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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자원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경쟁 기업들과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개발을 하다 보니 발전이 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2월의 시베리아는 무척이나 춥다.
지금 백호 PMC의 용병들은 현장 주위를 순찰을 돌고 있는데, 이들의 복장은 참으로 특이하였다.
용병들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타이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한의 시베리아의 날씨임에도 용병들은 전혀 추위를 타지 않았다.
그들의 등에는 검정색의 백팩 같은 것이 달려 있었는데, 그것은 헬멧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백호 PMC의 용병들이 갖춘 복장은 사실 많은 나라들의 군대에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방탄, 방검은 물론이고, 어떠한 기후 조건에서도 착용자를 안전하게 지켜 주는 방호복인 것이다.
일명 파워 슈트라 불리는 이 물건은 미국의 압솔루트라는 특이한 이름의 회사에서 개발된 것이었다.
당시 압솔루트에서 개발한 파워 슈트만 한 물건을 만든 곳은 세계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많은 개량이 더해지고, 많은 회사에서 기술을 도입하여 사용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백호 PMC의 용병들이 착용한 파워 슈트는 초기형의 모델로서, 백호 PMC의 최종훈 사장이 인맥을 이용하여 군에서 신형으로 교체할 때 구입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초기형의 제품인 탓에 신형 파워 슈트와 달리 오염 지역에서 활동을 할 때 정화 장치를 따로 설치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파워 슈트마저도 지급을 못하는 PMC 회사도 많은지라 백호 PMC의 직원들은 그나마 다른 회사들의 용병들보다 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아무튼 승균도 파워 슈트를 지급을 받기는 했는데, 외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정화 장치를 따로 설치를 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승균이 지급받은 정화 장치가 무슨 문제 때문인지 파워 슈트와 연결을 하는 과정에서 고장이 난 것이었다.
이곳 현지에서는 고치지 못하는 형편이라 더욱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승균은 도시로 나가 정화 장치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르쿠츠크 구(區) 시가지.
승균은 되도록 빨리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빠르게 주변을 확인하였다.
이 지역은 아직 정화가 덜된 지역이라 정화 장치가 고장난 승균이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구 지배 세력인 알렉세이 마피아와 신 지배 세력인 이그노아 마피아의 세력이 아직도 대립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시베리아 전 지역에서 알렉세이의 힘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이곳 이르쿠츠크의 구도는 알렉세이와 이그노아 양대 세력이 팽팽히 대립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덕분에 단 하루도 총소리가 끊이질 않아 치안이 무척이나 불안하였다.
관광 명소로서 이르쿠츠크의 명성은 이미 대변혁 때 사라지고 말았다.
근처에 있던 비밀 탄도미사일 기지에서 사고가 난 이후로 관광이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방사능의 폐해를 연구하려는 학자에게는 예외였지만.
어쨌든 그 이후 이르쿠츠크는 체르노빌에 이어 핵폭발 사고의 대명사 중 한 곳으로 꼽히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급격히 몰락하는 도시일 뿐인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한민국의 한 기업이 이곳에 위락시설을 짓겠다며 대단위 공사를 벌였다.
마피아들도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눈여겨보고 있는 중이라 웬만하면 터치를 하지 않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물론 미래건설에서 지불한 상납금도 어느 정도 일조를 했지만 말이다.
러시아 마피아들도 이제는 머리가 깨친 이들이 많이 생겨나 상생과 협력도 할 줄 알게 되었다.
하여 이탈리아 마피아들처럼 양지로 나서 사업을 하는 곳도 많았다.
지금 승균이 들어선 지역은 구 세력인 알렉세이의 구역이었다.
이그노아 세력이 자리 잡은 곳은 아직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화 장치에 들어가는 부속을 구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그래서 승균은 알렉세이의 세력으로 쇼핑을 나간 것이었다.
‘음, 저곳에 부속품을 파는 곳이 있군.’
승균의 눈에 띈 상점은 중고 가전을 파는 곳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20대 중반의 건장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승균을 맞으며 인사를 하였다.
“예. 정화 장치에 들어가는 필터를 구입하고 싶은데요.”
승균은 조금 작은 상점인 이곳에 정화 장치에 들어가는 부속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망가진 필터만 사기로 마음먹었다.
정화통에 들어가는 필터만 갈아도 며칠은 쓸 수 있기에 한국으로부터 보급품이 들어올 때까지 그렇게 버티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손님, 죄송한데 저희 상점에서는 정화 장치에 들어가는 필터만 따로 팔지는 않습니다. 혹시 여유가 되신다면 쓸 만한 정화 장치가 있는데, 그것을 구입하시지요.”
승균은 필터만 따로 팔지 않는다는 점원의 말에 조금 당황하다 이내 중고 정화 장치의 값을 물어보았다.
뭐, 가격만 맞으면 중고 정화 장치를 구입 못할 이유도 굳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필터만 사서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중고이긴 해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정화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기에 승균은 점원에게 값을 물었다.
