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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정신을 차린 태연은 자신을 덮친 사람이 누구인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얼른 돌아봤다.
그리고 자신을 덮친 사람이 승균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태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승균 씨, 놀랐잖아요.”
무방비 상태에서 태연이 갑자기 뛰어들자 승균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승균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현재 자신의 품에 안긴 태연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처음에야 오랜만에 접한 여체의 향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움직이기는 하였지만, 상대가 태연이라는 것을 확인한 지금은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승균의 모습에 태연은 의아해했다.
승균이 왜 이렇게 당황해하는지 고민하던 태연은 순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 샤워를 마치고 흘렸던 땀을 산뜻하게 씻어냈다.
한데 지금 그녀의 피부로 느껴지는 서늘함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윽고 태연은 자신이 샤워를 마치고 아직 옷을 입지 않은 상태란 것을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조금 전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은 승균의 손길이 생각난 것이었다.
태연은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그녀의 두 눈에 들어온 것은 알몸으로 승균을 위에서 누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자신을 안고 있는 승균의 모습.
태연은 일순 얼굴이 확 붉어졌다.
동경하며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다 무슨 결심을 했는지 이내 단호한 표정을 짓더니, 승균의 입술에 슬며시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었다.
과감하게 질러(?) 버리기로 결심을 한 것이었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먼발치에서 홀로 지켜보며 짝사랑만을 했다.
그리고 이후 승균이 결혼하여 그녀의 짝사랑은 결국 그대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남자는 자유의 몸이었다.
자신 역시 순진했던 그때의 자신이 아니란 생각을 하며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승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며 과감하게 키스를 시작한 것이었다.
승균도 태연의 대담한 공세에 당황하여 입술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태연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혀를 집어넣으며 승균의 혀와 엉키게 하였다.
계속되는 태연의 키스 세례에 승균도 조금 전 끓어오르다 잠재운 본능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였다.
적극적으로 키스를 해 오는 모습에 승균의 두 손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태연의 몸 곳곳을 누볐다.
두 남녀는 이내 업치락 뒤치락하며 서로를 끌어안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로의 손이 급하게 움직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벗겨내기 시작한 것이다.
태연은 승균의 옷을 벗기려 손을 움직였고, 승균도 흥분을 하여 셔츠를 잡아 뜯었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의 입술은 딱 붙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서로를 탐닉하였다.
“음!”
“흐∼응!”
쪽, 쪽.
방 안에는 더 이상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를 탐닉하는 본능에 빠진 두 마리 짐승만이 오직 존재했다.
서로의 몸을 주무르며 훑고, 또 깨물기도 하면서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승균이 몸을 일으키자 태연은 그의 몸 밑에 깔렸다.
그렇게 위치를 바뀌고 한순간 태연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격통이 하복부에서 느껴진 것이다.
너무도 큰 아픔에 태연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눈이 한껏 떠지며 절로 입이 벌어졌다.
참기 힘든 고통에 태연은 승균의 등을 두 손으로 힘껏 끌어안았다.
하지만 고통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태연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균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위에서 노를 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통을 참지 못해 한껏 비명을 지르던 태연이 어느 순간부터 승균의 몸짓에 호응하며 움직여 갔다.
고통에 겨워 지르던 비명도 사라지고, 어느덧 고양이가 갸릉거리듯 콧소리를 내며 승균의 귓가를 울렸다.
*
*
*
끝나지 않는 잔치란 없는 법.
승균과 태연의 격정은 끝을 모르고 타올랐다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둘은 꼭 껴안은 채 방금 전까지 뜨거웠던 순간의 여운을 즐겼다.
여자보다는 남자가 금방 깬다고 했던가.
승균은 태연의 옆에 누우며 입을 열었다.
“태연아, 왜 그랬니?”
승균의 입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반말을 흘러나왔다.
태연이 자신에게 호감 있어 하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던 승균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관계를 맺게 될 줄은 스스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승균도 태연처럼 귀엽고 섹시함까지 갖춘 아름다운 여성이 접근하는 것이 기분 좋기는 하였다.
하지만 자신은 이혼남인데다 슬하에 어린 자식까지 데리고 있었다.
비록 태연의 나이가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현대에는 그리 흠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인 태연이기에 회사 내에서도 그녀의 인기는 단연 톱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태연이 갑자기 자신을 덮친 것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연은 자세를 돌려 승균의 눈을 바라보며 그동안 마음속에 묻어 온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승균 씨…… 아니, 오빠!”
태연이 갑자기 오빠라고 부르자 승균은 잠시 움찔하였다.
하지만 가만히 태연이 계속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야기예요. 10년 전, 한 소녀는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진학을 해요. 그리고 그곳에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보게 되죠.”
난데없는 첫사랑 이야기에 승균은 태연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막지는 않고 계속 경청했다.
