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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성전 1권(10화)
3. 수련(修鍊)(2)
그 말은 과장없는 사실이었다.
무공에 관심 있고 재능 있는 영재(英才)들이 근 오 년 이내에 입문하지 않은 이유는 지당했다. 세력도 약한데 여기저기에 원한 관계가 많아서 지속적으로 공격받는 문파에, 도대체 누가 자식을 보내고 싶겠는가?
“…….”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난 태오 네 녀석을 열흘이면 쓸 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지.”
성구몽은 킬킬 웃었다.
“지옥을 보면 충분히 가능해…….”
지옥이란 무엇인가.
나는 바로 오후부터 시작된 수련에서 그게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뚜벅뚜벅.
성구몽 장로는 나를 이끌고 건물의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본래 고수들은 경공을 익혀서 발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는 굳이 심력(心力)을 소모할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커다란 초가 곳곳에 있어서 은은하게 어둠을 밝혀 주고 있었다.
“앉아라.”
성인 두세 사람이 지낼 만한 크기의 밀실에 도착하자 성구몽은 나를 맞은편에 두고 앉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기분이 두근두근해졌다.
‘격체전공(隔體傳功)? 이건 분명히 그런 분위기 아닌가?’
스승이 지닌 내공을 제자에게 전해 주는 비술! 내가 생각하기에 일주일만에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별 노력도 안 하고 공력을 손에 넣는다는 게 찝찝하긴 하지만 대단할 것 같다.
내가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성구몽 장로가 차갑게 웃었다.
“넌 지금부터 내가 뭘 할 것 같으냐?”
“잘 모르겠습니다.”
“미리 각오해 두어라. 절대 중간에 그만두지 않으니까.”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내가 긴장 때문에 침을 꼴깍 삼키자 성구몽 장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당금 강호에는 수많은 천재(天才)들이 존재한다. 천재적인 초식 이해도나 천부적인 몸, 혹은 자기만의 경지를 개척해 버린 자들이다. 강호에선 흔히 그런 자들을 천인일재(千人一才)라고 부르는 편이다. 무림의 길에 몸을 담은 일천 명 중에서도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의 소유자들이지.”
“그냥 천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귀찮게 천인일재라고 따로 명칭을 붙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소 건방져 보이는 딴지를 걸었지만 성구몽 장로는 화내지 않고 느긋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는 깐족거리는 성격을 그렇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천재는 세상에 많다. 열 명 중에 하나 있는 수준도 평범한 놈에겐 천재지. 어차피 드넓은 중원에 그럭저럭 뛰어난 재능을 지닌 놈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는 뜻이다. 그런 놈들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壓倒的)으로 천부적인 놈들을 천인일재라 하는 것이다.”
“…….”
“천재 중의 천재라고 할까? 재능 하나로 노력이 무의미해 보일 정도인 인간들이지.”
그런 괴물 같은 인간이 정말 현실에 존재할까?
나는 의혹이 일어났지만 일단 참고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 유극문에는 천인일재의 수준에 있는 천재가 딱 두 명 있다.”
“누굽니까?”
“문주와 알타리(斡他理). 알타리는 유극문 사검사(四劍士) 중 한 명이다.”
사호 문주야 할 말이 없다. 고강한 장로와 사검사들을 거느리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천휘문의 소문주를 죽일 때 나타났던 죽립의 사내들 중 한 명이 알타리인 모양이다.
유극문의 서열은 문주, 장로, 사검사, 그 다음에 사범과 평제자인 듯하다. 나는 성구몽 장로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고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태월하, 채은 세 사람은 그 정도의 재능을 지니지는 못했다. 젊었을 적에 문파에서는 나름 뛰어난 후기지수였지만 타고난 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강해졌겠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강호에서 천인일재를 타고나지 못한 자는 만인일귀(萬人一鬼)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만인일귀? 그러고 보니 문주가 그런 말도 했었다. 만 명 중에서 한 명은 귀신이 된다고 하는 강호의 격언이다. 하지만 천 명 중에 하나 있다는 기재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쫓아간다는 말인 것인가.
성구몽 장로의 몸에서 은은한 혈광(血光)이 흘러나왔다. 내공을 운기하면서 저절로 빛이 흘러나오는 현상이었다. 그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유극신공(有極神功)도 팔 성(八成)까지 익혔지만 실제 나의 독문절학(獨門絶學)은 사룡광마혈(死龍光魔血). 삼십여 년 전, 사룡광마혈의 전승자는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 있었으나 십 성 공력까지 완벽하게 익힌 건 오직 나밖에 없었다. 내 사형들은 모두 천인일재의 재능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들의 재능이 더욱 탁월할 텐데.”
