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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천동지(驚天動地)



괴물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승균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탓에 승균은 놀라 도망치던 자세로 굳어 꼼짝을 하지 못했다.
‘대체 이들은 어디서 나타난 것이지? 내가 방금 전 본 것이 정말 현실이란 말인가?’
승균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아니, 눈앞에 보이는 소년이 사실은 사람을 갈가리 찢어 죽일 만큼 엄청난 괴력을 가진 괴물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이들이었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방금 전까지 살육을 벌이던 괴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아이들이 파워 슈트를 착용한 인간을 그렇게나 쉽게 죽일 수 있는 괴물이라니.
거기에 자신은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편, 승균을 가지고 놀다 죽이라고 지시했던 드와이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하들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승균을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 두고 목적했던 것을 찾으라 명령하였다.
“장난감은 도망가지 못하게 어디 묶어두고 일단 이그드라실을 찾아라!”
이그드라실.
일명 세계수(世界樹)라 불리는 존재.
그리고 한편으로는 생명의 나무라고도 불리는 것.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이 드와이트의 입에서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에 승균은 지금 벌어지고 일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괴 집단으로부터 공격을 받지를 않은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공격했던 이들이 괴물들에게 몰살을 당하고, 또 괴물들이 아이로 변하더니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을 찾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물건이 신화에서나 나오는 유물이라는 사실을 승균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정말 괴물일까? 어떤 존재일까? 무엇 때문에 북유럽 신화에나 나오는 물건을 멀고먼 이곳에서 찾는단 말인가?’
승균은 지금 당장은 생명의 위협이 닥치지 않자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조금 전 우두머리로 보이는 듯한 소년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어린 시절, 신화나 전설에 대한 관심이 많아 그에 관한 문학전집을 이것저것 읽어 본 승균이었다.
하여 다행히 당시의 기억이 남아 있어 조금 전 드와이트가 말한 이그드라실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이그드라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푸레나무로,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를 뒤덮고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그 뿌리는 죽은 자들의 세계인 니플헤임과 인간들의 세계인 미드가르드, 그리고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해진다.
그리고 신화 말미에 나오는 최후의 날인 라그나로크 때 거대한 불꽃 거인인 수르트가 던진 횃불로 인해 세상이 멸망했다고 끝을 맺는다.
한데 지금 그 신화 속의 이그드라실을 시베리아의 한복판인 이곳에서 찾으려는 이들의 의도를 승균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신화에 나오는 이그드라실은 우주까지 가지가 뻗어 올랐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것인데, 공사 현장인 이곳에서 찾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승균이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하는 착각이었다.
그저 인간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을 짜깁기한 일부 신화를 소설로 읽었기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드와이트가 속한 집단은 이그드라실의 정체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그와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베리아로 찾아온 것이었다.
드와이트가 속한 발할라는 그 속성이 일반 집단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발할라의 상위 지배층들은 신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어 자신들이 신이 되고자 하는 조직이었다.
바티칸의 최초 배신자인 발할라의 창시자는 신의 비밀을 알게 되자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이들과 함께 비밀이 담긴 조각을 훔쳐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신의 조각―파편―을 연구하는 도중,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고는 후원자를 모집하게 되었다.
그들이 후원자를 구하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정점에 선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영원토록 누리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의 시황제였다.
그 역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동원하였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죽지 않았던가.
그와 같이 발할라를 세운 이들은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왕들을 은밀하게 찾아가 어둠의 손길을 뻗었다.
그리고 각국의 왕들 역시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보다 상위에 있는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것은 신의 대리자라 불리는 교황의 권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한계 때문에 더욱 이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배신자들은 각국 지배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신의 조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성과를 보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신화시대에 존재했던 것을 현실 세계에 구현한 것이었다.
인간도 짐승도 아닌, 반인반수(半人半獸)라 불리는 괴물들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늑대인간이라 불리는 라이칸슬로프였다.
그렇게 북구 신화에 나오는 대표적인 몬스터인 늑대인간을 만들어 냈지만, 그 한계도 명확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로 인해 유적을 발굴하는 데 더욱 몰두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신자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인 오딘(Odin)이 만들었다는 신전의 이름을 따 자신들의 조직을 발할라라 명명했다.
그런 후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신화와 관계된 지역이라면 어디도 빼지 않고 은밀하게 조사를 하였다.
그러면서 바티칸의 비밀 조직인 13과와 대립을 해 나갔다.
이들은 막강한 13과의 전력을 막기 위해 라이칸슬로프를 이용하여 바티칸의 추적을 끊으며 많은 유적들을 발굴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수의 조직원들이 희생했다.
