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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2화)
제1장 묘인족으로 다시 태어나다(2)


“크으으윽. 제기랄!”
하지만 그 뭔가가 단순한 물건은 아니었던 듯……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정신을 잃은 건 또 아니라서 나는 저승사자의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주변 상황을 모두 또렷이 지켜볼 수 있었다.
‘젠장! 저승사자 놈! 나중에 두고 보자.’
어쨌든 나는 원치 않게 그 묘생계라는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묘생계라는 방은 말 그대로 고양이와 관련된 환생을 담당하는 곳인 듯 이곳저곳 고양이 냄새가 잔뜩 묻어 있었다. 예를 들면 바닥에 깔린 고양이 무늬 카펫이라든지, 고양이가 그려진 액자, 그리고 고양이 조각상 등…….
어쨌든 ‘이곳의 주인은 고양이입니다’ 하고 아주 광고를 하는 듯한 장식들이 방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뭐! 사실 내가 보기엔 그냥 지독한 악취미처럼 보일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방의 주인이었다.
“음! 데리고 왔나? 그런데?”
“…….”
이건 또 뭐냐.
나는 방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인간? 동물? 하여튼 신기하게 생겨 먹은 놈을 보고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적으로는 인간처럼 생겨 먹었는데 인간과는 달리 온몸에는 털이 돋아나 있고 뾰족한 귀에 아몬드 눈동자를 가진 괴물 딱지(?)를 보고 태연하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놈 아닌가?
“네! 카이젤님. 조금 반항을 하는 바람에 얌전히 있게 하려고 부득불 주박을 사용했습니다.”
“흠! 하긴…… 전생에도 말썽을 일으킨 놈이니 어련했을까! 어쨌든 먼저 주박을 풀어 주도록 하게나.”
그 괴물 딱지(?)의 말에 저승사자는 다시 내 머리를 뭔가로 퍽 후려 갈겼다.
“크아아악!”
그러자 놀랍게도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원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이 새끼! 너 나랑 한판 뜰래?”
물론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저승사자에게 달려든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나는 그 괴물 딱지(음? 카이젤이라고 했던가?)에게 덥석 덜미가 붙잡히고 말았다.
“꼬마! 얌전히 있어라.”
“크으윽”
그리고는 내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데……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내가 감히 저항도 못해 볼 지경이었다. 결국 카이젤은 나를 소파 위에 내동댕이치고는 자기도 주인 자리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끄응…… 고맙습니다, 카이젤님.”
저승사자도 나 때문에 조금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물론 나야 한 번 더 저승사자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카이젤이라는 그 괴물 딱지의 힘 때문에 그저 마음만 간절할 뿐이었다. 저승사자가 말했다.
“일단 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자네! 인사드리게. 이분은 묘생계를 담당하고 계시는 상급 신 카이젤님이시네. 모든 고양이와 묘인족들의 창조주시지.”
그 말에 내가 잠시 눈살을 찌푸려 보였다. 결국 저 괴물 딱지가 신이란 말인가?
“괴물 딱지라 미안하군. 하지만 기왕이면 괴물 딱지가 아니라 묘인족이라고 불러 줬으면 한다.”
“윽…….”
아무래도 저승사자와 달리 신은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는 모양이다.
“물론 가능하지.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 거지만 고양이라고 해서 모두 축생만 있는 건 아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에는 이런 모습을 한 인간도 있지. 흔히 묘인족이라고 하는 족속들인데…… 그 족속을 책임지고 있는 신이 바로 나다.”
“…….”
“궁금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알아 둬야 하는 것들이야.”
“크윽…… 남의 마음 읽는 건 좀 그만 두쇼.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결국 나는 다음 생에 고양이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까?”
내 말에 카이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라면 네 녀석은 이번 생에 인간이 아니라 묘인족으로 태어나야 할 놈이었다. 하지만 네놈이 싫다고 이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서는 제멋대로 인간계로 뛰어들어 버린 거지. 내가 그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기는 하느냐? 어쨌든 네놈도 인간으로 살면서 자신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거다.”
음! 그런가? 난 잘 모르겠던데…….
“태평한 놈!”
거참! 신하고 대화하는 건 의외로 피곤하다. 이거 원! 속마음이란 게 전혀 없으니…… 에잇! 어차피 다 드러날 거…….