“소녀는 자신의 이상형인 선배를 짝사랑하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아 언제나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가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태연은 잠시 상념에 빠졌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소녀는 참으로 절망했죠. 그래서 선배의 행복을 빌며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일에 몰두를 하였고, 어느덧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 직급도 올라갔어요. 그런데 짝사랑했던 사람을 10년 만에 보게 되었어요.”
태연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승균의 얼굴은 이상하게 변해 갔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었다.
태연이 말하는 선배가 꼭 자신처럼 느껴진 것이었다.
당시 승균은 대학을 다니며 MS엔터테인먼트의 사장으로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사장으로서 3년째 되던 시기에 수연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고 있는 수연의 모습을 보고 승균은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솔직히 MS의 소속 연예인들과 예비 스타들 중에 수연보다 예쁘고 섹시한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승균이 보기에 그녀보다 빛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가 수연과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잠시 옛 생각에 빠져 있던 승균은 문득 태연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 잠시 다른 생각이 나서. 계속해 봐.”
“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니 얼마 전 이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게도 기회가 오겠구나 생각을 했죠. 하지만 그것이 또 그렇지 않더군요.”
이번에도 잠시 말을 끊은 태연은 무엇이 우스운지 잠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사람에게는 보다 더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어요.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여워 누구나 반할 것 같은 그런 사람이 곁에 있었지요. 물론 저도 그 사람을 보고 한눈에 반했지요. 물론 이상형의 남자에게 반한 것과는 다른 것이니 오해하지는 말아요. 그리고…….”
태연이 말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었다.
10년 동안 짝사랑을 해 왔고, 이제 곁에 수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에게 접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기회가 왔을 때 잡기로 작정하고는 먼저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말은 그렇듯 덤덤하게 했지만 여성으로서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승균도 익히 짐작이 갔다.
자신을 10년 동안 생각을 했다는 말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도 이혼을 한 수연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수연에게 생각이 미치자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한순간 참지 못하고 처녀인 태연을 안아 청백을 훼손한 자신에 대해 실망하였고, 태연에게도 미안하였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봐 준 그녀에게 마음을 주지도 못하면서 육체를 가진 것에 대하여 너무도 미안했다.
“후, 태연아.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해 주었다는 것을 몰라주어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난 아직까지…….”
승균의 말이 이어질수록 태연의 마음은 불안해져 갔다.
급기야 승균의 입에서 ‘아직까지’라는 말이 나오자 뒷말을 짐작하고는 승균의 입을 막았다.
“오빠,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돼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저 잘 알아요. 하지만 저를 멀리하지는 말아 주세요. 전 그저 가끔 오빠의 품에 이렇게 안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억지로 절 밀어내려고만 하지 말아 주세요.”
태연은 애원하듯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승균이 아직 이혼한 아내를 잊지 못해 자신을 밀어내려는 모습에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안고 있는 것에 만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 자신이 수연보다는 더 유리할 테니까 말이다.
태연은 승균의 품으로 파고들며 작게 속삭였다.
“안아 줘요.”
*
*
*
그런 일이 있고 나자 승균과 태연의 사이는 참으로 애매해졌다.
승균이 아직도 이혼한 전처를 잊지 못하는 것을 태연이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 탓에 둘의 관계는 애인도, 그렇다고 남남도 아닌 어중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나마 가까이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둘의 감정이 점점 발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지 2달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 승균의 용병 훈련이 모두 끝났다.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승균은 이제 백호 PMC의 직원으로서 해외 현장에도 투입이 될 것이었다.
마침 일이 터지며 승균의 첫 임지는 해외로 정해졌다.
그것은 시베리아에 있는 현장에 문제가 생겨 직원들을 급하게 보충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프로그램을 이수한 승균이 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곳이지만, 회사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승균은 수술을 마치고 회복 단계에 접어든 승연을 남겨 둔 채 국외로 파견을 가야만 했다.
3개월만 근무를 하면 되는 일이지만, 현지 여건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비록 백호 PMC가 힘이 없는 곳은 아닌데다 외교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다행히 사태는 금방 진정될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시베리아 현장은 그쪽 지방을 지배하는 러시아 마피아의 세력 교체로 인해 문제가 벌어진 상황이었다.
기존에 그 지역을 다스리던 조직이 다른 조직과의 싸움에서 패해 주도권을 상실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현장의 주체인 미래건설에서는 불안정한 주변 환경에 위협을 느끼고 경비 책임을 맡고 있는 백호 PMC에 용병들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백호 PMC에서는 급하게 용병들을 투입하려는 것이었다.
마피아들 간의 다툼이 끝난 후 현장이 안정되면 기존의 상납금을 새로운 조직에 납부만 하면 끝나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겉보기와 달리 그렇게 위험 요소가 크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장의 보존을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백호 PMC에서 용병을 지원을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새로운 조직이 무력을 동원하여 미래건설의 건설 현장을 뺏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백호 PMC로서는 무척이나 신중하게 처리를 해야 할 사안이었다.
만약 마피아들에게 현장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백호 PMC의 신용에 커다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 이제 겨우 교육이 끝난 이들까지 동원하는 것도 모두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