그러나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이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었다.
하여 발할라에서는 자신들을 추적하는 바티칸 내에도 검은 손을 들이밀며 유혹을 하여 자신들의 주구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많은 신의 조각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 세월 연구를 했던 바티칸의 추적을 뿌리치며 앞서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바티칸 내부에 첩자를 심어 놓은 발할라는 자신들의 목줄을 조여 오는 13과의 추적을 뿌리치고 오히려 그들의 정보를 이용하여 유적을 보다 빠르게 차지할 수가 있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바티칸 보다도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발할라를 세운 이들이 바티칸의 교황이나 추기경들보다 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신의 조각을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두 집단이 연구하는 신의 조각의 사용처부터 확연히 차이가 났다.
바티칸은 신에 대하여 반하는 내용이 나오면 유물을 파괴하여 비밀의 은폐를 목적으로 연구하는 반면, 발할라는 조각을 연구하면서 나온 성과를 자신들의 진화를 위해 활용하였기에 이들의 힘은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인지, 아니면 바티칸의 성직자들이 믿는 신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이 되고자 하는 발할라 내부에서 어느 순간 분열이 일어나 두 집단으로 갈라졌다.
단단한 철옹성도 내부의 배신자로 인해 무너지고, 최강의 제국도 내부 반란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다고 하였던가.
최고의 성가를 달리던 발할라는 자신들과 대립하는 바티칸을 능가할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힘이 분열되고 말았다.
자신들의 힘이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여 이제는 인간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마음을 먹은 이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이미 신이 되었으니 그것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인간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한 이들이 발할라에서 분리되어 나가 올림포스라는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나 원주민 학살들은 모두 이들, 올림포스의 작품이었다.
기존 유럽 대륙에서는 바티칸이나 발할라의 견제 때문에 온전한 이상을 펼치지 못할 것을 깨닫고 새로운 세상에서 신이 되어 인간들을 지배하기 위해 본거지를 이주한 것이었다.
그렇게 신대륙으로 이주해 온 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곳 신대륙에도 신의 조각이 잠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의 조각을 둘러싸고 바티칸과 발할라가 구대륙에서 대립을 하고 있을 때, 올림포스는 신대륙의 원주민들을 학살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의 조각들을 회수해 나갔다.
그런 뒤 자신들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발할라나 바티칸을 넘어서기 위해 회수한 조각을 더욱 은밀하게 연구를 해 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강력해진 힘으로 2차대전 당시 발할라의 지원을 받는 히틀러를 저지하고 암중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진행했다.
한데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하게 발할라가 지원하던 기술들이 승전국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때문에 신대륙에 자리 잡은 올림포스의 의도와는 다르게 세계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하는 냉전 체제가 되고 말았다.
이는 올림포스의 지도자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그것은 전쟁에 패한 발할라의 회심의 한 수이기도 했다.
올림포스가 자신들을 방해했다고 판단한 발할라의 지도자들이 당시 사회주의 이념을 유럽 지역에 퍼뜨린 것이다.
그리고 동유럽으로 하여금 올림포스가 주도하는 민주주의 진영을 견제하게 만든 것이었다.
바티칸, 발할라, 올림포스 세 조직은 이렇듯 각자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신의 조각을 연구하며 유적 발굴에 힘을 쏟았다.
발할라의 조직원인 드와이트가 시베리아에 파견되어 이그드라실을 찾으려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드와이트가 직접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행동하지 않고 러시아 마피아 조직을 이용한 것은 자신들의 경쟁자이자 대립자인 올림포스나 바티칸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동안 각 조직이 발굴한 조각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될지도 모르기에 최대한 비밀 유지는 필수였다.
그래서 드와이트는 100년 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 마피아 조직 중 하나를 전면에 내세워 이 일대를 지배하게 만든 후, 자신들이 은밀하게 조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드와이트가 자신들이 부리던 마피아들을 학살한 것은 사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신의 비밀을 간직한 이그드라실이 곧 자신의 손에 발굴될 것이라 판단해 부하들에게 연회를 즐기게 한 것의 다름 아닌 것이다.
고대 신화시대의 괴물인 트롤의 힘을 지닌 드와이트와 부하들은 그동안 척박한 시베리아 땅에 들어와 너무도 단조로운 생활을 하였기에 모든 작전이 끝나는 시점이 다가오자 참았던 폭력성과 잔혹성을 남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승균을 묶어 놓은 것도 이그드라실을 찾아낸 다음 마지막으로 축제를 벌이기 위해 남겨 둔 제물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