“그럼 내가 인간으로 잘못 태어나서 결국 일찍 죽었단 말씀입니까? 그래서 다음 생에는…… 그 뭐시기냐! 지금 카이젤님 모습처럼 괴물 딱지, 아니! 묘인족이라는 족속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
카이젤은 대답 대신 그냥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허…… 허허! 그것참!”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서 조금 딴청을 피우며 이마를 긁적여 보였다.
어쨌든 그냥 고양이가 아니란 건 다행스런 이야기지만 앞으로 저런 괴물 딱지로 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니…… 아무래도 다음 생 80년은 고생깨나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묘인족의 평균 수명은 500년이다.”
“켁!”
역시 신하고 대화를 하는 건 힘들구만! 에라! 모르겠다. 어쨌든 저번에는 내가 조금 허튼 짓을 했다니 이번에는 그냥 얌전히 괴물 딱지로 환생해 볼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얌전히 그 묘인족으로 태어나면 된다는 거죠?”
하지만 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젤은 쉽게 안심을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핫! 내가 저번 생에 어지간히도 속을 썩인 건가?
하지만 말이야! 사실 난 그때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어쨌든 카이젤과의 만남이 그리 길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거 원! 신이라는 놈들하고 대화를 하는 건 의외로 짜증이 난다고 해야 하나? 원래 대화란 대화답게 진행되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카이젤하고의 대화는 매번 맥이 뚝뚝 끊기는 게 대화를 지속해 나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상대가 내 마음을 뻔히 들여다보는 이상 이미 대화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환생할 놈들도 많을 테니 일 처리도 빨라야겠지) 나는 다시 묘생계 환생터라는 기묘한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끄으응! 저승사자 양반! 혹시 나 말이야. 말로만 환생이고 사실은 지옥으로 직행하는 거 아냐?”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지켜보니 환생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나락 같은 지옥 구덩이(저승사자의 말로는 그곳이 바로 환생터라고 한다) 속으로 자신의 온몸을 내던지는 행위가 아닌가!
어쨌든 환생터의 풍경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환생터 중앙에는 마치 나락같이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져 있었고 그 구덩이 주변에 수많은 다이빙대가 설치되어 있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환생을 준비하는 영혼들은 전부 다 그 다이빙대 위에 서서 구덩이 속으로 있는 힘껏 몸을 내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후훗! 물론 조금 살풍경한 광경이긴 하지만 이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네. 새로운 삶 속으로 뛰어든다는 의미라고 할까? 어쨌든 따라오게.”
그럼 삶은 지옥이라는 거냐?
어쨌든 자세히 보니 인간이 아닌 고양이의 모습을 한 영혼도 다수 보였다.
그럴 경우에는 그 영혼을 담당하고 있는 저승사자가 직접 다이빙대까지 고양이를 안고 가서 다시 구덩이 속으로 고양이를 내던지는 형식이었다.
‘거참! 이거 왠지 끔찍하구먼.’
그나마 나는 다행이랄까? 적어도 저승사자의 손에 내동댕이쳐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처럼 인간 비슷한 모습을 한 영혼들은 그 구덩이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게 자못 겁이 날 만도 할 텐데도 이상하리만치 태연하게 구덩이 속으로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이다.
“이봐! 뭐 하는가! 빨리 따라오게.”
어쨌든 내가 굼뜨게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않자 저승사자가 다시 한 번 더 날 재촉했다.
“…….”
하지만 말이야. 나 지금 느낌이 묘하단 말이거든.
현재 저승사자가 서 있는 곳은 물이 발목까지 차오를 듯 말 듯한 얕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환생터에 생뚱맞게 웬 냇물?
하지만 그 냇물을 보고 퍼뜩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바로 ‘삼도천(三途川)’이었다.
‘오호라! 그러니까 저 냇물을 건너면 이생의 기억을 모두 잃게 된단 그 말씀이렷다?’
뭐! 내가 생각했던 것하고는 상당히 다르지만 어차피 저승이란 곳도 사실 내가 상상하던 곳은 아니었단 이 말씀!
물론 냇물의 넓이가 꽤 넓어서 발을 적시지 않고 건너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하지만 인간 강찬우, 소싯적에 몸 좀 움직여 본 놈이란 말씀이야. 이래 봬도 체대 출신에 검도, 태권도 유단자에 종합격투기 마니아라고……. 나는 발을 한 번 톡톡 굴려 보고는 싱긋 웃으며 잠시 뒤로 물러났다.
