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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충격탄은 무척이나 적은 수량뿐이라서 한 개 초소에 많은 양을 쌓아 두지는 못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파워 슈트를 장비한 적을 20분이나 막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놀라울 일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고, 어떻게든 이들을 막아 내야만 하는 것이 백호 PMC의 임무였다.
하여 동철은 아직 교전이 벌어지지 않은 초소에 남은 충격탄을 이곳으로 보급해 줄 것을 급히 요청하였다.
“팀장님, 아직 다른 초소에서는 적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 이곳으로 충격탄을 더 보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다. 조금만 더 힘을 써 주기 바란다. 곧 지원이 갈 것이다.
김정민 팀장과 통신은 끝낸 동철은 얼른 고개를 들어 전방에 있는 적들을 살폈다.
그런데 적들의 움직임 중에 조금 이상한 것이 보였다.
적들이 타고 온 보트에서 무언가 색다른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무거운 물체가 움직이는 것인지, 커다란 보트가 요동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출렁이던 보트가 한 번 크게 요동치다 멈추는 순간, 용병들은 저마다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보트에서 나온 것은 로봇이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로봇.
군사 무기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동철도 소문으로만 들은 존재.
그것은 다름 아닌, 미 육군이나 러시아 육군,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영국 세 나라가 공동으로 연구 중이라 발표된 물건이었다.
충격탄이란 무기가 나오면서 효용성이 떨어진 파워 슈트를 대체하기 위하여 연구 중인 로봇, MS(Mobile Suit)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모습에 동철은 물론이고, 4초소에 있던 용병, 그리고 지원사격을 해 주던 3초소와 5초소의 용병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조금 둔탁해 보이는 중장갑.
중세 기사를 10배쯤 증폭해 놓은 듯한 모습.
절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MS의 모습에 백호 PMC의 용병들은 공포를 느꼈다.
상대가 파워 슈트를 입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워낙 부정부패가 만연한 러시아 군부라 유출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군사 강국이라는 나라들도 아직까지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인 무기가 등장한 것에 용병들은 지금 상대하는 게 혹시 러시아 정규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
그와 동시에 백호 PMC 용병들의 사기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 정규군이 자신들을 상대로 신형 무기를 테스트하는 중이라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그 말인즉, 이에 대한 사실이 타국에 알려져서는 절대 안 되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막아도 문제이고, 막지 못해도 문제였다.
“팀장님, 상황이 급변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현재 저희와 대치하고 있는 이들은 러시아 정규군 같습니다!”
동철은 MS의 모습이 확인되자마자 급히 통제실을 호출하여 상황을 설명하였다.
“아직 연구 중이라 알려진 MS라 짐작되는 물체가 지금 저희 앞에 나타났습니다.”
동철은 이그노아 마피아들이 선보인 MS를 쳐다보며 그것에 대한 정보를 황급히 알렸다.
―MS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어떻게 이곳에 나타날 수가 있는 가?
통제실에 있던 정민은 느닷없이 MS라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사실 김정민 팀장은 백호 PMC의 간부로 있으면서 많은 정보를 들어 MS에 대하여 동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군사 강국인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실전 배치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도 조만간 실전 배치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정보를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이 그런 신형 무기와 직접 대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더군다나 미국이나 러시아는 아직 자신들이 그런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발표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척박한 시베리아의 한 지역인 이르쿠츠크에서 러시아 군의 비밀 무기라 짐작되는 MS가 건설 중인 자국의 기지를 공격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동철의 짐작대로 러시아 군이 자신들을 상대로 신형 무기인 MS의 성능 테스트를 위해 운용을 한다는 뜻인가?
정민은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려 봤지만 뚜렷하게 나오는 답이 없었다.
성능 테스트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성능 테스트를 위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MS를 이용하여 공격을 했어야 하고, 또 러시아 정규군이라면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벌일 필요도 없었다.
자국의 신형 개발품에 대하여 막 다루기로 유명한 러시아 군이 타국의 군대도 아닌, 일개 PMC를 상대로 자신들의 신무기를 테스트할 어떤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국의 군사력에 자부심을 가지는 러시아 장군들이나 개발자들이 정규군도 아닌 PMC를 상대로 신무기의 성능 테스트를 한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 지금 보이는 상황이 무어란 말인가?
정민은 도저히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이들이 러시아 정규군이 아니라면 대체 어느 집단이 MS라는 신무기를 보유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집단이 범국가적 능력이 있어 저런 무기를 운용을 하는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민은 지금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빠르게 궁리하기 시작하였다.