“그건 얼마나 합니까?”
“예. 금 100g만 주십시오.”
상점 점원은 승균이 아시아인으로 보이자 세계 공통 화폐나 마찬가지인 금을 요구하였다.
대변혁 이후 세계는 한동안 극심한 공황을 겪으며 화폐 가치가 하락하였다.
그런 탓에 무역을 하는 것에도 무척이나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무역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은 세계 각국이 모두 인정을 하는 바라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공통의 가치를 가지는 물건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하였는데, 그중 금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으며 세계 공통 화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금의 가치는 어느 나라든 귀금속으로 취급을 하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점원도 승균에게 금을 요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승균은 고민이 되었다.
수중에 그 정도의 금은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금 100g이라는 것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금 100g이면 한국 돈으로 환산했을 때, 500만원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물론 용병으로 등록되어 있는 승균의 월급에 비해서는 적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은 금액도 아니었다.
수당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금을 들여서까지 구입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하지만 정화 장치가 없다면 자신은 다음 보급까지 기다리다가 골병이 들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용병으로서 오래 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더 이상 용병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승균은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고 정화 장치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것입니다.”
승균이 마음을 굳힌 듯하자 점원은 얼른 정화 장치를 하나 꺼내 보여 주었다.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정화 장치는 무척이나 승균의 마음에 들었다.
“한 번 사용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작동 여부를 묻자 점원은 웃는 낯으로 건네주었다.
승균이 마스크를 써 보니 중고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좋네요. 제가 사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점원은 웃는 낯으로 계약서를 승균에게 넘겼다.
급하게 재촉하는 점원의 모습을 조금 이상하게 느낀 승균이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 지역의 치안이 좋지 못하다 보니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일이 많지 않아 마음이 급한가 보다고 여긴 것이다.
이윽고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승균이 점원에게 100g짜리 골드 바(Gold Bar)를 하나 넘겼다.
셈을 치른 승균이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문득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정화 장치에 이상한 호스(Hose)가 달려 있는 게 아닌가.
탁자 밑으로 연결된 호스는 승균이 마스크를 잡아당기자 점점 딸려 왔다.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승균.
급기야 매장 너머에 연결된 호스을 보고 승균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스에 딸려 온 물건은 다름 아닌 구형 휴봇이었다.
예전 SF영화에서나 봄직한 귀여운 로봇을 닮은 휴봇.
대변혁 직후, 조사관들이 안전하게 조사를 하기 위해 오염 지역에 투입될 수 있게끔 정화 장치가 설치된 로봇이었다.
벌써 개발된 지 30년이나 지난 초기형 휴봇이 호스에 딸려오자 승균은 자신에게 물건을 판 점원을 어이없다는 듯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지만 점원은 어느새 친절했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야비한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전형적인 사기 수법에 당한 승균은 그 즉시 물건을 반품하려 하였다.
“내가 원한 것은 이런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반품하겠으니 내 돈 다시 돌려주시오.”
하지만 점원은 오히려 인상을 쓰며 협박을 해 왔다.
“이곳이 어디라고 반품을 한다고 지랄이야! 한 번 사 갔으면 그만이야! 그러니 어서 저거나 가지고 나가! 안 그럼 재미없을 줄 알아! 이 상점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어?”
점원은 순진해 보이는 승균을 협박하며 가게 밖으로 쫓아내려 했다.
승균은 이 일대가 마피아들이 관리하는 곳인지 모르고 들어왔다가 사기를 당한 것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나기로 하였다.
아무리 자신이 용병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떼거리로 덤비는 러시아 마피아를 상대로는 무리였기에 물러난 것이다.
“제길!”
승균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산 휴봇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상점 안쪽에는 혹시라도 승균이 난동을 부릴 것을 대비하여 몇 명의 사내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구 세력과 신 세력의 접경에 위치한 탓에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의 상점에는 언제나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상시 대기를 하는 것이었다.
밖으로 쫓겨 나온 승균은 자신을 따르는 휴봇을 할 말을 잃고 지켜보았다.
점원이 정화 장치랍시고 내보인 것은 사실 겉모습만 그럴싸한 플라스틱 상자였고, 정작 공기를 정화한 것은 휴봇이었던 것이다.
물론 휴봇으로도 공기를 정화할 수는 있었다.
아니, 정화 능력만을 따져 보았을 때는 휴봇 쪽이 더 뛰어났다.
하지만 휴봇을 파워 슈트에 장착할 수는 없는 노릇.
용병으로서 유사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승균이다.
그런데 자신을 쫄래쫄래 따라오는 휴봇을 착용하고는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정말 이래저래 승균에게 고민거리를 안겨 주는 휴봇이었다.
하지만 금 100g이나 주고 산 휴봇을 그냥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승균은 휴봇을 가지고 근무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