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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3화)
제2장 홍안의 소년(1)


응애…… 응애…….
라고 하면서 태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묘인족은 인간하고 다른 건가? 어쨌든 나는 그 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뒤로 꼬박 6개월하고 반을 여자 뱃속(이 경우에는 엄마라고 해야 하나?)에서 반쯤 잠든 것 같은 흐리멍덩한 상태로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처음 세상에 나오자마자 나는 여느 아기들처럼 울기는커녕 도리어 둥그렇게 눈을 뜨고는 멀뚱하게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오도카니 자리에 앉아서 말이다.
“이럴 수가!”
다행히 지난 6개월 반의 수면 학습(?) 때문인지 나는 약간 어눌한 감은 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무난하게 이 세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아무래도 내 그런 성숙한 모습에 놀란 건 아닌 듯싶었다.
“맙소사! 홍안이야.”
“설마 홍안의 묘인족이 다시 태어나다니…….”
“안 되겠어. 이 일을 얼른 칸님께…….”
흠! 내 눈이 홍안인가?
뭐! 솔직히 지금은 내 눈이 붉든지 푸르든지 별로 상관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부터는 나도 태어나자마자 털이 수북하게 돋아난 괴물 딱지 고양이 신세가 아니던가!
문뜩 나는 본능적으로(응?) 혓바닥으로 자신의 털을 핥았다.
‘핫!’
물론 그 행동에 나조차 소스라치게 놀라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간만에 세상에 나왔더니 배가 고프군! 게다가 목도 상당히 마르고 말이다. 혹시 물을 달라고 하면 주려나?
“아으아으.”
애석하게도 내 입에서는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성대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의외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자리에 앉을 수 있을 정도라서 마음만 먹으면 터벅터벅 걸을 수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신생아라는 건지 기껏해야 자리에서 엉금엉금 길 정도의 체력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어떤 여자가 먼저 나를 안아 올렸다.
“…….”
그 여자는 상당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잘 보니 방금 해산이라도 한 눈치였다.
‘결국 이 여자가 내 어머니란 말인가?’
그리고 그런 내 짐작을 손수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가슴을 풀어 헤치고는 곧 내게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거참! 이 나이에(?) 여자 젖이나 빨게 될 줄이야.’
물론 배가 고프면 뭔 짓인들 못하리……. 게다가 내 어머니라 하지 않던가! 하핫! 어쨌든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가슴에 얼굴을 물고 젖을 빨기 시작했다.
‘어쨌든 기분 참 묘하네…….’
뭐! 그래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엄마 품이란 걸 느껴 본 게 나도 이미 십수 년 전의 일이라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기분을 한 번에 망쳐 버린 발칙한 놈이 있었다.
“이 녀석이 내 아들인가?”
누군가 얌전히 밥(?)을 먹고 있는 내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마치 고양이처럼 덥석 들어 올린 것이다.
“칸.”
여자, 아니 내 어머니는 그 발칙한 놈의 등장에 조금은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물론 그도 조금 덩치가 크고 강해 보이는 인상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묘인족이었다.
‘어쨌든 이 자식이 내 아버지란 건가?’
그런데 그 칸이라는 남자가 갑자기 마치 내 눈동자 색을 제대로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내 목덜미를 쥐고는 내게 바짝 얼굴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근데 말이야.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거 의외로 상당히 짜증나는 짓이거든? 도대체 어따 대고 얼굴을 들이미는 거야.
“캬아아아오.”
결국 나는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며 그 인간에게 손톱을 뽑아 들고 휘둘러 버렸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라고나 할까?
“크으으윽.”
그 남자도 설마 갓난아기한테 일격을 당할 줄은 몰랐던 듯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뺨에 네 줄기 상처를 입은 채 피를 줄줄 흘려 대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설마 내 손에서 손톱이 튀어나올 줄은 몰라서(이건 뭐! 내가 호랑이도 아니고……) 조금 당황하고 있었고 말이다.
“이 새끼가…….”
