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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윽!”
“승균 씨, 정신이 들어요?”
“누, 누구…….”
가까스로 깨어난 승균은 자신이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기억나자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차가 뒤집혀 있는 상태라 무척이나 답답했던 것이었다.
정신을 차린 승균은 얼른 안전벨트를 풀고 옆자리를 확인하였다.
찰나, 자신의 옆에 타고 있던 아들 승연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승연아! 승연아! 정신 차려라, 승연아!”
승규은 옆자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얼른 보조석 문을 열어 승연을 끄집어내려 했다.
하지만 보조석 자리의 문은 바이크와 부딪쳐 찌그러진 상태라 잘 열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승균은 승연의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을 통해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승연의 모습은 무척이나 처참하였다.
팔 한쪽이 심하게 부러졌는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또 얼굴 한쪽은 약간 함몰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코와 입에서는 연신 피를 흘려 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숨소리도 무척이나 가늘게 이어지고 있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정도로 미약했다.
“승연아, 정신 차려라! 승연아!”
승균이 정신없이 이름을 부르며 깨우려 했지만 의식을 잃은 승연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승균은 정신이 없어 옆에 태연이 있다는 것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태연 역시 너무도 경황이 없어 보이는 승균의 모습에 뭐라 말을 붙이지 못하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태연의 신고로 출동한 구급차가 도착을 했다.
승균은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로 구급차에 올라 병원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렇게 그들을 순식간에 사고 현장을 떠나자 뒤늦게 경찰이 도착했다.
태연은 최초 신고자로서 자신이 본 것들을 설명하였다.
그런 뒤 경찰은 다시 병원에 실려 간 승균을 찾아가 사고 경위를 조사하였다.
승연의 부상으로 인해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승균은 당시의 상황을 두서없이 진술했다.
정신없는 승균의 진술 속에서 대략의 사건 정황을 파악한 경찰은 이번 사고를 낸 폭주족을 즉시 수배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승연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바이크와 충돌할 때 입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의학 기술이 발달하여 안면과 팔에 입은 골절은 쉽게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대변혁으로 인해 사회 기반 시설들이 무너진 터라 국가에서 실시하던 의료보험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였다.
국가에서 기간산업을 먼저 일으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예산을 기간산업 육성 쪽으로 돌려 버린 것이었다.
그러고는 건강보험을 사보험(私保險, Private insurance)으로 넘겨 버린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의료 해택은 사보험에 가입한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의사들은 병원에 이득이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하여 치료해 주는 서비스업 종사자로 전락했다.
병원에 채용되어 기술을 제공하는 기술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고귀한 직업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 의사라는 존재이다.
하지만 대변혁의 시기가 지나고 난 뒤, 그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 국민은 누구 하나 없었다.
돈이 없으면 병원 문턱도 밞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더 이상 의사란 존재는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너무도 높게 치솟은 병원비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 아니, 전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은 병원 한 번 찾아가는 게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변혁의 시기를 거치며 제반 많은 산업 시설들이 붕괴되고 파손되어 기본 생필품은 물론이고, 의약품들도 여전히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승균이 백호 PMC의 직원이고, 또 사고 신고자가 그곳의 과장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어 승균과 승연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승균이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신속한 응급처치로 겨우 생명을 건지기는 하였지만, 승연의 안면 골절 치료와 기타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무척이나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기반이 약산 승균으로서는 너무도 막막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4. 용병 지원
커다란 사무실 안.
백발의 노인이 홀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똑똑똑.
그리고 그 순간,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들어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위축되게 하는 위압감.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노인의 어조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잘 다듬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검정 슈트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샤프한 인상의 40대 남자였다.
그는 무언가 보고할 것이 있는지 손에는 서류를 들고 있왔다.
“무슨 일이지?”
“긴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남자는 MS 그룹 비서실 실장으로, 현재는 이제황 회장의 지시로 다른 업무를 살피고 있었다.
바로 회장 일가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일이었다.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데에는 승균의 사건이 크게 작용을 하였다.
사실 승균은 평소 MS 그룹과 트러블이 있던 JC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위해 정략결혼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승균이 당시 자신의 사장으로 있던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연예인과 전격적으로 결혼을 발표하며 정략결혼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 일로 MS 그룹은 많은 손해를 입었다.
