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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병원 입원실.
“아빠, 그럼 언제 오는 거야?”
“응. 비행기 타고 멀리 가는 거라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아.”
조그만 아이와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참 잘 어울리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아빠가 조금 오래 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승연이, 아빠 없이도 잘 참을 수 있지?”
“응. 승연이 참을 수 있어. 그리고 여기 태연이 누나도 매일 승연이 보러 온다고 했으니 괜찮아. 그러니 아빠도 승연이 보고 싶어도 참고 일 열심히 하고 돈 많이 벌어와. 알았지?”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 주는 승연의 모습에 승균은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연과 이혼을 하고 벌써 1년이 되어 가는 상황.
이제 한 살을 더 먹어 7살이 된 승연은 멀리 일하러 간다는 소리에 어른인 자신을 걱정해 주었다.
부쩍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승연의 그런 모습에 승균은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때일수록 곁에 엄마가 있어 줘야 하는데, 수연은 이제 간간이 TV로만 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자신과 이혼한 수연은 애인이라는 남자가 후원을 해 주어서 그런지, 금방 연예계에 복귀를 하였다.
그리고 아주 좋은 역할을 맡아 드라마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그녀도 덩달아 인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자신과 결혼을 하기 전부터 수연에게 끼가 많다는 것을 승균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품을 떠나 저 하늘에서 힘찬 날갯짓을 하며 훨훨 날고 있는 모습에 기쁘면서도 슬픈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함께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아무튼 승연을 홀로 둔 채 장기간 국외로 나가 있어야 하는 승균인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연인 관계 비스무리해진 태연이 나서서 승연을 돌보겠다는 제안을 하여 그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태연에게 해 줄 것이 없는 자신이었기에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마침 승연을 보살펴 줄 사람이 그녀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을 하고 나갈 수 있어 위안이 되는 승균이었다.
“태연아, 그럼 부탁할게. 승연인 태연 누나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알겠지?”
“응, 아빠.”
“알았어요. 무사히 다녀오세요.”
태연과 승연의 밝은 대답에 승균은 한결 안심이 되었다.
사이 좋은 두 사람이라면 자신이 마음놓고 시베리아로 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승연아, 아빠 다녀올게.”
“안녕히 다녀오세요.”
병원을 나온 승균은 바로 집합 장소인 동해항으로 향하였다.
백호 PMC에서는 용병들에게 출발 전에 휴가를 주고 복귀를 동해항으로 알려주었다.
대변혁 때 폭발했던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활발하게 화산 활동이 진행되고 있어 육로를 통해서는 러시아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언제 다시 폭발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러시아와의 무역은 육로가 아닌 해상 루트를 이용하여 진행되었다.
그중 주로 무역이 이뤄지는 곳은 동해항과 부산항이었다.
물류 수송 등에는 규모가 큰 부산항이 수월했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일에는 동해항이 이용되었다.
대변혁 이전, 대한민국이 분단되어 있을 당시 북쪽과 교류를 하던 여객 터미널이 있어 여객 수송의 창구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사실 동해항은 큰 규모의 화물선이 들어오지 못하는 조건이라 이렇게 여객항으로서 특화를 이루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부산항처럼 국제항으로서의 규격이 맞지 않아 작은 규모의 무역이 이루어질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동해시는 무척이나 발달을 하여 전과 달리 대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동해항으로 지금 백호 PMC의 직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것은 승균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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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PMC의 직원들은 30명이나 되다 보니 눈에 확 띄었다.
짧은 머리에 무언가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사내들 30명이 뭉쳐 있으니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 그런지 사람들의 시선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괜히 거친 인상의 사내들과 시비가 붙어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인지 백호 PMC의 직원들은 별 탈 없이 블라디보스톡 항에 내릴 수 있었다.
그런 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 남동쪽에 위치한 바이칼 호수가 보이는 이르쿠츠크에 도착을 하였다.
백호 PMC 직원들은 현장 책임자에게 보고를 하여 서둘러 인수인계를 하였다.
백호 PMC의 시베리아 현장 책임자는 빠르게 그들의 자리 배치를 마치고는 총책임자인 미래건설 시베리아 현장 소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미래건설과 백호 PMC의 관계는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현장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현장 소장에게 충원된 용병들에 대한 보고를 꼭 해야만 하였다.
이들이 충원이 됨으로써 미래건설은 백호 PMC에 기존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 기술자들의 임금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기에 용병 30명이 충원되는 일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술자들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더 나은 일이기에 미래건설도 이번 백호 PMC의 용병 충원을 무척이나 반겼다.
적은 숫자라 해도 대한민국 PMC들의 무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점은 무식한 러시아 마피아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만큼 30명이나 되는 한국 출신 용병이 충원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지금, 현장의 안전은 이전보다 더 확실해진 셈이었다.
6. 인연
러시아 이르쿠츠크 지역, 미래건설 현장.
승균이 보기에는 이곳은 건설 현장이 아닌 듯했다.
오히려 무언가를 발굴하는 현장 같았다.
원래 이곳 현장은 미래건설이 맡을 예정이 아니었다.
미래 그룹은 그룹 산하에 미래건설과 미래산업개발이라는 건설 관련 기업을 2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중 미래건설은 미래 그룹의 주력 기업 중 하나였다.
사실 미래산업개발은 첫 시작은 미래건설의 하청이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기술이 쌓이고 자체적으로 건설을 하는 등 회사가 커지니 계열 분리를 통해 독립 회사로 성장한 회사였다.
이곳 러시아 이르쿠츠크 현장도 처음 계약자는 미래산업개발이었지만 시공을 하다 보니 규모가 점점 커져 미래산업개발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갔다.
그리하여 주 시공사를 미래건설로 변경하여 시공을 시작한 것인데, 우연히도 건설 도중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보고가 러시아와 한국에 전해지자 많은 조사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미래건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기존 지역 마피아에 자신들의 안전을 맡기던 것을 이원화하였다.
현장 주변은 백호 PMC가 안전에 책임을 지고, 마피아들에게는 보호세를 건네는 대신 현장에 대한 간섭을 배제시킨 것이었다.
이는 러시아 정부와도 협의가 된 것이기에 러시아 마피아와도 별 탈 없이 계약을 할 수가 있었다.
물론 러시아 마피아도 유물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은 있었지만 러시아 정부가 나서서 주의를 주자 알아서 먹고 떨어진 것이었다.
정부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가는 어떤 처지가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이르쿠츠크 지역을 지배하던 마피아는 쉽게 돈을 받는 것으로 손을 턴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미래건설과 협의를 맺은 마피아는 경쟁 마피아와의 투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새로운 질서가 잡히기까지 현장의 안전을 어느 누구도 책임 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백호 PMC는 급하게 직원들을 보충하여 파견을 보낸 것인데, 현장에 도착을 해 보니 준비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단 현장 지역은 대변혁 때 심각하게 오염되어 정화 장치가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분별한 산업화가 불러 온 결과였다.
더군다나 러시아가 비밀리에 건설했던 미사일 기지가 대변혁 시기에 파손되어 그중 몇 기의 핵무기가 터지고 말았다.
하여 현장 주변 일대는 방사능으로 오염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흐르고 또 꾸준히 정화 작업을 벌여 많이 안정되기는 하였지만, 정화 장치 없이 장시간 노출이 되었을 때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곤 하였다.
그래서 미래건설이나 백호 PMC에서는 직원들에게 정화 장치가 부착된 작업복을 지급하였다.
현대의 기술은 혹한의 날씨도 극복할 정도로 발달했다.
일부 기술은 대변혁 이전보다 낙후되기는 하였지만, 편의 시설에 대해서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