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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성전 1권(9화)
3. 수련(修鍊)(1)


장로의 제자로서 제대로 수련을 시작한 건 날이 밝아오기 전의 새벽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눈이 따가웠지만 성구몽 장로는 아주 익숙하다는 듯,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내게 앉으라고 하고는 질문했다.
“제자야. 무공(武功)이 뭐냐?”
무협소설의 단골 질문이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물론 무협소설을 통해 읽으면서 정립한 생각은 있다. 그러나 이건 [현실]의 무림. 소설에서 읽은 바를 어설프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몸에 맞는 옷입니다.”
역시 소설에서 느낀대로 말해야겠다. 환룡은 실제 무림인이니까 그가 보고 느낀 건 실제로 있었던 일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호오?”
내 대답에 성구몽이 한쪽 눈썹을 크게 치켜떴다. 그는 호기심이 생겼는지 재촉하듯이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몸에 안 맞으면 입지를 못하고, 입어도 옷이 좋지 못하면 볼품이 나지 않고, 입은 사람이 별 볼일 없으면 옷이 쓸모가 없기 때문이죠.”
“……!!”
성구몽이 엄청나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침부터 마치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근엄한 표정을 하길래 오늘은 무게를 잡으려 했을 텐데,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성구몽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혹시 다른 자에게 무공을 배운 적이 있느냐?”
“아뇨.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검성전(劍聖戰)에서 만났던 ‘그자’가 하던 말과 너무 비슷하구나.”
누군가가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정답이라고 해 두겠다. 넌 의외로 뛰어날지도 모르겠구나.”
첫 칭찬을 들었는데도 그리 기쁘지 않다. 의문이 마음속에 차 있기 때문이다.
검성전?
또 듣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문주도 장현익이라는 자를 쓰러뜨릴 때 검성전을 언급했었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져서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검성전이 뭡니까? 문주님께서 ‘검성전에서 살아남은 실력자’라고 하던데.”
“흠. 제갈휴를 비롯한 사검사(四劍士)들은 말 그대로 검성전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문주와 우리 장로들을 제외하곤 유극문에서 가장 강한 무인(武人)들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성구몽 장로가 말했다.
“아까 네가 말했던 것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검성전은 [천하에서 누가 제일 옷을 잘 입었나]를 겨루는 장소다. 쉽게 말하자면 이십 년에 한 번씩 수도에서 중원최강(中元最强)의 무인을 가리는 대회인 셈이지.”
중원최강!
단순한 단어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뜨거워지게 하는 뭔가가 있다.
“왜 하필 검입니까? 창이나 활이나 병기의 종류는 수백 가지가 넘을 텐데.”
“딱히 검성전에 검사만 출전하는 건 아니다. 검성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초대 우승자이자 설립자가 검을 썼기에 검성(劍聖)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인 게지. 무기 종류는 무제한이다.”
“…….”
뭔가 억지스러운 느낌이 팍팍 들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무인들은 뭔가에 미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생각하는 걸 일개 촌부의 아들인 내가 쉽게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제갈휴를 비롯한 사검사들은 전대 유극문주의 직계 제자들이다. 십오 년 전에 검성전에 출전해서 지룡전(地龍戰) 팔강(八强)까지 올라갔지만 우승 후보와 만나는 바람에 탈락했지. 사검사 정도의 실력이면 당대 무림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절정고수들이다.”
“그렇군요.”
“뭐, 결국 유극문주는 자기 딸에게 문주직을 넘겼지만…….”
잠시 중얼거리던 성구몽 장로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검성전은 지금 그에게 큰 관심사가 아닌 듯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나는 네게 유극문 비전의 소영검법(消影劍法)과 유극신공(有極神功)을 전수할 거다. 그런데 만일에 익히다가 소영검법과 유극신공이 네게 [안 맞는 옷]이라면 어떻게 해야겠냐?”
“안 맞는다고요?”
“그래. 억지로 끼워서라도 입을 순 있겠지만 안 입느니만 못하게 되는 녀석도 종종 있다. 그럴 경우 넌 어떻게 하고 싶으냐?”