그 남자는 곧 발끈해서는 나를 죽이기라고 할 듯이 한쪽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물론 그 손에는 내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날카로운 발톱이 자리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안 돼요! 칸.”
그런 칸의 행동을 제지한 게 바로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거의 애원하는 표정으로 나와 칸을 바라보았고 칸도 차마 그런 눈빛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려 보냈다.
“미안하군, 시안나! 내가 어린애 행동에 너무 흥분하고 말았다. 어쨌든 역시 홍안으로 태어난 녀석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하지만 하필 내가 족장을 맡은 시기에 홍안의 묘인족이 태어날 줄이야.”
어쨌든 그 남자, 아니! 칸이라는 이름의 내 아버지는 조금 난감한 듯 이마를 긁적이고 있었다.
“시안나! 너도 잘 알다시피 우리 묘인족에서 태어나는 건 금안 아니면 벽안뿐이다. 하지만 우리 묘인족이 위기에 처할 때 그 위기를 극복하라고 묘인족의 신인 카이젤님께서 홍안의 묘인족을 내려 주신다고 하지. 한마디로 홍안은 묘인족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말에 시안나도 걱정스러운 듯 나를 품 안에 꼬옥 끌어안았다. 하지만 나는 그냥 시큰둥한 마음뿐이었다.
‘최강? 쳇! 귀찮은데…….’
카이젤인지 가재인지 하는 그 괴물 딱지, 결국 날 부려 먹을 속셈으로 이 세상에 보낸 거군. 뭐? 최강? 그건 한마디로 나더러 고생이나 실컷 해 보라는 소리잖아.
‘빌어먹을!’
어쨌든 내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는 듯 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젠장! 이 아이한테는 잘못이 없겠지만 어쨌든 이 녀석은 우리 묘인족에게 피바람이 일어날 거라는 상징이나 다름없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이 자리에서 이 녀석을 죽여 버리고 우리 묘인족 전체가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 버리고 싶을 정도다.”
“카…… 칸?”
그 말에 당황한 시안나가 얼른 날 자기 품 안으로 숨기려고 들었다. 물론 그런다고 뭐가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게 아버지란 작자가 할 소리야? 그것도 아이와 그 어머니를 앞에 두고서?
하지만 칸은 이내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그런다고 운명이 정한 피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겠지. 어쨌든 나도 묘인족의 족장으로서 뭔가 대책을 구상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칸은 그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시안나가 먼저 칸을 불러 세웠다.
“저기…… 칸! 가기 전에 먼저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셔야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새로 태어난 묘인족의 이름은 무조건 그의 아버지가 지어 주어야 한다고 한다. 만일 아버지가 없을 경우에는 그의 대부나 족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식의 이름은 무조건 아버지가 지어 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칸은 그마저도 귀찮았는지 잠시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나와 시안나를 바라보면서 퉁명스레 말했다.
“카이렌…… 카이렌이라고 하지.”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근데 어이! 이건 너무 무성의하잖아. 아버지란 작자가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대충 지어도 되는 거야?
“칸.”
물론 시안나 역시 칸의 그런 퉁명스런 태도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싶었다. 하긴! 남편이라고 하나 있는 게 자식새끼 태어난 날에 저딴 태도면 나라도 화나겠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내 이름은 대충 카이렌으로 결정이 되었다. 물론 그 이름은 묘인족에게 있어서는 정말 흔하디흔한 이름이었다.
마치 철수나 영희…… 그런 이름들처럼 말이다.

***

솔직히 묘인족의 수명이 500년이라기에 나는 성장도 그에 걸맞게 엄청 더딜 줄 알았다. 근데 이놈의 괴물 딱지 종족은 어떻게 된 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버리는지, 사실 나는 태어난 지 채 3년도 안 되는 시간에 벌써 덩치가 시안나만큼이나 자라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완전한 어른이 되려면 아직 2년은 더 있어야 한다. 어쨌든 묘인족이 어른이 되려면 대략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지금의 나는 인간으로 따지고 보면 얼추 열대여섯 살 정도 되는 소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 시절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었던 시절까지 합치면 이미 서른 줄이 넘은 내가 고작 사춘기 따위에 휘둘릴 리 만무했다.
