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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 이상 자신들에게 날아오던 충격탄이 없자 숨어 있던 마피아 조직원들은 일제히 전방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파워 슈트의 기능이 온전히 발휘되자 빠르게 기지 내로 침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막을 길이 없는 4초소의 용병들은 빤히 지켜보며 적들이 기지 내로 침투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총구를 돌리는 순간 MS에게 어떤 공격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점점 다가오던 MS의 총구가 4초소를 향하더니 포구에서 밝은 에너지가 튀어나왔다.
100㎜에 달하는 구경의 커다란 포구가 조준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한 용병들이 서둘러 자리를 이탈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름 아닌 승균이었다.
MS가 겨냥하는 포구의 중심에 있던 탓에 몸을 피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MS의 포구가 겨눠지자마자 빠르게 회피하기는 하였지만, 너무도 거대한 위력 때문에 직격이 되지 않았음에도 승균의 파워 슈트는 기능이 정지하고 말았다.
EMP를 맞은 전자 기기마냥 모든 기능이 순식간에 정지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충격탄과는 비교 불가의 성능을 보이는 위력이었다.
MS의 충격탄은 승균의 파워 슈트를 직격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지만, 그 여파로 파워 슈트의 에너지가 다운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승균이 지금 입고 있는 파워 슈트는 그저 방어력이 조금 뛰어난 옷 정도로 기능이 다운되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승균만이 아니었다.
승균 말고도 2명이나 MS가 발사한 에너지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파워 슈트의 기능이 정지하고 말았다.
그런데 MS가 발사한 무기는 그저 단순한 충격탄 정도가 아닌 듯하였다.
충격탄은 말 그대로 아주 약간의 물리력이 있는 고에너지 무기일 뿐이어서 충격탄만으로는 살상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MS에서 발사한 무기는 충격탄을 능가하는 에너지 무기일 뿐 아니라 엄청난 물리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용병들을 스치고 지나간 에너지는 그들의 뒤에 있던 건물 일부마저 파괴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건물 내로 들어갔던 이그노아 마피아들이 일부 타격을 받아 사망을 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하지만 MS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의 공격을 피한 용병들을 향해 다시 포구를 돌렸다.
백호 PMC의 용병들은 MS가 발사한 무기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빠르게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미 기능이 정지한 파워 슈트를 입고 있는 승균을 포함한 3명의 용병은 피하기엔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 하여도 MS가 가지고 있는 무기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MS에서 다시 에너지탄이 발사되는 것과 동시에 2명의 용병은 이를 피하지 못하고 폭사하고 말았다.
승균은 이때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자 20m나 되는 기지 벽 밑으로 뛰어내렸다.
죽기를 각오한 행동이었는데, 승균의 과감한 선택이 다행히도 2명의 용병과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가까스로 에너지탄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높은 벽 위에서 뛰어내린 탓에 그만 발을 삐고 말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주변에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그노아 마피아 조직원들은 이미 구멍을 통해 모두 안으로 들어갔기에 승균의 전면에 있는 MS 외에는 아무도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MS도 밑으로 뛰어내린 승균을 발견하지 못하였는지 여전히 벽 위에 있는 다른 용병들을 향해 포구를 움직이고 있었다.
승균은 그러한 것을 인지하고는 불편한 다리를 끌고 황급히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MS에게 발견된다면 자신도 방금 전 죽은 용병들 꼴을 면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승균은 벽 위에서 뛰어내린 충격에 다리가 불편함에도 억지로 자리를 이탈한 것이다.
‘헉헉, 제길!’
승균은 급한 와중에도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다리를 내려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다리가 점점 부어오르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승균은 더 이상 움직이는 게 힘들어지자 몸을 숨기기 위해 숲길로 들어섰다.
이미 기능이 정지한 파워 슈트 특유의 검정색이 눈에 띄기 쉽다는 것을 인식하고 숲의 그늘을 이용하기 위해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승균의 판단이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조심스럽게 숲을 헤치고 지나는 동안에 승균의 존재를 눈치 챈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승균은 그 와중에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 판단을 하였다.
