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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성전 1권(7화)
2. 유극문(有極門)(3)


다음 날의 일이었다.
나는 성구몽 장로의 제자로 들어가기 전, 하루 동안 다른 제자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상한 명령이다. 적어도 오 년 이상 수련한 유극문의 제자들과 내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건가? 서로 뜬금없는 일인 게 틀림없다. 나는 적지 않게 황당했지만 성구몽 장로가 내게 말했다.
“태오. 유극문은 도가계 문파가 아니라서 사승 관계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네가 장로의 제자든 문주의 제자든 직접적인 서열은 어쨌든 들어온 순이다. 즉, 지금 선배는 네가 죽을 때까지 선배!”
선배라는 말을 특히 강조한 성구몽 장로가 눈을 부릅떴다. 또다시 은연중에 살기를 뻗쳐 내고 있었다.
“선배한테 인사도 못하는 놈따윈 유극문에 필요 없다!”
“네. 갔다오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거 같은데…… 내 입장도 조금쯤은 생각해 주지 않는 건가.
나는 별수 없이 가시를 밟는 듯한 심정으로 유극문의 평제자들이 모여서 수련하는 연무전(練武殿)으로 향했다.
넓은 마당에는 약 오십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십열로 늘어서서 무공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부웅! 부웅!
이상한 것은 무협소설에 나오는(주로 소림사) 것처럼 검로(劍路)를 연습하면서 기합을 단 한마디도 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열 정면을 마주 보고 서서 훈련을 감독하고 있는 사범조차도 팔짱을 끼고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아니, 도리어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칼 휘두르는 소리밖에 안 난다는 게 섬뜩하기까지 했다.
조용하지만 뜨거운 움직임이 공기를 메우고 있다.
‘소설에서 봤던 거랑은 많이 다르네…….’
나는 언제 대화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멀리서 우물쭈물했다. 이 분위기에 들어가서 뭘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 사범으로 보이는 이십대의 준수한 청년이 나를 발견했는지 다가왔다.
그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이번에 들어온 태오라는 녀석이군. 선배들한테 인사하러 온 거냐?”
“네, 그렇습니다.”
“잘 왔다.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는데.”
뭐가 큰일이 난다는 걸까?
속으로 궁금했지만 차마 되묻진 못했다. 원갑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극문의 사범인 원갑(源岬)이다. 지금은 검진(劍陣) 기본형을 연습하고 있으니 저쪽에 앉아서 한 식경 정도 기다려라.”
나는 원갑이 가리킨 곳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확실히 뒤에서 보니까 검진의 형태를 알 수가 있다. 다들 같은 호흡에 같은 동작을 하는데 박자가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엄청난 연습을 해서 서로의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합이 없는 이유는 당연하다. 실전에서 일일이 기합을 넣으며 싸우는 건 바보짓이다. 어차피 이 악물고 무호흡으로 칼을 휘둘러야 할 테니 미리 실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기합은 호흡의 폭발이기 때문에 함부로 남발하면 체력이 빨리 소모되기 때문이다.
이것도 무협소설에 봤던 걸로 추측한 거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새로운 가설을 마음속에 묻어 두면서 흥미롭게 검진 수련을 지켜 보았다. 생각보다 무공이란 건 재밌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에 다들 하단세 검초로 동작을 마무리했다. 사범은 검진 수련이 끝나자 각자 자유연습을 할 것을 지시한 후,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 저기 뒤를 보면 새로 들어온 후배인 태오가 있다. 인사하러 왔으니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도록.”
휙!
그 순간, 남녀 가릴 것 없이 오십여 명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날아와 박혔다. 나는 그만 쫄아서 직립 부동자세가 되어 버렸다. 이럴 때는 첫 인상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며 크게 외치며 인사했다.