“…….”
나는 망설였다. 확실히 무협소설에서도 무공을 익히다가 맛이 가거나 재능이 부족해서 절망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내가 그 경우가 아니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난 곧 대답했다.
“어쩔 수 있습니까? 그냥 익혀야죠.”
“왜?”
“그렇다고 발가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푸하하하핫!
성구몽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저께도 그랬지만 의외로 잘 웃는 성격인지도 모르겠다. 화통한 면도 있다. 성구몽 장로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래 맞다. 기왕 익히기 시작하면 평생(平生)을 무술에 바친다는 건 바로 그런 뜻이지. 도사나 승려들이 피의 대가 운운하면서 업(業)을 비판하는 건 결국 바보 같은 소리.”
불끈하고 성구몽 장로의 손이 쥐어졌다. 무언가 강렬한 기운이 풍겼다.
“무공은 결국 힘! 힘은 정의! 이 기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아무리 그럴듯한 말도 글도 쓰레기에 불과하다.”
“네, 알겠습니다.”
어째 하는 말이 마도(魔道)의 인물 같았다. 무협소설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혈마(血魔)라는 호칭이 있으면 예외없이 왕년에 사람을 좀 쳐 죽인 전적이 있다.
성구몽 장로가 말했다.
“문주는 두 달 후에 천휘문과 개전(開戰)할 거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 우리의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어제 천휘문에 소금에 절인 소문주 장현익의 목을 보냈으니, 천휘문 측에서는 당장에라도 쳐들어오려 할 게다. 도보로 칠 주야가 걸리는 거리라서 시간을 넉넉히 잡았을 뿐이야.”
“그러면 한 달도 안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내 질문에 성구몽 장로는 탁자에 턱을 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한 달은 무슨…… 열흘 내에 공격해 올지도 모르지.”
“…….”
나는 앞으로 열흘 동안 장로의 무공을 배워서 문파 간 전쟁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성구몽 장로의 말은 그런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나는 이해는 했지만 하도 절망적인 상황이라서 정신이 멍해졌다.
이런 무협소설이 있던가? 기본적으로 수련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지 않은가! 성구몽 장로가 큭큭 웃었다.
“흐흐…… 촌부의 아들인 네 녀석은 모르겠지만 천휘문은 귀검(鬼劍)의 도움을 제외하고도 세력이 막강하다. 정주 일대에서는 소림사 다음으로 커다란 문파지. 중원 전체를 통틀어서 구파일방(九派一邦) 이외에는 상대할 만한 세력이 매우 적다.”
“그러면 저희 유극문은 얼마나 강합니까?”
“약해!”
철을 끊는 듯한 단정적인 어조에 나는 반문하고 말았다.
“예?”
“약하다고. 환령 지역이라고 해 봤자 겨우 두세 개의 고을을 합친 정도잖느냐. 여기서 제일 큰 문파라고 해 봤자 중원급으로 놀고 있는 천휘문에 비하면 세력이 절반도 안 되지.”
“…….”
난 아직 태어나서 환령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환령 지역을 작다고 할 줄은 몰랐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는 생각보다 작았던 것이다.
“아마 천휘문도는 최소 삼백 명 이상이고, 실력 있는 고수만 해도 삼사십 명은 될 거다. 검성전에 출전해서 인룡전(人龍戰)을 통과할 실력자도 내가 알기로 두 명이나 있다. 이놈들이 죄다 쳐들어 오면 악몽일 거다.”
말이 삼백 명이지, 삼백 명에게 한 대씩만 맞아도 어지간한 사람은 반죽음이 될 것이다. 숫자의 두려움을 실감하고 나는 약간 떨었다. 곧 성구몽 장로가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천휘문 말고도 여기저기에 원수 관계인 문파가 지천에 깔려 있단 게지. 전대 문주가 죽자마자 여기저기서 도발을 걸어오는 상황이다.”
그 순간, 나는 문주의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어린 기재들은 아무도 안 들어오려고 해서 말이야.”
“여기서 수련하면 머지 않아 죽기라도 합니까?”
“잘 아네. 다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