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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승균은 무척이나 바빴다.
승연을 챙겨 아침을 먹이고 유아원에 등교를 시키고 나니 벌써 출근 시간이었다.
무사히 백호 PMC에 입사하게 된 승균은 이번 달까지는 오전 10시까지 출근하는 것으로 계약을 하였다.
다만 우선 1년간이라는 제한을 두고 계약을 하였는데, 이는 승균의 나이가 어느 정도 있다 보니 그렇게 한 것이다.
32살의 늦은 나이로 입사를 하다 보니 정식 직원이 아니라 계약직으로서 입사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전 직장의 경력을 인정을 해 주어서 승균의 직책은 주임이었다.
예전 사장이라는 직책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낮은 지위이지만, 정식 직원이 아니기에 그 이상의 직급을 주기도 어정쩡했다.
회사에 도착한 승균은 자신이 근무할 총무부 입구에서 기합을 넣으며 새롭게 마음을 다진 후 안으로 들어가 힘차게 인사를 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승균의 큰 소리에 몇 되지 않는 총무부 직원들은 다들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낯선 이의 인사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새 직원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승균을 반가이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같이 일하게 되어 반가워요. 전 김태연 과장이라고 해요.”
총무부 과장이라고 소개하며 다가온 여인을 쳐다보던 승균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바로 자신이 면접을 볼 때 안내를 해 준 여인이었다.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은 나이에 과장이라는 직책을 가졌다는 것에 놀라며 승균은 그녀가 능력이 뛰어난가 보다 생각을 하였다.
승균이 보기에는 그녀는 겨우 20대 초반에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 무척이나 귀여운 얼굴이었다.
“아, 예. 오늘부터 이곳에 근무하게 된 이승균이라고 합니다.”
“예, 알고 있어요. 전에 MS엔터테인먼트에 근무하셨다고요. 그런데…… 왜?”
태연이 대그룹의 계열사에 근무했으면서 왜 자신들과 같은 중소기업에 들어오게 되었느냐는 뉘앙스로 물어오자 승균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사랑 때문에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집을 뛰쳐나왔는데, 지금은 이혼을 하여 5살의 어린 자식만 남게 되었다.
다시금 수연에 대한 원망이 떠오르자 승균은 잠시 인상을 구기다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 냈다.
이곳은 이제부터 자신이 근무할 새로운 직장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월급을 받아야만 아들 승연과 행복을 영유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각오와 함께 이미 떠나 버린 수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며 태연의 질문에 씁쓸한 미소로 답을 하였다.
그런 승균의 모습에 태연은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으로 판단을 하고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부장님, 이승균 씨 데려왔습니다.”
“아, 승균 씨 출근이 오늘이었지. 어서 와요. 전의 회사에서 보던 업무와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장은 이미 이력 사항을 살펴보았기에 승균의 전 직장이나 그가 그곳에서 맡아 하던 일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곳 백호 PMC보다 훨씬 규모가 큰 회사인 MS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었던 승균.
하지만 이제는 엄연히 자신의 부하 직원이었다.
그렇기에 미리 그에 대한 점을 짚은 것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잘 가르쳐 주십시오.”
“좋아요. 김태연 과장, 새로운 식구도 들어왔으니 우리 오랜만에 총무부 단합 대회나 가질까요?”
부장의 제안에 태연은 얼른 대답을 하였다.
“그거 좋죠. 단합 대회 한 지도 한참은 된 것 같은데, 마침 새 식구가 들어왔으니 환영회 겸 단합 대회를 하는 것도 좋죠.”
어려 보이는 얼굴과 달리 마치 아줌마와도 같은 말투로 태연이 부장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부장에게 인사를 시킨 태연은 승균과 함께 부장실을 나와 자신의 옆자리에 있는 빈 책상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승균 씨 책상은 저곳을 쓰세요. 그리고 승균 씨의 직급은 주임이라는 것을 이미 들으셨죠?”
“예.”
“그럼 절 많이 도와주세요. 참, 여러분, 오늘부터 저희 총무부의 새로운 식구가 한 명 들어왔습니다. 전에 MS 그룹 계열사에 다니시던 분인데, 이번에 저희 회사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직급은 주임이니 잘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퇴근 후에 약속들 잡지 마세요. 오늘 퇴근하고 이승균 씨 환영회 겸 총무부 단합 대회가 있으니 모두들 참석해 주시기 바라요. 아셨죠?”
“예!”
“와! 간만의 회식이네요!”
“우리, 비싼 거 먹으러 가요!”
태연의 말에 3명의 직원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좋아하였다.
