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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습격



사실 미래건설이 러시아와 계약을 맺어 건설하려는 것은 군사기지였다.
대변혁의 순간, 러시아는 많은 군 시설들이 파괴되었다.
그로 인해 기능을 상실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러시아는 부족한 예산 탓에 쉽사리 복구를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파괴된 군 시설들 대부분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근 지역에 새로운 군사 시설물을 건설하고 파괴된 기지에서 쓸만한 장비들을 가져와 다시 배치를 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자국의 건설 회사와 계약을 맺으려 하였는데, 시베리아의 혹독한 기후에서는 러시아 정부의 요구에 맞는 업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서방의 건설 업체에 러시아의 군사 시설물에 대한 건설을 의뢰하기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고심을 하다 대한민국의 건설 회사를 물망에 올린 것이었다.
어차피 자신들의 힘으로 어떻게든 압력을 행사하여 그에 대한 비밀 유출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그리 결정을 한 것이었다.
또 대한민국의 건설 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떨어지지 않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용은 저렴하다는 정평이 났기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 연유로 미래건설이 책임진 시설의 규모는 생각보다 커 백호 PMC의 경계 구역도 무척이나 넓었다.
한편, 승균은 새로 보급된 물품으로 고장 난 정화 장치를 교체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승균은 여전히 숙소에서는 노아를 이용한 구형 정화 장치를 주로 사용하였다.
어차피 숙소에서 할 것이라고는 노아의 메모리에 있는 정보들을 연구하는 것뿐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노아의 몸에 있는 정화 장치의 성능이 더 월등한데 굳이 성능이 떨어지는 정화 장치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 정화 장치가 좋은 점은 그저 움직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뿐, 그렇기 때문에 숙소에서만큼은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고 싶은 마음에 노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한참 승균이 숙소에서 노아에 단말기를 연결하여 정보를 검색하고 있을 즈음,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많은 용병들이 복도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탓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승균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숙소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누워 있는 용병들이 보였다.
그들 중 한 용병은 자신과 같은 근무조로, 오늘 비번이라 낮에 이르쿠츠크 시내로 쇼핑을 나간 사람이었다.
그런데 피투성이가 되어 호송되어 온 것이었다.
그동안 백호 PMC의 복장을 하고 시내로 나가면 마피아들도 알아서 충돌을 피했는데,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백호 PMC의 용병이 피습을 당한 것이었다.
직원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책임자인 김정민 팀장이 다가왔다.
그는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
“김 주임, 부상자들을 의무실로 보내세요. 그리고 남은 직원분들은 모두 여길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지시가 내려지자 몇몇 사람들에 의해 피투성이가 된 용병들이 의무실로 옮겨졌고, 남은 인원들은 김정민 팀장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당문간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 외출을 금하겠습니다.”
김정민 팀장의 입에서 외출을 금한다는 말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이런 외진 곳에 와서 많은 돈은 벌고는 있지만 딱히 할 일이 없는 터라 너무도 무료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래서 용병들은 비번이 되면 이르쿠츠크 시로 나가 회포를 풀고 돌아오고는 하였다.
그리고 조금 전 쓰러져 있던 이들도 그러한 목적으로 오늘 외출을 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부상을 입고 호송되어 온 것이었다.
“현재 이르쿠츠크나 옴스크 일대가 마피아들의 항쟁으로 언제 어느 때 총격을 받을지 모를 정도로 험악해져 있으니 제 지시를 따라 주기 바랍니다.”
이어진 김정민 팀장의 말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는 용병들이었다.
마피아들 간의 항쟁에 휘말려 엉뚱하게 피해를 본 것이었다.
아무래도 복장이나 외모를 보고 상대 조직원이라 생각하고 총격을 가한 것 같았다.
솔직히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동양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미 긴장감이 최고조에 오른 마피아 조직원들이 그런 판단을 할 정도로 온전한 정신이 아니란 것은 빤한 이치였다.
그랬기에 용병들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외출을 금지 한다는 팀장의 말에 수긍을 하였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오늘 이 시간부터 각 경계 지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겠습니다.”
이어 김정민 팀장은 그동안 경계를 하던 단계를 상향 조정하여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를 하였다.
김정민 팀장의 지시가 있자 용병들은 각자 장비들을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 근무도 1일 2교대에서 1일 3교대로 바뀌었다.
그동안 백호 PMC는 120명의 용병을 40명씩 3개 조로 나눠 하루 12시간씩 근무를 해 왔다.
80명이 주야간 근무를 서는 동안 40명은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날 주간 근무에 투입되는 형식이었다.
그러던 것을 이제 휴식 없이 하루 3교대로 근무를 서게 된 것이었다.
물론 피로도는 무척 높아지겠지만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김정민 팀장은 현장을 안정화시키고, 또 직원들의 안위를 위해 외출 외박은 물론이고, 근무 시간마저 조절을 한 것이다.