파워 슈트라는 장비를 착용한 적이 나타났다고 하는 무전이 날아올 때만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능력을 믿었기에 기지의 단단한 벽을 이용해 싸운다면 충분히 막아 낼 수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MS라는 최첨단의 무기가 나온 마당에 더 이상의 대응은 무리였다.
미래건설의 박명수 전무도 철수를 하면서 말하지 않았던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으면 퇴각을 하라고 말이다.
동철의 말대로 이제 MS라는 것이 나타났으니 물러날 때였다.
자신들은 미래건설이나 러시아 군에 대해 이미 맡은바 임무를 충분히 수행해 준 셈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상대하고 있는 적이 혹시라도 러시아 정규군이라면 자신들의 전멸은 불을 보듯 빤했다.
이제 대응을 하기보다는 신속한 퇴각만이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었다.
더욱이 아직까지 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기에 시베리아에 주둔 중인 러시아 군도 믿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정민은 동철에게 다시 무전을 보냈다.
―4초소장, 지금 적들에 대해 꼼꼼이 기록하고 있겠지?
무전이 날아오자 동철은 빠르게 대답을 하였다.
“저들이 이곳에 상륙할 때부터 기록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철의 이야기를 들은 정민은 바로 기지 내에 있는 모든 초소에 비상 탈출을 지시하였다.
―모든 직원들에게 알린다. 현 시간부로 전투를 종료하고 플랜 C로 넘어간다. 반복한다. 현 시간부로 전투를 종료하고 플랜 C로 넘어간다.
팀장인 정민의 지시에 따라 백호 PMC의 모든 초소에서는 그 즉시 퇴각이 이루어졌다.
백호 PMC에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교전 메뉴얼이 갖춰져 있었다.
방금 정민이 지시한 플랜 C는 아군이 위험하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신속하게 전투 지역을 이탈하여 안전 지대로의 탈출을 명하는 내용이었다.
주변에 아군이 없다는 전제로 시행되는 이 플랜 C는 신속하고 은밀하게 퇴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만일 퇴각 중 적들이 추격을 하게 된다면 아군을 위해 자신이 미끼가 되어 적들을 다른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아무튼 김정민 팀장의 지시로 플랜 C가 발동되자 백호 PMC의 용병들은 신속하게 기지를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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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교전을 하다 잠시 교착 상태에 처한 4초소의 용병들은 동철의 옆에서 통신 내용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플랜 C가 발동되었으니 이제는 자신들도 얼른 자리를 떠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 교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플랜 C의 메뉴얼에 따르면 자신들은 끝까지 적들을 물고 늘어져 다른 동료들이 무사히 퇴각할 수 있도록 저지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모든 아군이 교전 지역을 빠져나갔다는 판단이 섰을 때, 그제야 이탈을 하는 것이었다.
이미 한국에 있을 때부터 숙지를 한 상황이었고, 그것만이 자신의 동료를 더 많이 구할 수 있다는 판단에 4초소 용병들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동료들의 퇴각을 위해 이 자리에서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승균의 마음은 달랐다.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은 결코 죽을 생각이 없었다.
물론 동료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돕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런 일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 고국으로 안전하게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승연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으며, 또 조금 애매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태연도 있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만 하였다.
그랬기에 지금 적을 향해 총을 쏘면서도 두 눈을 반짝이며 살아남기 위해 기회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순간, 동료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항전을 하고 있는 4초소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이그노아 마피아의 비장의 무기인 MS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동철은 아무리 MS라고는 하지만 충격탄을 집중적으로 맞는다면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 판단하고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저기 MS라 짐작되는 적을 향해 화력을 집중하도록.”
4초소의 모든 용병들은 동철의 판단을 믿고 있어 그의 말대로 충격탄의 잔고가 떨어질 때까지 MS에게 집중사격을 가하였다.
하지만 괜히 MS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파워 슈트의 경우 한 발이라도 직격을 당하면 잠시 동안 기동이 멈추었는데, 6명이나 되는 용병의 충격탄 세례에도 MS는 끄떡도 없다는 듯이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무기를 들어 올려 4초소의 용병들이 있는 곳을 겨냥하였다.
솔직히 이그노아 마피아들은 파워 슈트가 기능 정지 상태에 이르고 주변의 초소에서 일반 총탄 사격이 이어져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용병들의 강한 저항에 많은 사상자를 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변 초소의 병력들이 철수하고, 4초소 용병들의 사격이 MS에게 몰리자 운신의 폭이 생긴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