성구몽는 미미하게 흉소(凶笑)를 지었다.
“무림의 세계에서 절정(絶頂)의 수위까지는 재능이 압도적인 영역을 차지한다. 그러나 세상 누구도 예외 없이 거기서 벽에 부딪히지. 거기에서 인격(人格), 감정을 모조리 말살한 심연(深淵)을 헤쳐 나온 자만이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난과 구차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
나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심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지옥을 건너야 한다. 천재라 불리는 자들은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렁을, 자신의 손으로 헤쳐 나가는 것이다. 그 엄청난 노력을 가리켜서 만인일귀(萬人一鬼)라 한다.”
이런 이야기는 무협소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환룡 작가조차 한 줄도 적어 놓지 않은 것이다. 심연이나 지옥을 언급할 정도로 연속되는 수련의 고난. 분명히 무협 주인공들의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불안해하거나 말거나 성구몽가 말을 이었다.
“내가 심연을 돌파한 지도 수십여 년이 흘렀다. 아직도 무학의 경지는 많이 남았고 강자는 많이 있지만, 내 나름대로 수련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지. 그리고 나는 언제부턴가 한 가지 재밌는 이론에 확신을 가졌다.”
“뭐, 뭡니까?”
“차라리 첫 단추부터 만인일귀의 마경(魔境) 속에서 헤엄친다면 재능에 관련없이, 어떤 멍청이라고 해도 일정 수위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지.”
화륵!
성구몽 장로가 품속에서 커다란 향을 세 개 꺼내서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 새빨간 기운을 끌어올리더니 바로 향 끝에 불을 붙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삼매진화입니까?”
“삼매진화?”
향을 여기저기에 놓던 성구몽 장로가 터무니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그런 게 어딨냐. 무림의 호사가들이 병신 같은 이름을 붙였을 뿐, 내공으로 불을 일으키는 건 십 년만 수련하면 다 한다. 물론 사람을 불태울 정도의 화공(火功)은 좀 다르지만.”
“…….”
“자, 육합(六合)의 방위에 따라 내삼합(內三合), 외삼합(外三合)의 방위로 향을 놓았다. 잘 보고 지금 놓은 향의 위치를 기억해라.”
나는 성구몽의 말대로 향의 위치를 기억했다. 그러고 보니 향은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향을 내 주변에 놓아서 뭘 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아무튼 수련일 거라고 생각했다.
성구몽 장로는 향 한가운데에 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게 한 후, 내게 심법(心法)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본래 유극신공(有極神功)을 먼저 익혀야 하지만, 시간이 없으므로 내 독문절기인 사룡광마혈을 먼저 전수한다. 지금부터 내가 가르쳐 주는 스물세 호흡을 잘 기억하면서 정신을 가라앉혀라.”
“질문할 게 있습니다.”
“또냐? 넌 정말 말이 많구나.”
성구몽 장로가 인상을 찡그렸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무협소설 애호가로서 이 질문은 꼭 해야만 한다. 조금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던 의문점이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공력을 같이 익히면 산공(散功)할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 없는데? 나는 유극신공뿐만 아니라 강락경(强絡境)도 함께 익히고 있다.”
“…….”
“하아. 너에게는 내공의 기초이론부터 잠깐 설명해야겠구나.”
성구몽 장로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끈지끈 누르며 말했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공은 결국 경락(經洛)을 통해 뿜어져 나온다. 우리가 내공심법이라고 하는 것들은 몸 속에서 기(氣)가 원활하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넓히는 작업이다. 한 번 대혈(大穴)을 타통(打通)하면 이후로는 성질이 다른 기(氣)라고 하더라도 쉽게 융화가 되지. 하긴 멋모르고 이것저것 잡공(雜功)을 주워 익히는 잡놈들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유극신공이나 사룡광마혈은 그런 무공이 아냐!”
그는 상당히 화가 난 듯했다. 자신이 익힌 무공에 대한 자긍심을 강하게 건드린 듯했다. 안 물어보느니만 못한 상황이라서 나는 뻘쭘하게 대답했다.
“네…… 네에.”
“이제 입 닫고 사룡광마혈 호흡을 잘 외워라.”
한마디만 더 하면 수련이고 뭐고 때려죽일 기세라서, 나는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성구몽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호흡을 하는 흐름을 따라했다. 일부러 내공을 이용해서 소리를 크게 내주고 있어서 따라하기는 쉬웠다.
스물세 호흡을 다 따라하자 열 번 정도 성구몽이 반복 연습을 시켰다.