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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병원 중환자실.
그곳에는 수연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과 오른팔을 뒤덮은 깁스와 온몸의 붕대는 수연이 얼마나 큰 사고를 당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생명 유지 장치에 연결되어 강제로 숨을 쉬며 바이오 그래프가 간간이 뛰는 것을 통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승연은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채로 좀처럼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승균은 병원 복도에서 담당의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빠르게 수술을 받아야 승연 군의 얼굴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자칫 치료 시기가 늦어진다면 승연 군은 영영 얼굴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승균은 의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 직장에 들어간 지 몇 달 되지 않아 모아 둔 돈도 얼마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병원비를 대기에도 무척이나 빠듯한 상황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승균의 심정을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승연의 얼굴을 고치지 못한다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것이기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려 하였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백호 PMC를 통해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고는 있지만, 안면 재생술과 같은 고급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별도로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였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살고 있는 집을 팔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였다.
“제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수술 비용이 마련되지 못해 그러니…….”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버님도 잘 아시겠지만, 아드님이 아직 어린 관계로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평생 얼굴에 큰 흉터를 남긴 채 생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담당의는 수술 시기를 놓친다면 평생 망가진 얼굴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경고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승균이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의절한 아버지를 찾아갈까도 생각해 봤다.
승연이 태어나고 이듬해 명절에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한 뒤로는 모든 것을 잊기로 하고 연을 끊은 승균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수술비를 구걸할 염치가 없었다.
머릿속에 복잡해진 승균은 병실로 돌아와 아직도 깨어나지 않고 있는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전신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승균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랑했던 수연과 이혼을 한데다 이제는 그 사랑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아들 승연마저 저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 정말이지 견디기 어려웠다.
승균은 저도 모르게 하늘로 고개를 들어 신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왜!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기에 제게 이러시는 것입니까?’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이렇게 힘든 시련을 연거푸 안겨 주는 하늘이 너무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한참 그렇게 누군지 모를 대상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승균 씨, 좀 어때요?”
승연의 병실로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태연이었다.
태연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렇게 승연의 병실을 찾아왔다.
오늘도 자신이 대신 회사에 이야기를 하여 휴가를 얻어 주고 찾아온 것이었다.
“아직도 깨어나지를 않고 있네요.”
“그래요……. 하지만 곧 깨어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연은 승균의 처연한 목소리에 그를 위로하였다.
“과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승균은 태연에게 너무나 커다란 은혜를 느꼈다.
사고 이후 매일같이 찾아와 자신을 위로해 주는 모습이 너무나 힘이 된 것이다.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사실 사고가 났을 때 119에 신고를 해 준 것도 그녀였다.
덕분에 승연이 그나마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회사에 출근하지 못한 자신 대신 태연이 휴가까지 받아와 준 것이다.
정말이지 태연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런 상황이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거예요. 참, 그런데 승연이 수술 날짜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태연이 승연의 수술 날짜에 대하여 물어오자 승균은 다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모습에 태연은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자신 역시 그에 대해 알아보았던 참이었다.
안면 재생 수술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수술이었다.
정교한 기술도 그렇지만, 뇌 부위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특히나 조심을 해야 하는 수술로 정평이 나 있었다.
더군다나 신경을 유지시키는 데 들어가는 약품이 무척이나 비쌌다.
그래서 안면 재생 수술은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원래 이 수술은 성형수술의 일종으로, 특히나 고비용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또한 대변혁 이전에도 효능에 비해 높은 비용이 들어가는 수술이었다.
최소 몇 백만 원에서 많게는 몇 억까지 하는 고비용이 들어갔던 것이다.
한데 지금은 관련 약품을 만드는 회사가 줄어들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이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또 비용을 아끼지 않는 족속들이 있는 법.
정작 사고로 인해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은 흉한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지만 부자들은 남아도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별 필요도 없는 수술을 위해 몇 천만, 몇 억을 쉽게 쓰곤 했다.
승균이 어떻게 돈을 마련해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태연이 한 가지 방도를 제시했다.
“회사에 직원 대출을 한 번 알아보세요. 급전이 필요한 직원을 위해 적은 이자율로 대출을 해 주고 있으니 한 번 신청해 보세요.”
태연이 직원 대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승균도 그제야 그런 사실을 떠올렸다.
원래 백호 PMC의 직원들은 주로 용병으로 등록을 하기에 그들의 수당은 무척이나 높았다.
