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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5화)
제3장 묘인족의 족장이 되다(2)
“쩝! 어른답지 못한 짓을 저질러 버렸군.”
물론 케린도 그 누구보다 튼튼한 묘인족으로 태어났으니만큼 이 정도 공격으로도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입맛이 쓰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던 세이란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마치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황홀해 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말이다(물론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그녀를 스쳐 지나가면서 그녀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어 놓고는 말했다.
“오늘 일은 싹 잊어버려. 솔직히 이번 일은 나도 후회하고 있으니까. 만일 이 일을 떠벌리고 다니면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절대 안 봐준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었겠지?”
사실 이 일이 일족 사이에 퍼져 나가면 다른 떨거지들까지 내게 도전이랍시고 달려들 게 뻔했기 때문에 어쨌든 귀찮은 일은 최대한 피해 보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물론 저 세 놈이야 정신을 차리고 나면 아마 쪽팔려서라도 이 일을 떠벌리고 다니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여기선 세이란의 입만 막아 놓으면 될 터. 말귀가 통했는지 그녀가 내 말에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나는 세이란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들겨 주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러다 문뜩 내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내가 족장이 되면 어차피 다 똑같은 거 아닌가?”
내가 칸을 누르고 족장이 된다면 그것도 아마 전대미문의 일이 될 것이다. 일족 최초로 미성년 족장이 탄생하는 거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만만하게 본 녀석이 덤벼 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끄응! 이거 정말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나 정말 이대로 족장이 돼도 괜찮은 거야?”
뭐! 아직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수준의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뒷일도 충분히 생각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시안나의 부탁을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쳇! 역시 시안나 말을 들을 걸 그랬나?”
하지만 그건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사내자식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할 것 아닌가? 할 수 없이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뒤로 쓰윽 넘기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칸.”
내 갑작스런 등장에 칸은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음! 조금 당황스러울 만도 하겠군. 어쨌든 대낮부터 여자랑 배 맞아 나뒹굴려고 하는 순간에 내가 들이닥쳤으니…….
물론 칸과 같이 있던 여자(음! 그러니까 칸의 스물네 번째 아내였지? 이름이 케냐라고 했던가? 쳇! 묘인족 이름은 죄다 고만고만해서 외우기가 힘들단 말이야) 역시 알몸을 하고는 으르렁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냐! 꼬맹이.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냐?”
“자식새끼는 이미 충분한데 거기서 더 싸질러서 뭘 어쩌려고? 그딴 짓은 나중에 하고 나랑 한판 뜨자. 족장 자리를 걸고 네게 도전한다.”
하지만 칸은 내 말에 그냥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끄응!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내게 도전하고 싶으면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나중에 어른이 되면 싫어도 상대해 줄 테니까.”
훗! 나도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근데 어차피 내가 어른이 돼도 이런저런 핑계로 내 도전을 거부할 생각 아니었나?
어쨌든 이대로 물러나면 당분간은 기회가 없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손톱을 뽑아 들고 양손에 다시 그 마나라는 것을 집중해 보았다.
파츠츠츠츠.
그러자 내 양손의 손톱에 케린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선명한 마나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맺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칸도 조금은 긴장한 표정인가 싶더니 이내 짜증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개 같은 새끼…… 내 앞에서 무력시위라도 할 셈이냐?”
원래 사람을 개에 비유하는 욕은 한국에서도 흔하게 통용되는 욕이다. 그런데 고양이 계열인 묘인족에게 그 욕을 쓰게 되면 꽤나 묘한 여운을 남기게 된다.
한마디로 묘인족에게 있어 가장 심한 욕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 욕에 나는 물론이고 칸도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야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고 칸 역시 말은 저렇게 해도 내 도전을 받아 줄 생각이 없으니 그냥 내 기선을 제압하려고 한 말에 불과했을 것이다.
“잠깐만…… 칸! 이 자리는 내가 나서게 해 줘요.”
그때 문뜩 케냐라는 여자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아무래도 자신과 칸의 시간을 방해한 것 때문에 내게 앙심이라도 품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여자가 이런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니거든?
콰드득.
나는 케냐의 말을 더 들을 것도 없이 손톱을 휘둘러 묘인족 특유의 통나무집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을 한 번에 그어 버렸다.
콰르르릉.
물론 기둥 하나를 잃은 통나무집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나야 집이 무너지기 전에 얼른 밖으로 내빼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새끼가…….”
그리고 내 예상대로 칸과 케냐 역시 어렵잖게 무너지는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일로 칸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내 예상대로 말이다. 결국 케냐가 나서기 전에 칸이 먼저 손톱을 뽑아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흥! 정식 결투는 아니지만 이런 것도 괜찮겠지?”
“새끼! 죽여 버린다.”
내가 늘 하는 말인데 말이야. 흥분한 녀석은 상대하기가 쉽다고! 물론 케린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마나를 뿜어 대는 녀석이니 만큼 충분히 조심할 필요성이 있기는 했다.
‘쳇! 저 손톱에 걸리면 팔 하나는 가뿐히 날아가 버리겠군!’
어쨌든 천하의 강찬우도 이번 싸움만큼은 그리 만만하게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맞상대보다는 그냥 녀석의 힘을 흘려버리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런 기술은 내가 예전에 재미 삼아 배운 유도 기술에 무진장하게 널려 있었다. 게다가 지난 삼 년 동안 소일거리 삼아 전생에서 익힌 기술을 더욱 갈고닦은 상태다.
나는 달려드는 칸을 보며 도리어 양손에 마나를 거두어들이고는 한 팔로 놈의 팔을 감아쥐고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러자 칸은 자기가 달려오는 힘 그대로 요란하게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크으윽.”