‘옛말에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하였다. 어차피 내 생김새가 이곳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니 사람들 속으로 숨어 봐야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승균은 이미 기능이 정지한 파워 슈트를 입고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밤을 버티기란 어렵다는 판단에 위험하더라도 기지 안으로 숨어들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저들이 무슨 이유로 건설 현장에 침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을 이루고 나면 철수할 것이라 판단하고 기지 안으로 숨어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확실히 인근 도시로 숨어드는 것보다는 타당한 판단이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승균은 자신이 근무하던 4초소 밑의 구멍을 통해 조심스럽게 기지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4초소의 용병들을 공격하던 MS는 이미 자리를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구멍 안으로 들어서던 승균의 눈앞에 믿지 못할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현실.
이그노아 마피아의 조직원들이 알 수 없는 괴물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10여 마리로 보이는 괴물들이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파워 슈트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m에 육박하는 신장과 엄청난 근육을 지닌 괴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괴물의 이목구비는 참으로 보기 두려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특히나 관자놀이까지 찢어진 눈은 검은빛으로 가득하였고, 코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구멍만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입은 악어마냥 쭉 찢어져 있고, 그 안에 있는 이는 상어의 것 마냥 날카롭고 촘촘하게 돋아나 있었다.
하지만 승균을 두렵게 만든 것은 단순히 그런 외형만이 아니었다.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파워 슈트를 입은 이들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잡아 찢듯이 분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전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괴물이 손짓 한 번에 파워 슈트를 입은 이들은 목이 잘리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게다가 괴물들은 총기를 아무리 맞아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서 발사된 총알을 모두 뒤집어썼지만 전혀 피를 흘리지 않았다.
분명 총을 맞을 때마다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는데, 그게 전부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괴물들은 귀가 무척이나 밝은지, 작은 기척에도 빠르게 움직여 파워 슈트를 입은 이들을 학살했다.
그 때문에 승균은 이대로는 저 괴물들에게서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 자리에 숨어서 지켜볼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기지를 습격했던 이그노아 마피아 조직원과 괴물들의 전투는 일방적인 승리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그 순간, 승균의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다시금 눈앞에 펼쳐졌다.
괴물들이 몸을 움찔하더니 점점 체격이 작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괴물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벌거벗은 아이 10명만이 눈에 보였다.
그 무시무시하던 괴물이 순식간에 10여 세 또래의 어린아이들로 변한 것이었다.
믿지 못할 장면을 목격한 승균은 자신도 모르게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
“헉!”
불행하게도 그 작은 소리는 아이들의 관심을 잡아끌고 말았다.
소년들은 승균이 숨어 있던 곳을 주시하더니, 빠르게 접근을 해 왔다.
승균은 이미 아이들의 능력을 봤기에 저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만 한순간의 실수로 이곳에서 죽게 되었다는 생각만 떠오를 뿐이었다.
‘하, 이런 실수를……. 지금껏 잘 버텼는데 이런 한심한 실수를 하다니. 미안하다, 승연아. 미안하다, 태연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승균은 지금 이 순간 승연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홀로 남겨질 승연의 처지가 너무도 안쓰럽게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과 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연인도 아니고 직장 동료도 아닌 애매한 관계로 발전한 태연에게도 미안했다.
여전히 수연을 잊지 못해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정쩡한 관계를 이어 오던 것이 무척이나 후회가 된 것이었다.
승균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후회하고 있을 때, 가까이 다가온 한 소년이 승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후후, 이곳에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 있었군. 블러드 캡(Blood Cap)의 행사를 구경하고 있는 쥐새끼라니. 크큭큭!”
승균을 내려다보는 소년은 다름 아닌 드와이트였다.
하지만 승균은 눈앞에 있는 이가 어떤 존재인지 이미 눈으로 보았기에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고통없이 죽기를 바랄 뿐이었다.
눈앞의 아이들은 마치 곤충의 다리를 뜯어내듯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런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하였기에 승균은 지금 자신의 눈앞의 귀엽게 보이는 소년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한편, 드와이트는 겁에 질린 승균의 모습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지금의 감정을 잠시 즐기기로 하였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승균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장난감이 생겼는데 가지고 놀 시간이 부족하군. 적당히 놀다 없애 버려라!”
드와이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냉혹한 명령을 내렸다.
이미 이곳은 자신들이 장악하였으니 약간의 여유는 있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마피아들까지 전부 죽여 버린 드와이트는 승균만이 기지 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