한 번 일을 마치고 나면 충분이 대출금을 상환하고도 남을 만한 비용이 지불된다.
워낙 위험한 일을 수행하는 터라 그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 주기 때문이었다.
하여 백호 PMC로서는 돈 때문에 경쟁 상대나 적에게 매수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대출을 해 주었다.
그런데다 이자율도 무척이나 낮아 백호 PMC의 직원들은 돈이 필요할 때면 주저 없이 회사에 대출금을 요청하곤 했다.
사실 승균이 근무하는 총무부가 바로 그런 작업을 하는 부서이기도 했다.
승균은 태연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회사로 가려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태연의 저지로 발걸음을 멈췄다.
“승균 씨,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알고나 나가시는 것이에요?”
태연이 퇴근을 하고 이곳에 왔다는 것을 너무도 다급한 마음에 깜박한 것이었다.
승균이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일찍 찾아와요.”
태연은 그렇게 승균을 달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도 이제는 집으로 갈 시간인 것이었다.
“전 이만 가 볼게요. 승균 씨도 적당히 휴식을 좀 취하세요. 그러다 승균 씨까지 쓰러지겠어요. 지금 승연이 보다는 덜하지만 승균 씨도 환자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태연은 승균에게 당부를 하고 병실을 나갔다.
승균은 자신과 승연을 위해 주는 태연이 너무도 고마웠다.
문득 그녀에게서 수연이 겹쳐 보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그녀.
얼굴도 예뻤지만 마음씀씀이가 더 아름다웠던 그녀.
하지만 이제는 잊어야 할 사람이었다.
아직도 승균은 마음 한구석에는 그녀가 자신과 승연에게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그녀가 더욱 그리워졌다.
비록 열악한 형편이 싫어 자신들을 버리고 떠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그리운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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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백호 PMC의 사장인 종훈은 잠시 업무를 멈추고 시선을 돌려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확인하였다.
자신을 찾아온 이는 이미 몇 번 안면을 익혀 잘 아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친구이자 MS 그룹의 후계자인 이상균 전무이사의 측근이었다.
이상균 전무이사는 MS 그룹 이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계열사인 MS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기도 하였다.
6년 전, MS 그룹의 후계자이자 MS엔터테인먼트 사장이었던 승균이 소속사 연예인과 눈이 맞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찾아가자 차남인 이상균이 전격적으로 승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조치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기 후계자로 떠오른 이상균 이사는 그 지위를 탄탄히 굳혔다.
당시 자산 가치 3천억 정도로 평가받던 기업을 130조의 가치를 가진 대그룹으로 일궈낸 철혈의 통치자의 핏줄을 물려받은 인물답게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승균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간 자리를 흔들림 없이 잘 막아 낸 그에 대해 현재의 MS 그룹 경영진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이상균 전무이사와 만날 때면 가끔 동행을 하는 것이 바로 눈앞의 인물이었다.
종훈은 그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이라 판단하였다.
사실 백호 PMC도 어떻게 보면 MS 그룹과 무관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차기 MS 그룹의 총수가 될 상균의 측근을 박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차장이 어쩐 일로 절 찾아온 것입니까?”
자신을 반가이 맞이하는 종훈에게 이명한 차장은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이거,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최 사장님.”
둘은 악수를 나누고 서로 근황을 가볍게 주고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절 이렇게…….”
종훈은 한참 바쁜 와중에 자신을 찾은 이명한 차장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용건을 물어보았다.
솔직히 명한의 생김새나 처음 만났을 때 풍기는 기운을 보아 그가 결코 평범한 이가 아니란 판단을 내린 종훈이었다.
명한은 툭 튀어나오고 광대뼈에 양미간이 좁고 가느다란 눈매, 또 입술이 얄팍하고 입 꼬리가 올라간 것이 무척이나 간교하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다만 얼마나 웃음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눈 꼬리가 축 처져 있어 강팍한 인상임에도 밉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간간이 정색을 할 때 보이는 차가운 면모는 종훈에게 결코 좋게 비쳐지지 않아 되도록이면 그를 만나지 않으려 노력을 하고 있는 종훈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MS 그룹의 계열사인 엔터테인먼트의 차장이면서도 상균을 따라다니며 호가호위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었다.
자연 종훈으로서는 자신을 찾아온 것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여나 상균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전하기 위해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