당시 MS 그룹은 한창 성장세를 달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통의 강호인 JC 그룹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승균의 동생이 대신 정략결혼을 이어받아 일이 크게 틀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일로 인해 이제황 회장은 장남인 승균을 가문에서 축출하며 어떠한 도움이라도 주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런 뒤 자신의 오른팔이자 그룹 비서실장인 송기범에게 가문의 일원들에 대한 관리를 맡긴 것이었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 보고 때나 얼굴을 비추던 그가 지금 자신에게 특별히 보고할 것이 있다며 찾아온 것이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보고를 한다는 거지?”
“저…… 승균님과 승연 도련님께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제황 회장이 하던 일을 멈추고 쳐다보자 송기범 실장은 어젯밤 일어난 사고에 대하여 보고를 올렸다.
기범의 보고에 제황은 인상을 구기며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라는 듯 그를 주시하였다.
“어젯밤 7시 30분경, 312국도에서 자동차 전복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사 도중 단순한 운전 부주의에 의한 사고가 아닌, 누군가의 테러에 의한 사고로 밝혀졌습니다.”
“테러?”
“예. 전복된 자동차 여기저기에 둔기에 의한 파손된 흔적이 보이고, 결정적으로 보조석에 바이크와 부딪친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 현장 주변에는 부서진 바이크의 파편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습니다.”
기범의 보고에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던 제황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알아야 할 정도의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회장님.”
기범은 제황이 겨우 그 정도 보고를 하려고 바쁜 자신의 시간을 뺏었냐는 듯이 묻자 급하게 말을 이었다.
“다행히 승균님은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 그쳤지만, 승연 도련님은 지금 중태입니다. 빨리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합니다. 더군다나…….”
기범은 어제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며 승연의 부상 정도를 보고했다.
안면 골절과 갈비뼈 골절, 그리고 오른팔의 복합 골절 등 병원 진단서까지 첨부하여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송기범 실장의 자세한 보고에 그제야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한 이제황은 침음성을 냈다.
“음…….”
그런 회장의 모습에 송기범은 계속 보고를 이어 나갔다.
그것은 바로 어제 벌어진 사고를 유발했던, 그러니까 테러를 가한 범인들에 대한 보고였다.
“주변 CCTV 등을 수거하여 조사해 본 결과, 승균 님과 승연 도련님께 테러를 가한 이들을 찾아냈습니다.”
기범이 용의자를 찾아냈다는 말에 제황은 차갑게 눈을 빛냈다.
“그게 누구지?”
사실 제황은 의절을 한다고 선언하긴 했으나 승균에 대해 완전히 관심을 끊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지시를 어기고 그룹에 피해를 주었기에 분노하여 내친 것이지, 아버지로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승균에게 관심을 끊은 것이 아닌 것이었다.
사실 혈육의 정이란 것은 그런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자신의 아들에 대한 미련은 떨쳐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승균이 승연을 데리고 처음 찾아왔을 때도 용서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수연에 대하여 못마땅해 하는 제황의 태도에 승균이 반발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가 더욱 틀어진 것뿐이었다.
제황은 승균이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낱낱이 보고를 받으면서도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고, 또 다른 가족들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게 막은 것이었다.
결국 승균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김영민 사장과의 거래를 통해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승균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 자신하던 제황이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사고가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제황은 기가 막혔다.
자신의 계획대로 승균이 수연과 이혼하고 이제는 손자와 함께 자신에게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손자가 누군가의 테러에 의해 사경의 해매고 있다는 말에 기가 막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곧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되어 터져 나왔다.
“니들은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너희들이 있는 이유가 가족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게 아니냔 말이다!”
“죄송합니다.”
기범은 제황이 분노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면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떤 말을 해도 그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 자칫 변명을 했다가는 분노하는 제황의 기분에 기름을 퍼붓는 꼴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기범은 아무 변명 없이 잘못을 빌 뿐이었다.
“잡아와! 이번 일을 일으킨 놈들을 당장 모조리 잡아와!”
“예, 알겠습니다.”
제황의 호통에 기범은 바로 대답을 하고는 황급히 회장실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