결국 나는 이 나이에 같은 또래의 묘인족 꼬맹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우습고 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아니면 시안나와 함께 보내곤 했다.
“후아아아암.”
어쨌든 나는 무료한 시간 대부분을 집 안뜰의 잔디밭에서 뒹굴거리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카이렌!”
그러나 시안나는 그런 자식의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라 도리어 걱정이 산더미 같다고 해야 하나?
“어라? 어머니 나오셨어요?”
물론 예전에도 불효자식이 새로 태어난다고 효자가 되라는 법은 없다. 나는 잔디밭에 드러누운 그대로 고개만 바짝 치켜들어서는 시안나를 보고 싱긋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시안나가 도리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넌 친구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하고 어울리지도 않는구나. 역시 네 아버지의 처사가 불만인 거니?”
사실 시안나는 칸의 열아홉 번째 아내다.
일부다처제, 강자가 많은 아내를 얻고 약자는 평생 여자 손 한 번 못 만져 보는 게 바로 묘인족인 것이다.
그리고 족장이란 일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묘인족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바로 일족에서 서열 1위를 차지한 묘인족만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시큰둥한 태도로 뺨을 긁적이며 마치 추궁하는 듯한 시안나의 시선을 간단하게 외면해 버렸다.
“글쎄요. 불만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내가 태어나고 나서는 한 손으로 꼽을 만치밖에 찾아온 적이 없는 사람인데……. 어쨌든 그 인간이 아버지란 생각은 별로 들지가 않는군요. 어차피 나도 수백 명의 자식 중 한 명 아닙니까?”
따지고 보면 굳이 내가 나서서 그 인간을 아버지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어차피 묘인족에게 있어 넘치고 넘치는 게 족장의 아들이니까.
게다가 그쪽이 신경을 쓰지 않겠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대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시안나의 생각은 그게 아닌 듯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내 손을 그러쥐었다.
“그건 네가 이해하려무나. 네 아버지는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란다. 그분은 일족의 안위를 모두 책임지셔야 하는 분이니까…….”
시안나의 심각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나마 시안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만일 칸이 날 찾아와서 이딴 소리를 했다면 아마 그 새끼 면상에 바로 사선 줄을 그어 버렸을 것이다. 물론 날 웃겨 준 대가로 면전에다 대고 키득키득 웃어 주면서 말이다.
어쨌든 칸이 나와 시안나를 찾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홍안의 묘인족이란 게 무서운 거지.’
뭐! 내가 다른 묘인족과 어떻게 다른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칸은 내가 커서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게 무서운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최강이니 뭐니 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귀찮은 족장 자리 따위에 흥미를 가져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뭐! 그 덕에 시안나만 불쌍하게 된 건가?’
어쨌든 홍안을 가진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시안나는 족장의 총애를 받는 부인에서 한순간에 일족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나까지 아프게 할 수는 없어서 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아무런 불만도 없어요. 단지 이렇게 어머니와 있는 시간이 좋아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
하지만 그런 말로도 시안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여전히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바른 자세로 앉아 정색을 하며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어머니 마음이 놓이시겠습니까?”
“……너는 가끔 나마저도 외인(外人) 취급을 하는구나. 꼭 그렇게 예의 바른 태도로 날 대해야겠니? 마치 남인 것처럼?”
어라? 의외로 이 태도도 마음에 안 드신 건가? 하지만 말이야. 나는 마음에 안 드는 놈한테는 일단 상소리부터 하고 보는 놈이라고…… 대표적인 놈이 바로 칸이지!
어쨌든 시안나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바도 아니기에 나는 그냥 싱긋하고 웃어 버렸다.
“아무래도 ‘엄마’ 같은 단어는 체질적으로 제게 맞지가 않네요. 게다가 어리광도 제 취향은 아닙니다. 어쨌든 그런 것 말고 달리 제게 바라시는 건 없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