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6)/


*
*
*

한편, 일찍 퇴근을 한 승균은 승연이 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다른 때보다 일찍 퇴근한 승균은 오랜만에 승연과 놀이동산에 갈 계획이었다.
“승연아, 아빠 왔다.”
유치원에 도착한 승균은 의자에 앉아 있는 승연을 불렀다.
이제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였는지 자신을 부르는 승균에게 밝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승연이었다.
그 모습에 승균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수연과 이혼을 했을 당시, 승연의 무표정한 모습에 얼마나 안타까움을 느꼈던가.
밝게만 자라 오던 승연이 더 이상 엄마와 같이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빤히 보였던 것이다.
떠나는 엄마의 모습에서 아마도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그때의 충격도 이제는 어느 정도 완화된 터였다.
또한 승균이 그런 자신을 위해 더욱 많은 시간을 희생한다는 것을 어린 승연도 잘 알고 있었다.
유치원의 다른 친구들은 일과 시간이 끝나면 엄마나 아니면 부모가 함께 데리러 오곤 했다.
그중 아빠 혼자서 데리러 오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그런 일은 몇 번 없었다.
이미 정식적으로 성숙해져 버린 승연은 승균이 언제나 자신과 함께하려 한다는 노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승균이 절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과 함께 아빠마저 사라져 버리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다른 때보다 일찍 아빠가 오자 승연은 너무도 기뻤다.
“아빠!”
승균은 자신의 품에 안긴 승연을 번쩍 들어 돌리며 미리 준비했던 선물(?)을 제안했다.
“승연아, 우리 오랜만에 놀이동산에 놀러 갈까?”
“정말?”
“그래. 우리 승연이가 좋아하는 너구리 월드에 놀러 가자.”
“야호! 우리 아빠 최고!”
노란색 병아리 유치원복을 입고 좋아서 방방 뛰는 아들의 모습에 승균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승균과 승연이 유치원을 나와 너구리월드로 향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너무도 차가운 눈빛을 한 이는 얼른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민식이냐? 나 태혼데, 예전에 공원에서 우리를 두들겨 팼던 놈 있지? 그놈 봤다.”
태호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자신이 본 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승균이 홀로 공원에서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은 불량배들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엉망으로 당한 그들은 그 뒤로 어떻게든 복수를 하기 위해 승균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미 승균이 이사를 한 뒤였기에 그들은 이후 승균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태호가 친구를 만나러 다른 지역에 왔다가 승균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태호는 그룹의 리더인 민식에게 곧장 전화를 했다.

*
*
*

아지트인 공원에 친구들과 모여 있던 민식은 어제 멋모르고 근처를 배회하던 데이트족에게 돈을 뜯어내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이런 우범지대에 나온 그들이 잘못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저 우연히 생긴 부수입을 어떻게 쓸 것인지만을 즐겁게 고민했다.
뭐,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여자를 협박하니 자신들이 놀 만한 유흥비 정도는 마련되었다.
동네 양아치들이다 보니 유흥비라 해 봐야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리더인 민식의 휴대폰에 벨이 울렸다.
그대가 보고 싶은데∼ 그대가 보고 싶은데∼
틱.
민식은 자신의 휴대폰 액정을 보고 패거리 중 한 명인 태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을 확인했다.
“무슨 일이냐,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던 태호의 전화에 민식은 별 생각 없이 평소대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태호가 알려 온 소식은 민식이 그렇게나 기다리던 이야기였다.
생각만 하여도 이가 갈리는 그때의 일이 다시금 생각나 민식은 이를 악물었다.
“그 새끼를 봤단 말이지? 그래, 내가 그런 굴욕을 당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뒤를 쫓아가서 어디로 가는지 꼭 알아내라! 알았지! 그리고 목적지 알아내면 전화하고!”
통화를 끝낸 민식의 두 눈은 분노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제껏 이 근방에서 자신들을 그렇게나 죽사발로 만들어 놓은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이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행세하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 온 민식 패거리였다.
그날도 술 취한 승균을 상대로 한탕하려다 오히려 박살이 나 버린 것이었다.
이후 승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단단히 벼르던 참.
한데 아무리 찾아다녀도 안 보이더니 이제야 겨우 꼬리를 잡은 것이었다.