*
*
*

“이그노아 보스, 이건 협정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저희 직원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귀 조직원들에 의해 피해를 입었습니다.”
미래건설 이르쿠츠크 책임자인 박명수 전무는 이제는 시베리아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 드미트리 이그노아에게 찾아가 따졌다.
사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감히 러시아 마피아 대부에게 찾아와 따질 수는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 미래건설이 맡은 일은 러시아 정규군의 기지를 건설하는 문제라 이렇게 따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 건가?”
드미트리는 자신보다 10년은 더 세상을 살아온 박명수 전무에게 반말을 하며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그런 태도로 보아 그는 이번 사고에 대하여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하였다.
이는 그가 러시아 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반증이었는데, 박명수 전무는 드미트리의 이런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변혁 이후 러시아의 군사력이 떨어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육군에 한해서는 여전히 세계 최강을 자랑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첨단 산업이 발달하며 이제는 핵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무기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개 마피아 보스가 정규군의 일에 이렇듯 무심하게 반응을 하는 것이 의아한 것이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리 자신을 대하는지는 모르지만, 박명수 전무는 그래도 따질 것은 따져야 하였다.
자꾸 이런 식으로 자신의 현장 직원들이 부상을 당하다 보면 공사에 차질이 발생할 것은 빤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엄청난 손해를 입을 것이기에 이번 일에 대한 보상과 재발 방지에 대하여 확답을 받아야만 하였다.
“재발 방지와 조직원들의 현장 인근에 대한 접근을 막아 주십시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야.”
박명수 전무의 요구에도 드미트리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그노아 조직의 수장인 드미트리 이그노아의 소관이 아니라면 그럼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박명수 전무로서는 절로 머리가 복잡해지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럼 누가 책임자라는 거요? 그 책임자를 만나게 해 주시오.”
어떻게 해서든 이번 일에 대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기에 박명수 전무는 드미트리에게 책임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야. 그리고 당신은 그냥 이대로 있다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그뿐이야. 더 이상 주제를 모르고 날뛴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드미트리는 이번 일이 어떻게 해서 벌어진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협박을 하였다.
결국 박명수 전무는 말이 통하지 않는 드미트리에게 백날 말해 봐야 안 될 것 같아 러시아 시베리아 군사령관에게 이번 일에 대하여 보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백호 PMC가 현장에서 경계를 서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을 보호하는 세력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주둔군이다.
이들은 현재 미래건설이 건설하는 시설이 자신들이 사용할 기지이기에 더욱 철저하게 보호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 마피아와의 충돌로 인해 백호 PMC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미래건설의 기술자들도 많은 피해를 입어 작업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일을 러시아 시베리아 주둔군 사령관에게 직접 보고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시베리아에서 그가 나서서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그러니 마피아 때문에 공사가 진척이 늦어진다고 말하면 그가 충분히 움직이리라 판단을 한 것이었다.
아무리 시베리아 전역에 걸친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정규군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었다.
“보스가 그리 말을 한다면 난 이 일을 알렉세이 이그나초프 사령관에게 보고할 것이오. 그래도 되겠소?”
박명수 전무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듯이 알렉세이 이그나초프 시베리아 사령관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드미트리 보스는 무슨 생각인지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다만 당신이 이번 일을 알렉세이 사령관에게 보고한다면 미래 그룹은 두 번 다시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오.”
박명수 전무가 러시아 시베리아 사령관의 이름을 언급하자 드미트리는 되레 협박하며 어떠한 사업도 하지 못할 것이란 일침을 날렸다.
하지만 박명수 전무 또한 순순히 협박에 굴복할 정도로 무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온갖 아수라장을 거쳐 온 백전노장이었기에 드미트리의 협박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 나중의 일이오. 하지만 나도 당신에게 해 줄 말이 있소. 우리 미래건설이, 아니, 미래 그룹이 당신들을 두려워하여 그동안 돈을 주었다고 생각했다면 다신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오. 비록 내 조국이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우리 그룹이 가진 힘은 결코 작지 않소. 그것만 기억하시오.”
박명수 전무는 차갑게 대꾸를 하며 자리를 나왔다.
그런 박명수 전무의 모습에 드미트리 이그노아는 눈을 빛냈다.
비록 자신이 러시아에서 3번째로 큰 지역을 차지하고는 하지만 정말로 서방 기업들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이제는 기업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무력도 마다않았다.
그야말로 군대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국가가 아닌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박명수 전무의 말대로 미래 그룹에서 작정을 한다면 러시아 정규군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미트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자신이 주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은 ‘그’가 지시한 것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찾아와 조직을 이만큼 크게 만들어 준 ‘그들’.
드미트리는 ‘그들’이 한없이 두려웠다.
불과 1년 만에 변두리 작은 조직에서 이제는 러시아 3대 조직에 꼽힐 정도로 성장한 데에는 ‘그들’의 힘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시베리아를 지배하던 알렉세이를 손쉽게 제거하던 ‘그들’의 모습은 결코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러시아 군의 최정예라 불리는 스페츠나츠도 감히 상대가 되지 않을 존재들이었다.
어두운 밤, 단 3명이 강철 요새와도 같은 알렉세이의 아지트에 침투하여 벌여 놓은 참상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드미트리였다.
만약 드미트리가 ‘그들’의 뜻을 거역했을 때 어떤 보복이 가해질지 확실하게 인지시킨 것이다.
때문에 드미트리는 ‘그들’의 보스에 대하여 절대 저항하지 않을 것을 가슴 깊이 새겼다.
박명수 전무가 돌아간 뒤, 드미트리는 어두운 창밖을 쳐다보며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에 잠겼다.
이미 자신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과 척을 져서는 절대 안전을 책임질 수 없었다.
미래건설에게 받은 상납금이 아쉽기는 하지만, 자신의 목숨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미래건설의 건설 현장에서 무엇을 찾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애써 자위하는 트미트리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벌어지든 간에 자신은 그저 조용히 지켜보다 승자에게 적당한 아부를 하며 살면 되는 것이었다.
시베리아 주둔군 사령관을 등에 업은 미래건설이 이기든, 자신을 이만큼 키워 준 조식이 이기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