대하여 많은 부분 잊어버렸을 테니 다시 트레이닝을 받다 보면 기억이 날 거야.”
영민은 수연을 숙소에 데려다 주고는 곧장 회사로 향했다.
이제황 회장에게 결과를 보고한 영민은 뭔가 좋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삶이란 먼저 알고 있는 놈이 모르는 놈을 이용을 하는 것이야.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이제황 회장이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 어쩌면 이게 더 나은 일이겠지.’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인지 김영민 사장은 자신으로 인해 수연이 큰 고초를 넘겼다며 애써 위안을 하였다.
*
*
*
수연과의 결혼 생활을 공식적으로 끝냈다.
집으로 돌아온 승균을 맞이한 것은 텅 빈 공간뿐이었다.
승연을 이웃집에 잠시 맡겨 두고 가정법원에 다녀온 것이라 비어 버린 집 안을 바라보는 승균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하였다.
‘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녀 없이 내가 승연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승균은 수연이 떠나간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텅 빈 거실에서 홀로 앉아 멍하니 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 승균.
어제와 다른 것은 이혼을 했다는 사실뿐인데, 승균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집도 곧 비워 주어야만 하였다.
이혼으로 재산 분할을 해야 하기에 이 집도 처분을 하게 되었다.
승균이 갖은 고생을 해 가여 장만한 집이지만, 이제 더 이상 그녀가 없기에 미련없이 처분을 하려는 것이었다.
사실 수연은 아들 승연도 있고 하여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 대신에 아들 승연을 잘 키워 달라는 부탁만 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새 출발을 하는 그녀에게 부담을 떠안기고 싶은 생각이 없는 승균은 법대로 재산의 반을 그녀에게 주겠다 하였다.
그리고 승균이 이러한 계산에는 철두철미하다는 것을 잘 아는 수연은 그저 자신의 뜻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자신만 희생하면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독하게 마음먹고 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비록 자신이 의도하기는 했지만, 헤어지는 때도 선을 긋듯이 냉정하게 계산하는 남편이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집도 이젠 한 달 후면 다른 사람의 명의로 넘어갈 것이었다.
3년간 보금자리였던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 승균은 조금은 불안하였다.
처음 집을 나왔을 때는 그래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한데 이제는 그때처럼 젊지도 않고, 고단한 삶에 찌들어 패기도 많이 잃었다.
승연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조금은 부담감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 엄마 없이 홀로 커야 할 승연에 대한 걱정이 컸다.
아직 겨우 5살인 승연이 어떻게 적응을 할지 그것이 무엇보다 걱정이었다.
자신이야 그래도 이별에 익숙한 어른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들 승연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나이이기에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마음을 다잡은 승균은 이웃에 맡긴 승연을 집으로 데려왔다.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5살인 승연은 이제는 이제 엄마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듯하였다.
그런 아이답지 않은 승연의 모습에 더욱 서글퍼진 승균은 자신도 모르게 승연을 품에 않고 오열했다.
“승연아, 아빠가 못나 미안하구나. 미안해. 정말 미안해!”
“…….”
자신을 끌어안은 채 울고 있는 승균의 모습에도 승연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절대 5살의 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표정.
하지만 승균은 그런 승연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승균은 한참을 오열한 끝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승연을 데리고 외식을 하러 나섰다.
너무 침울해진 분위기를 느끼고 승연의 기분 전환을 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수연이 떠난 자리를 대신이라도 하듯 식사하는 내내 승균은 승연에게 열심히 말을 하고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도무지 웃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승연의 모습에 승균은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도 침착하고 담담한 모습에 귀엽던 아이가 마치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자연 앞으로 어떻게 키워 나가야 할지 너무도 고민이 되었다.
사랑하던 사람과의 결실이 아닌가.
잘 키워 달라던 수연의 마지막 부탁을 어떻게든 들어주고 싶은데…….
승연의 반응이 마냥 걱정인 승균이었다.
*
*
*
“승연아, 아빠 일 다녀올게. 잘 놀고 있어.”
이른 아침, 승균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면접을 보러 가는 중이었다.
우연히 사무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된 승균은 주저없이 지원을 했다.
그동안 새벽이 되면 매일같이 나가던 인력시장에 발길을 끊고 백호 PMC에 서류를 제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1차 서류 전형이 통과되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에 발걸음을 서두르는 중이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해 보니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면접은 오전 10시부터였다.
면접이 시작된 지 10분 정도 지났지만, 다행히 승균의 접수 번호는 뒤에 있어 아직 차례가 오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31번부터 35번까지 들어오세요.”
잠시 후, 사무실 안에서 비서로 보이는 여성이 나와 번호를 부르며 일단의 사람들을 안으로 데려갔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면접관들은 다들 덩치가 우람하고 눈이 부리부리했다.
이윽고 30여 분이 지나자 승균의 차례가 되었다.
면접실 안으로 들어선 승균은 날렵하게 생긴 남자의 정면에 서게 되었다.
다른 면접관에 비해 조금 왜소해 보이기는 하지만 대신 무척이나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한 마디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승균이 직장 생활을 할 때의 경험으로 보아 아무래도 자신의 앞에 있는 이가 가장 직급이 높아 보였다.
비록 민간 군사 기업(PMC)이기는 하지만 행정 부문 직원도 뽑기에 승균이 지원을 한 것이었다.
승균의 양옆에는 일반 용병 지원을 한 것인지, 다들 인상이 험악하고 덩치도 대단하였다.
그 틈에 서 있으니 자꾸 위축이 되는 승균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지원한 부서가 다르다는 생각에, 그리고 한때 이런 이들을 거느려 본 적도 있기에 승균은 금방 안정을 찾았다.
면접관들이 하나둘 질문을 하고 마침내 승균의 차례가 되었다.
“MS 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군요. 그런 뛰어난 재원이 무슨 일로 저희 같은 작은 기업에 지원을 하셨습니까?”
어떻게 들으면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에 대한 비하가 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사실 승균이 사장으로 있던 MS엔터테인먼트에 비하면 백호 PMC는 작은 기업이긴 하였다.
승균은 남자가 어떤 의미로 그런 질문을 하였는지는 생각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하였다.
“제가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된 것은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 서입니다.”
“저희 회사가 가장 적합하다라…… 어떤 점에서 적합하다는 것이지요?”
“전 얼마 전에 이혼을 하여 어린 아들을 오랜 시간 홀로 두고 일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백호 PMC의 근무 시간이 오전 10시 출근에 오후 5시 30분에 퇴근이고, 주 5일 근무로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행정 업무를 보는 부서는 업무를 마치고 나면 일찍 퇴근해도 상관이 없다고 하여 제게는 아주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에 지원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일하기 싫은데 업무가 별로 없어 보여 지원을 했다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런 부끄럼 없이 자신의 상황을 떳떳이 밝히고 자신있게 대답을 하는 터라 면접관은 승균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213번, 질문하겠습니다. 귀하는…….”
질문이 승균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넘어가며 면접은 계속 이어졌다.
잠시 뒤, 카리스마 있어 보이던 남자가 면접이 끝났음을 알렸다.
“……211번부터 215번까지 면접이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에 대한 합격 여부는 추후 개별 통지를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고 밖으로 나가 면접비를 받아 귀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음 분들 들여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