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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복귀한 승균은 곧바로 팀장인 정민에게 신고를 했다.
“저 지금 들어왔습니다.”
“그래, 쇼핑은 잘했나?”
김정민 팀장은 승균이 왜 외출을 하였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결과를 물었다.
하지만 승균의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휴봇을 보고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허, 그 모습을 보니 자네도 사기를 당했나 보군.”
“네……. 다음 보급이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할 것 같습니다.”
김정민 팀장도 승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군. 내가 알아서 근무 시간을 조정해 줄 테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하게.”
“네, 감사합니다.”
그나마 백호 PMC의 책임자인 김정민 팀장이 근무를 적당히 조정해 주겠다고 하여 다행이었다.
어차피 정화 장치가 고장 난 상태라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그 와중에 신경을 써 주겠다는 김정민 팀장의 말은 승균에게 너무도 고마운 일이었다.
보고를 마치고 자신의 방에 돌아온 승균은 일단 자신이 구입한 휴봇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였다.
승균은 휴봇의 외부 입력 장치에 잭을 연결하여 자신의 단말기와 연결하였다.
그러자 단말기에 휴봇에 관한 정보가 빠르게 업데이트되었는데, 역시나 자신의 짐작대로 이 휴봇은 정확히 29년 8개월 전에 생산된 제품이었다.
한마디로 휴봇이 개발되던 당시에 생산된 1세대 휴봇인 셈이었다.
“에휴, 생김새는 귀여운데 넌 완전 오래된 구닥다리 노인네구나.”
승균은 한숨을 쉬며 휴봇을 보며 넋두리를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구입한 휴봇에게 노아(老兒)라 이름을 붙였다.
오래된 제품이라는 의미를 그렇게 유머러스하게 이름 지은 것이었다.
“이제부터 너를 노아라고 부를 거야. 알겠지?”
승균이 노아라는 이름을 지어 부르자 휴봇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곧장 반응을 보였다.
삐빗! 삐빗!
승균은 그런 휴봇의 반응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너, 내 말을 알아듣는 거냐?”
그러고는 호기심에 다시 한 번 말을 걸어 보았다.
하지만 노아는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승균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쳇, 그럼 그렇지. 로봇이 사람 말에 반응을 보인다는 게 말이나 돼?”
승균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여기고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다음 월급날까지는 무척이나 빠듯한 생활을 해야 하는 승균이었다.

*
*
*

승균은 휴봇인 노아와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노아의 메모리에 저장된 지식이 무척이나 많아서였다.
휴봇은 처음 개발될 당시, 과학자들을 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많은 기능들이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기록 저장을 위한 엄청난 용량.
오염 지역에서 과학자들의 건강을 살피기 위한 치유킷.
불의의 사고가 벌어졌을 때 주인을 신속하게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시키기 위한 약간의 인공 지능.
한마디로 학습이 가능한 로봇이었다.
덕분에 생산된 지 29년 8개월이나 된 노아의 메모리에는 많은 정보가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동안 노아의 주인이었던 이들이 중앙 기억 장치에 있는 정보들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듯했다.
하여 광물 탐사에 관한 정보라든가, 로봇 제작에 관한 정보, 또 인공 관절에 관한 내용 등 온갖 정보들이 노아의 중앙 기억 장치에 담겨 있었다.
승균은 야간 근무를 설 때 그런 정보들을 살펴보며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승균은 노아가 가진 정보를 검색하다 특이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대변혁 이후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과도 같은 정보였다.
“노아야, 도대체 네 이전 주인은 누구였기에 이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거냐?”
승균은 노아의 중앙 기억 장치에 남아 있는 정보를 살펴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는 그동안 승균이 듣도 보도 못한 놀라운 정보가 많았는데, 하나같이 현 시대에 구현되지 않은 오버 테크놀로지였다.
지금 승균이 착용하고 있는 파워 슈트만 하여도 이전 세대에서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파워 슈트를 넘어서는 물건에 대한 연구 기록이 노아의 중앙 기억 장치에 남아 있던 것이었다.
지금 승균이 착용한 파워 슈트는 2세대 슈트라 대물저격총의 탄환을 막아 낼 수 없었다.
물론 최신형 파워 슈트는 12.7㎜의 탄을 막아 낼 정도로 막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만.
더욱이 성인이 낼 수 있는 평균 힘의 세기를 1로 보았을 때, 승균이 착용한 2세대 파워 슈트는 보통 5배 정도의 힘을 내는 것에 반해 신형인 3세대 파워 슈트는 그 2배인 10배의 파워를 냈다.
그런데 노아의 메모리에 남아 있는 내용은 15배의 파워를 보여 주고 있었다.
물론 프로토타입의 데이터였기에 어느 곳에서 연구하던 물건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만일 이런 정보가 밖으로 알려지게 된다면 아마 자신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방위산업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때 기업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승균이 보기에 이는 무척이나 위험한 정보였다.
만약 노아의 중앙 기억 장치에 저장되어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돈은 그저 굴러 들어오는 셈인 것이다.
자칫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승균은 아무도 모르게 노아의 메모리에 남아 있는 정보들에 락(Lock)을 걸어 두었다.
이제 승균이 지정한 패스워드를 입력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노아에게서 정보를 빼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 노아의 메모리에는 그런 정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갖은 질병에 관한 정보와 백신에 대한 정보도 수두룩한 것이었다.
정말이지, 노아의 중앙 기억 장치는 잘만 활용한다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는 보물 창고였던 것이다.

*
*
*

시베리아의 중심 도시, 노보시비르스크.
이곳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운행되면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척박한 땅에 물류가 모이기 시작하면서 시베리아를 지배하는 러시아의 마피아들도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때 시베리아의 호랑이라 불리던 알렉세이의 세력은 이제 이곳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신진 세력인 이그노아에 밀려 시베리아의 지배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알렉세이가 시베리아를 지배할 당시에 사용하던 건물은 이제는 이그노아의 소유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그노아의 지배자인 드미트리 이그노아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드미트리, 우리가 너에게 힘을 실어 주기 시작한 게 언제인데 아직까지 시베리아를 완벽하게 지배를 하지 못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알렉세이가 가진 힘이 상당하여 결착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그것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베리아의 떠오르는 지배자인 드미트리 이그노아는 지금 자신의 집무실에서 누군가에게 질책을 받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를 알고 있는 그의 부하들이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모두 믿지 못할 것이었다.
더군다나 드미트리에게 질책을 하는 이의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150㎝가 겨우 넘을 듯한 작은 키에 무척이나 어려 보이는 얼굴.
남들이 본다면 이제 겨우 13∼15세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시베리아의 지배자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눈앞의 소년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보고를 하는 드미트리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물론 180㎝가 넘는 장신의 드미트리가 150㎝가 겨우 넘을 듯한 소년에게 그런 표정을 지어 보아야 코메디일 뿐이지만.
하지만 이 소년에 대하여, 아니, 이 인물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들은 지금 드미크리가 보여 주는 태도에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었다.
“네놈으로 인해 조직의 일이 얼마나 많이 늦추어진 줄 알고 그런 변명을 하는 것인가?”
소년의 말에 드미트리는 다시 변명을 하였다.
“대장님, 일주일만 말미를 주신다면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드미트리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에게 좀 더 시간을 줄 것을 부탁하였다.

신진 세력 이그노아에 숨겨진 비밀.
보스인 드미트리를 조종하는 소년.

러시아 1/3을 지배하는 이그노아 마피아의 장막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세력이 있음을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