*
*
*

승균은 오랜만에 승연과 함께 놀이동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해가 저문 뒤.
주변이 어두컴컴한 가운데 드문드문 가로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승균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저녁은 이미 놀이동산에서 해결을 하였고, 간만에 너무 놀아 피곤했는지 승연은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승균은 잠이 든 승연이 깨지 않게 안전벨트를 채워 주고 조심스레 운전을 하는데, 주위로 바이크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주변을 둘러싼 바이크들은 부딪칠 듯 승균을 위협하더니, 급기야 몽둥이와 파이프 등을 꺼내 차를 두들기기 시작하였다.
대변혁 이후,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도로에 설치된 가로등을 대폭 줄였다.
그리고 고장이 난다 해도 고치지 않고 그냥 방치를 했다.
그런 탓에 현재 승균이 타고 있는 차가 폭주족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어도 이를 알아차리는 차량은 없었다.
아니, 주변에 다른 차들이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간간이 맞은편 차선에서 지나가는 차들이 보이긴 했다.
하지만 법과 질서가 무너져 내린 탓에 자신의 일이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 풍조로 인해 나서서 신고를 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폭주족들은 계속해서 승균이 타고 있는 차에 테러를 감행하였다.
승균은 이들을 떨쳐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최고 속도가 정부의 규제로 인해 시속 60㎞이상을 내지 못하는 승균의 차였다.
반면, 불법 개조를 했는지 그 이상의 속도를 내는 폭주족의 바이크들은 거침이 없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이 깬 승연은 험악한 분위기에 잔뜩 겁에 질려 버렸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오직 아들인 승연이뿐이다.
한데 그런 승연이 겁에 질린 모습에 승균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순간, 독하게 마음을 먹은 승균은 자신을 둘러싼 폭주족들의 바이크에 차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을 떨쳐 내려던 생각을 고쳐 과감하게 그들을 위협하기로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승균이 과감하게 바이크 옆으로 붙자 폭주족들은 위협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이었다.
뒤로 물러났던 폭주족들이 다시 중심을 잡고 차로 다가와 두드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승균은 차를 가까이 대 위협하고 다시 폭주족이 물러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서로 신경전을 벌이다 보니 승균과 폭주족들은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못했다.
오래 방치된 도로라 군데군데 파손이 된 구간이 있다는 것을 깜박하고 만 것이다.
방심의 대가는 컸다.
먼저 승균의 차 앞으로 나아가던 폭주족이 무언가에 걸린 듯 중심을 잡지 못하고 도로 위를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승균 역시 피하지 못하고 쓰러진 바이크를 밟고 지나가며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승균의 자동차는 뒤집혀진 채 10m쯤을 나아간 뒤 멈춰 섰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른 폭주족들도 앞서 쓰러진 폭주족의 바이크를 피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만 것이었다.
자연 그들도 도로 바닥을 미끄러지며 이리저리 굴렀다.
한데 바이크 한 대가 뒤집힌 승균의 차 보조석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승균은 이미 차가 구른 충격에 정신을 잃은 뒤였다.
그리고 그것은 보조석에 있던 승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바이크는 보조석의 승연을 그대로 덮치고 말았다.
도로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던 폭주족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승균의 차로 다가왔다.
처음 넘어진 바이크의 운전자는 도로 옆으로 튕겨 나가 그리 큰 부상은 입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폭주족들 역시 도로에 미끄러지며 가벼운 화상과 타박상을 입은 정도였다.
하지만 거북이가 배를 드러내듯 뒤집힌 승균의 차는 척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새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폭주족들은 급히 바이크를 일으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민식아,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졌는데?”
“야, 저기 바이크나 꺼내 와. 얼른 자리를 뜬다.”
얼른 도망갈 생각에 민식은 다른 패거리들에게 어서 빨리 바이크를 꺼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말에 폭주족들은 얼른 달라붙어 보조석에 박혀 있는 바이크를 꺼냈다.
그리고 바이크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어린아이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실 이들은 승균에게 복수를 하려던 계획이 이렇게 크게 번질 줄은 몰랐다.
그저 승균에게 예전에 당한 것을 갚아 주기 위해 겁만 주려던 것이었는데, 설마 아이를 죽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에 폭주족들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른 바이크를 타더니 그 자리를 떠나갔다.
언제 누가 지금의 장면을 보고 신고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긴 해도 이런 사고를 누군가 본다면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사고자가 걱정되어 신고를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기에 신고를 하는 이유가 더 크지만 말이다.

폭주족들이 사고 현장을 떠난 지 얼마나 흘렀을까.
이내 작은 소형차 한 대가 사고 현장에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인영은 사고 현장을 확인하더니, 곧장 휴대폰을 꺼내 신고를 하였다.
“여보세요. 여긴 312국도 5구역 지점이거든요. 차량 전복 사고가 나서 신고를 하는 것이에요.”
신고를 끝낸 인영은 일단 멀쩡한 운전자부터 구조를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운전석 쪽으로 다가간 인영은 운전자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사고를 당한 이가 자신의 직장 동료였기 때문이다.
오늘 일찍 일을 끝내고 먼저 퇴근한 그가 이런 곳에서 사고를 당해 있는 것에 놀란 것이었다.
“이봐요! 이봐요, 승균 씨! 승균 씨!”
신고를 마친 운전자, 태연은 승균의 이름을 불렀다.
차가 뒤집혀 있는 상태에서 안전벨트가 걸려 있어 태연이 그를 꺼내기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렇게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아 태연은 일단 승균을 깨우기로 한 것이다.
그런 태연의 시도가 통했는지 이윽고 승균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