총무부에는 승균이 오기 전까지 5명이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부장 1명, 과장 1명, 대리 1명, 그리고 평사원 2명.
그런데 이번 회기에 들어 백호 PMC가 급격히 사세를 넓히느라 총무부의 일이 너무도 가중된 상태였다.
늘어나는 일감과 갑자기 불어난 직원들의 급여를 계산하는 둥 피로가 누적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에 직원―용병―을 모집하면서 사무직을 함께 구인했다.
그런 이유로 승균은 마침 좋은 조건으로 백호 PMC와 계약을 할 수가 있었다.
또한 승균이 파악한 업무는 그리 어려운 내용이 없었다.
백호 PMC는 말 그대로 민간 군사 기업이라 용병들에게 나가는 인건비에 대한 계산이 총무부 업무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승균은 예전 MS엔터테인먼트에서 사장으로 있을 때도 비슷한 업무를 많이 살폈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각종 지원비나 계약에 대한 서류를 보아왔기에 그로서는 쉽다면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가끔씩 서류에서 승균이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용병들이 쓰는 물건의 이름들이었다.


3. 사고



승균이 수연과 이혼을 한 지도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백호 PMC의 총무부는 5개월 전, 단 한 명이 부서로 들어왔지만 2, 3명이 충원된 다른 부서보다 더욱 편안하게 업무를 처리해 나갔다.
승균의 업무 처리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정확하고 빨랐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들의 퇴근 시간은 승균이 총무부에 들어오기 전보다 30분가량 짧아졌다.
사실 총무부는 예산을 집행하는 부서이다 보니 퇴근이 늦어지는 것은 예사고, 툭하면 야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승균이 들어오고부터는 오후 5시 30분가 되면 업무가 마무리될 정도였다.
승균은 입사를 할 당시, 아들을 돌보기 위해 업무량을 끝마치면 바로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래서 승균은 평상시에도 자신이 처리할 업무 외에도 관련 서류를 미리미리 처리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동료들도 승균의 덕을 보게 된 것이었다.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장치처럼 회사란 조직은 어느 하나가 삐걱거리면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다.
한데 승균이 다른 직원들이 처리하는 일에 대하여 파악하고 업무 협조를 원활하게 하였기에 다른 직원들도 예전처럼 특근이나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 전 이만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승균은 자신의 업무가 끝나자 태연에게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서려 했다.
첫 출근날 회식 자리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과장인 태연은 승균의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물론 32살인 승균보다 어리기는 하였지만, 저 얼굴을 하고 30살이라는 말에 승균은 처음에 깜짝 놀랐다.
그런 승균의 모습에 다른 직원들도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며 동질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무튼 다른 동료들에게도 인사를 한 승균은 옷을 챙겨 입고 회사를 나섰다.
이른 시간에 먼저 퇴근하는 승균의 다른 직원들은 전혀 불만이 없었다.
지난 5개월간의 경험을 통해 이미 그가 맡은 업무를 모두 끝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총무부 직원들도 승균이 넘겨준 자료를 검토하며 작업을 마무리하며 퇴근을 서둘렀다.
이번 달에는 시베리아에 파견 나간 직원들에 대한 보급품 지원과 보충 인원에 대한 예산을 산정하는 업무가 주요 사안이었는데, 이것이 무척이나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그중 승균은 보급품에 대한 예산만 계산하면 되었다.
하여 회사 창고에 남은 재고와 신규로 구입해야 하는 물품들에 대한 파악을 끝내고 태연에게 자료를 넘겼다.
그리고 오늘 부장의 승인이 떨어져 직원 한 명과 함께 협력 업체에 나가 신규 물품의 구입을 끝마치고 퇴근을 한 것이었다.
남은 직원들도 이제 승균이 넘겨준 서류를 바탕으로 시베리아의 현장에 어느 정도의 지원 병력을 보낼 것인지만 정하면 되었다.
보통은 지원병의 규모를 정하고 난 뒤 지원 물품을 구입해 함께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악화되어 먼저 보급품을 먼저 보내고 지원병은 그 뒤에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그만큼 백호 PMC가 담당하고 있는 시베리아 현장의 상황은 심각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습격에 물자가 대부분 소모되어 제대로 방어를 하지 못하는 형편인 것이다.
하여 조속한 물자 보급을 요청하는 급전이 날아온 것이었다.
결국 승균의 빠른 일처리에 보급품 구입이 마무리되자 김태연 과장과 다른 직원들은 얼른 서류를 처리하고 부장에게 보고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