물론 그 정도로 나자빠질 칸은 아니었는지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흉한 몰골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도리어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말이야. 묘인족은 가진 힘에 비해서 기술이 너무 없어. 그러니까 아직도 여기서 찌질이 종족이라는 소리나 듣는 거지. 내가 듣기로는 어떤 놈은 붙잡혀서 인간들 밑에서 노예 짓까지 하고 있다며?”
따지고 보면 타고난 힘을 이렇게까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놈들은 아마 묘인족밖에 없을 것이다.
드높은 자존심과 앞뒤 가리지 않는 저돌적인 성격, 하지만 인간의 얄팍한 꾀에도 넘어가는 게 바로 묘인족의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 말고도 꽉 닫힌 머리 때문에 인간에 비하면 더없이 발전이 더디다는 것도 크나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자식…….”
하지만 칸은 내 말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칸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듯 마구잡이로 마나를 날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물론 칸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게 내가 상대하기는 훨씬 더 쉽다.
차라리 처음 달려들 때가 훨씬 더 까다로웠다고나 할까?
결국 나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칸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바로 테이크다운(넘어트리기 기술)을 시도했다.
물론 이종 격투기 대회인 프라이드를 보고 대충 흉내 낸 것에 불과하지만 상대가 너무도 어설프다 보니 그것조차 속 시원하게 들어가 버린다고 할까?
콰당탕탕.
결국 칸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끗하게 바닥에 등을 깔고 드러누워 버렸다.
훗! 아마 등짝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일 테다. 여긴 절대 링 위가 아니거든. 하지만 난 그걸로는 안심할 수가 없었기에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워 그대로 칸의 배를 깔고 앉아 버렸다.
“무…… 무슨?”
물론 칸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당해 본 적이 없는 기술에 당해서인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반대로 내 얼굴은 사악한 쾌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쿡쿡…… 표도르의 파운딩이 얼음송곳이라고 했던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해 보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소원을 풀게 될 줄은 몰랐군.”
나는 칸의 얼굴에 시원하게 파운딩 펀치를 날렸다. 물론 손톱을 뽑아 든 것도 아니고 거기에 마나를 불어넣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묘인족의 힘과 반사 신경으로…… 그것도 파운딩이라는 마운트 포지션 상태에서의 펀칭 기술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초보에게 이 기술을 날리는 것은 사실 그리 권장할 만한 짓은 못 된다.
물론 MMA(이종 격투기)에 어느 정도 상식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방어라도 좀 할 테지만 차원도 다른 이곳 레바돈에서 그런 걸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퍽퍽퍽퍽.
결국 내가 날리는 파운딩 펀치는 열이면 열! 모두 칸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그나마 내가 봐줘서 망정이지 만일 내게 그를 죽일 마음이라도 있었다면 칸은 이미 골백번도 더 저승 구경을 했을 것이다.
물론 칸도 저항이랍시고 간간이 손톱에 마나를 집어넣고 내게 휘두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칸의 주먹을 손으로 걷어 내고는 다시 무릎으로 칸의 양팔을 짓눌러 버렸다.
“이봐! 지금은 봐주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내가 언제 널 죽이게 될지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이만 항복하시지. 날 아비 죽인 후레자식으로 만들지 말라고.”
“크으윽.”
하지만 칸은 꼴에 자존심은 있는 모양인지 여전히 반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쳇!”
게다가 칸 이놈이 신경 줄은 또 얼마나 질긴지…….
이 정도 파운딩 펀치를 날렸으면 보통 사람이라면 슬슬 정신이 나갈 만도 한데 칸은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거냐? 할 수 없군.”
결국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기술(또는 늘 구경만 하며 흥분했던 기술)을 칸을 상대로 한번 써 먹어 보기로 결심했다.
한마디로 칸을 상대로 암바(팔 관절기)를 시도한 것이다.
“크아아악.”
물론 내가 쓰는 암바 기술 역시 이종 격투기 선수들을 상대로라면 전혀 통하지도 않을 그런 어설픈 수준이었지만 이게 또 의외로 칸에게는 잘 먹혔다.
빠각.
결국 칸은 미처 저항할 틈도 없이 내가 시도하는 암바에 완벽하게 걸려들어서는 그대로 관절이 어긋나 버렸다. 하지만 나는 칸을 반병신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서 칸의 오른팔 관절이 꺾이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이 정도면 묘인족의 회복력으로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생뼈가 부러지는 충격이 오죽하랴. 칸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거의 사경을 헤매며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물론 그걸 바라보는 내게 동정심이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휴우! 어쨌든 의외로 손쉽게 이겼군. 근데 뭐? 묘인족이 최강이라고?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한다. 이딴 실력으로 최강이란 말이 나오냐? 젠장!”
나는 잠시 울컥한 마음에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칸의 배를 말 그대로 있는 힘껏 걷어차 버렸다.
결국 칸은 내 의도대로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배를 부여잡은 채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케냐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쩝! 만일 내가 족장이 되면 이 약해 빠진 녀석들부터 단련시켜야겠군.”
홍안이 태어나면 그때는 묘인족에게 피바람이 분다고 했던가? 그것을 막기 위해 홍안의 묘인족이 태어나는 거라면, 결국 뭔가 일이 생겼을 때 귀찮은 일은 나 혼자 다 떠맡아야 한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 잡것들을 단련시켜 놓으면 내 그런 노고도 어느 정도는 줄어들겠지. 이걸 두고 오늘의 작은 귀찮음이 내일의 큰 귀찮음을 막는다고 하는 건가?
‘훗! 까짓…… 함 해 보지 뭐.’
물론 내 결심을 알 턱이 없는 묘인족 전체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생전 맛보지 못한 지옥 구경을 하게 될 테니까……. 크크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