“저는 유극문에 입문한 태오입니다! 선배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난 원래부터 그렇게 어두운 성격도 아니다.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지르고 나자 속이 도리어 시원해졌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알 수 없는 살기도 느껴졌다. 그들 중에서 한 명이 손을 들어서 사범 원갑에게 질문했다.
“사범님! 지금부터 배우면 소영검법(消影劍法) 기본형도 못 배울 텐데 괜찮을까요?”
“뭐가 괜찮겠냐는 거냐?”
“따로 가르쳐 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 수련하기도 바쁘다는 말이었다.
원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외쳤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태오는 오늘 인사차 온 거고, 내일부터 정식으로 성구몽 장로님의 직전으로 들어간다.”
스악!
그 순간이었다.
왁자지껄, 조금쯤은 호의적인 분위기였던 장내가 갑자기 차갑게 굳어 버렸다. 절반쯤은 두려움과 공포, 나머지는 불신과 질투로 메워져 있는 분위기였다.
이제는 대놓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선배들도 있었다.
개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삼십대의 유극문 문도가 물었다. 그는 불신을 품은 표정이었다.
“정말입니까? 저 꼬마가 성구몽 장로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
웅성웅성!
이윽고 당혹감과 함께 문도들이 저마다 떠들었다. 부러워하는 자가 반이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자들이 반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중에서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원갑은 짜증이 나는 듯 돌연 내공을 돋우어서 외쳤다.
“갈(喝)!!!”
거대한 외침과 함께 건물의 기와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땅도 약간이지만 흔들렸다. 고막이 그렇게 아프진 않은데 실제로 주변사물에 힘을 미치고 있었다. 원갑의 사자후에 수련생들이 조용해지자, 원갑이 단호하게 말했다.
“알다시피 장로들께서 제자를 받아들인 건 태오가 최초다. 너희 중에는 장로분들의 위명에 이끌려서 입문한 자도 있으니, 충격이 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배로서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네.”
“그럼 오늘은 자유대련. 해산!”
“감사합니다!”
원갑은 그 말이 끝나자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리고 장내에는 나와 선배들만 남게 되었다. 나는 오십여 명이나 되는 선배들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눈치 빠른 내 생각에, 선배들은 마냥 내게 호의적인 게 아니다. 아까 대놓고 노려보던 사람들이 있으니 섣불리 행동하면 큰일이 난다.
‘어쩐다? 그냥 튈까?’
망할 사범! 대책없이 내가 장로의 제자라는 말만 하고 사라지다니 뭐 어쩌란 거냐! 하다못해 사범이 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났을 텐데. 마치 사자무리에 던져진 양이 된 기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십여 명의 사람들 중에 나한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수련을 하는 건 십여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전부 내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식은땀이 갈수록 늘어나는 가운데, 나를 둘러싼 선배 중 한 명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태오라고 했냐? 넌 혹시 성 씨냐?”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태오입니다.”
“그냥 태오?”
옆에 있던 사람이 중얼거렸다.
“평민이야. 그것도 농부의 자식 같군. 다리가 단단하고 몸이 억세 보이는데다 피부가 굉장히 많이 탔어.”
“하긴 성구몽 장로님의 혈족이 농부일이나 하진 않겠지.”
“…….”
그들끼리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에서, 내가 성구몽 장로의 가족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점차 그들이 뿜어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해 가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약간 공포심을 느끼며 뒤쪽으로 물러섰다.
붉은 무복을 입은 여자 선배가 싱거운 듯 한숨을 쉬었다.
“그만해. 때리거나 혈도제압이라도 할 셈이야? 유치하네.”
“설앵(雪鶯). 우리가 바본 줄 아냐? 장로의 제자를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생기려고.”
내게 처음 시비를 걸었던 사람들은 설앵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결코 그런 일은 없다는 태도였다.
‘구라치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설앵이라는 여선배가 한마디 해 주지 않았다면, 자기 감정을 못 이긴 사람들이 나에게 공격을 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격렬한 질투의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