“응?”
물론 저승사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눈치였지만.
어쨌든 나는 거리를 견주고 준비 자세를 취한 후, 대뜸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이…… 자네!”
“타아앗!”
그리고 삼도천 중앙에 서 있는 저승사자를 발판 삼아 다시 한 번 더 도약을 했다. 물론 삼도천의 물이 몸에 닿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를 하면서 말이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아니면 전생의 운동 신경이 도움이 된 건지, 어쨌든 나는 아슬아슬하게 삼도천의 물을 몸에 묻히지 않고 그 냇물을 건너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크으윽…… 쿨럭…….”
물론 나 때문에 삼도천 바닥에 철푸덕 내동댕이쳐진 저승사자가 좀 불쌍해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모양이었다.
“하하! 역시 그런 건가? 아무래도 이 냇물을 건너서 기억을 모두 지운 다음에 새로운 생으로 환생을 하는 시스템인 모양이로군. 저승이라는 곳도 의외로 단순한데?”
“크윽…… 자네! 돌아오게. 그리고 이 강을 다시 한 번 제대로 건너…….”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가 곧이곧대로 들을 놈도 아니지! 오죽하면 내가 묘인족이 싫다고 인간으로 환생한 놈이겠는가!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저승사자 양반! 아…… 묘인족의 수명은 500년이랬던가? 그럼 한참 후에나 보겠군. 하핫.”
어쨌든 예전의 기억을 잃는 게 싫었던 나는 저승사자가 만류할 틈도 없이 대뜸 환생터의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워워워워.”
물론 낙하는 기분이 참 묘하기는 했다. 이건 마치 추락하는 게 아니라 어디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이랄까?

***

“면…… 면목 없습니다, 카이젤님.”
강찬우를 담당했던 저승사자는 지금 카이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강찬우가 기억도 소거하지 않은 채 그대로 환생터로 뛰어들어 버렸으니 그 기분인들 오죽하겠는가.
“하아아! 그 빌어먹을 녀석.”
하지만 카이젤은 저승사자를 탓할 생각도 없는지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사실 이건 그리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일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저승사자가 직접 하계에 내려가 뱃속에 있는 아이의 기억을 살짝 지워 주기만 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였다.
물론 담당 저승사자의 경우에는 업무 과실로 징계를 좀 받긴 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엄마 뱃속에 있는 주제에 지가 도망을 가면 또 어디로 도망을 가겠는가.
“음! 역시 제가 다시 하계에 내려갔다 오는 게 좋을까요?”
저승사자는 그냥 확인 차 물어본 말이었는데 카이젤은 의외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뭐! 일이 이렇게 된 것도 다 운명이겠지. 놔둬! 어차피 녀석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그 정도 특혜 정도는 인정해 줘도 무방하겠지.”
“하…… 하지만 카이젤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른 차원에서 환생한다는 것은…….”
저승사자의 말에 카이젤이 쿡쿡 하고 웃었다.
확실히 저승사자의 말대로였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른 차원으로 환생을 한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차원의 균형을 혼란시킬 수도 있는 엄청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녀석이 내려간 곳은 레바돈이다. 레바돈은 일종의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 무대) 차원이라고 할 수 있지. 레바돈에서 번영하지 못하는 종족은 다른 차원에서의 번영도 허락 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이 정도 소란도 수습하지 못할 정도라면 레바돈의 체면도 말이 아니라는 거지. 후후.”
물론 카이젤이 담당하고 있는 묘인족 역시 아직 레바돈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종족이었다. 가장 많이 번성하고 있는 종족이 인간, 그다음이 엘프와 드워프 순이었다.
‘어쩌면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묘인족도 드디어 다른 차원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어쨌든 자신이 담당하는 종족이 여러 차원에서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신으로서는 엄청나게 명예로운 일이었다.
“어쨌든 그냥 놔둬. 나중에 뭐라 그러는 놈이 있으면 그냥 내 명령이라고 해.”
평소라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저승사자는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카이젤의 꿍꿍이속을 모르는 저승사자로서는 감히 상급 신의 지엄한 분부에 반박할 배짱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